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일보) 최재형 기자 = 카자흐스탄과 한국간 직항 노선이 증편될 예정이다.   양국의 항공정책을 총괄하는 탈가트 라스타예프 카자흐스탄 교통부차관과 이윤상 대한민국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이 만난 자리에서 한국과 카자흐스탄 간 항공편 횟수를 늘리는 방안과 기존 노선에 신규 취항지를 추가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었고, 정기적인 항공회담을 지속해 항공협력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운항 중인 '인천-알마티' 항공편을 증편하고, '인천·부산-심켄트' 노선 신규 취항에도 합의했다   카자흐스탄민간항공위원회(CAC)는 "한국과 카자흐스탄 양측 모두 수도 아스타나, 제3의 도시 침켄트 노선 확대를 원하고 있다"며 "아스타나, 알마티, 쉼켄트에서 한국으로 가는 새로운 항공편이 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취항은 티웨이항공과 화물 전용 항공사인 시리우스항공이 유력하다.   라스타예프 차관  티웨이항공과 시리우스항공의 경영진과 만나 카자흐스탄 취항 의사를 확인했다.   현재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아시아나항공과 카자흐스탄 국적사인 에어아스타나 가 인천과 알마티 노선을 주 11회 운항하고 있다. 이번 항공회담을 통해 주 24회까지 늘리기로 했다.     만약 목표데로 증편이 확정된다면, 동포비자를 받아서 한국에서 유학과 친지방문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고려인 동포들 뿐만 아니라 병원치료와 관광을 위해 내방하는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하늘길이 한결 수월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주요 무역 중심지로, 향후 경제 성장과 함께 물류 유통 수요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K-pop 등 문화 교류와 양국간 산업 인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어 항공 수요는 더 확충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카자흐스탄 양국 간 비자 면제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올자스 벡테노프 신임 총리> (한인일보)  최재형  기자 = 카자흐스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지난2월 5일 현 내각을 해임안에 서명하고 주요 정부 직책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시작했다.            현지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의 새 총리로 대통령실장을 지낸 올자스 벡테노프가 임명되었다.           올자스 벡테노프는 집권여당인 아마나트 당이 제안했고, 이후 하원이 승인했다. 외교부, 교육부, 기술부, 교통부, 산업건설부, 에너지부, 내무부 장관은 연임됐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7일, 2023년 카자흐스탄의 사회 경제적 발전을 검토하고 2024년 이후의 주요 목표를 설명하기 위한 정부 확대 회의를 주재했다. 정부가 제시한 야심 찬 목표 중에는 2029년까지 경제 규모를 4천 500억 달러로 늘리고, 연간 GDP 성장률을 최소 6% 이상 달성하고, 거시 경제 지표가 국민의 실질 소득 성장을 능가하도록 보장하는 목표가 있다.           2023년 카자흐스탄은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고 5.1%의 강력한 경제 성장을 달성함으로써 회복력을 보였다. 정부는 농공단지에서 환경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농업 자금 조달을 두 배로 늘려 원자재 생산에서 농산물 가공으로 전환하고, 절수 기술을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에너지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고위험 지역의 19개 열원을 고도화하는 등 유틸리티 및 에너지 분야의 현대화를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디지털화를 우선하고 경제의 다양한 부문에 걸쳐 인공지능(AI)의 광범위한 도입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투자 유입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외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되는 생태계 조성을 전담하는 투자본부를 설립해 개발 기관의 기능을 강화하고 외국 공관, 투자 센터 및 지역 당국 간의 명확한 상호 작용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재구성된 정부의 주도로 새로운 장을 시작하면서 상호 이익과 공유된 목표를 활용하여 양국의 발전과 번영을 주도하면서 한국과 같은 파트너들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정한 새로운 우선순위에 따라 녹색 에너지, 스마트 농업, 스마트 워터, 에너지, 디지털 전환, 전자 상거래 및 금융 협력 분야에서 카자흐-한국 파트너십의 기회가 제공된다고 밝혔다. 