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우주항공 산업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와 바이테렉 프로젝트
카자흐스탄 남서부의 끝없는 초원을 달리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평원 한가운데 갑자기 도시 하나가 나타난다. 사막과 초원 사이에 갑자기 등장하는 도시와 거대한 철 구조물들을 처음 보는 사람은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쉽게 짐작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곳은 인류 우주 개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다. 세계 최초 인공위성이 발사되었고,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우주로 날아갔으며, 냉전 시대 우주 경쟁의 중심이 되었던 곳, 바로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다. 카자흐스탄 우주항공 산업 이야기를 하려면 결국 이 바이코누르 이야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는 1950년대 소련 시절에 건설되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군사 경쟁과 우주 경쟁을 동시에 벌이고 있었고,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과 우주 로켓 발사를 위한 기지가 필요했다.
소련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카자흐스탄 초원 한가운데에 거대한 군사 기지와 연구 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은 원래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폐쇄 도시였고,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는 군사 도시였다. 과학자와 기술자, 군인과 가족들이 함께 살던 도시였고, 주변에는 로켓 발사 시설과 연구 시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카자흐어로 바이코누르라는 말은 ‘약초가 많은 갈색 땅’이라는 뜻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초원 위에 세계 최대 우주기지가 세워졌다.
당시, 소련의 우주기지 건설안들에 따르면 세계 최초 우주기지는 다게스탄 공화국, 마리 주 또는 심지어 아스트라한 주에 세워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주 바이코누르로 낙점됐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지상무선수신소를 세울 수 있는 광대한 면적은 물론이고 적도와의 근접성, 연중 일조일 수 등에서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살고 있던 유목민들 사이에는 수 세기 전부터 검은 목동에 관한 전설이 내려온다.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옛적 검은 목동이 송아지 가죽으로 거대한 투석기를 만들어 지평선에 적이 나타나면 뜨겁게 달궈진 돌들을 투석기를 이용해 하늘로 쏘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뜨거운 돌들에 놀란 적들은 혼비백산해서 도망갔다. 한편 돌들이 떨어진 곳은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고 짐승들도 죽어버렸고 그을린 흔적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숨어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이곳에서는 이 이야기와 비슷한 광경이 벌어진다. 우주기지의 거대한 ‘투석기’가 하늘로 ‘불타는’ 로켓을 쏘아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우주를 향한 인간의 도정에서 첫걸음은 1955년 1월 12일에 떼어졌다. 이날 카자흐스탄 튜라탐 역에 도착한 열차에서 열차칸 두 량이 분리되었고 이 차량에서 반코트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렸다. 이들은 바이코누르 기지 주 건설대를 맞이하는 데 필요한 사항들을 준비하기 위해 온 제1 실무팀이었다.
튜라탐 역에서 철로는 1km를 더 뻗어 나가다가 초원 한 가운데서 뚝 끊기는데, 이 지선은 결국 완공되지 않았다. 장차 우주기지가 건설될 부지를 찾은 소련의 로켓우주장비 수석설계자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뻥 뚫린 광활한 초원을 가로지르는 철로를 본 순간 철로가 끊어진 바로 그 자리에 우주선 발사대를 세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렇게 해서 바이코누르의 제1발사장인 가가린 발사장이 건설됐다. 그리고 지금도 20세기 초에 부설된 철로를 따라 로켓이 운송되고 있다.
참고로 당초 우주기지의 명칭은 원래 이 역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그러나 우주기지 건설이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공문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또한 기밀 유지를 위해서 실제 우주기지 건설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텅 빈 시설들로 이루어진 가짜 우주기지가 지어졌고, 그 옆에는 학교, 주택 등 모든 시설물을 갖춘 모형도시가 건설됐다.
