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는 이름만큼 많은 이야기의 도시 아스타나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본지 주필
카자흐스탄의 관광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또 하나의 도시인 수도 아스타나는 오랜 세월 유목민들의 삶의 무대였다. 사르아르카 초원을 포함하는 광대한 스텝은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역사와 권력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살아온 카자흐인들은 대·중·소 주즈로 나뉘어 느슨한 연맹 형태를 유지하며 광활한 초원을 따라 이동하는 삶을 이어 갔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서몽골 지역을 장악한 준가르가 카자흐 초원을 침략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외부의 위협 앞에서 분열되어 있던 카자흐 세력은 생존을 위해 선택을 해야 했고, 결국 당시 킵차크 칸국의 후계 질서 속에서 부상하던 모스크바 공국, 즉 러시아에 보호를 요청하게 된다. 이 결정은 일회적인 군사적 선택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카자흐 초원이 새로운 역사적 흐름 속으로 편입되는 계기이자 이후 이 지역의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러시아는 카자흐 초원의 중심부에 군사적 거점을 구축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아크몰라였다. 1824년 이곳은 ‘아크몰린스크’라는 러시아식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카자흐 초원 통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19세기 중엽 이후 아크몰린스크는 러시아 제국의 행정과 군사 거점으로서 기능했는데 20세기 초 철도 교통의 요충지로 성장하면서 도시의 규모와 역할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어 스탈린 사후 권력을 장악한 흐루시초프가 ‘처녀지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도시는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았다. 광활한 초원을 농경지로 바꾸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의 핵심 거점으로 아크몰린스크가 선택되었고, 1961년에는 농업 중심 도시라는 상징성을 반영해 ‘첼리노그라드’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이후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도시는 다시 ‘아크몰라’라는 이름을 되찾게 된다. 그러나 ‘하얀 무덤’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명칭은 새롭게 출발하는 국가의 수도 이름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1997년 수도 이전과 함께 ‘아스타나’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수도’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일반적인 지명이 아닌, 국가의 새로운 중심을 상징하는 선언이었다. 이 도시의 이름은 이후에도 변화를 겪었다. 2019년 오랜 기간 국가를 이끌어 온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도시는 ‘누르술탄’으로 개명되었으나 2022년 1월 사태 이후 정치·사회 개혁의 흐름 속에서 다시 ‘아스타나’ 라는 원래 이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처럼 한 도시의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는 사실은 카자흐스탄 현대사의 굴곡과 권력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카자흐스탄은 두 자릿수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기록하며 국제사회에서 ‘자원부국’, ‘신흥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수도 아스타나는 국가의 성장과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으로 떠올랐다.
수도 이전 초기, 아스타나는 사실상 하나의 작은 지방 도시였다. 구도심의 중심이었던 레스푸블리카 거리와 기차역 주변이 도시의 거의 전부였고, 이심 강 서쪽은 개발되지 않은 광활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 이 지역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심 강 서쪽 신도시에는 고층 건물을 짓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는 대형 크레인들과 강변을 따라 대통령궁 ‘아코르다’가 웅장하게 세워진 주변으로 성벽처럼 둘러선 정부청사 건물,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넓은 중앙대로, 그 양옆으로 늘어선 행정기관과 아파트 단지들이 새로운 수도의 모습을 만들어 갔다. 수도 이전 연도인 1997년을 기념해 건설된 높이 97미터의 ‘바이테렉 타워’는 이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아스타나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외국 기업들의 참여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한국 건설사들의 진출은 눈에 띄는 흐름이었다. 주택 개발과 정부청사 건설에 참여한 기업들은 아스타나의 도시 형성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는 양국 경제 협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그러나 당시 개발 현장은 오늘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요 건설 현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진흙탕이었고 초봄에는 눈이 녹으며 장화를 신고 다녀야 할 상태가 되었다.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마른 흙은 바람을 타고 날려 숨쉬기조차 어려운 환경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의 정돈된 도로와 잘 가꾸어진 도시 경관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였다.
2007년 수도 이전 10주년을 맞아 아스타나는 또 한 번 도약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세계 각국 정상들을 초청하며 이 도시를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이 시기 아스타나는 이미 국제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었으며 유목민의 천막을 형상화한 한샤트르 쇼핑몰과 현대적인 도시 경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이심 강의 강변을 따라 펼쳐진 도시 풍경은 특히 인상적이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와 주변 빌딩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해 질 무렵 더욱 빛을 발했고 과거의 황량했던 초원은 현대적 도시 공간으로 완전히 재탄생했다. 구도심 역시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갖추면서 여러 개의 교량이 건설되고 도시의 연결성도 크게 향상되었다.
2011년 동계 아시안게임은 아스타나의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국제 스포츠 행사를 준비하며 구축한 스케이팅 경기장과 각종 인프라는 도시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경기장에서 펼쳐진 경기와 함께 방송을 통해 전해진 도시의 전경은 세계에 아스타나를 각인시키는 중요한 장면이 되었다.
이어 2017년 ‘미래의 에너지’를 주제로 열린 아스타나 엑스포는 이 도시가 행정 수도에 그치지 않고 미래 산업과 비전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행사는 카자흐스탄의 신경제 정책인 ‘누를르 졸’ 전략과 맞물리면서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새로운 경제 축의 중심지로서 아스타나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외교와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기능도 강화되었다. 2008년 주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이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이전하면서 외교 중심축이 이동했고 2010년에는 한국문화원이 개원하면서 문화 교류의 거점이 형성되었다. 국악 공연과 영화제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이어지며 아스타나는 중앙아시아 한류 확산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스타나는 이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유라시아 초원의 한가운데 세워진 이 도시는 신생 독립국 카자흐스탄의 변화와 발전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으로, 이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분위기, 웅장하면서도 개방적인 도시 구조, 도시를 벗어나면 곧바로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은 이곳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
철도와 도로가 교차하는 물류의 중심지로서, 그리고 디지털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새로운 ‘하이웨이’의 중심으로서 아스타나는 유라시아를 잇는 교차점에 서 있다.
또한 이곳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인재들이 최첨단 학문과 기술을 배우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아스타나는 국가의 수도이기 앞서 하나의 프로젝트이자 실험이며, 동시에 국가의 미래를 향한 선언이다.
과거 유목의 공간이었던 초원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지금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방향은 곧 카자흐스탄이라는 국가가 나아갈 길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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