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기획특집[카자흐스탄 독립 35주년 기념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의 근현대사 17]

[카자흐스탄 독립 35주년 기념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의 근현대사 17]

카자흐스탄의 스포츠 산업과 프로축구팀 이야기

초원의 나라에서 스포츠가 산업이 되기까지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내의 피트니스 클럽 풍경을 보면 저녁 시간을 이용해서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요가 스튜디오에서는 젊은 직장인들이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하고, 수영장에서는 아이들이 레슨을 받는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소련 시절, 이 나라에서 스포츠란 개인의 취미가 아니었다. 국가가 선발하고, 국가가 훈련시키고, 국가가 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복싱, 역도, 레슬링, 사이클—카자흐스탄이 강한 종목들은 하나같이 소련 시절 체육 아카데미 시스템의 유산이다. 선수들은 어린 나이에 발탁되어 국가대표 트랙을 밟았고, 올림픽 메달은 체제 경쟁의 상징이었다. 인구 대비 올림픽 메달 수가 많은 나라로 카자흐스탄이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석유와 가스 수출로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 주머니에 여유가 생기자 생계를 위한 소비 대신 건강과 여가를 위한 소비가 늘어났다. 헬스장 회원권을 끊고, 스키 리조트에 주말 여행을 가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비를 내고 출전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알마티와 아스타나 같은 대도시에서는 신축 아파트에 헬스장과 수영장이 기본 옵션처럼 따라붙는다. 피트니스 클럽, 크로스핏 센터, 요가 스튜디오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매장은 쇼핑몰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운동할 때만 입는 옷이 아니라 일상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스포츠가 공공 체육 시설에서 이루어지던 활동에서 돈을 내고 이용하는 민간 서비스 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겨울이 길다는 것, 장점이 되다

  카자흐스탄 스포츠 산업의 또 하나 독특한 지점은 자연환경을 산업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대륙성 기후 탓에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내리는데, 이게 겨울 스포츠 관광에서는 오히려 강점이 된다.

  알마티 외곽의 메데우 스케이트장은 해발 1,691미터에 자리 잡은 세계적인 빙상 경기장이다. 맑은 공기와 적절한 기온 덕분에 수많은 세계 신기록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바로 위쪽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침불락 스키 리조트가 펼쳐진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스키장 중 하나로, 주말이면 가족 단위 스키어들로 붐빈다.

  정부는 이 지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스키 슬로프 확장, 최신 리프트 설치, 접근 도로 확충, 리조트 주변 호텔 개발까지. 스포츠 시설이 관광 인프라와 맞물리면서 겨울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동계 올림픽 유치에 여러 차례 도전한 이유도 단순히 대회를 열겠다는 욕심이 아니었다.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 인프라를 끌어올리고 국가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키려는 전략이었다.

  2011년 알마티-아스타나 동계 아시안게임이 그 전례였다. 대회를 위해 경기장, 공항, 도로, 호텔이 대거 신설되었고, 도시는 눈에 띄게 현대화되었다. 국제 스포츠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경험은 이후 다른 대회 유치에도 자산이 되었다. 스포츠가 도시 개발의 엔진 역할을 한 셈이다.

생활 스포츠, 도시의 새로운 축제가 되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생활 스포츠 이벤트의 폭발적 증가다. 알마티 마라톤은 이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마라톤 대회로 자리 잡았다. 대회 날 아침, 도심 도로가 통제되고 수천 명의 참가자가 출발선에 선다. 외국인 참가자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철인 3종 경기, 산악 자전거 대회, 트레일 러닝, 스키 마라톤까지—주말마다 어딘가에서 대회가 열린다. 참가자들은 등록비를 내고, 호텔에 묵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스포츠 이벤트 하나가 관광 산업, 숙박 산업, 요식업까지 연쇄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기업들도 이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국영기업과 대기업들이 축구팀, 사이클팀, 복싱 선수를 후원하면서 광고 효과와 국가 이미지 홍보를 동시에 노린다.

  결국 카자흐스탄 스포츠 산업은 생활 스포츠, 스포츠 용품 시장, 프로 스포츠, 스포츠 관광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성장하고 있다. 자원 산업 중심 경제에서 관광, 문화, 서비스 산업으로 다변화하려는 이 나라의 전략에서 스포츠는 핵심 축 중 하나다.

축구, 도시의 기억이 되다

  이제 축구 이야기를 해보자. 카자흐스탄에서 축구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기억이고, 세대의 공기이며, 이 나라가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장면이다.

  지금은 수도가 아니지만 여전히 문화와 감정의 중심지로 남아 있는 이 도시에 FC 카이라트 알마티가 있다. 이 클럽은 단순한 축구팀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다. 1950년대 소련 시절 창단된 이후, 카이라트는 중앙아시아 축구의 얼굴이었다. 모스크바, 키예프, 레닌그라드 같은 대도시 팀들과 같은 리그에서 경쟁하며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서사였다.

  당시 소련 축구는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서유럽 축구가 개인 기술과 창의성을 강조했다면, 소련 축구는 조직과 체력, 그리고 규율을 중시했다. 선수들은 하나의 부품처럼 움직였고, 팀은 하나의 기계처럼 작동했다. 패스는 빠르고 간결했으며, 공간은 철저하게 계산되었다. 카이라트 역시 그 흐름 속에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중앙아시아 특유의 리듬도 함께 품고 있었다. 때로는 느리고 유연하게, 때로는 갑작스럽게 속도를 끌어올리는 그들의 플레이는 모스크바 팀들과는 또 다른 색깔을 만들어냈다.