건설 중인 우주기지의 이름뿐만 아니라, 건설 사실 자체가 비밀에 부쳐졌다. 우주기지를 위한 건축자재는 전량 일반 여객차량에 실려 튜라탐 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밤에만 하역작업에 동원된 노동자들조차 자신의 손을 거쳐간 건축재가 어떤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에 사용될 지 모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그들은 저 너머 초원에 운동경기장을 짓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카자흐스탄 초원에 왜 경기장을 세우는 지 묻는 일은 금기사항이었다.
건설에 관한 전설이 하나 더 있다. 가가린 발사장을 짓기 위해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을 때, 깊이 35m 지점에서 고대의 화로터가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은 화로터가 기원전 1만-3만 5천 년 전 것이라고 추정했다. 수석설계자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이 발굴을 행운의 징표로 여겼다. 현재까지도 코롤료프의 “우리는 생(生)의 경계에서 건설하고 있다. 만약 우리 이전에 이곳에 생명이 살았다면, 우리에게도 이곳은 행운의 장소 될 것”이라는 말이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코롤료프는 고대의 호로터에서 발견한 석탄 조각을 기념으로 주워 성냥갑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이 성공하자 서방 지도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새로운 우주기지에 전례없는 관심이 쏟아졌다. 1966년 6월 프랑스 샤를르 드골 장군이 직접 소련을 방문했을 때 소련과 프랑스 간에 평화적인 목적의 우주공간 개발 및 연구 협력에 관한 협정이 체결됐다. 또한 이때 프랑스 대표단에게 바이코누르 기지 견학의 기회를 제공하기로 결졍됐다.
소련의 우주기지로 해외 귀빈을 맞는 준비과정은 ‘팔마(пальма – 야자나무)’라는 암호명으로 진행됐다. 드골 장군을 위시한 프랑스 사절단을 맞는 ‘야자나무 작전 1호’는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친히 감독했다.
1966년 6월 25일 바이코누르 기지에서 45km 거리에 있는 소도시 레닌스크가 하루 동안만 즈베즈도그라드(Звездоград, 별의 도시)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도시는 장군들의 부츠만큼 광이 나도록 깨끗하게 단장됐다. VIP 손님들의 방문을 앞두고 아스팔트를 새로 포장하는 것부터 울타리를 새로 칠하는 것까지 말 그대로 도시의 구석구석이 대대적인 정비 작업에 들어갔다.
프랑스 귀빈들을 위해 ‘코스모스(Космос)’ 위성을 탑재한 로켓의 시범발사가 준비됐다. 드골 장군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드골 장군의 아들은 ‘보스토크(Восток)’ 로켓의 비행을 쌍안경으로 보며 연신 “대단해! 대단해!”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고 한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바이코누르 기지의 역사를 통틀어 네 번의 ‘야자나무 작전’이 실시됐다. 외국 손님 맞이를 위해 바이코누르 기지를 마지막으로 단장한 것은 1970년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의 방문 때이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야자나무 작전’이 더 있었을 수도 있다. 소련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 중 하나인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모두 공개됐을 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이곳에서 소련은 역사적인 우주 개발을 시작했다. 1957년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발사되었고,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을 했다. 이후 최초 여성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역시 이곳에서 우주로 날아갔다. 소련의 소유즈 우주선과 프로톤 로켓 발사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소련에게 바이코누르는 과학기술과 군사력, 국가 체제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미국과의 우주 경쟁에서 앞서 있다는 사실은 소련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을 주었다. 냉전 시대 우주 경쟁의 중심에는 항상 바이코누르가 있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는 카자흐스탄 영토 안에 있었지만, 시설과 기술, 운영 인력은 대부분 러시아가 가지고 있었다. 즉 우주기지는 카자흐스탄 땅에 있지만 러시아가 사용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소련 붕괴 직후 카자흐스탄 내부에서는 바이코누르 기지를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로켓 발사로 인한 환경 문제와 사고 문제 때문이었다. 실제로 로켓 잔해가 떨어지거나 연료가 유출되는 환경 문제가 여러 차례 발생했고,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바이코누르를 폐쇄하기에는 경제적·외교적 문제가 너무 컸다.
