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보험 적용 -> 금감원 등
여행자 보험 상품도 금감원을 통해 실효성 있게 개선한다. 여행자 보험의 ‘현지 14일 입원조건’ 등 불합리한 상품약관을 수정하고 치료‧이송비 보장한도를 상향해 국민들이 실질적인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외교부‧문체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여행자보험 가입을 안내‧홍보해 가입률 제고할 계획이다.

여행자 보험 상품도 금감원을 통해 실효성 있게 개선한다. 여행자 보험의 ‘현지 14일 입원조건’ 등 불합리한 상품약관을 수정하고 치료‧이송비 보장한도를 상향해 국민들이 실질적인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외교부‧문체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여행자보험 가입을 안내‧홍보해 가입률 제고할 계획이다.
소방청은 공항, 병원 간 신속한 이송을 지원한다. 구체적으로 중국‧동남아 국가와의 상호협약을 통해 현지 공공 구급차를 우리국민 환자 이송(현지병원->공항)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인천공항 인근 소방서에 대형 특수구급차 배치를 추진해 필요시 응급의학 전문의 투입을 통해 중증환자의 병원 이송이 지원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국무조정실은 “오늘 확정된 ‘해외 우리국민 환자 이송‧보호체계 개선방안’이 신속히 이행되도록 적극 독려하고, 부처별 세부 추진상황을 반기별로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자흐스탄은 올해로 독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유라시아의 심장, 카자흐스탄의 탄생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7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카자흐스탄의 주요도시의 변화발전상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8편 부터는 카자흐스탄의 현대사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느끼면서 새로운 국가건설의 이상을 가졌던19세기와 20세기 초의 카자흐의 지식인들의 고민과 노력을 따라가보자 한다. 또한 소비에트 해체로 다시 한번 찾아온 새로운 국가건설의 과정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1917년 2월 혁명과 중앙아시아 지난호(11회)에서 1905년러시아 혁명과 중앙아시아 무슬림 민족운동에 대해 알아보았다. 20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일어난 1904년러일 전쟁과 1905년 혁명을 계기로 찾아온 언론과 출판의 자유로 인해 제정 러시아내 무슬림의 정치 사회 운동이 크게 활성화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번호에서는 세계사 뒤흔든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서막인 1917년2월 혁명과 중앙아시아에 대해 살펴보겠다. 짜르체제를 붕괴를 가져온 2월 혁명이 일어나자 다민족국가인 러시아는 민주화 물결을 타고 정치 사회 운동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때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러시아 영내의 무슬림들의 정치, 사회운동들도 활력을 되찾았는데 바쿠, 카잔, 타슈켄트, 오렌부르크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신문과 잡지가 창간되고 정치조직이 생겨났다. 그해 5월, 350년에 걸친 짜르의 압제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충만한 가운데 러시아 내지, 아제르바이잔, 볼가(우랄지방), 카자흐 초원을 비롯한 각지에서 온 대표들이 모여 전체 러시아 무슬림대회를 개최하고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자유롭게 토의했다. 이때 격론이 이루어진 것은 장래 러시아 국가의 정치 체제에 관한 문제였는데, 러시아에서 분리, 독립하자는 주장을 편 사람이 없었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 점은 그 이후 구소련의 해체시기에 이를 주도했던 러시아 대통령 옐친의 노선에 대해 오히려 중앙아시아의 여러 공화국들이 초기엔 소비에트 연방의 유지를 주장했던 것과도 일맥 상통한다. 즉, 유라시아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1민족 1국가'여야 한다는 의식이 유라시아 대륙 동서 의 끝단에 위치한 지역민에 비해서는 비교적 강하지 않다는 반증일 수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중앙유라시아 지역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북방 기마유목집단에 의해 통치되어 왔고 다민족이 하나의 통치권 아래 사는 것에 익숙해 져 있었고, 이러한 역사로 인한 정치문화는 현대를 사는 이들의 의식속에 까지 전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어쟀던,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은 중앙집권을 주장하는 그룹과 연방제를 주장하는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중앙집권파는 하나의 민주적인 러시아공화국을 상정하고 그 안에서 국민들은 종교와 민족의 구별없이 평등한 권리를 부여 받고 교육과 종교 언어를 비롯한 민족문화분야에서 자치를 향유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영토적 자치가 아니라 이른바 문화적 자치를 지향하고 러시아 영내 투르크계 무슬림 