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국전쟁 승리 80주년 특집 기사]
대조국전쟁 80년, 러시아는 왜 여전히 이 전쟁을 기억하는가
김상욱 알마티고려문화원장/본지주필

2025년 5월 9일은 소비에트 연방이 대조국전쟁에서 승리한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올해의 전승절 80주년 행사는 러시아 뿐 아니라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 등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던 나라들에서도 대대적으로 준비되고 있다.
먼저, 러시아에서는 1941-1945년의 대조국전쟁 승전 80주년을 준비하고 전쟁 중 사망한 사람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빅토리’라는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준비작업은 2년 전인 2023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조국전쟁 승리 80주년 준비 및 기념에 관한 법령 제568호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착수되었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초, 2025년을 ‘조국 수호의 해’로 선포하면서 재향군인의 사회적 보호 대책을 승인했다. 전투 참가자, 그들의 미망인, 강제수용소의 미성년 수감자 등에게 8만 루블(원화로 약 135만 7천원)을 현금으로 지원하고 국내 전선 근로자, 레닌그라드 포위 생존자, 성인 강제 수용소 수감자 및 방위 기업 근로자에게는 각각 5만5천 루블(원화로 약 93만 3천원)을 지원키로 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전승절 열병식과 관련해서, 모스크바, 노보시비르스크, 하바롭스크, 아스트라한 등 러시아 전국 28개 도시에서 열병식이 예정되어 있고,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열병식에 20개국 이상 정상이 참석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는 나치즘이 유럽에 다시 자리잡고 유럽이 이를 근절하려는 열망을 보이지 않고 있는 지금 특히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당시의 이름인 레닌그라드로, 볼고그라드는 스탈린그라드로 이름이 변경된다.
카자흐스탄은 작년 12월 23일, 러시아와 80주년을 기념하는 공동 행사 계획에 서명했다. 이 행사에는 전시회, 영화 상영, 역사 연대기가 포함되어 있다.
1월 15일, 카자흐스탄 정부는 대조국전쟁 참전 용사들에게 500만 텡게를 지급한다고 발표했고, 2019년 이후 처음으로 5월 7일(조국수호자의 날)에 대조국전쟁 승전과 조국 수호의 날을 기념하는 열병식을 거행한다고 발표했다. 5월 9일에는 조국수호 기념비 헌화와 불꽃놀이, 참전 용사와 국내 전선 근로자를 기리는 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와 함께 8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이유는 대조국전쟁의 승리에 귀중한 공헌을 했기 때문인데, 당시 120만 명이 넘는 카자흐스탄 국민이 전선에 나갔고, 그 중 60만 명 이상이 돌아오지 못했다. 특히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베를린 공격과 같은 주요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탄약, 식량 생산, 피난민 수용을 위한 믿음직한 후방기지 역할을 했다.
아직도 살아 있는 기억

1941년 6월 22일, 히틀러는 소련을 기습 침공했다. 작전명 ‘바르바로사’. 이는 곧 러시아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도 비극적인 전쟁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는 이 전쟁은, 오늘날까지 러시아인들에게 ‘대조국전쟁(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이라는 이름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 전쟁은 러시아 국민에게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고,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절체절명의 싸움이었다. 약 2,2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 국토가 전쟁터로 변했다. 전체 사망자를 전쟁기간으로 나누면 하루 사망자 수가 나오는데, 대략 하루에 2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어나간 셈이다. 정말 끔찍한 전쟁이었다.
모스크바 공방전에서는 혹한 속에서도 소련군은 끝까지 수도를 지켰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독일 제6군을 포위하며 전세를 뒤집었다. 이어진 쿠르스크 전투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차전이 벌어졌고, 소련군은 이후 전면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이 전투들은 단지 군사적 승리를 넘어 러시아 민중의 끈기와 집단 정신을 상징한다.
전선에는 이름 없는 수백만 명의 병사들이 있었고, 후방에는 총 대신 곡괭이와 삽자루를 든 일명 노동군들이 있었다. 고려인의 경우도 노동군으로 편입되었는데, 일제의 스파이 혐의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전선으로 갈 수 없었고, 후방의 군수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당시, 전선에서는 두 다리를 잃고도 전투기 조종석에 다시 앉은 알렉세이 마레스예프, 저격수로 300명 이상의 적을 사살한 여성 알렉산드라 사무일로바, 단 24명의 병사로 한 건물을 사수한 ‘파블로프의 집’ 이야기 등 전설적인 전쟁영웅이 등장했다.
이 전쟁은 민간인들의 피해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 중 하나였는데, 레닌그라드 포위전은 전쟁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독일군에 의해 무려 900일 동안 도시가 고립된 가운데, 굶주림과 폭격 속에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도시를 지켰고, 이는 지금까지도 러시아인들에게 공동체 정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기억의 정치, 그리고 현재