결국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는 타협을 하게 된다. 러시아가 카자흐스탄에 임대료를 내고 우주기지를 계속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현재 러시아는 매년 약 1억 달러 이상의 임대료를 카자흐스탄에 지불하고 있으며, 임대 계약은 2050년까지로 되어 있다.
이 구조는 매우 독특한 구조다. 러시아는 자기 나라 우주기지를 다른 나라 땅에서 운영하고 있고, 카자흐스탄은 자기 나라 땅에 있는 우주기지를 다른 나라에 빌려주고 있다. 바이코누르는 러시아에게는 우주 개발의 핵심 기지이고, 카자흐스탄에게는 중요한 외교 카드이자 경제 자산이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협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주기지를 통해 경제적 이익도 얻고 외교적 영향력도 확보할 수 있다. 바이코누르는 단순한 과학 시설이 아니라 정치와 외교, 경제가 모두 연결된 전략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장소다. 2008년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올라갔는데, 그 우주선이 발사된 곳이 바로 바이코누르였다. 당시 한국에서는 우주인이 우주로 출발하는 장면이 생중계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한국 최초 우주인이 카자흐스탄 초원에서 우주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한국 우주 개발 역사에서도 바이코누르는 중요한 장소다. 이후 한국의 인공위성도 이곳에서 발사된 적이 있으며, 바이코누르는 러시아만의 우주기지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위성과 우주선이 발사되는 국제 우주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지구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심해지고 있지만 우주에서는 협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와 미국, 유럽, 일본 등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우주정거장 프로젝트는 냉전 이후 국제 협력의 상징적인 프로젝트다.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의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도 우주 분야 협력은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다.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인을 귀환시키기 위한 우주선도 바이코누르에서 발사된 적이 있다. 지구에서는 갈등과 경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우주에서는 여전히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지구에서는 신냉전이 시작되었지만 우주에서는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바이코누르는 그 상징적인 장소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단순히 러시아에 우주기지를 빌려주는 나라로 남지 않으려고 한다. 카자흐스탄도 자체 우주 산업을 발전시키고 우주 발사 산업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다. 그 프로젝트가 바로 바이테렉 프로젝트다. 바이테렉 프로젝트는 노후화된 바이코누르 기지를 환경 친화적인 새로운 로켓 발사 기지로 바꾸는 프로젝트다. 러시아의 차세대 로켓인 앙가라 로켓 발사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프로젝트는 20년 이상 논의되어 온 프로젝트지만 러시아와의 협상 문제, 기술 이전 문제, 비용 문제 등으로 여러 차례 지연되었다.
러시아는 극동 지역에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새로 건설하면서 바이코누르 의존도를 줄이려고 했고, 카자흐스탄은 바이코누르를 국제 우주기지로 발전시키려 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지연되었다. 그러나 최근 카자흐스탄 정부가 바이테렉 프로젝트 관련 법령을 승인하면서 프로젝트가 다시 추진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협력하면서도 자체 우주 산업 기반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앞으로 우주 산업은 단순한 과학 연구 분야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통신 위성, 인터넷 위성, 기상 위성, 군사 위성, 우주 관광, 위성 발사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이 우주 산업과 연결되어 있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와 기업들이 우주 산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민간 기업이 로켓을 발사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카자흐스탄은 바이코누르와 바이테렉을 통해 이러한 우주 산업에도 참여하려 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초원 한가운데 있는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는 과거에는 냉전과 우주 경쟁의 상징이었고, 지금은 국제 협력과 우주 산업의 상징이며, 앞으로는 카자흐스탄 우주 산업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초원 위에 세워진 거대한 발사대에서 과거에는 소련의 로켓이 우주로 날아갔고, 지금은 국제 우주선이 날아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카자흐스탄의 로켓이 우주로 날아갈지도 모른다. 카자흐스탄 우주 산업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이코누르와 바이테렉 프로젝트는 그 긴 이야기의 현재 진행형이다.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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