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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5e900e_bcd5c4a1b1d9.png카자흐스탄 한인과 고려인동포들과 함께 제96주년을 맞이하는 3.1절 기념행사를 치루면서 느꼈던 소감과 함께 특히 조국 광복을 위해 이름없이 무덤도 없이 목숨을 바치신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고자 참석하신 독립유공자 유가족분들을 대하며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여러분들은 3.1운동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정주와 청원에서 일본 군인의 칼에 태극기를 든 오른팔이 잘리자 엎드려 왼팔로 태극기를 주워들고 돌진하다 왼팔마저 잘렸는데도 끝내 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며 나가다 무자비하게 내리치는 저들의 칼에 비통한 최후를 마친 최석월과 변갑섭씨 사건이 떠오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96년전 우리 한민족은 역사상 가장 어둡고 힘든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일제의 폭압 앞에 모두 다 숨죽이고 있을 때 우리 민족은 담대히 하나가 되어 대한독립과 동양평화 그리고 인류공존을 부르짖었습니다. 모든 세대와 신분, 지역과 종교를 초월하여 너나없이 하나가 되었고 독립의 희망과 의지를 결집하였습니다. 또한 독립운동을 추진하던 여러 세력들을 하나로 규합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법통을 계승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이승만 대통령, 이동휘 국무총리)를 수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조선의 군주정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을 일으키는 혁명이었습니다. 아울러 그날 우리 민족이 하나 됨은 한반도를 넘어서서 중국 북경대학생의 5.4운동•인도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운동•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및 이집트 등에서도 반제국주의 민족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선구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3.1운동 당시 온 세계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로 제국주의 식민통치에 신음하고 있을 때 우리 한민족은 일제의 무자비한 총칼에 진압당하면서도 일제의 파괴와 멸망보다는 우리 민족이 굳건히 일어서야 함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를 그처럼 고통스럽게 짓밟은 일제에 대해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상생하는 관용의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누구나 약자로서 억압의 고통 속에서 원한이 쌓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한민족은 가해자를 원망하면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화병에 걸리면서도 흥(興)으로서 한(恨)을 풀고 녹이는 민족입니다. 이것이 3.1정신이었습니다. 한(恨)이라는 단어를 어느 나라 말로도 번역할 수 없듯이 이러한 민족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정신은 지난해 중국 흑룡강성의 하얼빈역에 개관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보면서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닌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한•중 양국 국민들로부터 공히 존경받는 안 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의거현장에 설치된 것을 의미있게 생각하며, 이를 계기로 동북아 지역 국가들이 안중근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면서 올바른 역사인식에 기초하여 진정한 평화-협력의 길로 나아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동북아 패러독스”가 해결되기를 기대합니다. 기미독립선언서에 나온 “대한독립”은 안중근 의사 등 12사람이 1909년 왼손 약지를 끊고, 그 피로 태극기에 네 글자를 쓰니 바로 “대한독립”이었습니다. 또한 “동양의 평화가 중요한 일부가 되는...”부분의 동양평화론은 사형집행을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 집필을 시작했지만 15일 연기요청이 묵살되어 미완성으로 남은 것입니다. 동양평화론의 골자를 살펴보면, 1904년 일본국왕이 대러 선전포고문에서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조선 독립을 공고히 한다.”라고 대의를 밝혔음으로 조•청 양국은 서양열강의 동양개입을 막기 위해 청일전쟁이나 을미사변의 한을 잊으면서 일본을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또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이전 약속을 배반하고 동양평화를 영구히 파괴하고 있기에 15가지 죄상을 열거하며, 한국 의병의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죽인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동양평화론의 두 가지 전개방향으로는 한•중•일 3국의 수평적 연대를 통한 ‘세력균형’과 동아시아공동체 결성인 ‘다자간통합’인데, 이것은 공동은행, 공용화폐, 공동군대, 공동언어 등 동양평화회의를 통해 실현되는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습니다. 따라서 미완성의 동양평화론은 안중근 의사의 죽음과 함께 묻힌 것이 아니라 분단의 역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의 완성본을 써내려 가야하는 책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한편, 독립선언서 상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 부분을 33인 대표 손병희 선생의 삼전론을 통해 이해해 봅니다. 1904년 삼전론에서 5마리의 맹수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당시의 정세로는 군사로 싸우는 兵戰보다 더 강하고 무서운 세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사상의 싸움인 道戰, 경제력의 싸움인 財戰, 그리고 외교력의 싸움인 言戰으로 전쟁은 꼭 무기를 가지고 군인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도전은 정신상태를 높이는 전쟁을 뜻하고 언전은 이런 정신을 세상에 전파하는 언론전을 뜻하며, 재전은 모든 사람이 그 재주와 기술을 발달시킴으로서 나라가 부유해지는 기술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단 돈을 벌되 돈에도 철학을 입히자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재전의 핵심이었습니다. 