80년이 지난 지금도 러시아는 이 전쟁을 기억한다. 매년 5월 9일, 전승절에는 거대한 군 퍼레이드와 ‘불멸의 연대’ 행진이 열리며, 노병들과 시민들은 전사자들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걷는다. 이 전쟁의 기억은 국가 정체성과 결속의 수단이 되었고, 오늘날 러시아 정치 담론에서도 자주 호출된다.
특히 푸틴 정권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나치로부터 조국을 지킨다’는 서사를 끌어오며 과거의 영웅주의를 현재의 정당성으로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의 정치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는 전쟁 영웅화의 이면에 가려진 희생과 침묵된 진실을 조명하려 하고 있다.
대조국전쟁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러시아인들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현재적 기억이다. 매년 5월 9일 열리는 전승절 퍼레이드는 단지 추모를 넘어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거리마다 ‘불멸의 연대(Бессмертный полк)’라는 이름 아래 전사자들의 사진을 든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이처럼 대조국전쟁은 개인과 가족의 이야기에서, 국가와 권력의 내러티브로 확장되어왔다.
오늘날 러시아는 이 전쟁의 기억을 외교적 정당성의 기반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정부는 ‘반(反)나치 투쟁’이라는 서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전쟁의 역사와 현재의 현실을 연결 짓고 있다. 이는 역사적 기억이 얼마나 쉽게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모든 러시아인이 이 기억을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젊은 세대와 지식인들은 대조국전쟁의 지나친 영웅화와 국가주의적 재구성을 비판하고, 그 이면에 존재했던 억압과 희생, 침묵당한 진실들을 재조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대조국전쟁은 단지 승리의 역사만이 아닌, 기억의 투쟁이기도 하다. 전장의 총성이 멎은 지 80년이 지났지만, 그 전쟁은 여전히 러시아 사회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역사란 단지 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늘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 10년짜리 ‘골드 비자’ 도입…해외 자본 유입 기대
카자흐스탄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발급하는 10년짜리 ‘골드비자’ 제도를 도입한다.
1일 카자흐스탄 매체 텡그리뉴스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최대 10년 간의 거주 자격을 부여하는 투자비자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무부는 “외국인의 투자비자 취득을 위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면서 “골드비자를 발급함으로써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유리하고 예측 가능한 투자 환경 및 법률적 보장을 조성하고 카자흐스탄에 대한 신뢰를 강화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골드비자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카자흐스탄 법인 자본금 또는 증권에 최소 30만 달러(약 4억5000만원)를 투자하면 된다. 최대 10년간 거주하면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외무부는 “유사한 비자 제도는 미국, 유럽,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등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시행되고 있으며 자본, 기술, 영리활동을 유치하는 효과적인 도구임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카자흐스탄은 평균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섰던 2010년대에 세분화된 비자 제도를 도입하면서 외국인의 무분별한 이민을 제한해 왔다.
일반적으로 발급되는 워킹비자(근로비자)의 거주 기간은 최대 3년이다. 비자 발급 프로세스에는 3~4개월이 소요된다.
개발도상국인 카자흐스탄이 까다로운 비자 발급 제도를 도입한 데에는 지정학적 이유가 있다는 것일 전문가들 대부분의 견해다.
세계 9위로 넓은 영토 면적을 자랑하지만 인구는 약 2000만명에 불과한 카자흐스탄은 중국 신장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국경 근접도시 및 주요도시 등에 대규모로 중국인이 유입되는 것을 경계해 왔다.
외무부 발표자료에도 중국인들의 비자 및 영주권 발급 신청 건이 줄곧 가장 많았다. 당국은 비자 발급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경우 철저히 반려하는 방식으로 제한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