집단의 일체성을 강조했다 타타르인들이 주로 이러한 주장을 했는데 그들은 러시아영내에 널리 퍼져 살면서 자기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민족 영역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와 함께 그들은 러시아의 민주적인 정치제도와 공통의 법률이 당연히 투르키스탄의 보수적인 무슬림 사회를 변화시키는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연방파는 지역적 자치에 기초한 완만한 연방제를 상정하고 중앙정부의 역할을 최대한 제한하려 했다 아직까지 자기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민족 영역을 갖고 있었던 아제르바이잔 과 투르키스탄, 카자흐 대표들이 주로 이러한 주장을 폈다 무슬림 대표들은 민족주의와 함께 사회 변혁에 대한 의지도 명확히 보여주었다. 즉, 토지개혁과 농민에 대한 토지분배 남녀의 정치적 평등, 일부다처제와 16세 이하 소녀의 혼인 금지, 8시간 노동제에 대한 결의는 동시대 이슬람 세계에서 획기적 사건이었고 여성의 참정권 문제는 미국보다 앞서는 개혁이었다. 전체 러시아 무슬림 대회를 전후하여 중앙아시아 각지에 무슬림의 정치 조직이 생겨났다. 이들 조직은 무슬림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는 러시아 이주자들의 정치세력이 그들의 활동을 가로막는 것을 극복하면서 또 한편으론 무슬림 보수파 들과 방해도 이겨내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8월 투르키스탄의 자치를 목표로 하는 첫번째 무슬림 정당인 '투르크연방주의자당'이 결성되어 자치운동을 조직화하는데 공헌했다 카자흐 초원에서도 '카자크'신문 주변에 모여 있던 지식인들이 주도하여 정당을 만들었다 그들은 그해 4월 부터 각지에서 카자흐인 정치 집회를 열고 7월에 개최한 카자흐인 대회의 의결에 따라 자치를 목표로 하는 알라슈당을 결성하였다. 이 정당은 1917년 겨울에 실시한 러시아제헌의회 선거에서 카자흐인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을 뿐 아니라 현지 러시아인들 로부터도 적지 않은 지지를 얻어 그 존재를 내외에 과시했다.. 2월 혁명은 제정러시아의 보호국인 부하라와 히바에도 동요를몰고왔다. 아미르와 칸의 전제 정치가 이제 제정 러시아라는 강력한 후원자를 잃어버린 결과였다. 이 시기 청년 히바인은 의회 개설을 요구했고, 청년 부하라인은 러시아 임시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아미르에게도 정치적 개혁을 요구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이러한 사회 변혁의 물결은 조국이 일제의 압제에 있음으로 해서 누구보다도 민족 의식이 강했던 재러동포(고려인)들을 자극하여 이들의 정치, 사회 운동이 크게 활성화되고 항일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는데 이바지 했다. 또한 일제식민지 조선에도 전해져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 나갔다. 3.1독립만세 항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일제의 탄압에 의해 무자비하게 탄압된 후 연해주에서 가장 먼저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과 연해주가 해외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 역할을 하게 된 이유들 중의 하나도 이러한 연유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열망으로 개최된 ‘2021 통일 골든벨’ 대회가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재외 청소년들과 고려인 동포학생들이 함께 참가한 가운데 5일(토),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 19)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된 이날 대회는 최대 도시 알마티와 수도 누르술탄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전역에서 참가한 76명의 신청자 가운데 45명이 결선 대회를 펼쳐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정책과 역사, 시사 상식 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겨루었다. 김상욱 민주평통 카자흐스탄지회장은 “2018년 남북한 두 정상이 만나서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고,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면서 “2032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꼭 유치하여 골든벨 참가 청소년 여러분들과 함께 서울과 평양을 육로로 오가면서 올림픽 경기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는 문제은행 방식으로 치루어졌는데 사전에 배포된 문제집에서 46문제를 선별하여 출제되었고, 특별히 구홍석 대사와 김흥수 주 알마티총영사, 한인회장 등은 영상으로 문제를 내면서 참가 청소년들을 격려하였다. 이번 대회 최우수상에 해당되는 평화상은 윤여준(TSIS, 9년)군이 차지하여 상장과 장학금을 받았고, 강대한, 최연우, 최연진 학생이 우수상인 통일상을 각각 수상하여 역시 상장과 장학금을 받았다. 한편, 이날 행사를 위해 6명의 심사위원들이 모니터를 통해 온라인 통일 골든벨의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면서 공정하게 관리하였다. 이번 행사는 민주평통 카자흐스탄 지회와 한인회가 주최하고 아시아나 항공, LG전자, 신한카자흐스탄 은행, 롯데라핫, 알마티한글학교 등이 후원하였다. 참가자들은 롯데 라핫이 제공한 선물세트를 받았고 추첨을 통해 서울-알마티 왕공 항공권, 진공청소기, 무선 이어폰 등을 경품으로 받았다.
