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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총회 후 한 카자흐스탄 협력사업 추진 업무협약 알라타우시티 프로젝트와 기타 사업에 협력키로 ▲ 1일 오후 박성태 이사장과 김율리아대표는 대한민국과 카자흐스탄간 효과적인 협력사업 추진을 위해 상호 협력해 나가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단법인 히든기업경영전략연구소(이사장 박성태, 이하 히든기업연구소)는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제너두 회의실에서 카자흐스탄 카스피안그룹의 한국지사인 ㈜카스피안그룹코리아(대표 김율리아)(이하 CGK)와 대한민국과 카자흐스탄간 효과적인 협력사업 추진을 위하여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사)히든기업연구소는 카자흐스탄에서 추진 중인 알라타우시티 프로젝트와 농업 분야, 대학교류 협력사업 등 기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날 양 기관이 맺은 업무협약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알라타우시티 프로젝트 참여 및 관련 사업 진행을 위한 협력 △상호 이해와 협력 증진을 위한 상호 보안에 저촉되지 않는 일반적인 정보의 교류 △ 기타 양 국간 프로젝트의 협력할 수 있는 분야 등에 대해 협력하기로 했다.    박성태 이사장은 이날 협약식에서 “지난 11월24일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공식 설립인가를 받은 우리 연구소는 좋은 기술, 제품을 보유한 중소, 벤처기업, 스타트업을 지원해 국내외 사업참여를 적극 지원한다는 데 설립목적이 있다”며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경쟁력 있는 회원사 중소기업이 한 카자흐스탄 협력사업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CGK 김율리아 대표는 “알라타우시티(G4City) 프로젝트는 카자흐스탄이 실크로드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여의도의 413배에 달하는 88,000ha 면적에 4개 테마의 초대형 신도시를 건설하는 중앙아시아 최대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로, 최첨단 건설기술과 최신 IoT기술이 총 동원될 예정이며 핵심 요소기술과 제품을 보유한 한국의 스마트시티 관련기업 300여곳을 발굴해 알리타우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적극 지원하겠다”며 “특히 히든기업연구소 회원기업들의 참여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히든기업연구소는 이날 2024년 정기총회를 열고 연구소 목적사업 외에 수익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개정과 2023년도 사업결산, 2024년 사업 예산안 등을 확정했다. 박 이사장은 “연구소 설립 2달여 만에 정관개정을 하는 것은 연구소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목적사업 외에 수익사업을 수행하기 위함과 연구소를 법정 기부금단체로 등록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며 “수익사업 수행으로 인한 모든 수익은 연구소 운영 및 연구소 회원기업들의 경영지원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특히 히든기업연구소가 추진하는 한 카자흐스탄 협력사업, 한 베트남 산업단지 협력사업의 경우 매우 의미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국가 대 국가 사업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며 “회원 기업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한편 히든기업연구소는 이날 최성해 전 동양대총장과 이상무 해외농업자원개발협회 회장(전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장)을 연구소 고문으로 위촉했다.

오스템임플란트(대표이사 엄태관)는 카자흐스탄독립유공자후손회(이하 '유공자 후손회')에 치아 건강관리 물품을 후원했다고 6일 밝혔다.    지난 2일, 오스템임플란트는 유공자 후손회 박 타티아나(Park Tatyana) 회장을 자사 카자흐스탄법인에 초청하여 간담회와 뷰센 치약, 칫솔 등 물품 기증식을 진행했다. 이날 카자흐스탄법인을 방문한 엄태관 대표이사는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며 "항일 독립운동가 분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유공자 후손 분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지난 해 10월, 사단법인 '참좋은나눔재단'과 함께 유공자 후손의 치과 임플란트 치료를 위한 의료 제품을 제공했으며 후속 치료도 지속 지원한다. 박 타티아나 회장은 "선조들이 강제 이주되어 한이 서린 땅에서, 이제 카자흐스탄은 오스템임플란트를 비롯해 한국 기업들이 각 분야별 '1위'를 차지하는 무대"라며 "선조들의 공로를 잊지 않고 후손들을 찾아주신 오스템임플란트에 감사하다. 임플란트 치료는 치아가 좋지 않아 음식 섭취가 힘들었던 연로한 유공자 후손 분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유공자 후손회 박 타티아나 회장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지원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증손이다. 1937년 소련지도부는 연해주에 망명한 독립운동가 등 18만명의 고려인들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강제 집단 이주시켰다. 현재 카자흐스탄 국민 1700만명 중 0.6%인 10만명이 고려인 동포다.

