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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 종식 이후 옛 동구와 서구 진영이 재대결로 치닫는 최대 위기인 우크라이나 내전이 15일 0시를 기해 다시 휴전에 들어갔다. 모든 전투행위의 즉각 중단 및 현 전선을 중심으로 한 비무장지대 설치 등을 골자로 한 이번 평화안은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지난 11~12일 밤을 새워 진행된 러시아·우크라이나·독일·프랑스의 4자 정상회담에서 가까스로 합의됐다. 하지만, 유럽연합 및 나토 가입 등과 관련된 우크라이나의 위상을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이견은 여전해, 휴전이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역사적으로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진 러시아로서도 물러서기 어렵다. 러시아의 역사적 탄생부터 소련을 거쳐 다시 현재의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서방과 벌여온 오랜 갈등과 분쟁이 이번 내전의 뿌리다. (편집자)

 
  러시아의 성장은 제국주의 세력의 패권을 논하는 근현대 지정학의 등장과 일치한다. 프랑스, 영국, 미국이 차례로 주축이 된 해양세력들이 유라시아 대륙세력의 승계자인 러시아의 확장과 남하를 막기 위해 오랜 대결과 전쟁을 벌였다. 이는 사실상 제국주의와 냉전 시대를 관통하는 분쟁과 동의어다.
 
■ 서기 988년 
 
  서기 988년 크림반도 남서단 헤르소네스 해안에 있는 작은 언덕의 성블라디미르 성당. 키예프 공국의 블라디미르 대제가 이 성당에서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기독교에 바탕을 둔 슬라브 문명이 사실상 시작된 원점이다. 블라디미르 대제의 키예프 공국은 북쪽으로 세력을 뻗었다.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로 확장해 나갔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특히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고향인 셈이다.
  러시아는 17세기부터 세력을 확장하며 흑해 연안으로 다시 진출했다. 프랑스를 필두로 한 서구 열강은 오스만튀르크를 부추겨 러시아와 6차례의 전쟁을 했다. 절정은 19세기 중반 영국과 프랑스가 튀르크와 연합해 러시아와 벌인 크림전쟁이다. 패배한 러시아는 흑해에서 군함의 항해권을 상실하면서, 근대화를 위해 절치부심하게 된다. 크림전쟁은 해양세력인 영국과 대륙세력인 러시아가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을 놓고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격돌한 그레이트게임의 연장선이었다. 그레이트게임은 서쪽으로는 크림전쟁, 동쪽으로는 러일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로 그레이트게임은 막을 내리고, 혁명을 거쳐 재탄생한 소련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 1945년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 나치 독일은 소련을 침공했다. 독일은 승부수를 모스크바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에 던졌다. 크림반도를 핵심으로 한 흑해 연안을 거쳐 캅카스 지역으로 나아가, 러시아의 곡창 및 유전 지대를 장악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의 대패는 2차대전의 승패를 갈랐다.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4일 미국·영국·소련 3국 정상은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회의를 열었다. 소련은 독일을 분할하며 그 동쪽으로부터 동유럽과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의 내륙 지역에 대해 세력권을 인정받았다.
 
■ 1989년 
 
  1989년 11월9일 베를린을 가르던 장벽이 무너졌다. 동독 정권의 주민들에 대한 통제력이 급속히 증발했다. 서독은 통일을 모색했다. 동독에 병력이 주둔하던 소련의 승인이 필수였다.
  1990년 1월31일 한스디트리히 겐셔 당시 서독 외무장관은 “통일 뒤 나토 영역이 동쪽으로 확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겐셔는 2월6일 더글러스 허드 당시 영국 외무장관과 만나 “(서방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는 동쪽으로 영역을 확장할 의도가 없다”는 공개 성명을 내야 한다면서, “그런 성명은 단순히 동독만 언급해서는 안 되고 일반적인 본질을 언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련은 헝가리 정권이 바뀐다 해도 헝가리가 서방 동맹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월9일 모스크바에서 제임스 베이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소련 지도부에게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과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에게 “나토의 현재 관할지역이 동쪽으로 확장되는 일은 없다는 보장”을 줬다. 베이커는 고르바초프에게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나토 밖에서 미군이 없는 통일 독일이냐, 아니면 나토의 관할지역이 현재 위치에서 한 치라도 동쪽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보장 아래서 나토와 연계된 통일 독일이냐 중 어느 쪽을 더 원하는가?” 베이커는 자신이 이런 제안을 고르바초프에게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에게 전했다. 콜은 이 편지를 손에 쥐고 모스크바로 향하고 있었다. 콜은 자신뿐만 아니라 고르바초프도 후자를 선호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2월10일 콜은 고르바초프에게 “나토가 동독의 현재 영토로 영역을 넓힐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장했다. 겐셔도 셰바르드나제에게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되지 않을 것임은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고르바초프는 그날 동·서독의 경제·통화 통합을 시작하라는 ‘파란불’을 서독에 줬다고 콜은 회고했다. 그날 밤 콜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추운 날씨에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을 오랫동안 산책했다.
  독일 통일 과정에 미국, 독일 등이 소련에 했던 모든 약속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 동독에 주재하던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젊은 요원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 1999년 
 
