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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에 담긴 민족혼 고스란히 후대에 전할 것”

25년 국내외 발로 뛰며 녹음·기록 진용선 아리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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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선소장은 중앙아시아 고려인아리랑 연구를 위해 지난 12일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하였다. 그의 목에 걸려있는 카메라와 환한 미소가 아리랑에 대한 그의 열정을 느끼게 한다. >

 

 “사랑하는 임을 떠나 보내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라는 아리랑 가사를 단순하게 ‘발에 병이 난다’라고 번역하는 독일인 교수를 보고 아리랑 연구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아리랑연구소 진용선(52) 소장은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한 촉망받는 번역가이자 등단한 시인이었다. 앞만 보고 달릴수록 독일인 교수의 ‘잘못된’ 아리랑 번역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진 소장은 그 길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아리랑 연구에 매달렸다. 탄광촌을 떠나 도회지에서 출세하기를 고대했던 아들이 아리랑에 미쳐 고향으로 돌아오자 광부 출신의 아버지는 ‘당장 때려치우라’며 반대했다.

아리랑연구소 진용선 소장은 21일 역사의 조난자라고 불리는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동포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리랑을 기록으로 남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일 유학을 다녀와 교단에 서기를 기대했던 지도교수도 고향집까지 찾아와 만류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가 배어있는 아리랑을 제대로 공부해 보겠다는 진 소장의 열정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89년 고향에 내려온 뒤 녹음기와 노트를 챙겨 들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며 정선아리랑을 녹음하고 받아 적었습니다. 1991년 11월 폐교에 정선아리랑연구소를 개설하면서 아리랑 연구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선아리랑에 대한 전승이라는 얘기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진 소장은 3년 동안 묵묵히 아리랑가사를 녹음하고 채록하며 다녔다. 아리랑을 부르는 어르신들의 모습과 마을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이때 채록한 아리랑 가사만 2만3000여수에 이른다. 이 가운데 중복된 가사를 추려내 5500여수가 담긴 ‘정선아리랑 가사사전’을 지난해 펴냈다.

“아리랑을 변형 없이 후세에 남기고 싶은 마음에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하고 슬라이드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일반 필름 한통 가격이 2300원 할 때 슬라이드 필름은 6100원 정도 했으니까 정말 무리를 한 거죠. 8100원 하는 프로비아 필름을 한 박스씩 사다놓고 작업을 할 때도 있었어요.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었지만 지금은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자료가 됐어요.”

그는 정선아리랑에 대한 채록과 연구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해외 동포들이 부르는 아리랑으로 관심을 돌렸다. 정선아리랑연구소의 명칭도 ‘아리랑연구소’로 바꿨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고국을 떠나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디아스포라(Diaspora)’로 불리는 이산(離散)의 아픔을 알게 됐다.

“사람이 옮겨갔으니까 우리 아리랑도 옷깃에 묻어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디아스포라 아리랑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동포들의 애환은 질곡의 역사와 같았으며 그 중심에는 아리랑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1993년 중국 연변으로 달려가 조선족을 만나기 시작했다. 동포들 사이에서 소문난 소리꾼은 물론 일반 동포들이 즐겨 부르는 아리랑을 녹음하고 생활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때부터 해외에 나갈 때마다 아리랑이라는 상호가 붙은 식당과 여관에 가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그는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연을 듣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아리랑이라고 쓰인 곳은 무조건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이같이 10여년간 중국 현지를 발품을 팔고 다니면서 기록한 아리랑은 ‘중국 조선족 아리랑연구’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진 소장은 다시 러시아 연해주와 일본으로 발길을 돌려 아리랑을 채록해 ‘러시아 고려인 아리랑연구’와 ‘일본 한인 아리랑연구’라는 책을 펴냈다.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며 발간한 책은 국내 아리랑 연구 교수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관련 논문에도 꾸준히 인용되고 있다.

진 소장은 지난해부터 연해주로 이주했던 동포들이 1937년 9월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내몰린 지역을 찾아다니며 이산의 아리랑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고려인 1세대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리랑도 많이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후손들이 아리랑 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올 연말까지 아리랑 노래책을 만들어 전달할 계획입니다. 국내 대표 아리랑의 가사와 의미, 악보를 러시아어로 번역해 전해 줄 계획입니다.”

진 소장은 아리랑과 관련된 물품을 수집하는 것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는 “아리랑악보, 담배, 음반, 도록 등 아리랑과 연관이 있다면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풍부한 자료 때문에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2013년에는 일본 도쿄와 오사카, 지난해에는 연해주와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에서 해외 순회전 ‘아리랑 로드’를 열었다”고 소개했다.

진 소장은 “제게 아리랑은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거다. 아리랑의 분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리랑 문화지도도 만들 계획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아리랑이 고스란히 전승되도록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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