사르마트와 흉노시대     김상욱(고려문화원/한인일보 주필) <사르마트 기병의 재현도>    흑해 북부연안에서 후기 스키타이 문화가 번창한 기원전 4세기 경, 카스피해 북방 초원에서는 새로운 유목민 세력이 발흥하고 있었다.  이른바 ‘사르마트’라 불리는 집단이 그들이다. 그곳에는 이전부터 ‘사우로마트’라는 유목민이 있었음을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의 역작인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데 바로 그들과 카자흐스탄 방면에서 온 다른 집단이 합쳐져 사르마트가 되었던 것 같다.   사르마트는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서기 3세기 무렵까지 오늘날의 러시아 남부와 우크라이나(흑해 연안), 동유럽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지금의 카자흐스탄 아티라우 근처인 우랄 남부에서 서쪽으로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여 기원전 2세기에는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 스키타이를 몰아냈다.  이에 일부 스키타이 집단은 크림 반도 남부와 도나우 강 하구 부근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활을 주무기로 삼던 스키타이와는 달리 기병과 말을 갑옷으로 무장한 채 장창으로 돌격하는 충격 기병 전술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스키타이처럼 기마 궁술도 뛰어났으며, 이들의 무장과 전술은 카자흐스탄 남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고대 유목민족인 강거와 고고학적으로 많이 흡사하다.    사르마트의 지배계급은 스키타이 처럼 대형무덤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 무덤에는 로마와 중국에서 들어온 수입품 또는 그 모조품(특희 거울)이 발견되었다. 문양으로는 중국의 용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장식 요소는  초원지대 동부의 흉노와 중앙아시아 북부 유목민의 손을 거쳐  전해졌을 것이다. 하여튼 사르마트는 그 당시 대국인 중국과 파르티아(중국사서에는 ‘안식국’으로 표기: 실크로드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무제 이후 활발해진 동서교역 특히 중국비단의 중계무역을 독점했다), 로마와도 교류하고 있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선 사르마트의 풍속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은 여자들도 전장에서 싸웠으며 어느 처녀든 한명이라도 적을 무찌르지 못하면 결혼을 할수 없는 엄격한 법이 존재했다고 한다. 사르마트는 앞선 스키타이와 마찬가지로 이란계 유목민족으로서 여성도 전쟁에 참여하였고 여성의 권리도 높았던 문화적인 특성을 계승했다. 그런가 하면 현재 카프카스 지역의 소수민족들 중 하나이고 카자흐스탄에도 많이 살고 있는 오세티아인들들이 사르마트의 후손으로 여겨지는데 오세티아인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복장을 착용하고 싸웠으며, 다른 카프카스의 민족들과 다르게 여성의 권리도 높은 편이었다. 흉노의 발흥과 융성    스키타이와 동시대인 기원전 8~4세기에 몽골 고원에서 중국 북부에 이르는 중앙유라시아 동부 초원 지대에서도 스키타이와 똑같은 무기와 마구와 동물 문양을 소요한 문화가 번창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문화를 남기 사람들을 중국 사서의 ‘산융’ 또는 ‘적’과 결부시켜 보기도 하지만, 그들의 실체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어떻든 이 시기 초원 지대 동부에서는 크고 작은 부족들이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할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급속히 통일을 향해 가던 기원전 3세기 후반, 마치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북방 초원에서도 통합의 기운이 무르익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몽골 고원 동부에서 서부에 걸쳐 정립하고 있던 동호, 흉노, 월지 가운데 흉노가 다른 두 집단을 제압하고 기타 군소 세력까지 규합하여 역사상 초유의 큰 정치 세력을 수립했다. 중국사서에서는 이 일을 담당한 사람을 묵특선우라고 기록하고 있다.    ‘묵특’이라는 이름은 몽골어 ‘바투르’(즉, 용사)를  음차한 말이다. ‘한서’에 의하면 “흉노 군주의 칭호인 선우는 ‘탱리고도선우’의 약칭으로 탱리는 하늘, 고도는 아들, 선우는 광대함을 뜻한다”고 한다.    많은 연구자들은 ‘탱리’를 고대 투르크-몽골어에서 하늘을 의미하는 ‘텡그리’로 보고 있다. 북아시아 유목민과 수렵민은 천신을 최고신으로 여기는 샤머니즘을 신봉했는데, 흉노의 군주는 스스로 하늘의 아들이라 칭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지배력을 일반유목민의 정신세계에 미치려고 했다.    흉노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제사 의식은 나무 또는 버드나무 가지를 세워 만든 제단을 세우고 그 주위를 돌면서 신을 불러내고 천지신령께 제사를 지냈다. 흉노인들은  1년에 봄과 가을 2차례 번영을 기원하며 경마와 씨름을 즐기고 길흉을 점쳤다고 한다.   이와 함께 이 제사 때에는 여러 부족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개최하고 국사를 토의했으며 과세의 기초인 인구와 가축 수를 헤아렸다. 