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의 음식과 주거문화

카자흐인의 음식문화는 유목생활의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다. 광활한 초원을 이동하며 살아가는 삶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식량은 가축에서 얻는 고기와 유제품이었다.
그래서 카자흐인의 전통 식단은 양고기와 말고기 우유와 발효 유제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여름에는 양고기를, 겨울에는 말고기를 주로 먹었으며, 고기를 건조하거나 가공하여 저장하는 방식도 발달하였다.
또한 가축의 젖을 이용해 요구르트 치즈 발효 음료 등 다양한 유제품이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말의 젖을 발효시킨 크므즈, 낙타의 젖을 발효시킨 슈바트는 카자흐 유목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꼽힌다.
두 음료 모두 영양가가 높고 소화에 도움을 주는 건강 음료인데, 크므스가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나며, 톡 쏘는 탄산감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고 자연적으로 소량의 알코올(보통 1~3% 내외)이 생성되므로 우리네 막걸리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슈바트는 유통 기한이 더 길고 보관이 용이한 편인데, 두 음료 모두 주로 식사 후나 더운 여름철에 갈증 해소와 에너지 보충을 위해 마신다. 특히, 손님을 환대할 때 내놓는 대표적인 음료이다.
겨울을 대비하는 식량 확보 역시 중요했다. 가을이 되면 일부 가축을 도살하여 고기를 저장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를 ‘소금’이라 불렀다. 이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마치,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월동 준비 중 하나인 김장을 담그는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카자흐 음식문화의 핵심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환대’에 있었다. 카자흐인들은 서로 안부를 물을 때조차 “가축들은 건강합니까?”라고 인사했다. 그만큼 가축은 삶의 중심이었고, 음식은 곧 삶 자체를 의미했다.
특히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특별했다. 광활한 초원에서 손님을 만나는 일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님은 신이 보내준 축복으로 여겨졌다. 낯선 여행자라도 어느 집이든 들어가 숙식을 요청할 수 있었고, 집주인은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적어도 차 한 잔, 가능하다면 따뜻한 음식을 내놓는 것이 카자흐인의 도리였다.
이러한 환대 문화는 ‘다스타르한’이라는 전통적 식사 방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다스타르한은 페르시아어로 ‘식탁’ 또는 ‘식탁보’를 뜻하며, 손님에 대한 환대와 가족·공동체의 유대를 상징하는 문화적 공간을 의미한다.
다스타르한은 보통 가벼운 음식에서 무거운 메인 요리 순으로 차려진다.
식탁의 가장 신성한 존재로, 탄디르 화덕에서 구운 둥근 평평한 빵인 ‘난’(카자흐어)/’리뽀쉬까’(러시아어)과 ‘바우르삭’이라는 튀김공갈빵, 말린 치즈인 쿠르트, 견과류와 과일이 차와 함께 먼저 나온다.
메인 고기 요리로는 베슈바르막이 대표적인데 ‘다섯 손가락’이라는 뜻으로, 삶은 말고기나 양고기를 얇은 면과 함께 손으로 먹는 카자흐 대표 요리이다. 특별히 귀한 손님에게는 삶은 양의 머리가 대접되기도 한다.
이때 머리를 나누는 방식에는 깊은 상징이 담겨 있다. 눈은 손님의 평안을 기원하며 귀는 어른의 말을 잘 들으라는 의미로 혀는 말을 잘하고 노래를 잘하라는 의미로 각각 나누어진다.
한편, 다스타르한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엄격한 금기와 규칙이 있다.
입구에서 가장 멀고 안쪽인 상석은 가장 연장자나 귀한 손님을 위한 자리이다.
빵을 거꾸로 뒤집어 놓거나 땅에 떨어뜨리는 것은 매우 큰 무례이고, 반드시 손으로 찢어서 나누어야 한다.
바닥에 깔린 식탁보(다스타르한) 위를 지나가거나 발을 올리는 것은 절대 금지이다.
