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를 지키며 사는 원동마을 세자매

 

“고향 한번만 가봤으면 얼마나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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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마을에 사는 세자매. 왼쪽부터 김따냐(59)  김알료나(61)  김안나(65) >

 

 

우리는 원동에 살다가 카자흐스탄 실려왔소

첨에는 고생 하면서 구차하게 살았소

고생하는데 카자흐사람들은 우리를 도와주고

집에 모아 음식을 공원해여

올해 80지나간 카자흐스탄

고레 사람들 위해서 살게 되었소

아들 손자 많이 있어 같이 살면서

고향 한번만 가봤으면 얼마나 좋겠소

 

 

   고려창가 한 자락 불러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따라 김 따냐(59)씨와 세자매는 이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주었다.  이 노래는 우슈토베 고려인들이 한-소 수교 후 모국방문을 가는 길에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따냐씨의 노래 공책에는 소리나는 데로 적혀 있는 노랫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고향 한번만 가봤으면 얼마나 좋겠소’ 라는 대목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애환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했다.

 고려창가를 잘 부르는 걸로 유명한 김 안나( 65세), 김 알료나(61), 김 따냐(59)씨는 이 노래외에도  어릴 때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들을 취재진에게 들려주었다.

  일명 ‘원동마을 세자매’라고 불리우는 이들 자매들은  부모님으로 부터 들은  80년 전,  이주 당시와 그후 가족들의 살아온 얘기, 특히 어머니가 손수 해주시던 우리 음식에 대한 추억들을 오랜 기억의 창고속에서 꺼내 놓으셨다.

   “우리 어머니는 러시아인었소. 그래서 강제이주 대상자가 아니었소.”

 이 말을 듣고 난 뒤 안나, 알료나, 따냐씨가 서양인의 얼굴과 비슷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들 세자매는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그때 우리 어버지가 어머니한테 원동(연해주)에 그냥 있으라고 했다고 하오. 왜냐하면,  당시 원동에 살던 조선 사람들이 어디로 실려갈 지를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고생할 것을 걱정해서 그렇게 말했다는데, 우리 어머니가 기어이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고 그렇더구만” 

 “그랬으니까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지.”

 어머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큰 언니 안나씨가  툭 던진 한마디에 모두들 한바탕 크게 웃으며 마치 동네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떠는 분위기처럼 인터뷰가 이어졌다.

   러시아인이었던 세 자매의 어머니는 남편을 따라 우슈토베 지역으로 온 이후 고려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며 우리말과 음식들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세 자매는 모두 집에서 간장과 된장을 직접 담가 먹는다고 하는데, 러시아인 어머니로 부터 직접 배웠을 뿐만 아니라  된장에 풋고추를 박아서 밑반찬을 만드는 것과 물김치 만드는 범, 찰떡, 시루떡, 유가, 엿 만드는 법도 배웠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참 좋았소. 아버지가 갑자기 집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와도 제까닥(바로) 술상을 만들었고 어린 우리를 불러내어 아버지 친구들에게 인사를 시켰지요”

알료나씨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유창한 고려말로 거침없이 쏟아내셨다.

“소련이 해체되고 난 뒤에 외국사람들 중에 영국과 일본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 어머니를 인터뷰하자고 하더구만.  그 사람들은 러시아인 여성이 고려창가를 잘 부르고 고려음식을 누구보다도 잘 만든다면서 필름으로 다 찍어갔소. ”

  “나는 일찍 시집가서 우리 음식을 잘못하지만  내 동생이 어머니 곁에서 오랫동안 배워서 고려음식을 잘 만드오” 라는 안나씨는 “내  남편은 독일사람인데,  나보다 고려음식을 더 좋아하오.”

 따냐씨가 듣고 있다가 끼어들었다.  “원래 얻어먹는 놈이 맛을 더 잘 안다” 다시 한번 더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고려인 외에도 독일, 쿠르드 민족 등이 이주당한 우슈토베

 우슈토베에는 37년도에 이주당해 온 고려인외에도 4년 뒤 독일, 쿠르드, 체첸 민족들도 이주해 왔다.  히틀러의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소련영토내로 진격해 들어오자, 독일군 편을 들 것을 염려한 스탈린 정부에 의해  소련영토내의 독일인과 카프카스 지역에 살던 민족들이 이주를 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우슈토베에 온 이들은  먼저 이주당해 온 고려인들이 건설한 꼴호즈에서 분산되어 거주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민족어외에도 고려말을 배워야 했고 또 일부는 고려인들보다 더 고려문화를 잘 지켰다고 한다. 이주당한 소수민족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불가피한 현상이겠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우슈토베에서는 고려말을 유창하게 하는 쿠르드인, 김치를 맛깔나게 만들고 된장국을 잘 끓이는 독일인 며느리는 평범한 일상사가 되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온돌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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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따냐(59) 현관의 한켠에는 대표적인 월동식품인 토마토, 오이 절임 등이 담긴 유리병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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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냐(59)씨의 집에는 아직도 온돌구들이 있다>

 

따냐씨가  “우리집엔 구들장이 있는데 한번 볼테오? ”라고 하는 말에 취재진은 깜짝 놀라 따냐씨를 따라나갔다.  그녀가 안내한 안채에는 우슈토베의 따가운 여름 햇살을 받고 자란 싱싱한 오이와 토마토를 유리병에 가뜩 들어있었다.  소금에 절인 야채들은 우리의 김장처럼 겨울을 대비한 저장식품들이었다. 

  바로 그 옆에 온돌구들이 있었고 불을 떼는 화구 주변엔 냄비와 살림살이가 놓여있었다.  

  지금도 사용하냐는 질문에  “지금은 여름이라서 사용하지 않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저기에 불을 떼면 온 바닥이 뜨끈뜨끈하오. 겨울이면 아버지가 직접 저기에 석탄불을 때었는데 온돌바닥에 누워서 아~ 좋다고 말씀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소. ”

 따냐씨는  “지금은 거의 안남아 있지만, 예전엔 고려사람들이 원동에서 하던 데로 이렇게 자기 집에 구들장은 놓았지요”  

또,  따냐씨가 보여주는 그녀의 안방엔 잘 정돈된 이부자리 옆 장농속에  한복 한벌이  곱게 걸려 있었다.  저 한복을 언제 입느냐고 물어보자

“카자흐스탄의 큰 명절인 나우르즈때에는 각자 자기 민족의상을 입고 나가는데,  나는 저 한복을 입고 나가서 고려창가도 부르고 춤도 추오.  다른 민족들 옷보다 우리 고려 한복이 제일 곱지. 근데,  저 한복이 나한테 작아서 춤을 이렇게 이렇게 추오” 하면서  겨드랑이가 보일까봐 팔을  붙인채  춤을 추는 시늉을 해보였다.

 세 자매 중 가장 덩치가 큰 따냐씨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춤추는 시늉을 하자 취재진들은 다시 한번 크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마음속 한 켠에서는 씁쓸하고 뭔가 애잔한 감정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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