아마도 새로운 선우도 이러한 회의를 통해 선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묵특선우 치세기에는 선우 권력이 워낙 강대해 족장회의가 형식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목민 흉노의 풍속은 정주 사회 거주민들 눈에 매우 기이하게 반영되었다. ‘사기’ <흉노전>에는 한나라 사신과 흉노 고관 중항열 사이에 주고 받은 흥미로운 문답이 기록되어 있다. 한나라 사신이 “흉노는 노인을 업신여긴다”고 비난하자, 중항열은 “흉노에서는 전쟁이 중요하기 때문에 싸우지 못하는 노약자는 뒤로 미루고 먼저 건장한 사람에게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게 한다. 그렇게 하여 전쟁에 이기면 노인도 그의 자식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이에 한나라 사신이 “흉노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천막에서 잠자고, 아버지가 죽으면 계모를 처로 삼고 형제가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위계에 상응하는 복식도 없고 궁정의 의례와 제도도 없다”고 비판하자 이에 중항열은 “흉노는 가축과 함께 생활하고 계절에 따라 이동한다. 법규가 간소해 지키기 쉬우며 군신 관계도 단순하다. 한 국가의 정치는 한 인간의 신체와 같다. 부자와 형제가 죽으면 그 처를 취하는데 이는 혈육을 잃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겉치레만 하고 실제로는 친족을 서로 살해하고 있다. 흉노에는 그러한 허식적인 의례나 복식이 없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이 대화는 사마천의 선입견이 담겨 있는데,  유목사회와 정주사회의 윤리가 확실히 다르다는 점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계속)

  쿠릴타이의 역사적 기원   쿠릴타이는 칸의 명에 의해 개최되었던 북방 유목민들의 정책 결정 기관이자 회의이다.   이는 북방유목민의 대표격이자 인류에게 세계사의 시작을 알렸던 몽골시대 이전인 흉노, 선비, 오환, 거란 에도 쿠릴타이가 있었다.   현재도 헝가리에서 전통 보전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열리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새로운 칸을 선발하는 일이나 법을 제정하는 일, 주변 국가에 대한 원정 계획을 수립하는 일 등 중요한 사안은 거의 쿠릴타이를 통해 이루어졌다.   실제로 몽골 제국의 모든 칸은 공식적으로 쿠릴타이를 통해 선출되었다. 다만 유목 제국의 특성 상 온갖 곳에 퍼져있는 여러 부족들의 수장들을 모아 집합시키는 것은 영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었던지라, 칸의 재위 기간 동안 겨우 두세 번 정도 개최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충 5~6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이루어지는 행사였기 때문에 칸의 숙소(오르두) 근처 목초지에서 큰 규모로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쿠릴타이가 끝난 다음에는 약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축제가 열렸다.   몽골에 복속된 시기의 고려왕들도 황제의 사위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킵차크 칸국의 소 쿠릴타이에는 러시아의 보야르들이나 종속된 국가의 사신들이 오기도 했다.   한민족은 유목민족도 아니긴 하지만, 고려시절에 칭기즈 칸의 혈족과 고려 왕족이 결혼했었기 때문에, 고려 왕족들이 정식으로 원나라 쿠릴타이에 참석하였었다. 가령 충선왕이 쿠릴타이에 참석하여 원무종의 즉위를 지지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역사에서도 이 쿠릴타이는 존재했다.  유목민의 이동성 목축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정책회의 기관'이었다. 과거 카자흐인들은 이를 통해 정치, 외교,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와 사회, 사람들의 교육, 전통 풍습, 종교 및 새로운 법제 도입 등 중요한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칸과 부족장, 지식들이 참여하여 사회와 문화, 후손의 교육 문제를 논의했다. 쿠릴타이의 현재적 모습과 목표   특히 지난 2022년 6월 14일 토카예프 정부는 역사에 존재했던 이 쿠릴타이를 재건했다. 현 정부는 역사적인 쿠릴타이 재건을 통해 민족적 단일성과 부흥을 겨냥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바로 이날 토카예프 대통령은 쿠릴타이를 대통령 직속 협의체로 승인했다.   이는 과거 나자르바예프 대통령통치시절 존재했던 민족회의를 새롭게 다듬은 것으로써 다민족국가인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민족의 단일성, 사회적 발전, 문화, 풍습 등 가치를 발전시키는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특히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국가의 단일성 유지와 문화 발전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쿠릴타이의 회장으로는 현직 대통령인 카슴-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임명되었고, 부회장으로는 국가 고문인 에를란 카린이 임명되었다.     첫 번째 쿠릴타이는 2022년 6월 16일 울르타우에서 개최되었다. 카슴-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이 지방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울틱 쿠릴타이를 진행했다. 