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이주 당시, 중국으로 넘어간 고려사람들도 많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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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 1세대인 천 미하일 다닐로비치(92)씨는  80년 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알마티에서 차량으로 4시간 가량 떨어진, 고려인 최초 정착지 우슈토베에서 만난 천 미하일 할아버지는 1925년생으로서 강제이주 당시 12살의 소년이었다. 천 할아버지는 연해주의 스뽀뜰로 마을에서 태어났고  당시 부모님과 네형제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열차에 실려 우슈토베에 왔다고 한다.

  취재진은 80년전, 당시의 상황을 가능하면 생생히 들어보기 위해 여러차례 우슈토베를 다닌 끝에 천 할아버지와 귀한 인터뷰 약속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우쉬토베로 가는 길은 카자흐스탄의 최대도시 알마티에서 차량으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카자흐스탄정부가 추진한 ‘누를졸르(신실크로드)’ 프로젝트 덕분에  작년에 완공된 4차선 포장도로를 3시간 남짓 달리면 알마티주의 주도인 딸띄꾸르간에 도착하게 된다.   작년초까지만 해도 군데군데 도로포장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알마티와 딸띄꾸르간까지 자동차로 약 4시간~5시간까지 소요되던 길이었다.

  딸띄꾸르간 도시 초입 로터리에서  방향을 서쪽으로 꺽어 약 40분을 더 달리면 고려인 최초 정착지로 알려져 있는 우슈토베에 도착하게 된다.  우슈토베는 카자흐스탄 행정구역으로 알마티주  카라탈군 우슈토베 읍이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은 물줄기가 만든 카라탈강을 따라서 원동읍 (현재는 에스켈듸 읍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슈토베읍, 바슈토베읍이 차례로 나타난다.

  카라탈군은 심볼에 벼이삭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후 건설한 벼농사 조합(꼴호즈)들로 유명하다.  

  천 미하일 할아버지는 취재진에게 계속해서 당시를 회상해주었다.

  “1937년 8월에 모스크바에서  결정서가  나왔소. 거기에 뭐라고 써 있었냐 하면, 일본놈들이 탐지꾼(스파이)을 자꾸 보내니까  국경근처에 사는 조선사람들을 이주시키라고 되어 있었소. 그래서 우리 민족이 화차에 실려서 이곳 중앙아시아까지 왔소.  우리 부모님들이 모질게 고생했소.”

  이어, 그는 “그때 중국으로도 많이 넘어갔습니다.  자기 식솔들을 데리고....   또, 조선으로 나갈 수도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조선으로 나간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중국으로 넘어간 사람들의 경우,  나중에 소련에 있는 친척들과 서로 편지를 쓰고 소재를 확인하다가  친척들을 보러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천미하일 할아버지는 가끔씩 탐지꾼(스파이) 등 함경도 사투리 어휘를 사용하셨지만 비교적 매우 정확한 표준말 발음으로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그는 연해주에 살던 우리동포들을 조선사람, 고려사람, 우리민족 등으로 칭하면서 80년전 당시를 소상히  말해주었다.

  “그때 중국으로 가고 싶으면 중국으로 가고, 조선으로 가고 싶으면 조선으로 갈 수 있었소. 그러나  원동에는 단 한명도 안 남기고 실어 보냈소”라고 증언했다.

  취재진은 혹시, 소련 당국 몰래 중국으로 건나간 것인가? 라고 물어봤다.

  그는 “소련에서 허가를 주었소”라고 답했다.  이어 혹시 그 당시에 강제이주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총살 당한 사람은 없었냐?  는 질문에는  “그런 경우는 없었소.  경찰이 시키는데로 했고 조선 사람들이 이주를 못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천 할아버지는 당시 부모들이  짐만 꾸릴 뿐 아무말도 안해줘서 어디로 가는지 몰랐는데 한달 정도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이 우슈토베에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깔뻬 라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당시 12살 천 미하일 소년은 부모형제들과 함께 화차의 내부를 위, 아래층으로 나눈 기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주로 애들은 위층에, 어른들은 아래층에 탔소, 그때 우즈베키스탄보다 카자흐스탄에서 더 많은 고려사람들이 내렸소.  약 한달간 기차를 타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제대로 씻지 못하고, 옷을 갈아 입지 못한 것이었고 먹을 게 부족해서 배가 고팠다는 기억이 나오”

    그는 “한달동안 기차를 타고 오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사실은 현지에 도착한 후 기후가 맞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특히, 어린 아이들과  아픈 노인네들이 낯선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천 미하일 할아버지는 한달간의 여행끝에 도착한 우슈토베 역에는 말수레, 소가 끄는 수레가 대기중이었는데,  깔베 마을에 가 보니까  이미 카자흐인들의 조합이 있었고 집도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 집이라는 것도 천 할아버지 가족을 위해 통채로 준비된 것이 아니고 방 한칸을 내준 것에 불과했다고 했다.  

