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봄의 축제 나우르즈
나우르즈 연휴 첫날인 21일의 경우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이자 경제, 문화 수도인 알마티의 날씨는 마치 초여름 같이 낮 최고기온이 30도에 육박했다.
21일 부터 25일 까지 연휴기간동안 나우르즈를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서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이자 우리에겐 홍범도장군의 유적이 남아 있는 도시로 알려진 크즐오르다로 여행을 떠났다.
크즐오르다는 이전의 수도였던 알마티보다 앞선 1920년대 카자흐인들의 수도였던 만큼 카자흐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기 때문에 나우르즈의 풍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마티에서 크즐오르다까지는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했다. 하루 3회 운항하는데 카자흐스탄의 국적기인 ‘에어 아스타나’와 저가 항공사인 ‘아르스탄 항공’이 이 노선에 취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비행기는 크즐오르다 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내렸고, 승객들은 최근에 새로 개장한 여객터미널을 이용할 수 있었다.
나우르즈는 ‘새로운 날’이라는 뜻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날이기도 한데, 마중 나온 세르게이는 이미 지난주부터 나우르즈를 맞이하기 위해 겨우내 묵은 때를 벗겨내는 대청소를 벌였다고 알려주었다.
크즐오르다 시민들은 자신의 집 앞밖 청소는 물론이고 대문 앞 거리를 쓸고 응달진 담벼락에 남아 있는 잔설을 치웠고, 시 당국은 겨우내 중단되었던 도로 물청소를 재개하여 물청소 차량이 봄이 왔음을 과시하듯 거리를 질주하며 물을 뿌렸다고 한다.
또한 크즐오르다 주변 지역의 카자흐인들은 집안뿐 아니라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가축들의 축사도 정비했다고 알려주었다.
‘나우루즈’, 과거 페르시아 문화권과 투르크계 민족들에게 최대의 명절
나우르즈는 페르시아 문화권과 투르크계 민족들이 사는 지역, 그러니까 이란과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중동, 남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새해 첫날이자 봄의 시작을 알리는 명절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
우리가 낮이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이 길이가 가장 긴 동지를 곧 낮이 다시 길어지는 시작점으로 인식하고 새해의 첫날이라고 여겼던 것에 반해, 이 지역 사람들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을 새해의 시작으로 여겼다.
인도와 이란은 노우르즈, 튀르키예는 네브루즈, 우즈베키스탄은 나브루즈, 카자흐스탄과 이라크는 나우르즈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명칭은 약간씩 다르지만 모두 ‘새로운 날(new day, 설날)’을 뜻하며 이날을 기해 약 2주에 걸쳐 다양한 의식, 축하 행사, 문화 행사 등을 치른다.
나우리즈는 다산, 우정, 행복, 사랑을 상징한다. 나우르즈 기간동안에는 서로 축하하고,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는 것이 관례이다.
1926년부터 1988년까지 소련시절에는 나우르즈를 기념하지 않았다가 고르바초프가 1985년에 집권하고 추진했던 개혁‧개방정책의 영향으로 나우르즈 명절을 다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나우르즈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카자흐스탄의 ‘나우르즈’
카자흐스탄에서는 초원에 새싹이 돋고 생명을 가진 모든 만물이 새롭게 살기 시작하는 ‘나우르즈’를 날 중의 최고의 날이라고 여긴다.
수천년 동안 유목민으로 살아온 카자흐인에게 가축이 새끼를 낳는 계절이 돌아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날이 오면 축제를 열고 덕담을 건네며 소원을 빈다. 또 새 옷을 입고, 유목민의 이동식 천막 ‘유르타’로 손님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는데, 겨우내 먹고 남은 묵은 고기와 각종 곡물을 넣고 만든 전통 음식인 나우르즈 ‘코줴’를 대접한다.
이웃들간에도 서로 음식을 나누는데 축제현장 뿐만 아니라 시내의 식당에서도 손님들에게 ‘나우르즈 코줴’를 무료로 제공하고 호텔 투숙객들은 호텔측이 무료로 제공하는 ‘바우르삭’이라는 전통빵과 ‘코줴’를 맛볼 수 있다.
만약 이 기간 중에 카자흐스탄을 방문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호텔 로비에 풍성하게 차려진 카자흐 전통음식을 맛보시길 바란다. 나우르즈 축제기간에는 어딜가나 보게 되는 전통 상차림속 음식은 무료이다.
내가 묵은 호텔로비에도 카자흐전통의상을 입은 직원이 투숙객들에게 나우르즈 축하 인사를 건내면서 음식을 권했다.
또 야외에서는 말 경주, 폴로와 비슷한 마상경기인 ‘콕파르’, 씨름, 말 타고 달리는 여성을 잡는 ‘크즈 쿠우’ 등의 민속놀이가 열렸다.
나우르즈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음악과 음식
카자흐인들의 영혼이 담긴 돔브라를 든 수백 명의 청년이 축제가 벌어지는 광장에서 연주하는 장면은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든다. 그 어떤 북소리보다, 그 어떤 화려한 군무보다 더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이 이것이다.