초기에 울리타우 지역이 카자흐인의 정치적 중심지로 중요했다는 역사적에 때문이었다.   쿠릴타이는 정부와 국민을 연결하는 고리로써 모든 지역의 대표, 다수의 의회 의원, 카자흐스탄 민족회의 위원,  시민단체 대표, 공공 위원회 위원, 유력 정치인 등이 포함된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쿠릴타이의 주요 목표는 사회를 통합하고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며, 시민사회와 함께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새로워지고 잃어버린 풍습, 전통성을 되살리며 카자흐스탄의 미래를 향하는 목표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이를 토카예프대통령이 평소 강조했던 강하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카자흐스탄의 토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고 지금 국제사회에서 일어아는 가치의 충돌에 대해 카자흐스탄 사회 전체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김상욱 주필)

NOMAD(기마유목민)의 탄생  김상욱(고려문화원장/한인일보주필) <최초의 유목제국을 건설한 스키타이> 지난 호까지가 이번 연재의 머릿말에 해당된다면, 이번 호 부터는 본론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유라시아 대륙을 동에서 서쪽으로 여행을 해 본 분들이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데, 광활한 유라시아 초원지대는 동쪽으로 대흥안령 산맥에서부터 서쪽으로 헝가리 평원에 이르는 대략 8000km에 달하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구소련에서 개혁개방조치가 이루어지던 1989년 , 고려인 민족운동의 산물로써 탄생한 알마티고려 민족중앙회가 올해 창립 35주년을 맞이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 25일에 열린 상무위원전원회의에서 이 안건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논의 결과, 자축은 하되 관련 행사는 줄이고 대신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한국어교육을 지원하는데 좀 더 많은 역량을 쏟아 붓기로 했습니다.  일회성 축하행사보다는 기존 사업들에 대한 내실을 기하자고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문화를 유지하고 중앙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열성자들에게 기념 메달을 증정해기로 했고, 최근 15년간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던 고려민족중앙회 홍보 브로셔는 새로 제작하기로 했다. 동시에, 차세대 청년들의 참여를 더욱 높이고, 높아진 위상에 걸맞는 활동을 하기 위해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의 '리브랜딩' 작업을 강도높게 해나가기로 했다. 이를 통해 동포사회내에 한류 확산은 물론이고, 더욱 다양해진 동포사회의 의견을 잘 수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곧 다가올 한국-카자흐스탄 고용허가제 협정체결에 따라 청장년층 고려인들의 한국행에 대비하기로 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일부 산하단체에서는 가야금을 비롯한 우리의 전통악기와  장비지원을 신속히 해달라는 건의를 올렸고, 집행부측에서는 이 같은 청원서를 잘 접수했다면서 가능한 최대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상욱)

신 유리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장이 카자흐스탄의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쿠릴타이' 회의에 초청되었다. 이는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중에 0.6% 밖에 차지하는 않은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내에서의 영향력이나 위상이 그만큼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쿠릴타이는 과거 북방 유목민들의 전통으로써, 황제(칸) 후보자 선정이나 즉위, 전쟁, 그리고 중요 법령 제정을  위해  칸의 명령으로 왕과 유력 부족장, 고위직 관료 등으로  구성된 유목 국가 최고 정치 회의이다. 이런 전통은 현대 카자흐스탄에 까지 이어져 주요 국정방향을 결정할 때 쿠릴타이를 개최하고 있다.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신년초 언론 인터뷰를 통해 통상 여름에 개최하는 '쿠릴타이' 회의를 앞당겨 봄에 열어 주요 국정과제를 의결하기로 한 바 있다. 역사상 중요한 쿠릴타이로는 1206년 초봄, 테무진이 몽골 고원의 통일을 완수하고 칭기즈 칸의 존호를 얻은, 오논 강변에서의 쿠릴타이와 1249년, 대칸 구유크의 죽음으로 그 직후에 바투에 의해 툴루이와 주치의 두 집안을 중심으로 개최된, 일리 강 상류의 준가르 알라타우 산맥 방면에 있던 아라 카마크에서의 쿠릴타이 등이 있다. 한편, 강 게오르기 교수(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 부회장)가 토카예프 대통령으로 부터 직접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역사학 박사인 게오르기 교수는 정치적 탄압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복권을 위한 국가 위원회 활동에 적극 참여한 점이 높이 평가를 받아 대통령으로 부터 개인 감사 편지를 받게 되었다.(김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