카자흐스탄 리튬광구 개발에 독일 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독일 에너지 기업 HMS 버그바우(HMS Bergbau)가 지난해 9월 동 카자흐스탄 지역에 리튬 추출 및 가공을 위한 공장 건설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총 투자 규모는 5억 달러(약 6680억원)에 이른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카자흐스탄지질위원회와 지질·광물자원·에너지자원·지질재해·기후변화 등 포괄적 업무협약을 맺고 리튬광물 탐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양 기관은 리튬은 물론 카자흐스탄에 매장돼 있는 광물자원을 탐사·개발할 수 있는 7개 협력 프로젝트 자료의 선별·검증에 협력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전 세계 우라늄 생산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이자 구리, 아연, 몰리브덴 등의 주요 생산국이다. 특히 100종에 이르는 광물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적인 자원부국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한인일보) 최재형 기자 =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실주의 희곡의 대가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의 작품이 고려극장의 배우들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지난 17일과  18일 카자흐스탄 국립고려극장 무대에 올려진 이 작품은 남녀간 심리변화를 잘 묘사한 이 연극인데, 고려인 동포들은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 공연된 연극 '곰'은 빌려준 돈을 독촉하러 과부에게 찾아간 지주가 채무자 여인의 완강한 태도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이다.   11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자신을 배신하고 바람을 피운 죽은 남편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줄 거라며 상복을 계속 입겠다고 고집하는 엘레나 뽀뽀바 라는 여인과 성미가 매우 급하고, 고집도 세며 양보를 할 줄 모르는 스미르노프 라는 남성이 주인공이다.   죽은 남편 때문에 비탄에 빠진 뽀뽀바는 처음에 부드럽고 수줍은 과부로 나오지만 논쟁이 진행되면서 스미르노프를 곰, 괴물이라 욕하며 결투까지 하려는 결연한 자세를 보여준다. 이러한 행동에 반해버린 스미르노프는 빚독촉 대신 사랑을 고백하게 된다.     연극을 본 리 엘리나씨는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에피소드를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으로써 남성과 여성, 눈물과 미소, 사랑과 미움 등 상반된 요소를 조화롭게 섞은 작품으로 풍자와 해학으로 완성시켰다"고 평했다.

돌궐과 투르크, 터어키, 투르키예                 김상욱(알마티고려문화원장/한인일보 주필) < 튀르키예 동부 가지안테페에 있는 오르혼 비문. 몽골의 오르혼계곡에서 발견된 돌궐족의 비문으로 몽골의 비문을 복사해 옮겨온 것이다.>  우리는  지난호까지 기원전부터 대략 기원후 5세기 정도까지 유라시아 초원을 무대로 흥망성쇠를 거듭한 유목민들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즉, 최초의 초원의 제국을 건설한 스키타이 유목민부터 사르마트 그리고 중국을 괴롭히다가 서진하여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흉노(훈)까지를 훑어본 것이다. 이들은 전업유목민으로서 ‘정착농경민’ 들이나 그들의 ‘생산물’을 주로 ‘약탈’이라는 방법으로 획득하면서 유목을 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중앙 유라시아 지역을 무대로 인류문명의 한 축을 이루어 왔다.    이번 호 부터는 중앙 유라시아 유목민의 대명사이자 20세기 초까지 오스만제국이라는 대제국을 건설했고 지금은 ‘터어키’, ‘투르키예’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불리는 이들의 선조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 돌궐의 기원 기원후 6세기 무렵, 북방 유목민들은 몽골고원과 서쪽의 카스피해  연안까지 세력을 확장시키며 성장하였다. 