손님에게 차를 따를 때, 잔을 가득 채우지 않고 절반 정도만 따르는 것이 ‘더 오래 머물러 달라’는 존중의 의미이다.
음식을 집거나 전달할 때는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해야 하고, 식사 전후로 연장자가 짧은 축복 기도를 하며, 이때 손을 얼굴로 쓸어내리는 동작을 함께 하기도 한다.
위였다.
주거문화 – 이동하는 집
카자흐인의 주거문화 역시 유목생활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키이즈 위이’가 있다. 우리가 흔히 유르타라고 하는 이것은 돔 형태의 나무 구조물에 펠트를 덮은 이동식 주택을 일컫는데, 서양권에서는 이런 조립이동식 유목민 천막을 몽골 것까지 포함해서 유르타라고 많이 부른다.
사실 몽골식 게르와 튀르크식 유르타의 외형은 거의 비슷하다. 서양권에선 튀르크가 가까우니까 튀르크어 유르타가 익숙하고 한국에선 몽골이 가까우니까 게르라는 이름이 인지도가 높은 것이다.
양자간 가장 큰 차이점으로 지붕 구조와 중앙 공간의 차이다. 몽골의 게르는 두 개의 기둥(바가나)이 직접 받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또한, 지붕이 비교적 완만하고 낮게 형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바람을 견디는 데 최적화된 형태를 띠고 있다. 몽골 고원의 거친 기후, 특히 강풍이 잦은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유르타는 ‘샤느락’ 이라 불리는 원형의 지붕 고리를 사용하지만, 이를 지탱하는 별도의 기둥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지붕을 이루는 수십 개의 서까래가 방사형으로 벽체와 직접 연결되며, 이 힘의 균형을 통해 구조를 유지한다.
이로 인해 유르타는 보다 높은 돔 형태를 이루며, 내부 공간이 더욱 개방적이고 넓게 느껴진다.
이 차이는 단순한 건축 방식의 차이를 넘어, 각 문화가 지닌 세계관의 차이를 반영한다. 몽골 게르의 토노는 채광과 환기를 위한 실용적 기능이 중심이지만, 카자흐인들의 유르타의 샤니락은 ‘하늘’, ‘우주’, 그리고 ‘가문의 계승’을 의미하는 신성한 상징으로 인식된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의 국기에는 샤니락 문양이 중앙에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내부 공간 구성에서는 게르나 유르타 모두 공통적으로 엄격한 질서가 존재한다. 입구 맞은편은 신성한 공간으로, 가장 손님 연장자를 위한 자리였다. 밖에서 보았을 때 주방 시설이 있는 오른쪽은 안주인의 자리이고 손님은 왼쪽, 아이들은 출입문 쪽에 앉는다.
물건을 보관할 때에도 남자들의 물건은 서쪽에 놓고 여자들의 물건은 동쪽에 놓는다. 북쪽에는 가장의 물건이나 무기, 말을 다루는 마구, 나라에서 받은 상 등 귀중품을 놓는다.
그러나 이러한 유목적 삶은 20세기 들어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소비에트 시기의 집단화 정책과 강제 정착 정책으로 많은 카자흐인들이 유목생활을 떠나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현대 카자흐스탄에서는 아파트 도시형 주택이 일반적인 주거 형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는 여전히 여름에는 유르트에서 생활하고 겨울에는 현대식 주택으로 이동하는 이중적인 생활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철제 프레임의 값싼 유르트가 수입되어 활용되고 있는데, 명절이나 축제 때면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유르트를 쉽게 볼 수 있다.
요컨대, 카자흐인의 음식과 주거문화는 단순한 생활양식이 아니다. 그 안에는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삶, 협력과 환대를 중시하는 가치, 공동체 중심의 질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형태를 바꾸었을 뿐, 지금도 여전히 카자흐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로 남아 있다. (김상욱 고려문화원장/ 한인일보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