이에 도산 안창호 선생도 민족의 부흥을 위해 ‘교육, 산업, 출판을 통한 항일정신’을 주장했으며, 인촌 김성수 선생도 삼전론의 다른 표현으로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고려대로 발전시키고, 경제자립과 민족자본육성을 위해 경성방직주식회사를, 그리고 동아일보를 설립하였습니다. 그 결과, 3.1독립운동의 열매는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국주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나라들 가운데 우리민족과 같이 급격한 도약의 과정을 거친 경우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道戰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였고, 財戰으로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했으며, 言戰으로 국력이상의 외교력을 발휘하며 글로벌 이슈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5,000년 우리 민족사에서 3.1운동은 역사에 길이 빛날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3.1운동의 정신은 먼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연결되었으며, 세계 여러 나라의 자주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3.1정신이야말로 여기계신 고려인 여러분의 정체성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고려인 이주 150주년을 되돌아 볼 때, 최초의 연해주로의 물결은 선구자적 개척자정신에서 나왔으며 유라시아전역에서 수많은 노력영웅들을 배출하였고, 두 번째의 물결은 3.1운동이후 1920년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전투 등 대한독립군의 정신이 여러분의 핏속에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즉 3.1정신과 기상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지난해 3.1정신 계승상을 만들어 수여하였고 청년들에게 특별 순회역사교실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유라시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소수민족으로 남기위해서는 많은 전문가가 배출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고려인의 정체성을 3P 즉 Pioneer(개척자), Patriot(애국자), Professional(전문가)로 요약하여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카자흐스탄 한인 동포 여러분.

 

  그러나 한편, 아직도 우리 사회엔 식민지의 후유증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각 분야마다 분쟁과 시비가 많다는 것입니다. 많아도 너무 많다고 봅니다. 그로인하여 지불되는 비용이 엄청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우리보다 인구가 2.5배나 많은 일본의 경우 일 년에 고소고발 건수가 2만 건 정도 인데 반하여 우리는 무려 50만 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따지고 보았더니 바로 일제의 식민지지배에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당국이 우리로 하여금 분쟁과 시비에 휘말리는 근성을 갖도록 정책적으로 유인한 것이었지요. 다름 아닌 3.1독립운동이후 문화정치를 전개한 사이토 총독의 ‘조선인 교육지침’이 그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민족혼과 역사 및 문자를 잊어버리게 하고, 조선 청년들이 부모와 조상을 멸시하는 기풍을 만들어 허무감에 빠지게 하여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교육을 수십 년간 받다보니 우리의 자아상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그러져 서로 불신하고 다투고 시비를 일삼는 근성으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이러한 식민지적 근성을 극복하여 나가는 일이 통일에 앞선 민족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고 봅니다. 이제라도 우리 모두는 3.1절을 기해 이러한 취약점을 인식하고 관과 민이 힘을 합하여 극복하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곳 중앙아시아의 상황이 마치 19세기말 20세기초 동 지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21세기를 향한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 그리고 한민족과 그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이곳 중앙아시아 세력지형의 재편에 있어 우리 한민족의 역할이 중요해 지고 있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십시다. 우리 민족은 화합하고 단결할 때 국운이 융성했고,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단결하고 관용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분열되었고, 질곡의 역사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도전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곳 중앙아시아에서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에서 전 세계는 우리 한민족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96년전 보여 주었던 우리 선열들의 3.1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손치근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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