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사회[현장 르포] 광복 80주년 기념 카자흐스탄 고려인 비단길 합창단 모국 방문 공연

[현장 르포] 광복 80주년 기념 카자흐스탄 고려인 비단길 합창단 모국 방문 공연

국회에 울려퍼진 고려인의 노래… 비단길 합창단 모국공연

<국회공연>

<국회공연>

(한인일보) 최재형 기자 = 강제 이주의 아픔을 가진 중앙아시아 고려인 동포들의 노래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국회에서 울려 퍼졌다.

   11일 오후 3시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하는  비단길합창단이 첫 내한 공연을 가진 것이다.

  비단길합창단은 고려인 2·3세 20 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난해에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나로드늬(인민) 합창단’ 칭호를 받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합창단과 함께 김겐나지&문공자, 손병휘 등이 출연해 풍성한 공연을 선보였고, 사회는 영화배우 박철민이 맡았다.

  이번 공연은 강제 이주와 시련 속에서도 민족 정체성을 지켜온 고려인 후손들의 역사를 기리는 자리였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중앙아시아에 정착하게 된 고려인들은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며 공동체를 일궈냈다.

  1938년 소련 최고회의에서는 ‘사회주의 노동영웅’의 칭호를 제정하였는데, 고려인의 경우 소련내 타민족에 비해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사람이 월등히 많은 209명의 고려인이 받았다.  

  이중 북극성 콜호즈의 회장이었던 김병화는 2번을 받았다.  이러한 역사속에서 그들이 불렀던 노래를 모국의 무대에서 선보였다.

  사단법인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과 알마티 고려문화원이 공동 주관했고, 김영진·박홍근·이용선·허영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이동섭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 이사장은 “비단길 합창단의 목소리가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 국회에서 울려 퍼진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상욱 고려문화원장은 “중앙아시아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며 다시 일어선 그들의 노래를 광복 80주년에 고국에서 다시 부를 수 있어서 너무나 감격스럽다”면서 “이번 공연을 통해 고려인들도 당당한 한민족 공동체의 일원임을 모국 동포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평일 낮임에도 국회 공연장은 관객으로 가득했다. 배우 박철민이 사회를 맡아 유머와 따뜻한 말로 분위기를 열었고, 박홍근 의원은 무대에 올라 “외국에서 우리 문화를 잊지 않고 지켜나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며 해외 동포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연에 앞서 상영된 영상은 1937년의 시간을 소환했다. 소련 정부는 일제의 연해주 침략야욕과 전쟁의 명분을 사전에 제거하고 일제 스파이들의 연해주 침투를 막기 위해 이 지역에 살던 18만 명의 고려인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으로 이주시켰다.

  고려인과 일본인 간의 구별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주 과정을 담은 화면이 보던 일부 관객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이어 재일 동포들의 응원 메시지가 영상을 통해 전해졌다. “우리도 외국에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함께 힘내자.” 짧지만 진한 연대의 말이었다.

  일본으로 망명해 통일운동에 헌신했던 정경모 선생의 아들 정강헌씨도 목소리를 보탰다. “강제이주의 고난을 겪은 조상과 후손들에게 뜨거운 연대를 보낸다.” 사회자 박철민은 “듣고만 있어도 울컥한다”고 소회를 전했다.

비단길 합창단, 고향의 언어로

  드디어 비단길 합창단이 무대에 섰다.  단원들은 고운 한복을 입고 한국어로 노래했다.  

  고려극장의 극작가였던 연성룡이 지은 ‘씨를 활활 뿌려라’라는 노래가 첫 곡으로 선뵈었다.

  무대 위 스크린에는 합창단원들의 소감이 자막으로 흘렀다.

   가수 손병휘는 ‘평화의 메달’을 부르며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눈물 흘리던 북한 고위 인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디아스포라로서의 눈물이 곡의 모티프였다고 했다.

  문공자 가수는 ‘불영청진’, ‘아리랑 판타지아’, ‘러시아 로망스’, ‘사할린’ 등을 불렀다. 특히 사할린에서 태어난 그는 ‘사할린’을 부르기 전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이 고국을 못 보고 돌아가셔서 이 노래가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무대 위에서 흘러나온 그의 목소리는 울부짖음처럼 깊고 애절했다.

  문공자씨와 나란히 서서 기타를 멋지게 연주한 김겐나지씨는 홍범도 장군이 경비로서 일했던 고려극장의 극장장을 지냈던 인물이고 여든 가까운 연세에도 카자흐스탄국립 음악대학의 현역 교수로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공훈예술가’ 칭호를 함께 받은 부부이기도 하다. 그들의 호흡은 단단했고, 음악은 완벽했다.

  가수 문공자는 태장춘 선생이 ‘레닌기치’ 신문에 기고한 ‘옥수수’라는 시에 손병휘가 곡을 붙인 노래를 함께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 곡은 ‘고향의 봄’. 합창단과 문공자·김겐나지 부부가 함께 노래를 불렀다. 객석은 따라 부르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부모 세대가 밟지 못한 고향의 땅을, 자식 세대가 노래로 대신 딛는 순간이었다.

