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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로
80년이 흘렀지만 이별의 아픔 지속
한국 내 고려인 따뜻하게 보듬어야


실크로드 문화유산 디지털콘텐츠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의 여러 도시를 다녀왔다. 촬영지를 답사하는 동안 필자를 안내한 사람은 유리씨로 고려인 4세였다. 황량한 대지를 답사하느라 며칠 동안 한국음식을 먹지 못하고 양고기와 빵 등 우즈베키스탄 음식만 먹었다. 사마르칸트로 돌아와 한국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으니 우리보다 유리씨가 이제야 살겠다고 만족해한다. 필자보다 한국음식이 더 그리웠던 것이다. 고려인 4세 가정에서는 아직도 한국음식을 먹고 있으며, 지금도 10만 명의 고려인이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마치고 곧바로 러시아 연해주(러시아 극동지역) 지역을 방문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고려인 삶의 여정을 디지털 콘텐츠로 재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937년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최초의 역 ‘라즈돌리노예 역’과 블라디보스토크 그리고 고려인 집단거주지로 고려인 문화센터, 최재형 선생 거주지, 이상설 선생 유허지가 있는 우수리스크를 다녀왔다.

함경도 지방에서 연해주 지방으로 첫 이주는 1850년대로 추정된다. 러시아 정부의 이주정책으로 1860년대 후반부터 연해주로 이주가 크게 늘었고, 1869년도 통계에 따르면 연해주에 거주하는 조선인은 6500명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을사늑약과 강제합병 이후 항일투쟁을 위해 국경을 넘는 조선인들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연해주가 독립투쟁의 본거지가 되었다. 1937년 연해주에 이주해 살고 있던 고려인 약 17만여 명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갑자기 중앙아시아로 이주하게 되었다. 극동지역에서 일본의 간첩활동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에 2만141가구 9만5427명, 우즈베키스탄에 1만6079가구 7만3990명 등 총 3만6448가구 16만9927명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강제이주 사실은 실행 3~7일 전에 갑작스럽게 통보했다. 강제이주 첫 출발지는 우수리스크 지역의 라즈돌리노예 역. 고려인들의 강제이주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이용되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인근지역의 역을 출발하여 노보시비르스크까지 갔고, 거기에서 남하하여 중앙아시아로 갔다. 이동 기간은 약 30~40일 소요되었다. 객차는 이층 칸으로 되어 있었고, 1개의 난로가 있었으며 하나의 객차에 5~6가구(30명 정도)가 배치되었다. 열차 환경은 매우 열악해 많은 노약자들이 사망했다. 또한 이주한 뒤에도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풍토병에 의해 총 2만5000여명이 사망했다. 그 당시 젖먹이였던 1937년과 1938년생인 고려인들의 생존자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은 특유의 성실함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강제이주 3년 만에 볍씨를 뿌려 풍년을 일구었으며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 성공적으로 정착했으나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시련이 다시 찾아왔다.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14개 국가들 입장에서 독립은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나 독립한 14개 국가에서는 소수 민족을 차별하는 배타적 민주주의가 나타났고, 구 소련체제에서 러시아어만 사용했던 고려인들은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우즈베크어와 카자흐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고려인들은 일터에서 밀려나면서 몇 십 년 살던 땅을 떠나야 했고, 1937년 강제이주보다 더 큰 비극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앙아시아에 살던 고려인 일부는 삶을 찾아 다시 연해주로 이주하였고, 일부는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한국으로 이주한 고려인 4세 아이들은 고려인 4세를 동포로 인정하지 않는 재외동포법에 의해 성인이 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고 한다.

고려인 중 조선이 가난해 연해주로 이주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독립운동을 한 후손들이 국제 미아로 방치되고 있다. 독립운동하느라 집안을 건사하지 못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1937년 강제이주와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생활도 극복했는데, 80년이 지난 지금도 생이별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독립운동하신 이들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는 광복 73주년도 지났다. 중앙아시아와 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들도 관심을 기울여야겠지만,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이라도 우리가 따뜻하게 맞을 수는 없는가.

 

김의창 동국대 정보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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