이들은 중국 사서에 ‘철륵’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철륵은 투르크의 한자 표기이다. 한편 이와 비슷한 시기부터 돌궐이라는 유목국가의 이름도 등장한다. 돌궐도 투르크의  한자 표기로 생각되지만 철륵이 투르크계 유목민의 총칭임에 반하여 돌궐은 원래 철륵에 속해 있던 것으로 보이는 아사나씨가 중심이 되어 건설한 나라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서> ‘이역전’ 돌궐조는 아사나씨의 기원에 대해 약간 다른 두가지 설화를 소개하고 있다. 두 설화는 모두 어떤 남자와 암늑대사이에 태어난 열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이 아사나씨의 조상으로 되어 있다. 성별은 다르지만 부모 가운데 한쪽이 늑대라는 점은 몽골 고원을 한때 차지했던 ‘고차’의 조상 설화와 같다. 또 <수서> ‘북적전’ 돌궐조에 의하면 아사나씨는 유연에 복속되어 금산(알타이산맥) 부근에서 야금일을 담당했다고 한다.   돌궐은 당시 중앙유라시아에서 일종의 화폐 구실을 했던 비단을 입수하는 수단을 확보하고 나아가 이를 서방에 파는데 능숙한 소그드인과의 접촉이 시작됨에 따라 돌궐의 서방 진출은 촉진된다. 이렇게 하여 돌궐의 판도는 몽골고원에서 카스피해 북쪽연안까지 미쳤다. 무한은 대카간으로 몽골고원 중앙부의 외튀켄이라 불리는 성지에 본거지를 두고 명목상 그의 휘하인 여러 명의 카간과 함께 정복활동을 수행했다. 이런 정복활동으로 인해 비잔틴 사료, 아랍 사료에 돌궐 카간의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 있는 것은 돌궐인들은 당시 사산조 페르시아에 비단을 팔려 했지만 사산조는 중개 무역의 이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그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자 돌궐은 568년 소그드인을 비잔틴궁정에 사절로 파견하여 중국에서 입수한 비단을 직접 파는데 성공했다. 그 사절은 카스피해 북쪽 과 흑해를 경유하여 비잔틴에 도착했다. 이는 이른바 실크로드의 초원로가 외교와 교역의 통로로 이용된 하나의 사례이다.  이 길은 후에 징기스칸 의 손자 바투가 모스크바와 동유럽을 침략할 때 사용된 루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돌궐은 580년 알타이산맥 부근을 경계로 하여 동, 서로 나누어졌다. 중국 수나라의 분열책과 대카간 계승분쟁을 이용한 중국 수나라의 분열책 등이 겹쳐 동 서 돌궐은 다시 통합되지 못하게 된다. 당의 기미 지배 이후 중국에는  당나라가 들어서고 당은 북방 유목민을 ‘기미’지배방식으로 다루었다. ‘기’는 말의 고삐를 , ‘미’는 소의 고삐를 뜻한다. 따라서 기미 지배는 마치 말이나 소를 붙잡아 매두고 조종하는 것 같은 지배 방식을 가리킨다. 이 시기 당나라 수도 장안을 방문한 북방유목민의 지도자들은 당 태종에게 천 카간(투르크어로 텡그리 카간)이라는 칭호를 헌상했는데 이는 카간의 지배를 명분으로 당의  지배를 수용했던 것이다. 이는 17세기 몽골인들이 청나라 황제를 칸으로 부르며 그들의 지배를 수용한 것과 같다. 이때 몽골의 왕공들은 청의 홍타이지(태종)가 만주인, 몽골인, 한인의 추대를 받아 대청 황제에 즉위했다고 인정했던 것이다.   이와 똑 같은 일이 우리가 사는 카자흐스탄에서도 일어났다. 18세기 카자흐인들이 같은 유목민족인 중가르인들이 청의 압박으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영토로 밀려들어오자 생존의 위협을 느낀 카자흐인들은 러시아의 짜르를 차간 칸(白王)이라 부르며 그들의 지배를 수용한 것과 같다. 반면 유라시아 초원지대 서부 에서는 훈이 모습을 감춘 뒤에도 동쪽에서 다양한 기마 유목민이 밀려왔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북아시아의 유목 군주가 사용하는 칸을 칭하고 고유명사와 관직명도 투르크-몽골어풍이었다. 그러나 종족 계통을 보면 이란계나 위구르계도 섞여 있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비잔틴은 568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돌궐과 직접 교섭했다.  이때 돌궐은 비잔틴 측이 자기들이 격파하여 도주한 아바르와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를 학자들은 과거 돌궐이 몽골고원에서 격파한 최대의 적이 유연이라는 점을 근거로 아바르를 유연과 동족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경유 유연, 즉 몽골 초원에서 있었던 유연을 ‘진정한 아비르’, 유럽을 침략한 아바르를 ‘가짜 아바르’라 부르기도 한다. 정리하면, 중앙유라시아에 살던 유목민들은 이웃 부족과의 전쟁에서 패하면 승자에 흡수되던가 아니면, 서쪽으로 이동(도주)하던가, 중국에 포함되는 3가지 유형을 보였다. 비잔틴 사료에 등장하는 아바르, 불가르, 하자르도 동방에서 이주(패배해서 서쪽으로 도주)해 온 투르크계 유목민이었다.  