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축구 영웅, 안 미하일 추모 국제친선축구대회 개최

(한인일보) = 현재 전세계 축구계를 주름잡는 월드클래스로 대한민국에 손흥민선수가 있다면, 1970년대 소련 축구계의 전설적 선수로 고려인 안 미하일 선수가 있었다.
안 미하일을 기리기 위한 국제 친선 축구대회가 최근,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에서는 카자흐스탄 , 우즈벡, 키르기즈, 한국, 미국 팀이 참가하였다. 이 대회에서 대망의 우승컵은 키르기스스탄 고려인팀이 차지했고, 카자흐스탄 고려인 팀은 준우승을 했다.
안 미하일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 상치르치크 꼴호즈에서 1952년에 태어났다. 당시 유럽 최강이었던 소련 축구는 196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강했고, 소련인들에게 축구는 엄청난 인기종목이었다.
운동 신경이 타고 났던 안 미하일은 그의 형인 드리트리과 함께 콜호즈 어린이 축구팀에서 처음으로 축구화를 신었는데, 유망주들만 받아들이는 티토프 스포츠 전문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그 재능은 이미 러시아까지 소문이 나 있었다.
당시 미드필더를 맡았던 미하일은 자기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도 탁월한 패싱력을 뽐내며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여, 1968년 17살의 나이로 소련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1968년 FC폴리토트델 타슈켄트에 입단하며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소련 축구계에서는 미하일 안과 올레흐 블로힌을 ‘소련 축구를 이끌 천재’라고 평가했다. 이후 미하일은 1976년 U-23 소련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됐고 팀의 주장까지 맡았다.
1976년 디펜딩 챔피언 헝가리를 2-1로 제압하고 소련 축구 역사상 U-23 유럽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미하일은 주장 완장을 차고 전경기를 소화하며 팀의 역사적인 우승을 이끌며 금의환향했다. 그는 1974년에 이어 1978년에도 전 소련방 축구선수 33인에 선정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79년 8월 11일, 리그 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중 다른 비행기와 충돌해 추락하는 대형 참사를 당했다. 미하일을 비롯한 선수 17명 등 승객 178명 전원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였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현재, 그의 묘소는 타슈켄트의 한 시골 마을에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역대 소련 축구영웅, 안 미하일을 동포사회가 추억하고 공유하는 기회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