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기획특집[카자흐스탄 독립 35주년 기념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의 근현대사 14]

[카자흐스탄 독립 35주년 기념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의 근현대사 14]

금융센터를 향한 카자흐스탄의 꿈

김상욱

고려문화원장/한인일보주필

알마티 남쪽 알파라비 거리를 따라 늘어서 있는 유리 빌딩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때 이곳이 중앙아시아의 금융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꿈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그 건물들은 그대로 서 있지만, 그 건물들이 상징하던 시대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그러나 그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장소가 조금 북쪽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알마티 금융센터의 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스타나로 이동했다. 카자흐스탄의 금융 허브 프로젝트를 이해하려면 알마티와 아스타나, 이 두 도시의 관계를 함께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카자흐스탄이 어떤 나라가 되려고 하는지, 이 나라 지도자들이 어떤 미래를 상상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의 중심 도시는 타슈켄트였지만, 경제와 산업, 금융과 교육의 중심 도시는 알마티였다.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도는 나중에 아스타나로 옮겨 갔지만, 은행과 금융회사, 외국 기업, 무역회사, 투자회사 대부분은 여전히 알마티에 남아 있었다. 카자흐스탄의 돈과 기업과 금융은 알마티에 있었고, 정부와 정치 권력은 아스타나에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알마티는 경제 도시였고 금융 도시였다. 그래서 카자흐스탄 정부가 처음 금융 허브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알마티가 그 중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카자흐스탄 경제는 석유와 가스, 광물 자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외화가 많이 들어왔고, 은행들은 빠르게 성장했으며, 부동산과 건설 시장도 활기를 띠었다. 경제가 성장하자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원만 팔아서 돈을 버는 나라가 아니라 금융과 투자, 서비스 산업으로 돈을 버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특히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은 자원으로 벌어들인 돈이 금융으로 들어가고, 금융이 투자와 산업을 키우고, 그 산업이 다시 경제를 성장시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단순한 자원 국가가 아니라 금융과 산업이 함께 발전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지도부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알마티 금융센터 프로젝트였다. 알마티에 금융 특구를 만들어 외국 금융회사들을 유치하고, 세금 혜택과 법적 보호를 제공하고, 국제 기준의 증권 거래와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이었다. 일종의 두바이 금융센터나 싱가포르 금융지구 같은 모델을 참고한 프로젝트였다.

  당시 계획은 매우 야심찼다. 금융감독기관, 외국 은행과 보험회사, 특별 증권거래소, 금융 분쟁을 해결하는 특별 법원, 국제 금융 자문위원회 등이 한 지역에 모여 있는 금융 도시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곳에 입주하는 외국계 금융사 직원들에게는 국제기구나 외교관들에게 해당되는 비자와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마치 과거 서구열강의 조계지처럼 금융도시를 전담하는 별도의 사법기관을 두는 등 파격적인 환경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 알마티 남쪽 금융센터 지역에는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64개의 금융기관이 들어설 예정이었고, 사람들은 그곳을 ‘알마티의 월스트리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국의 국민은행이 인수한 센터크레딧 은행이 부지를 확보하고 빌딩건설을 시작했고, 카자흐스탄 펀드를 국내에서 판매하던 한화증권도 부지를 확보하고 사옥건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시절 카자흐스탄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카자흐스탄이 중앙아시아의 금융 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는 항상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알마티 금융센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시기에 세계 경제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서 국제 금융 시장이 크게 흔들렸고, 외국 금융 회사들의 해외 투자 계획도 크게 줄어들었다.

  카자흐스탄 역시 금융 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카자흐스탄 은행들이 해외에서 많은 돈을 빌려 부동산과 건설 사업에 투자했는데, 금융 위기가 오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부동산 시장도 침체되었다. 은행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고 정부는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금융 회사를 대규모로 유치하여 금융 허브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알마티 금융센터 프로젝트는 처음 계획했던 국제 금융 허브로 발전하지 못했다. 금융 특구 기능은 점차 기존 금융 시스템과 통합되었고, 프로젝트는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금융 허브를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는 여전히 카자흐스탄 정부의 중요한 국가 전략으로 남아 있었다. 다만 장소와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아스타나 국제금융센터였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새로운 수도 아스타나를 단순한 행정 수도가 아니라 정치, 경제, 금융, 국제 비즈니스 중심 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수도 이전 자체가 국가 전략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금융 허브 역시 수도에 두는 것이 국가 전략에 더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2017년 아스타나 엑스포가 열렸던 그 곳을 중심으로 아스타나 국제금융센터가 설립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금융기관 몇 개를 모아 놓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아스타나 국제금융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카자흐스탄 법이 아니라 영국 법 체계를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금융 분쟁도 일반 카자흐스탄 법원이 아니라 국제 기준으로 운영되는 특별 법원에서 처리된다. 영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고, 외국 금융기관들이 활동하기 쉽도록 제도 자체를 새로 만들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알마티 금융센터가 기존 금융 시스템 위에 금융 특구를 만드는 방식이었다면, 아스타나 금융센터는 아예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만드는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시스템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을 하나 더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카자흐스탄의 금융 중심지는 어디일까. 아스타나일까, 알마티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조금 복잡하다. 공식적인 국제 금융 허브는 아스타나다. 아스타나 국제금융센터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국제 금융 허브이고, 외국 금융기관과 국제 금융 거래를 위한 제도와 법률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금융 산업의 중심은 여전히 알마티다. 대부분의 상업 은행 본점, 중앙은행 관련 기관, 금융시장 감독 기관, 증권거래소가 모두 알마티에 있다. 금융회사와 투자회사, 보험회사도 대부분 알마티에 있다. 즉, 정치와 국가 전략의 금융 도시는 아스타나이고, 실제 은행과 시장과 돈이 움직이는 금융 도시는 알마티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카자흐스탄에는 두 개의 금융 도시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알마티 금융센터 프로젝트는 결과만 놓고 보면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알마티 금융센터가 꿈꾸었던 금융 허브 구상은 형태를 바꾸어 아스타나 국제금융센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알마티는 여전히 카자흐스탄 금융의 중심 도시이고, 아스타나는 국제 금융과 국가 전략의 금융 도시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알마티가 카자흐스탄 금융의 과거와 현재라면, 아스타나는 카자흐스탄 금융의 미래라고도 볼 수 있다.

  세계에는 금융 허브를 만들려고 했던 도시들이 많다. 두바이, 싱가포르, 홍콩, 런던 같은 도시들은 오랜 시간 동안 금융 시스템과 법과 제도, 인력과 자본을 축적하면서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금융 허브는 건물을 많이 짓는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법, 제도, 신뢰, 인력, 자본,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함께 만들어 내는 것이다. 카자흐스탄도 지금 그 과정을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알마티 금융센터에서 시작된 금융 허브의 꿈은 아스타나 금융센터로 이어졌고, 그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몇십 년 뒤 누군가가 카자흐스탄 경제사를 정리한다면 이렇게 쓸지도 모른다. 카자흐스탄은 처음에는 알마티에서 금융 허브를 만들려고 했고, 그 다음에는 아스타나에서 다시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카자흐스탄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금융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나라는 그 도시를 먼저 만들고 미래를 기다리기도 한다. 알마티 금융센터 건물과 아스타나 국제금융센터 건물 사이에는 단순한 거리 이상의 시간이 흐르고 있고, 그 시간 속에서 카자흐스탄은 금융 국가가 되려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