특히, 일부 학자들이 ‘대 불가리아’라고 부르는 불가르는 자신들도 역시  동쪽에서 새로 이주해온 유목민인 하자르의 습격을 받고 붕괴된다. 흉노(훈) 이후에도 중앙유라시아의 초원에서 패배한 부족들은 서쪽으로 도주하는 역사는 반복되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우리민족의 큰 명절 중 하나인 정월대보름을 맞아 평산 마을을 방문한 김상욱 한인일보 주필에게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으로 상처 입은 고려인 동포들의 마음을 잘 위로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주필은 정월 대보름이었던 지난 24일(토),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평산 마을을 방문하여 문 전 대통령에게 정월대보름 인사를 드렸다. 이날 문 대통령은 평산책방에서 김주필을 만나 악수를 한 후 김주필로 부터 이번 일로 인해 고려인동포들이 상심이 크고 일부 동포들은 홍장군의 유해를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모셔오자고 주장하신다는 현지 분위기를 전해 듣고 이같이 말했다. 이에 김주필은 "문대통령님의 그 마음을 고려인 동포들에게 가감없이 전달하겠다"고 화답했다. 문 전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알마티를 방문하여 고려극장에서 고려인동포들을 만났다. 재임 중 독립운동가 황운정, 계봉우 선생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했고, 2021년 대통령 특사단을 카자흐스탄으로 파견하여 홍범도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모셔와서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현재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사저 바로 아래에 '평산책방'을 열고 책방지기로 일하고 있다. 평산책방은 작년 4월에 현판식을 갖고 영업에 들어갔고, 문 전 대통령이 소장한 책 1천권을 포함해 3천권 규모로 영업한다. 소설, 인문, 사회, 역사 등 다양한 분야 책을 소장하고 판매한다. 책방 한쪽 서가에는 '문재인이 추천합니다' 코너가 있다. '사람이 먼저다', '운명' 등 대통령 당선 전 문 전 대통령이 쓴 책은 '문재인의 책' 코너에서 볼 수 있다. 문 전 대통령은 현판식 때 "평산책방이 우리 평산마을, 지산리 주민들의 문화공간이 되고 사랑방이 되고 또 더 욕심을 부려 평산마을, 지산리의 명소이자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고 자랑거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이 사저 이웃집 단독주택을 8억5천만원에 매입해 책방으로 리모델링했다. 사방이 트여 있어 볕이 잘 드는 마당 딸린 주택이다. 지난 2월 초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으로 개점까지 석 달 정도 걸렸다. '재단법인 평산책방'과 마을 주민들이 참여한 운영위원회가 책방을 운영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운영하는 경남 양산시 평산책방이 문을 연 지 반년만에 8만권이 넘는 책을 판매했다. 한달간 많이 팔린 책 가운데 책방지기 저서 및 추천 도서로는 △책 읽는 사람, 문재인 독서노트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의 위로 △아버지의 해방일지 △문재인의 위로 필사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한 컷 한국사 △처음처럼 △나의 청와대 일기 △나무수업 등이 꼽혔다. 판매 순위 1위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디케의 눈물’이었다. 이어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 △마음의 법칙 △풀꽃 △사소한 추억의 힘 △미스터 프레지던트 △마음 챙김의 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노무현입니다 순이었다.(김상욱)

몽골고원의 원래 주인은?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칭기스칸 출현 직전 몽골 고원은 전쟁과 살육으로 얼룩진 땅이었으며, 유라시아 형세 또한 강자들의 대치가 극에 달해 있었다> <기원전후 동방의 세력자였던 흉노는 몽골고원 전체를 차지하였고 한 제국에게 공물을 받았으며, 서쪽으로는 유럽까지 진출했다>   몽골고원의 원래 주인은 누구?  라는 우문에 대한 현답은 뭘까?  당연히 몽골고원에서 대대로 유목생활을 해 왔던 집단이나 족속이 될 것이다.  그게 몽골족 아니냐?  고 되물을 수 있겠으나 엄밀히 말하면 꼭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징기스칸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나타나서 몽골고원을 통일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미 주요 6개 부족이 몽골고원을 무대로 할거하고 있었고 그 이전에는 흉노가 몽골고원을 주무대로 활동했다. 