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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독립 35주년 기념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의 근현대사 32]

유라시아 패권의 역사 – 4 시진핑-푸틴 정상회담, 토카예프 외교, 카스피해와 중부회랑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본지 주필

유라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세 개의 축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안보 질서뿐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전략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전쟁 이전까지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영향권으로 인식되었고, 중국은 경제적 협력자라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전쟁 이후 국제 제재와 물류망의 재편, 에너지 공급망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중앙아시아는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라 세계 지정학의 중심 무대로 떠올랐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카자흐스탄이 있다. 중국은 대륙을 연결하는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하고, 러시아는 역사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며, 카자흐스탄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방향 외교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오늘날 유라시아의 미래를 이해하려면 이 세 나라의 관계를 읽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 협력 속의 경쟁

  국제사회는 흔히 중국과 러시아를 하나의 반서방 연대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양국은 국제무대에서 미국 중심 질서에 대응하는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에너지·금융·국방 분야에서도 긴밀한 공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러시아에게 중앙아시아는 제국 시절부터 이어져 온 역사적 영향권이자 국가안보의 완충지대이다. 반면 중국에게 중앙아시아는 서부 개발과 일대일로를 연결하는 전략적 관문이다. 두 나라는 충돌을 피하면서도 각자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협력적 경쟁(cooperative competition)’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최근 정상외교에서도 확인된다. 러시아와 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전략적 협력 의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에너지와 금융, 첨단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대규모 에너지 프로젝트와 가격 협상에서는 국익을 우선하는 현실주의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양국 관계가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기반한 전략적 협력임을 보여준다.

시진핑이 중앙아시아를 다시 찾은 이유

  2025년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아스타나에서 열린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함께 ‘영구적 선린우호와 포괄적 전략협력’을 선언하며 중국과 중앙아시아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흥미로운 점은 정상회의 개최 장소였다.

  2013년 시진핑이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일대일로 구상을 발표한 이후, 다시 아스타나에서 중앙아시아의 미래를 논의한 것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중국은 카자흐스탄을 단순한 인접국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전략의 핵심 연결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카예프 대통령 역시 정상회의에서 “중앙아시아와 중국은 영원하고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이 이미 중앙아시아 최대 교역 상대국이 되었으며, 카자흐스탄과 중국의 교역 규모 역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 일변도의 외교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자흐스탄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면서도 러시아, 유럽연합(EU), 튀르키예, 미국, 한국, 중동 국가들과의 협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다층적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토카예프 외교의 핵심은 ‘균형’이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다방향 외교(Multi-vector Foreign Policy)’를 한층 발전시켰다. 이 정책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초대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시절부터 이어져 온 국가 전략이다. 그러나 토카예프 정부는 이를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형태로 발전시켰다.

  러시아와는 안보와 에너지 협력을 유지한다. 중국과는 산업과 물류, 투자 협력을 확대한다. 유럽연합과는 핵심 광물과 친환경 에너지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고, 튀르키예와는 튀르크 국가기구를 통한 문화·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외교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가와 협력하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헤징(Hedging)’ 전략이라고 부른다. 특정 강대국 편에 서기보다 여러 강대국과 동시에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국가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최근 국제정치 연구에서도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의 중견국(Middle Power)’으로 평가받고 있다. 풍부한 에너지와 핵심 광물, 유라시아의 교차점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활용해 지역 안정과 국제 협력을 연결하는 국가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카스피해가 다시 세계의 바다가 되다

  카스피해는 오랫동안 산유국들의 내해(內海)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카스피해는 세계 물류와 에너지 안보를 바꾸는 전략적 공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 이유는 러시아를 통과하는 기존 육상 운송망이 국제 제재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면서, 새로운 대안 노선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길이 바로 ‘중부회랑(Trans-Caspian International Transport Route·TITR)’이다.

  중국에서 출발한 화물은 카자흐스탄을 거쳐 카스피해를 횡단한 뒤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튀르키예를 지나 유럽으로 향한다. 이 노선은 러시아를 우회하면서도 해상 운송보다 빠르고 안정적인 물류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러시아 철도망이 유라시아 육상 물류의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중부회랑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유라시아 물류 구조 자체가 다극화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게 이는 단순한 운송사업이 아니다.

  국가의 지정학적 가치 자체가 바뀌는 사건이다.

중부회랑은 왜 중요한가

  역사를 돌아보면 강대국은 언제나 교역로를 지배한 국가였다.

  실크로드를 장악한 몽골제국이 그랬고, 대항해시대를 연 유럽 열강도 그랬다. 20세기 미국 역시 해상 교통로를 장악함으로써 세계 패권을 확립했다.

  오늘날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역시 결국은 새로운 실크로드를 구축하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경유 노선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중국 역시 중부회랑의 중요성을 이전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바로 이 변화의 최대 수혜국이다.

  국토를 통과하는 철도와 도로, 항만과 물류단지가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재편되면서 국가의 전략적 위상도 함께 상승하고 있다.

유라시아의 새로운 균형추

  오늘날 카자흐스탄은 더 이상 강대국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강대국들이 반드시 협력해야 하는 파트너가 되고 있다.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없이는 중앙아시아 전략을 유지하기 어렵고, 중국 역시 일대일로의 성공을 위해 카자흐스탄의 안정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유럽연합은 에너지와 핵심 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카자흐스탄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튀르키예는 튀르크 세계를 연결하는 중심축으로 카자흐스탄을 중시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공간에서 토카예프 정부는 어느 한편에 서기보다 균형을 유지하는 외교를 선택했다. 그것은 단순한 외교 기술이 아니라,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이다.

21세기 유라시아의 새로운 질서는 어느 한 나라가 독점하는 체제로 흘러가기보다, 복수의 강대국과 중견국이 상호 견제와 협력을 반복하는 다극적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카스피해와 중부회랑, 그리고 그 교차점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이 자리하고 있다. 유라시아의 새로운 실크로드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그 길의 중심에서 카자흐스탄은 더 이상 ‘통과하는 나라’가 아니라 새로운 대륙 질서를 설계하는 핵심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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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atykim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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