돔브라는 두 개의 현으로 되어있고 연주 방법은 기타와 비슷하다. 나우르즈 축제때에는 지금도 어김없이 연주되는 것이 바로 돔브라 이다.
나는 카자흐스탄의 유명한 돔브라의 명인 졸라우시 투르두굴로프를 국내의 한 방송에 소개한 적이 있다. 지금은 자신의 집에 작업실을 마련했지만 그때는 내가 일했던 알마티국립대학교 조선어과 전용 강의실을 자신의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시차를 두고 한 공간의 주인은 내가 아닌 졸라우시 였다는 묘한 인연이 우리 둘 사이에는 있었다.
그때 내가 그로 부터 들은 돔브라 애기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돔브라는 카자흐인의 영혼이 담긴 악기”라는 말과 돔브라에 얽힌 전설이었다.
옛날에 카자흐스탄의 왕 주기칸의 아들이 야생마를 사냥하던 중 우두머리 말에게 역습을 당해 죽음을 앞뒀다. 왕은 “경솔하게 아들의 생사를 언급하는 자가 있으면 그의 입에 펄펄 끓는 주석을 부어넣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어느 날 돔브라 연주자가 왕에게 와서 연주를 해보이겠노라고 자청했다. 악사의 음률에는 왕자의 죽음을 예언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왕은 아들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연주자를 단죄하고 싶었지만, 그가 말하지 않았기에 돔브라의 입(울림통)에 끓는 주석을 부어 넣었다는 전설이었다.
카자흐스탄에는 돔브라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린 고대 암각화가 있는 걸로 봐서 카자흐인들과 돔브라와의 인연은 족히 수천년은 될 것으로 짐작이 간다.
현이 두 줄이고 작은 기타처럼 생긴 돔브라는 바흐시(구연자)들이 민족 서사시나 민담 등을 들려줄 때 연주하는 악기이자, 카자흐스탄 기악합주(큐이)에도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현악기다.
돔브라를 이용한 공연예술을 ‘돔브라 큐이(Dombra Kuy)’라고 하는데, 이 역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유명한 큐이로는 억압과 착취에 대한 저항과 카자흐인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사랑을 열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인 투르케쉬 칼라카울르의 ‘쾨닐라샤르’, 카자흐스탄의 광활한 스텝을 묘사하는 작품으로, 풍부한 멜로디와 빠른 템포, 감동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쿠르만가지 사기르바이울리라는 유명한 쿠이시가 고향에 대한 사랑과, 억압받는 민중의 저항을 표현한 작품인 ‘사르아가쉬’, 전사적 기질을 가진 카자흐인들의 자유, 반항 정신을 질주하는 말의 리듬으로 표현한 ‘아다이’ 라는 작품 등이 있다.
‘쾨닐라샤르’는 카자흐스탄 국립 민속 악기 오케스트라인 쿠르만가지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큐이는 사회적 모임, 명절, 축제 행사 등에서 연주됨으로써 공동체 안팎에서 정신적·정보적·소통적 통로로서 기능하는 동시에 카자흐 사람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사회 내 연대성과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꼭 필요한 사회·문화적 체험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축제의 현장에서 빠질 수 없는 건 바로, 음식이다. 그중에서도 나우르즈 코줴는 첫째로 꼽힌다. 이 음식은 요구르트의 원형 격인 케피르와 우유, 쌀과 같은 통곡물류, 건포도와 같은 견과류 그리고 말고기를 잘게 찢어 넣고 만든 수프이다.
맛은 다소 시큼하고 말고기 향이 나기 때문에, 한국인의 입맛에 다소 맞지 않을 수 있으나 그 맛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고려인들의 적극적 참여
카자흐스탄은 130여 개의 민족이 함께 모여 사는 다민족국가인 만큼, 대규모 축제를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문화적 다양성과 관용을 가르치는 기회로 활용한다.
고려인들을 포함한 소수민족들도 카자흐스탄이라는 지붕 아래에 사는 한 가족임을 확인하고 평화와 화합을 다짐하는 것이다.
알마티의 경우 알마티 고려민족중앙회 산하 고려인 무용단, 합창단, 사물 놀이 팀이 지난 21일, 아스타나 광장에서 열린 나우르즈 축제 공연에 참가해서 한복의 아름다움과 우리 노래를 선보일 뿐만 아니라 북, 장구, 꽹과리 등을 동원한 사물놀이 공연도 했다.
크즐오르다 고려인협회도 22일 코르쿳-아타 크즐오르다 국립대학교 건물이 앞 광장에서 아침 부터 열린 행사에 참가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서 초겨울 깥이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안 엘레나 크즐오르다 고려인협회장은 산하 고려인 청년단체들과 함께 북과 장구, 징, 꽹과리로 구성된 사물놀이를 선보이는 등 우리의 전통문화를 행사 참가자들에게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