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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추석 한가위 행사가 개최된 키르기스스탄 국립극장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과 대부분 우리 동포로 보이는 많은 이들로 만원을 이뤘다. 곧이어 시작된 공연엔 부채춤, 사물놀이, 강강술래, 북춤, 한국민요 및 가요 등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공연이 계속 이어졌다. 마치 한국에서 온 대규모 공연단이 한국의 종합예술을 선보이는 듯했다. 사실은 모두가 현지 고려인들로 구성된 공연단 ‘만남’의 공연이었다.

  1998년에 창단된 만남은 한국교육원에서 개설한 사물놀이, 부채춤과 같은 전통 문화 프로그램의 교육생들이 계속 합류하면서 키르기스스탄뿐만 아니라 독립국가연합(CIS)지역 전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품 공연단이 되었다. 전통예술 전문가가 부족한 키르기스스탄에서 교육원은 한국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교육생 및 공연단원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하고, 만남은 수시로 한국에 가서 우리 전통예술을 직접 익혀 와서 현지에서 적용하였으며, 또한 한국에서 방문한 대학생 봉사단의 공연활동도 공연단 만남에는 또 하나의 학습의 장이었다.

  요즘 중앙아시아 지역의 많은 고려인이 한국, 러시아 등으로 이민을 가면서 공연단원들이 점차 줄어들고는 있지만, 만남은 한국의 여느 공연단에 비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우수한 예술성을 보유하고 있다.

  독립 이전의 CIS 지역 고려인들은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 북한의 언어, 노래, 무용 등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아직까지도 고려인 사회에 남아 있으나, 독립 후에는 우리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2001년 한국교육원이 설립되면서 한국어 및 문화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근근이 이어오던 한국문화 계승 노력을 실천에 옮긴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공연단 만남이다.

  1937년 스탈린의 이민족 이주정책에 따라 연해주에 거주하고 있던 우리 한민족의 대다수가 이곳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사막지대에 정착되었다가, 그 후 일부는 다시 키르기스스탄과 러시아 일부 지역으로 분산 이동되었다. 그 후손들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약 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약 2만 명의 고려인이 현재 고려인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1989년에 키르기스스탄 고려인협회가 처음으로 창립된 후, 그동안 잃어버렸던 우리 문화에 대한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고려인 무용단과 어린이 뮤직스튜디오를 창설하여 고려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전수하는 역할을 했으며. 1997년부터는 설날은 물론 추석 행사를 개최하여 고려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 노래와 춤, 공연으로 우리 문화를 즐기는 행사를 이어왔다.

  그리고 1998년에 키르기스스탄 고려인협회가 재정비되면서, 이때 공연단 만남이 창설되어 고려인의 거의 모든 행사에 이들이 주된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 고려인들의 아픈 역사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우리 고려인들은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 이곳 중앙아시아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나고 있다. 비록 CIS 국가들이 독립 후 민족 주체성을 찾아 자국어를 공식어로 채택하여, 러시아어가 주 언어인 우리 고려인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중앙아시아 100여 민족 가운데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에 따라 고려인들의 자부심도 높아가고 있으며, 우리 문화를 계승하려는 열의도 보다 강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중앙아시아 지역 거주 우리 동포들에 대한 한국어 및 문화교육에 대해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하는 필요성이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가 아닐까?

  올해 우리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한민족 대축제, 한국영화제, K-팝 대회, 한글주간행사 등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려인 공연단 만남의 어린 고사리손 사물놀이와 부채춤 공연, 그리고 고려인 추석 행사에서의 다양한 공연과 함께 고려인 ‘노인합창단’의 고향의 봄 합창은 나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이러한 고려인들의 노력은 우리 한민족 본래의 끈질기고 강인한 민족성에서 유래하며 성실함과 간절함이 덧붙여져 앞으로 더욱 발전하리라 본다. 키르기스스탄 고려인들로 구성된 공연단 만남과 같이 우리 문화를 계승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정부와 대사관의 노력도 더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정병후 / 駐키르기스스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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