  카이라트의 역사에서 가장 자주 회자되는 장면 중 하나는, 소련 최강 팀들과 맞붙던 경기들이다. 당시 카이라트는 늘 도전자였다. 그러나 알마티 홈경기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의 함성 속에서, 카이라트는 전혀 다른 팀이 되었다. 공 하나를 따내기 위해 몸을 던지고, 상대의 공격을 끝까지 따라가며,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경기. 그것은 단순한 전술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었다. 우리는 여기 있고, 우리는 싸운다는 선언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독립 이후 카자흐스탄은 자국 리그를 만들었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카이라트가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 축구의 방향을 바꾼 것은 또 하나의 선택이었다. 바로 UEFA 가입이다.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지만, 축구만큼은 유럽과 경쟁하겠다는 결정. 이 선택은 카자흐스탄 축구를 완전히 다른 궤도로 올려놓았다.

  그 변화는 점진적이었지만 분명했다. 유럽 대회 예선에 참가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강한 팀들과 맞붙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은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된다. FC 아스타나가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진출하면서, 카자흐스탄 축구는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진짜 전환점은 그보다 더 극적인 순간에 찾아왔다. 2025~2026 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카이라트가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 FC와 맞붙은 경기였다. 1차전 원정에서 0대0, 2차전 홈경기에서도 연장까지 120분 동안 단 한 골도 나오지 않는 숨막히는 접전. 결국 승부는 승부차기로 향했고, 그 순간 경기장의 공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카이라트 골키퍼 테미르란 아나르베코프가 연이어 선방을 기록하며 승부차기 3대2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다. UEFA 클럽 랭킹 300위권의 팀이, 자신들보다 수백 계단 위에 있는 셀틱을 꺾고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진출하는 ‘대이변’이었다. 선수단 가치에서도 10배 가까운 차이가 났지만, 그날 경기에서는 숫자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경기장은 폭발했다.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우리가 해냈다”, “나라를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외쳤고, 알마티 도시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자동차 경적이 울려 퍼지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한 도시와 한 나라가 세계 무대에 도달했다는 선언이었다.

  이제 유럽의 빅클럽들은 카이라트 원정을 부담스러운 일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같은 팀들이 상대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알마티까지 5,000km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 원정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부담이 된다. 유럽이라 부르기엔 너무 멀고, 그러나 분명 같은 대회에 속한 이 낯선 공간. 카자흐스탄은 그렇게 ‘지리적 변수’까지 포함한 새로운 축구 공간으로 등장했다.

  그날 이후, 카자흐스탄의 경기장에는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유럽의 명문 클럽들이 이 먼 초원의 나라로 원정을 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같은 팀이 카자흐스탄 땅을 밟는 장면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세계 축구의 중심과 변방이 같은 무대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경기 당일, 경기장 주변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붐비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유니폼을 입고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여 상대 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면, 공기가 달라진다. 긴장과 기대, 그리고 약간의 자부심이 뒤섞인 분위기. 우리는 이제 이런 팀들과 같은 무대에 선다는 감각이 그 공간을 채운다.

  경기가 시작되면, 관중들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다. 그들은 경기의 일부가 된다.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이 경기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카자흐스탄 축구는 그렇게 세계와 연결되었다.

  이 연결은 곧 선수들의 이동으로 이어진다. 유럽에서 이름을 알렸던 선수들이 카자흐스탄 리그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니, 빅터 모지스 같은 선수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이어간다. 이들의 존재는 단순한 흥행 요소가 아니라, 리그의 수준과 위상을 보여주는 지표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진짜 흥미로운 부분은, 화려한 스타가 아니라 ‘경로’에 있다. 카자흐스탄 리그는 점점 더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유럽을 꿈꾸는 선수들에게 이곳은 현실적인 출발점이 된다.

  이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한정우다.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던 그는 대학시절 국내 프로리그에 진출해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더 큰 무대를 위해 카자흐스탄이라는 선택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지만, 그의 선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유럽으로 가기 위한 ‘현실적인 경로’였기 때문이다.

  FC경남에 입단하고 두 달도 안 돼서 카자흐스탄 프리미어 리그 참가팀 FC 카이라트로 이적한 그는 등번호는 13번을 배정받고, 카자흐스탄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었던 최초의 한국 선수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갔고, 카이라트에서 뛰며 유럽 대회 경험도 쌓았다. 이후 그는 아일랜드 리그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카자흐스탄 리그가 유럽 무대로 가는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러한 흐름은 점점 더 많은 선수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이제 단순한 리그가 아니라, 유럽으로 가는 ‘중간 단계’로 자리 잡고 있다. 프리미어리그나 분데스리가를 꿈꾸는 선수들에게, 이곳은 현실적인 준비 무대다.

  이 모든 변화의 배경에는 분명한 구조가 있다. 카자흐스탄의 축구 클럽들은 대부분 지방 정부와 국영기업의 지원을 받는다. 이는 안정적인 재정을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리그 전체의 경쟁력을 유지한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도 축구를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경기장 시설은 점점 현대화되고, 유소년 시스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축구를 배우고, 부모들이 그 가능성에 투자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축구는 이제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하나의 ‘경제 활동’이 되었다.

    소련 시절의 기억, 독립 이후의 변화, 그리고 유럽으로 향하는 꿈. 이 모든 것이 한 경기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다. 뛰는 선수, 응원하는 팬, 그리고 그 경기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

  카자흐스탄의 프로축구는 그렇게 존재한다. 그것은 단순한 리그가 아니라, 한 나라가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고,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

본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