(알마티=연합뉴스) 김상욱 통신원 =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이 자체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카즈벡'의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현지 언론이 7일 보도했다. 텡그리뉴스는 이날 카즈백 백신 개발자인 생물안전연구원 감염병연구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부작용이 없고 예방효과가 우수하다고 전했다. 레스펙 쿠툼베토프 감염병연구소장은 자국산 백신 '카즈백'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일부 과학자와 의료진의 최근 발언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이런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지난 60년간의 백신 개발 경험을 토대로 동물실험과 치밀한 임상연구를 거쳐 해당 백신을 개발했다며 스스로 접종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쿠툼베토프 소장은 그러면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의 원인 인자, 특히 'SARS-CoV-2'에 대한 특정 항체 확인을 위한 연구를 통해 효과가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이날 기준으로 989명으로 집계됐다. 카자흐스탄은 전 국민의 12%인 224만7천776명이 백신 1차 접종을, 118만7천464명이 2차 접종까지 각각 마친 상태다. 카자흐스탄 보건당국은 영국발 변이바이러스로 인해 한때 악화됐던 역학 상황이 5월말부터 안정 추세로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1천여명에 달하는 카자흐스탄 교민들 가운데 과반수가 러시아산 백신 스푸트니크나 카즈백 등으로 백신접종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모집 대상 [초청교육] - 대학수학준비과정Ⅱ: 거주국에서 12년 이상의 정규교육을 (또는 이와 동등한 학력을 인정) 이수하고 공관장의 추천을 받은 재외동포 ●교육 과정 : 대학수학준비과정Ⅱ, 5개월 ●교육 내용 : 한국어, 한국문화, 한국사, 세계시민교육, 한국 대학 진학 지원 프로그램 등 ●교육 방법 : 초청교육 ●교육경비 : 3,475,000원(수업료 1,150,000원/ 숙박비 750,000원/ 식비 1,575,000원) ●모집 기간 : 2021. 6. 1. ~ 7. 10. ●지원 방법 : 지원서 및 관련서류 구비하여 거주국 대한민국 재외공관 및 한국교육원에 접수 ●제출서류: 지원서, 수학계획서, 최종학교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재외동포임을 증명하는 서류, 여권복사본,
카자흐스탄의 동포 화가들이 참가한 한인작가 초대전이 2일(수) 개막되었다. 이번 전시회는 알마티 갤러리가 카자흐스탄 독립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하는 고려인 동포 화가를 초대한 초대전이다. 이번 전시는 문 빅토르, 조 레나, 김부식 화가 등 8명 화가들이 카자흐스탄의 자연과 생활상을 담은 유화와 한국의 자연을 담은 수묵화 등 총 45점이 전시되었다. 고려인 동포 합창단인 '에델바이스' 합창단의 노래를 시작으로 한복을 차려입은 고려인 노인 무용단의 소고춤 공연 등 식전 문화공연으로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개막식에는 전시 참가 작가들과 김흥수 주알마티총영사, 알마티시청 문화국 관계자를 비롯해 고려인동포 문화단체장 등 100여명이 참석하였다. 김흥수 총영사는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 상황속에서도 뜻깊은 행사가 열려서 무척 기쁘다"면서 "독립 30주년을 맞아 양국간의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콘스탄틴 고려인협회 부회장은 이번 전시에 참가한 문빅토르 화가에게 고려인협회장의 기념메달을 수여했다. 오는 16일까지 도스틱 거리 44번지에 위치한 알마티갤러리에서 계속된다.