흉노제국이 분열되고 몽골고원을 터전으로 삼은 북흉노가 서방으로 밀려난 후에는 선비, 고차, 유연 등의 유목민 집단이 몽골고원을 지배했다. 즉, 시대에 따라 몽골고원의 주인은 바뀌었고 또 다른 이름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그래서 근대적 민족개념으로서의 몽골족이 몽골고원의 원래 주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하겠다.   흉노시대 이후의 주인은 선비, 고차   선비는 동호의 후예라고 일컬어지는데 한때 흉노의 지배를 받다가 흉노세력이 쇠퇴하는 1세기경 북흉노 잔존세력을 흡수하여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개별 부족으로 분열되어 있던 선비를 통합시킨 인물은 천둥과 함께 떨어진 우박을 삼키고 임신하여 낳은 자식이라는 ‘단석괴’ 라는 영웅에 의해서였다.   어릴 때부터 무용이 걸출하고 그의 지시나 결정이 공정하여 몽골고원의 유목민들은 그를 군주로 받들었던 것이다. 단석괴는 중국 북쪽 변방을 약탈하고 동쪽에 있던 우리들의 선조 부여를 물리치고 서쪽으로 오손을 격파하여 과거 흉노제국의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단석괴 사망 후 자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선비는 점점 쇠퇴하게 된다. 이 시기는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웠던 중국의 5호 16국 시대(304~439)에  해당된다. 바로 흉노계와 선비계의 여러 부족들이 중국 북부에서 중부까지 침입하여 독자적인 왕조를 개창했던 시기이다.  5호16국 시대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선비계의 탁발부가 건설한 북위이지만 이는 중국사의 범위에 속하므로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흉노시대 때에는 몽골 고원 북방에 있다가 3~4세기 경 남쪽으로 내려온 ‘고차’의 기원은 매우 흥미롭다. 흉노의 선우에게 두 명의 어여쁜 딸이 있었다. 선우는 딸들을 하늘에 바치려고 높은 단을 쌓고 두 딸을 그 위에 올려놓은 다음 하늘이 그들을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았다. 그 후 4년이 지나 늙은 늑대 한 마리가 와서 단 아래에 굴을 파고 살았다. 동생은 이 늑대를 하늘이 보낸 것으로 판단하고 언니의 반대를 뿌리치고 단 아래로 내려가 늑대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고차’의 조상이 되었다.  흉노, 선비, 고차 등 몽골고원을 주무대로 유목생활을 해 왔던 이들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워졌던 지간에 매년 중국 북부지방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는 공통점을 보였다.  약탈이라고 해서 금은 보석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니고 주로 주로 사람과 가축을 탈취해 갔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들은 약탈해간 사람들을 중국북부에서 가능한 먼 몽골고원 북부에서 농경에 종사토록 했다.  즉, 경작할 노동력으로 쓰기 위해서 주민들을 약탈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계속된 약탈로 인해 몽골고원의 유목민들은 순수 유목민사회라고 하기 보다는 유목문화속의 정착민들이 함께 사는 혼합사회였다고 할 수 있고, 인종적으로도 남쪽의 한족과 북방 유목민들간에 섞일 수 밖에 없었다. 흉노와 훈의 동족설   훈의 기원을 몽골고원에서 쫒겨난 흉노에서 찾는 설, 이른바 흉노와 훈의 동족설이 18세기에 제출되었다. 아직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 와중에 일본학자 모리 마사오는 약간 다른 설을 내놓고 있다.   그는 흉노(이 한자의 원음은 훈누에 가깝다)의 이름이 정복자로서 북방과 서방 여러 민족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결과 많은 집단들이 흉노를 자칭하기도 하고 다른 집단들이 북방유목민의 총칭으로 그렇게 불렀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목민 집단이 다른 집단에게 습격을 당하면 반드시 이동하고 그것이 또 다른 집단의 이동을 촉발하여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훈의 서진이 눈덩이 처럼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훈’이라는 불리는 집단 가운데는 다양한 유목집단들이 포함되어 있었음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단순하게 흉노를 훈이로 보기는 어렵지만 훈의 핵심세력이 흉노 출신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다. 