  1999년 11월 러시아 의회 두마에서 신임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이 취임 연설을 했다. 그는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 기본 질서와 규율을 세우지 않는다면, 수직적 지휘 명령 관계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어떤 과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러시아는 1년 전에 벌어진 국가부도 사태로 소련 붕괴 이후 최악의 나락으로 추락해 있었다. 알코올중독자인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가던 비행기 안에서 만취해 정상회담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런 행태는 당시 러시아의 상징이었다. 푸틴은 곧 옐친을 승계해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올라섰다. 그가 물려받은 러시아는 서방 세력의 진출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신세였다. 특히, 그가 동독에서 지켜봤던 독일 통일과 냉전 종식의 조건인 나토의 현상 유지 약속이 휴지 조각처럼 구겨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바닥을 기던 석유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러시아로 다시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 2014년 
 
  2014년 2월 우크라이나에서 반정부 시위로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졌다.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는 친서방 세력이 정부를 접수했다.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은 곧 나토 가입으로 연결될 것임을 뜻했다.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키예프 중앙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3월 들어 러시아계 주민이 절대다수인 크림반도의 지방정부가 러시아로 합병을 선언했다. 4월부터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도 친러 반군이 분리독립을 추진하며 내전이 발발했다.
 
■ 2015년 
 
  2015년 2월 현재 내전의 사망자는 5500여명, 난민은 100만여명, 인근 국가로 이주한 이가 60만여명, 내전 지역 거주 인구가 520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9월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체결된 휴전 등 평화안은 휴지 조각이 됐다. 러시아가 병력을 위장해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자원병들도 반군에 가세했다. 10개월째 이어진 내전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경제를 붕괴 직전으로 몰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무력 지원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대동하고 급히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가 외교에 의한 평화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미국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무기 지원을 할 것이라고 푸틴 대통령을 설득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방문한 뒤 워싱턴을 찾은 메르켈에게 “외교가 실패하면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방어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간접적 군사대결을 벌이게 된다. 냉정 붕괴 이후 최악의 동서 대결 위기다.
 
■ 그 이후 
  2015년 2월12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러시아·우크라이나·독일·프랑스의 4자 정상회담에서 휴전안이 다시 도출됐다. 하지만 최대 쟁점인 우크라이나의 위상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및 나토 가입은 그들의 자유의사라는 입장이다. 이를 러시아가 막는다면, 결국 무력 대결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유럽 쪽은 난처하다. 특히 독일은 원죄가 있다. 우크라이나 내전의 뿌리가 독일 통일 조건인 ‘나토의 동진 불가’ 약속을 서방이 파기한 데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 외교적 해법을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메르켈의 말이다. “나는 동독에서 자랐고, 7살 때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다. 동독과 동유럽 주민들이 독재 아래서 자유 없이 살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2차대전 직후의 현실이었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유럽의 원칙과 가치는 언젠가 승리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내전에 서방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대한 반대이자, 우크라이나 정부가 현재로서는 서방 접근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러시아의 앞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러시아가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나토 영역 밖에 놓겠다는 보장을 하지 않는 한, 러시아의 핵 위협도 먼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당장은 러시아가 많은 비용을 치르겠지만, 사태가 격화되면 서방도 더 비싼 비용을 치를 수 있다. 이미 파탄 지경인 우크라이나 경제가 유럽의 경제뿐 아니라 안보도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로서는 국가의 탄생 때부터 사활적인 지정학적 가치가 걸린 우크라이나를 놓치는 것은 바로 국가의 존재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어서, 우크라이나를 포기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한겨례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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