카자흐스탄은 올해로 독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유라시아의 심장, 카자흐스탄의 탄생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7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카자흐스탄의 주요도시의 변화발전상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8편 부터는 카자흐스탄의 현대사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느끼면서 새로운 국가건설의 이상을 가졌던19세기와 20세기 초의 카자흐의 지식인들의 고민과 노력을 따라가보자 한다. 또한 소비에트 해체로 다시 한번 찾아온 새로운 국가건설의 과정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러시아 혁명과 중앙아시아 무슬림 민족운동 지난호(10회)에서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진출과 타타르인들에 의해 이 지역에 이슬람이 확산되었고 이 과정에서 '아바이 쿠난바예프'와 같은 카자흐 민족 엘리트들이 등장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번호에서는 러시아 혁명과 중앙아시아 무슬림 민족운동에 대해 알아보겠다. 제정 러시아를 크게 동요시킨1904년 러-일 전쟁과1년 뒤 일어난 1905년 러시아 혁명은 제정 러시아 영내의 무슬림 민족운동을 크게 고양시켰다. 카자흐 초원을 비롯하여 중앙아시아 무슬림의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찾아온 이 사건을 계기로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주어졌고 이에 따라 무슬림의 정치, 사회 운동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1905년 이후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오렌부르크를 비롯하여, 카잔, 바쿠, 타슈켄트 등 무슬림들의 경제, 문화 중심 도시에서 무슬림 신문과 잡지가 창간되었고 러시아 영내는 물론이고 신장까지 배포되어 무슬림의 정치적 각성에 크게 공헌했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주로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정치동향에 밝은 타타르 지식인들이었고 이들은 러시아 무슬림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제1회 대회(1905년8월)때에는 러시아 영내에 거주하는 투르크 민족 대표들이 참여하는 거대한 행사로 치러졌다. 세번의 무슬림 대회를 통해 카자흐 초원, 투르키스탄 카프카스의 무슬림을 상정한 영토적 자치를 구상하거나 러시아 내지의 소수민족인 타타르인과 바슈키르인을 상정한 문화적 자치를 구상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사마르칸트의 지식인 베흐부디가 발행한 잡지 '오이나'의 창간호 그러나 무슬림 연맹은 역사와 문화적 배경과 생활양식이 다른 러시아 영내의 모든 무슬림을 통합시키지 못했다. 실제로 이슬람 문명보다 유럽(러시아)문명을 수용하려 한 카자흐 민족주의자들은 무슬림 연맹에 가담하지 않은 채 독자적 민족운동을 펼쳐나갔다 즉, 카자흐 지식인과 부족 장로들은 1905년카자흐초원에대한 식민의 제한과 사법행정부문에서 카자흐어 사용을 허가할 것을 청원하고 제2두마에 선출된 카자흐의원들은 카자흐 유목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식민 정책의 중단과 빼앗긴 토지의 반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는 1906년 부터1912년 사이에 제국 내 농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약 45만명에 달하는 러시아인들을 악몰린스크, 투르가이, 세미레치에 등지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대대로 카자흐인들이 경작하던 농경지를 이들 이주민에게 분배했다. ) 러시아혁명의 길을 연 중앙아시아의 반란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은 무슬림 민족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중앙아시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차 대전에 참전한 제정 러시아는 이 지역 무슬림들이 병역의무 대신 전시세를 내게 하고 이들로 부터 기타 식료품과 가축을 징발하였다. 거기에다 투르키스탄 총독부와 말단 행정기관의 부패한 관리들로 인해 민중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런 상황속에서1916년 니콜라이 2세는 전시의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중앙아시아 이민족 즉, 투르키스탄에서 성인남자25만영과 카자흐 초원의 여러 주에서 14만명을 후방의 노동력으로 동원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충분한 호구 조사나 사전 준비 없이 갑자기 발표된 칙령은 민중의 불만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가 져왔고 마침 면화 수확기와 라마단을 맞이하고 있던 무슬림민중은 유언비어와 억측이 동반된 강제 동원령 소식을 접하고 대규모항쟁을 전개했다. 