어떻든 근대적 의미의 민족 개념으로 흉노와 훈의 동족설을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정리하면1~2세기 무렵 몽골고원에 거주하던 유목민 집단(흉노)은 알타이에서 톈산 산맥 북쪽 기슭, 그리고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세력을 얻은 후 4~5세기 무렵 단숨에 중부유럽까지 진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곧바로 이를 근거로 흉노를 훈으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동쪽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훈은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음은 확실하다.  

현대차, 지난해 카자흐스탄서 판매량 1위 올라 현대차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크레타 현대자동차·기아가 인도에 이어 카자흐스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현지화 전략을 통해 점유율을 점차 확대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에서의 부진을 만회하는 모습이다. 현대차·기아는 성장 잠재성이 높은 신흥국에서 존재감을 끌어올려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을 높여나가겠다는 계획이다. 1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해 카자흐스탄에서 4만6725대를 판매하며 1위를 차지했다. 제너럴 모터스(GM) 산하 쉐보레를 누르고 최다 판매 브랜드로 올라선 셈이다. 기아는 2만5494대를 판매해 3위를 유지했으며, 시장 점유율은 전년 대비 약 1% 오른 12.8%를 기록했다. 현대차·기아는 그간 일본 브랜드 텃밭이었던 동남아 시장에서도 뛰어난 판매 성과를 올리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베트남 시장에서 6만7450대를 판매해 토요타를 누르고 1위에 올랐다. 기아는 4만773대를 판매해 3위를 기록했다. 필리핀 시장에서는 지난해 현대차·기아 양사 모두 처음으로 판매 점유율 10위 안에 올랐다. 현대차는 9133대, 기아는 5033대를 판매하며 각각 8위와 10위에 올랐다. 상위권에는 토요타 등 일본 완성차 브랜드가 자리 잡고 있지만 현대차·기아는 시장을 서서히 잠식해나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대만과 태국에서도 높은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는 대만에서 전년 대비 55% 급증한 2만297대를 판매했으며, 태국에서도 판매 대수가 35% 이상 증가한 5795대를 기록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현지 판매법인을 세운 데 이어 양사 모두 태국 현지공장 설립을 모색하고 있다. 신흥 시장 중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인도에서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인도에서 전년 대비 9.4% 늘어난 60만5000대를 판매해 1996년 인도 진출 이후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 60만대를 넘어섰다. 기아 역시 인도 진출 첫해인 2019년 판매량이 4만5000대에 그쳤으나 지난해 25만대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인도는 인구 14억명 대비 자동차 보급률이 10% 미만인 국가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국가로 꼽힌다. 현대차·기아는 세계 자동차 시장 3위로 부상한 인도 시장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일찌감치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현대차 인도법인은 인도 내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차·기아가 신흥 시장에 공들이는 이유는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의 여파로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만큼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해서다. 