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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발 베를린행 기차는 평양역에서 승객을 태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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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열세였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주요 공약은 '한반도 5대 철도망 건설'이었다. 핵심은 남북 간 철도를 연결해 부산에서 모스크바까지 철도로 이동하는 시대를 열자는, 분단으로 인해 섬이 된 남한을 유라시아 대륙에 연결하자는 남북 간 대륙 철도망 건설이었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자신의 이력을 부각한, 당시 압도적 지지를 얻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맞서려는 개발 정책이었다. 가능성이 있느냐는 의문이 들법했지만, 역시 황당함으로는 그에 못잖았던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비해 적어도 당위성은 더 있었다. 

 

  일제에 의해 한반도는 대륙과 철도로 연결되었다. 분단이 없었다면, 착취를 위해 놓인 철도는 여행의 낭만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과 같은 소설을 상상 가능했다. 분단으로 인해 철마가 더는 달리지 못했다. 우리의 철도 여행 계획이 한반도 내에 머물거나, 한반도를 벗어나서만 가능했던 원인이다.

 

  <프레시안>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철도와 관련한 온갖 글을 소개한 철도 노동자이자 '철도 덕후' 박흥수의 신간 <시베리아 시간여행>(후마니타스 펴냄)은 잘린 꿈을 복원하는 여행기며, 잊힌 이들을 조명하는 근대 역사서며, 가슴 먹먹한 인연을 기록한 인문 에세이다. 필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를린까지, 3개국(한국, 러시아, 독일) 13개 도시를 18박 19일에 걸쳐 철도로 여행한 경험을 이 책에 눌러 담았다. 

 

  이제는 '가장 가까운 유럽'으로 자유여행객의 발길을 붙드는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행은 시작된다. 필자가 이곳에서 조명하는 건 우리의 근대사다. 안중근과 장지연, 이동휘 등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의 울분과 조선인 이주 노동자의 한을 캐낸다. '서울 거리'라는 뜻의 '세울스카야'를 조명하고, 조선공산당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이 책이 보통의 관광용 여행서와 결을 달리하는 지점이다.

 

  곧바로 독자의 관심을 강렬하게 잡아채는 대목은 여기서부터다. 필자 일행은 열차에서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 노동자와 만난다. 평양에서 싸왔다는 김밥과 김치, 전 등이 차려진 밥상 사진이 '서로 눈이 휘둥그레진' 이들의 사연과 엮여 강렬하게 독자를 사로잡는다. 이들은 서로가 불편하다고 기차에서 내릴 수 없다. 비좁은 열차 안에서 남과 북의 사람들은 꼼짝없이, 목적지를 향해야 한다.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불편하다고 언제까지 못 본 체할 수 없는 법이다. 동포들은 담배를 나누고 밥을 나눠 먹으며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긴장은 금세 사라진다. 이들은 똑같이 고향에 자식을 두고 왔고, 김치와 냉면을 좋아한다. 북조선에서 온 젊은 노동자도 아이패드의 게임에 푹 빠져 밤을 뜬눈으로 보낸다. 다른 건 거주 환경뿐이다. 그런데, 그 현실이 점차 크게 다가온다. 남한 여행객의 러시아어 회화 책은 화려하고, 북조선 노동자의 '로어 회화' 책은 낡았다. '러시아어 여행회화'에는 호텔에서 사용하는 인사말이 실렸고, '로어 회화'에는 '작업이 끝난 즉시 현금으로 지불해 주시겠습니까'라는 실용어 회화가 실렸다. 이 뚜렷이 대비되는 실용성은 이 책의 가장 강렬한 하이라이트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여행기 곳곳에서 북한과 우리의 서글픈 근현대사를 읽을 수 있는 반면, 모스크바와 베를린은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독자를 이야기에 따르게끔 한다. 이야기 무대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며 자연스러운 전환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 책은 베를린에서도 남북의 현실을 조명한다. 치타에서 내린 그 북조선 노동자들의 삶을 독자가 자연스럽게 상상하게끔 하는 장치다.

 

  이런 상상도 해본다. 서울에서 모스크바행, 베를린행 열차표를 끊고 몸을 싣는다. 평양역에 정차해 냉면을 먹고 기념품을 산 후 신의주를 통해 '육지'로 국경을 넘는다. 우리는 육지로 국경을 넘어본 적이 없다. 휴전선은 국경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섬', 대한민국에서 우린 이런 꿈을 꾸면 안되는가? 

 

 

 

필자의 가장 큰 미덕은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젠체하지 않는 문장으로 깊은 이야기를 녹여낼 줄 안다는 점이다. 매끄럽고 깊이 넘치는 글은, 필자의 소박하고 사람 냄새 나는 여행기와 맞물려 더 빛난다. 여기에 '덕후'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 풍부한 역사 지식과 현장 노동자로서 체득한 전문성은 박흥수의 글에서만 맛볼 수 있다. 얼어붙은 바이칼호를 머릿 속에 그려봤거나 대륙 철도 여행을 상상해 본 이라면, 필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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