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 /본지 주필
유라시아 대륙에서 전개되는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을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 존재한다.
튀르키예는 역사적 기억과 문화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중앙아시아에 다시 접근하고 있는 행위자이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의 핵
심에 놓여 있는 카자흐스탄과 튀르키예의 관계에 대해서 유라시아 질서 재편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구조로 이해해야 한다.
튀르크 세계라는 개념은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틀을 제공한다. 튀르크는 민족적 범주 이전에 유라시아 초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언어·문화적 공동체로, 오랜 시간 동안 이동과 분화를 반복하면서 형성된 역사적 네트워크이다.
이 네트워크는 오구즈와 킵차크라는 두 흐름으로 분화하여, 서쪽으로 이동한 전자는 오스만 제국과 현대 튀르키예로 이어졌고, 후자는 중앙아시아 초원에 남아 카자흐 세계를 형성했다. 이 분화는 단절이 아니라 방향의 차이로, 특히 카스피 해를 중심으로한 서부 카자흐스탄 지역은 두 흐름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었다. 망기스타우지역의 아다이 부족이 보여 주는 이동성과 전투 전통은 이러한 초원 세계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데, 이들이 카스피 해를 따라 남북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아나톨리아를 연결하는 장기적 흐름의 일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기반 위에서 튀르키예와 카자흐스탄의 관계는 현대에 다시 연결된다. 그 결정적 계기는 1991년 소련 붕괴였는데, 당시 튀르키예는 카자흐스탄 독립을 가장 먼저 승인했다.
이 사건은 사실상 튀르크 세계라는 역사적 연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독립 이후 튀르키예의 중앙아시아 접근은 매우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문화와 교육, 언어를 중심으로 한 ‘소프트 파워 전략’이 중심이었다. 튀르키예는 장학금, 교육기관 설립, 문화 교류를 통해 중앙아시아 엘리트와의 연결을 구축하려 했는데, 튀르크 정체성을 이는 튀르크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영향력 확대 전략이었다.
이후 이러한 접근은 점차 경제와 정치, 안보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튀르크 국가 협력체의 형성이다. 초기에는 ‘튀르크어권 국가 정상회의’라는 형태로 시작되었고, 이후 ‘튀르크 평의회’를 거쳐 현재의 ‘튀르크 국가 기구Organization of Turkic States’로 발전했다.
이 기구는 문화 협의체임과 동시에 정치, 경제, 외교, 안보 협력까지 포괄하는 다자 협력 구조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 기구는 튀르키예의 중앙아시아 전략에서 핵심적인 도구이다. 튀르키예는 이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에서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하며 교육, 경제, 외교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이 구조에서 중차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와 정치적 안정성을 가진 국가로서 튀르크 세계를 연결하는 중심축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만큼, 카자흐스탄과 튀르키예는 이 기구 내에
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며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정상외교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몇 년간 매우 빈번한 접촉을 이어 오고 있으며, 양국
관계는 지속적으로 깊어지는 추세이다. 특히 토카예프 대통령의 튀르키예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관계를 ‘강화된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했으며, 정치, 경제, 군사, 에너지, 물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후에도 양국 관계는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고위급 회담에서는 에너지 협력, 물류 네트워크, 관광 및 투자 확대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으며, 카자흐스탄은 튀르키예를 통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전략적 통로를 강화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관계라는 것은 그 의미가 아주 크다. 카자흐스탄은 전통적으로 러시아를 경유하는 에너지 수출 구조에 의존해 왔지만 튀르키예와의 협력을 통해 카스피 해를 거쳐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를 통과하는 새로운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 경제 협력을 통하여 외교적 자율성을 확대해 나가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는 전략이다.
양국 관계는 실제 경제 영역에서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튀르키예는 중앙아시아에서 주요 투자국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건설, 인프라, 관광, 교육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양국 간 교역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중인데, 전략적 경제 협력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또한 군사 및 안보 분야에서도 협력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데 튀르키예의 방위 산업, 특히 무인기 기술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기존의 러시아 중심 안보구조에 변화를 가져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협력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카자흐스탄은 튀르키예와의 관계를 확대하면서도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튀르키예와의 관계 역시 감정적 연대가 아니라 극도로 신중하게 조정되는 전략적 선택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결국 튀르키예와 카자흐스탄의 관계는 세 가지 층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튀르크라는 공통된 역사와 문화에 기반한 정체성의 연결, 둘째, 경제와 에너지, 물류를 중심으로한 실질적 협력, 셋째, 뉴 그레이트 게임 속에서 전략적 선택지를 확대하려는 지정학적 계산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하면서 과거 오구즈와 킵차크로 나뉘었던 튀르크 세계는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연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결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현대 국제 질서 속에서 재구성된 전략적 네트워크이다.
뉴 그레이트 게임의 시대에 튀르키예는 더 이상 주변적 행위자가 아니며 카자흐스탄 역시 단순한 중간 국가가 아니다. 이 두 국가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유라시아를 연결함과 동시에 새로운 질서 형성의 중요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튀르크 세계는 다시 하나의 정치·경제적 현실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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