최근 국제정세 변화로 러시아와 중국 공장이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면서 이들 시장을 과감히 포기하고 신흥 시장에 집중해 실적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한편 최근에는 글로벌 자동차 판매 1위인 일본 토요타가 품질 조작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현대차·기아가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기아가 최근 글로벌 판매 3위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만큼 이번 이슈로 세계 시장에서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토요타 사태는 2015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보다도 심각해 보이는 사안으로, 현대차 등 경쟁 브랜드에게는 분명한 호재가 될 것"이라며 "특히 토요타의 품질 조작이 주로 동남아에서 이뤄지면서 동남아 시장에서 현대차의 점유율 상승은 뚜렷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상욱)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알마티 무역관이 ‘지능형농장(스마트팜)’ 중점 지원 무역관으로 지정되었다. 지난해부터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지능형농장(스마트팜)' 분야의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정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손을 잡은 결과이다.   농식품부는 코트라와 함께 3개 유망 권역인 중동·독립국가연합(CIS)·오세아니아 내 무역관 5개소를 스마트팜 중점지원무역관으로 지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지정된 무역관은 ▲CIS 카자흐스탄(알마티) 외에도 ▲중동 쿠웨이트(쿠웨이트) ▲CIS 아제르바이잔(바쿠) ▲오세아니아 호주(멜버른) 등으로, 국내 수출기업·무역관 수요와 지난해 수출·수주 해외동향 등을 종합 반영해 선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중동 사우디 내 리야드 무역관을 제1호 중점지원무역관으로 지정한 뒤 올해 신규 4개소를 확대 지정했다. 해당 권역에 진출하고자 하는 국내 기업은 중점지원무역관을 통해 현지 법무법인 연계 법률컨설팅과 프로젝트·바이오 발굴, 시장정보조사, 프로젝트별 맞춤형 애로 해소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농식품부와 코트라는 올해 중점지원무역관과 연계해 'K-스마트팜 로드쇼' 등 다양한 수출·수주 지원을 위한 협력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상만 농식품부 농식품혁신정책관은 "스마트팜 중점무역지원관을 통해 해외경험과 인프라가 부족한 국내 스마트팜 기업의 해외진출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앞으로도 스마트팜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지출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지속 발굴·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상욱)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 산하 비둘기무용단이 국악인 양성과 전통문화 보급에 앞장서 온 국립남도국악원(원장 명현)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국악 연수를 받게 된다.   남도국악원은 재외동포 국악인 등에게 전통예술을 전수하는 '2024 해외 동포 및 국악단에 초청 연수'를 실시한다고 13일 밝혔다.  오는 3월부터 12월까지 열리는 국악연수에는 13개국의 재외동포 예술단체 소속 347명이 초청되었다. 참가자들은 전라남도 진도에 소재한 국악원에서 2주간 사물놀이·부채춤·장고·민요·판소리· 전통춤 등을 배우고, 전통 공연 관람과 문화 탐방을 하며 한국 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이들은 오는 3월부터 12월까지 10회에 나눠서 전남 진도군 소재 국악원에서 연수를 받는다. 오는 3월 11∼22일 실시하는 1차 연수에는 카자흐스탄 비둘기무용단 단원 10명외에도 루마니아 세종누리소리 단원 11명, 독일 한글만세 단원 8명이 참가한다. 12월까지 이어지는 연수에는 러시아,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인도네시아 등 13개국에서 347명이 참가한다.    국악원 관계자는 "동포 및 현지인 등으로 구성된 국악·무용단체·동아리 등을 초청해 우리 전통예술의 해외 보존과 전승을 돕는 사업으로 국악 인프라가 취약한 곳부터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상욱)