  “지금은 그 때 당시 집은 한 채도 안 남아 있는데, 당시 카자흐인들도 구차하게 살았습니다.   그 다음에  38년도 봄에 직접 집을 지었습니다.

  천 할아버지는 잠시 자리를 비우시더니 곧장  양손 가득 훈장을 가지고 오셨다.

“이것은 내가 받은 메달입니다.  우리 손자들이 가지고 놀다가 몇개는 잃어버렸습니다. (웃음)”  면서 “우리 카라탈군에는  31명이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는데 그중  27명이 조선민족이었습니다.       4명만이 다른 민족인데 ,  소련사람 3명  카자흐민족이 1명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얼마나 억척같이 살아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고 현재 카자흐스탄에  성공한 고려인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것은 우리 민족 특유의 ‘근면성실’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교육열’ 이었다.

 

여기는 내가 태어난 땅이나 한가지”

 

  카자흐스탄은 강제이주 1세대들에게 과연 어떤 곳일까?

  천 할아버지는 “원동에서 살았다면  내 자식들이 아마도 글을 다 읽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대학이 많은 대도시 알마티가 가깝기 때문에  다 대학을 보냈습니다. 대학이 없는 블라디보스톡에는 대학이 없어서  톰스크, 옴스크 등  멀리 가야지만 글 읽을 수 있었는데 형편이 못될 수도 있었을 테고......”라면서   천 할아버지는 대체로 자식들을 대학을 진학시킬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카자흐스탄에 온 것을 만족해 하는 것 같았다.

  “카자흐 민족들이 나그네 대접을 잘 합니다.  맏손녀는 소련 사람(러시아 민족)에게 시집 가고  손자 하나는 카자흐여자에게 장가갔고  내 조카는 위구르 민족에 시집을 갔습니다” 고  천 할아버는 말씀하셨다  

  실제로 고려인 동포사회는 천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타민족과 결혼하는  족외혼 현상이 50년대 후반부터 늘기 시작하여 60년대 부터 급증하였고  이와 함께  타 소수민족과 달리 고려인들은  급속히 모국어를 잃어가게 된다.  카자흐스탄을 구성하는 하나의 소수민족으로써 카자흐스탄국민이라는 정체성이 강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1988년 올림픽을 치루고 난뒤 한국이 잘산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우슈토베에서도 한국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학을 다 필했지만(졸업했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특히 최근  몇년사이 한국으로 많이 나갔습니다  아들 동무도 한국에 나가서 일하고 있고 한국이 맘에 든다고 합니다.  그는 앞으로 자기 식솔을 한국으로 데리고 나가서 살고 싶어 합니다"  최근  우슈토베 고려인 사회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최근 몇년간 저유가로  경기침체를 겪고있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 구소련권에 사는 많은 고려인 차세대들이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현상이 다시 확대되고 있다.  구소련 해체와 함께 많은 90년대 초 구소련지역  고려인들이  연해주와 한국 등으로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이주를 했던 것들이 최근 몇년 동안 다시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최근 국내 동포관련 단체들의  문제제기로 여론화되고 있는 고려인 동포 4세 임시 체류 허가 청원으로 사회현상화 되고 있다 

  이땅에서 80년을 사신 천할아버지가 생각하는  우리 고려민족은 과연 어떤 민족일까 ?

   “우리 민족은 어디메 가던지 일을 잘하다나니까  무슨일을 하던지 조선민족들이 어디메 가던지 대접을 받습는다.  까라탈 구역도  우리 조선민족이 안 들어왔다면 스텝과 갈밭들이 어떻게 이렇게 벼밭이 되었겠습니까?  한국이  저렇게 잘 사는것을 봐도 조선 민족이 일을 잘 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지 않습니까? "

   마지막으로,   80주년을 맞이하는 소감이 어떠신지 여쭈어 보았다

  “ 37년 실려와서 고생한 것 생각하면,  지금 내가 이런 집에서 살거라고 당시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연금도 받고  내 혼자 집에서 있어도 맏딸이 조석을 챙겨줍니다.” 면서 ”우리 민족은 어디메 가던지 일 잘하다나니까  이땅에서도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젊은 사람들이 대학을 필했지만(졸업했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한국으로 많이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이 맘에 들고 앞으로 식솔(가족)을 데리고 나가서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 손자 세대들은 더 많이 한국으로 나갈 것 같은데,  이들이 역사적 조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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