사마르칸트, 세미레치에, 투르가이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는 유혈 사태를 동반한민중봉기로 발전했고 때로는 칸을 선출하여 자립적인 정권을 수립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이에 대해 러시아당국은 계엄령을 발포함과 동시에 강력한 부대를 파견하여 반란 진압과 처벌을 맡도록 했다. <1916년 반란으로 중국령 쿨자로 피난한 카자흐인과 키르기스인들> 이 과정에서 세미레치에 주의 카자흐 유목민들은 대거 중국령 동투르키스탄으로 피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일설에 의하면, 이때 세미레치에 주를 떠난 난민이 10만호에 달했다고 한다. 조직력도 없고 무기도 부족한 반란은1916년말까지 차례로 격파되었다. 그러나 이 반란으로 러시아 정부가 동원할 수 있었던 이민족은 예상 인원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나아가 이러한 식민지동요은 전시 제정 러시아의 정치,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켰다. 이런 점에서 중앙아시아의 반란은 이듬해 일어난 러시아 혁명의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반란은 무슬림이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이듬해 러시아혁명이 발발하고 자유가 선포됨에 따라 많은 카자흐인과 키르기스인들이 해방의 때가 온 것으로 여기고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을 맞이한 것은 무장한 러시아 주민들의 소총과 활이었다. 중앙아시아는 이렇게 하여1916년 반란이 초래한 민족사이의 심각한 불신과 대립을 간직한 채 러시아 혁명과 내전에 휘말리게 된다 이는 또 중앙아시아 혁명이 식민지 구조의 변혁과 민족관계의 재편성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떠맡고 있었음을 위미한다
카자흐스탄이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상표/서비스 및 원산지에 관한 협정’ 가입에 관한 법안 채택을 논의중에 있다. 카자흐스탄이 해당 협정 가입국으로 합류할 경우 지적재산권 소유자는 10년간 EAEU 가입국인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지적재산권 등록 절차가 간소화되고 지적재산 보호권이 EAEU 국가에서 단일하게 적용되어 지적재산 소유자의 비용 절감과 투자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카자흐스탄은 지난 1월 2일에 카자흐스탄 ‘양허법’ 및 ‘민관합작투자사업법’(이하 “PPP법”)이 개정하고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정된 양허법 및 PPP법에 따라 양허계약의 경우 사업 대상의 투자금액 10%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민간파트너는 민관합작투자사업(PPP) 대상의 투자금 20%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향후 PPP 계약을 수정하거나 해지하기 위한 추가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관의 승인이 필요하며 공공파트너의 책임 분배와 관련된 내용을 변경하려면 국가예산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개정된 양허법에 따라 카자흐스탄 또는 카자흐스탄 정부를 대리하여 1개 이상의 정부 기관 또는 카자흐스탄 지방자치단체가 PPP의 공공파트너가 될 수 있다.
2021년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카자흐스탄 민사소송법 개정안에 따라 1심 투자분쟁 사건의 관할권이 기존의 누르술탄市 법원에서 특별경제법원으로 이전된다. 이번 개정에 따라 항소심은 누르술탄市 법원에서,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심리한다. 현행 카자흐스탄 기업법은 ‘투자분쟁’을 기업의 투자 활동과 관련하여 투자자와 카자흐스탄 정부기관 간에 계약상 의무로 인하여 발생하는 분쟁으로 정의하고 있다. 투자 계약의 체결/조기 해지와 관련된 분쟁, 투자 계약에 따라 발생하는 조세, 관세, 환경 및 기타 투자자의 의무 또는 계약조건 준수 여부와 관련한 분쟁 등이 투자분쟁에 해당한다. 아울러 2021년 7월 1일부터 투자분쟁 관련 행정기관의 작위 및 부작위에 대한 불복절차는 기존의 일반법원(민사소송법)이 아닌 특별행정법원(행정소송법)에서 심리하게 된다. 이번 법개정으로 카자흐스탄 사법부는 투자자의 권리 보호와 공정한 재판을 위해 투자분쟁 사건에 대하여 3심제도를 적용하게 되었다. 법무법인(유) 율촌의 이화준 외국변호사는 현재 영국, 독일, 미국인 법률전문가로 구성된 카자흐스탄 대법원 산하 국제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러한 투자분쟁 해결 제도 도입에 관하여 카자흐스탄 사법부와 정부측에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법무법인 율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