흉노의 쇠퇴와 분열                김상욱(알마티고려문화원장/ 한인일보 주필)    한나라는 고조 이래 흉노에 대해 소극적인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한 무제가 즉위하면서 충실한 국력을 배경으로 적극적인 대 흉노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먼저, 기원전 139년 장건을 서방의 대월지에 파견하여 흉노에 대한 협공을 모색했는데, 도중에 장건이 흉노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여러 차례의 계략이 실패로 끝났으나 한 무제의 와심상담의 결과로 전세가 점차 한나라쪽으로 기울었다.   한나라 군대는 기원전 121년에 하서 지방을 빼앗고 2년 후에는 고비 남쪽에 있는 흉노의 근거지를 일소했다. 하서를 손해 넣은 한은 서쪽으로 이어지는 서역, 즉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대로 손을 뻗쳐서 파미르 서쪽의 대원(페르가나 지역)까지 그 위세가 미치게 되었다.   그 이전 흉노는 서역에 동복도위 라는 관리를 파견하여 오아시스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물자와 사람을 징발했는데 마침내 오아시스라는 수입원을 빼앗기고 좋은 목초지가 있는 하서 지방마저 상실하게 되면서 점점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바로 이때를 즈음하여 선우 자리를 둘러싸고 형과 동생간에 내분이 발생했다.  동생 호한야가 이끄는 동흉노는 한나라에 복속되고, 형 질지선우가 이끄는 서흉노는 서쪽으로 이주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알마티 주변 즉, 텐산 북쪽 기슭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지만 질지 선우가 살해되면서 서흉노도 와해되고 말았다. 중국이 혼란에 빠질 때 흉노는 잠시 세력을 되찾고 예전의 위세를 회복하는 듯 했으나 천재지변과 전염병으로 세력이 다시 약화된다.  몽골고원에 남은 북흉노는 남쪽에서 중국과 남흉노, 동쪽에서 선비와 오환의 공격을 받고 서방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들도 2세기 경 톈산 북방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사를 끝으로 중국 사서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유럽의 민족대이동을 촉발시킨 ‘훈과  흉노의 동족설’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이들의 활동의 주 무대였던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자. 유라시아 초원지대는 확실히 유목에 적합한 땅이다. 그러나 유목이라는 것이 생산성이 낮고 기상조건에 따라 성패가 크게 좌우되다 보니까 유목 국가는 불안한 경제기반을 보완하기 위하여 유목 외에도 약탈, 수공업, 농경민과의 교역 등 다른 방법을 써서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유목 국가가 하나의 국가로서 존립하기 위해서는 유목과 상반된 정주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모순에 부딪히게 된 것이었다.   유목 국가 안에서 정주적 생산활동에 종사한 사람은 중국인을 비롯한 정주 농경 사회 출신자들이었다. 흉노는 수시로 중국 북쪽 변방을 침략하고 약탈을 자행했는데, 약탈이라 하면 흔히 금이나 은을 비롯한 재화를 생각하기 쉽지만 흉노인들은 주로 인간과 가축을 약탈했다. 흉노는 끊임없이 사람과 가축 약탈을 자행했는데, 이들 뿐 아니라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온 사람, 한나라에서 망명한 사람, 그리고 생활이 어려워 도망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흉노의 국가 체제에 대해서는 1) 통치와 행정기구가 정비되어 있지 않은 미숙한 수장제 국가  2) 국가 형성과정의 단계  3) 지배 씨족과 그 아래에 몇 개 부족을 연합한 부족 연합 국가  4) 다른 집단을 지배한다는 데 근거하여 제국으로 보는 견해  5)마르크스, 엥겔스의 사회 발전 단계설에 의 거하여 노예제 국가로 보는 견해  6) 유목민 특유의 발달한 권력형태이자 이민족 까지 지배한 군사 민주제 제국으로 보는 견해 등 여러가지 설이 제출되어 있다. 정주민을 대량으로 붙잡아 와서 북쪽 변방에 부락을 만들고 생산활동에 종사시키는 한편, 그곳을 북방의 군사 거점으로 활용하는 일은 개별 부족차원에서는 수행하기 힘들다. 이는 적어도 국가 차원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선우는 여러 지역 출신의 고문단과 부족장 회의 결정 사항을 존중하면서 군사권과 행정권, 그리고 종교적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던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중국이나 유럽과 같은 정주 사회의 척도를 가지고 유목 국가를 평가하여 흉노를 국가 형성 이전 또는 그 과정에 있는 상태로 보아서는 안된다. 흉노와 같은 통치 형태야 말로 기마 유목민의 국가라고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위의 국가 체제에 관한 설 가운데서 3, 4, 6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