  그날 국회에서 울려 퍼진 노래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다. 기억을 되살리고, 흩어진 역사를 이어주며, 다시금 우리가 한민족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공감과 만남이 있었던 안산시 공연

<안산공연>

  이튿날 안산시 공연에는 이산의 아픔을 공유하는 국내 거주 사할린 동포들이 대부분의 객석을 채웠주었다.

  더불어 안산에서 일하는 고려인동포들도 일 나가기 전 또는 마치고 난 뒤 공연장을 찾아주었다.

  전국에서 고려인 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안산시는 한국어 교육·문화 교류·정착 지원 등 동포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도시답게 이민근 안산 시장이 이날 공연단을 위해 공연전, 오찬을 베풀어 주었다.  

  공연은 고려인·사할린 동포 주민과 시민 등 약 150명이 참석한 가운데, 다문화 가정 청소년으로 구성된 풍물패 ‘기적소리’ 의 길놀이와 안산시립국악단의 식전 무대로 시작했다.

  이어 ▲개회식 ▲환영사 ▲축사에 이어 문공자, 김겐나지, 손병희, ‘비단길’ 합창단의 무대로 이어졌다.

   공연 후, 합창단원 중 일부는 한국에 나와 일하고 있는 아들과 딸을 만나기도 하고  손주를 만나기도 했다.

   이민근 안산시장은 “비단길 합창단의 공연이 단순한 선율을 넘어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세대를 잇는 역사적 기억을 전했다”라며 “함께 한 고려인·사할린 동포와 시민 모두가 우리의 뿌리를 되새기고 서로를 이해하며 공감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안산 공연은 고려인지원단체 사단법인 너머(이사장 신은철)가 현지주관하였다.

대전국립현충원 들러, 홍범도 장군 영전에 보드카 한잔 올려

 국회와 안산시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비단길 합창단 일행은 14일 광주 공연을 위해 한반도의 남쪽으로 향했다.

  도중에 대전국립현충원에 들러 홍범도 장군 모역을 참배하고 카자흐스탄에서 가져온 보드카 한잔을 올리기도 했다.

  김베라 단장은 “고려인 동포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된 이후 장군의 묘역에 꼭 한번 참배하러 오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오게 되어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공연단은 전주를 거쳐 13일 저녁, 광주에 도착하여 다음날 광산구 월곡동 ‘역사마을 1번지’ 고려인마을에서 열릴 공연을 준비했다.

<광주공연>

  14일 오전, 공연단 일행은 고려인문화관을 견학하며 자신들도 잘 모르고 있던 우리말과 우리글을 기키지 위한 고려인들의 활동들을 모아놓은 전시관을 둘러보고 선조들의 노력들에 대해 새삼 경의를 표했다.

  광주 공연은 광산구 월곡 마을 중심에 위치한 홍범도공원에서  펼쳐졌다.  

  광주 고려인마을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산오락회’가  <우스리스크 편지〉,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불렀다.

  문공자는 사할린, 러시아 로망스, 그리고  아리랑을 불렀고, 김겐나지는 아리랑 환타지아를 연주해서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특히,  문공자의 ‘카츄사’노래가 나오자 일부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꿈을 추었고, 이 분위기는 마지막 곡인 ‘고향의 봄’을 합창할 때까지 이어져 공연장을 시간과 공간, 세대간 격차를 허무는 뜨거운 화합의 장으로 만들었다.

   한 어르신은 공연 후 “노래 속에서 잃었던 조국의 향기와 청춘의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무대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 언어와 문화를 지켜낸 선조들의 피와 땀, 희망을 담은 살아 있는 역사였다.

  공연은 광주 고려인마을 어린이합창단의 밝고 순수한 무대에 이어 진행되었는데, 세대를 잇는 ‘화합의 합창’으로 완성됐다. 이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공존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균택 국회의원, 신수정 광주광역시의회의장, 김명수 광산구의회의장 등이 참석했다.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 비단길 단원의 가정에 초대되어 환대를 받았던 기억때문에 공연장으로 떡을 해가지고 온 한 관객은 “당시 받았던 뜨거운 환대에 대해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우리 전통의 떡을 아침에 만들어 가져왔다”고 밝혔고, 여수에서 이번 공연을 보기 위해 달려왔다는 한 예술인도 “비단길 합창단에게 여수 지역 예술인들의 맘을 담아 떡을 만들어 가져 왔다”고 말해 때아닌 떡풍년이 연출되기도 했다.

  모국공연의 마무리는 평화의 섬 제주도 대평리에서 해녀들과의 합동공연으로 완성되었다. 육지로 나간 해녀를 뜻하는 ‘출가해녀’들의 한이 서린 노래가 불려졌고, 비단길합창단의 모국공연을 응원하기 위해 청주지역 시민들이 단체로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에 앞서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오찬을 베풀고 제주도와  고려인들 간의 교류 활성화를 적극 지원하게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