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고도, 투르키스탄과 야사위 영묘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본지 주필

카자흐스탄이 지향하는 새로운 국가 정체성과 미래 전략은 ‘유라시아의 심장’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관광과 문화, 역사적 상징성이 함께하는 대표적인 현장이 바로 투르키스탄이다.
최근 투르키스탄에서는 튀르크어권 국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대형 문화·관광 프로젝트가 공개되었다.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복합 관광단지인 ‘케루엔 사라이’의 개장식이 그것이다.
화려한 조명 아래 운하를 따라 펼쳐진 거리에 재현된 실크로드 시대의 상인과 장인들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개장식에는 정부 고위 인사가 참석하여 이 프로젝트가 튀르크어권 국가들의 협력 속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성과임을 강조하였다. ‘카자흐스탄의 베네치아’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 복합단지는 투르키스탄의 대표적인 성지이자 순례지인 호자 아흐메드 야사위 영묘 맞은편, 아즈레트 술탄 문화 보호구역 내 약 20헥타르의 부지 위에 조성되었다.
2019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역사와 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이곳에는 낙타에 짐을 싣고 동서양을 오가던 대상들의 삶을 재현한 거리와 기마 유목민 문화를 보여 주는 원형극장, 박물관, 쇼핑몰, 호텔, 레스토랑, 영화관, 스파, 피트니스센터 등 다양한 시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특히 이 모든 공간이 수로로 연결되어 있어 보트를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은 이 단지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다. 건물 사이를 따라 흐르는 운하 위를 보트가 유유히 지나가는 풍경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 만큼 이질적이면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이러한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투르키스탄은 본래 건조한 기후와 강수량 부족으로 인해 식생이 제한적이며 여름철에는 기온이 40도를 넘나드는 혹서가 이어지는 곳이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수로를 중심으로 한 관광지구를 형성했다는 사실은 국가적 의지를 대대적으로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투르키스탄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도시이다. 2018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심켄트가 분리되면서 투르키스탄 주의 주도가 된 이후 국가 차원의 집중적인 투자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카자흐 대초원과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는 이 도시는 실크로드의 주요 카라반 루트가 교차하던 전략적 거점이었다.
유목 문화와 정착 농경 문화가 공존하는 이곳은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문명과 권력이 교차했던 땅이다. 도시의 이름은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의 지도자인 호자 아흐메드 야사위가 이곳에 묻히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티무르가 그의 영묘를 건설하면서 성지로 자리잡았다. 과거에는 ‘샤프가르’와 ‘야시’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12세기부터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해 16세기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이후 호라즘 샤, 티무르 제국, 샤이바니 왕조 등 다양한 중앙아시아 정권의 행정 중심지로 기능하며 역사적 위상을 쌓아 왔다.
오늘날 투르키스탄은 역사 도시임과 동시에 튀르크 문화권의 상징적 중심지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스탄, 튀르키예,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여러 국가들이 참여하는 협력체 정상회담이 이곳에서 계획되었는데, 비록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지만 이 도시가 회의 장소로 선정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상징적이다. 이 회의에서 투르키스탄을 튀르크 문화권의 ‘영적 수도’로 인정하는 선언이 채택된 것은 카자흐스탄의 외교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투르키스탄에 특별경제구역을 조성하고 관광과 문화, 산업이 결합된 새로운 성장 모델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대규모 투자와 함께 5성급 호텔, 국제
공항, 각종 문화시설이 들어서며 도시의 모습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연간 수천억 텡게 규모의 투자 중 상당 부분이 민간 자본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세제 혜택과 관세 면제 등 다양한 인센티브는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핵심 장치이다.
한편 이 모든 변화의 구심점은 야사위 영묘이다. 이 영묘는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화의 정수이자 정신적 상징으로,내부에는 무덤뿐만 아니라 회의실, 도서관, 식당, 모스크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기하학적 문양과 푸른색 장식이 남아 있는 모스크 내부는 당시 건축 기술과 미적 감각을 잘 보여 준다. 벽면에는 고대 아라비아 문자 양식인 쿠파체 문자가 새겨져 있고, 기둥에는 코란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영묘의 중심 공간인 카잔디크 홀은 지름 18.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돔으로 덮여 있는데 홀의 중앙에는 14세기 말 제작된 청동 가마솥 ‘카잔’이 놓여 있다.
이 장소는 종교적 의식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행위를 위하여 사용되었다.
영묘는 14세기 후반 티무르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했으나 그의 사망으로 인해 완공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완성 상태는 오히려 당시 건축 기술과 공법을 그대로 보여 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었다. 이후 수차
례의 보수와 복원이 이루어진 끝에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에는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핵심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티무르가 이 영묘를 건설한 배경에는 종교적 목적뿐 아니라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 수피즘을 통해 유목민 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고자 했던 그는 영묘를 통해 자신의 통치 기반을 강화하려 했다. 이러한 전략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고 이곳은 이후 수 세기 동안 중앙아시아 정치와 종교의 중심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투르키스탄의 변화는 평범한 도시 개발의 차원을 넘어선다. 과거 실크로드의 기억과 유목 문화, 이슬람 전통, 현대 국가의 관광 전략이 결합된 결과로서, 건조한 초원 위에 운하가 흐르고 수백 년 된 영묘 앞에 현대적 관광단지가 들어서는 이 장면은 카자흐스탄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있음을 눈앞에 생생히 펼쳐 보인다.
투르키스탄은 더 이상 과거의 유적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이며 카자흐스탄이 유라시아의 중심 국가로 도약하려는 의지를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다. 그리고 야사위 영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도시의 한가운데 서서 이 땅의 시간과 기억을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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