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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삼은 누구?

  김만삼은 크즐오르다 지역에 이주하여 선봉 콜호즈를 세웠으며, 벼농사 확산 및 품종 개발에 기여한 고려인 지도자이다.

  김만삼은 연해주 시절에 이미 벼농사 콜호즈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37년 카자흐 공화국으로 강제 이주한 뒤에는 종자와 종업기술 개선, 물 대는 방법, 광물비료 사용 등으로 수확량을 늘려 농업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이 공로로 1947년 국가상을 받았으며, 1948년에는 ‘사회주의 노력영웅’으로 불려졌다.

  1883년에 러시아의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났다고 전하지만,『레닌기치』에는 1882년에 조선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13살 때부터 유랑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35살까지 머슴살이를 하였다. 

  그는  1940년에는 1㏊당 쌀 8t을 생산하였는데, 1942년과 1944년에는 1㏊당 각각 15t, 15.2t을 생산하여, 당시 일반적으로 1㏊당 3∼4t정도 생산하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기록적인 생산량을 달성하였다.

  1940년대 초에는 벼농사의 핵심적인 노동력이었던 성인 남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 동원되어, 고려인 콜호즈에서는 정상적인 농사가 불가능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련 당국은 기계장비의 지원도 없이 고려인 콜호즈에 생산량 증대를 요구하였다. 1941년∼1945년에 선봉 콜호즈, 볼셰비키 콜호즈 등 고려인 콜호즈는 벼농사 재배 면적을 3.5배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생산량은 요청한 것 이상으로 달성하였다. 자연히 수입이 크게 늘어서, 황무지에 들어선 고려인 콜호즈에는 전기발전 시설은 물론, 문화회관이나 학교 등이 건립되거나 개선되었고 생활환경도 좋아졌다.

김만삼은 벼 재배 실험을 통해서 종자와 종업기술 등을 개선하면서 수확량이 증진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힘썼다. 특히 적기에 일정하게 물을 대는 방법, 광물비료 사용과 제초작업 병행으로 수확량을 높이는 방법을 알아냈는데,이를 이용하면서 다른 콜호즈에도 전파하였으며, 특히 황무지에 관개용 수로를 건설하는데도 큰 기여를 하였다.

그 성과와 농업기술은 카자흐 공화국 정부의 인정을 받아, 소련 연방 레닌농학아카데미 카자흐 지부 회의, 국민경제달성 박람회 등에서 소개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