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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 그들은 누구인가?

전적이고 극단적인 사랑과 우정

극한 추위, 팽창과 좌절의 역사에서 형성

<이 원고는 Chindia Plus 2016년 12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올해 23세인 안젤리나 니콜라우(Angela Nikolau)는 루퍼(roofer)다. 루퍼는 높은 건물이나 초고층에 침투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다. 모스크바 출신인 그녀는 청바지에 티셔츠, 혹은 여성스러운 치마나 타이츠를 입고 전 세계 고층을 제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여기는 한 발자국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맞닿아 있는 공간이지만 그녀에게는 안방처럼 편안해 보인다. 남자 친구의 한 손을 잡고 웃으며 매달리거나 넘어질 듯 다리 하나를 올리는 요가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팔로워가 40만 명이 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화보 잡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러시아인은 극한을 추구한다.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Independent)는 안젤라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셀카 작가’라고 부른다. 어떠한 안전장비도 없이 그녀는 아찔한 고공에서 혼자 셀카를 찍거나 셀프타이머를 사용한다. 안젤라는 이미 모스크바 대학,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삭성당의 황금 돔 등 러시아의 고층을 점령하고 이제 해외 원정에 나서고 있다. 홍콩과 상하이, 유럽 등에서 완공되거나 공사 중인 500m 이상의 초고층 빌딩이 그녀의 공략 대상이다.

  아직 20대 초반에 불과한 안젤라는 왜 이처럼 위험한 작업에 나설까? 일단 루핑(roofing)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잡지사나 패션업계에서는 자신이 후원하는 루핑이 성공하면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루퍼들의 해외 원정에 이들 잡지사는 공공연히 돈을 댄다.

  러시아의 20대 젊은이들은 짜릿한 모험도 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고 게다가 돈까지 번다는 점에 큰 흥미를 느낀다. 지금 러시아에는 안젤라 같은 루퍼들이 모인 루핑 그룹이 수백 개나 있다. 올해 롯데월드타워의 지상 555m를 점령한 팀도 러시아에서 온 ‘온 더 루프(On The Roofs)’다. 러시아는 전 세계 최고, 최다의 루핑 팀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젊은이들이 단순히 돈이 되기 때문에 루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안젤라는 자신이 루핑을 하는 이유를 “한계가 없으면, 통제도 없다(Нетп ределан , етк онтроля)”는 철학적 논리를 들어 설명한다. 한마디로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한계의 끝에 죽음이 있을지라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인의 멘탈리티(mentality)를 이처럼 잘 설명하는 구절은 없다. 안젤라와 러시아 루퍼들은 죽음이 바로 눈앞에 놓여 있는 초고층 꼭대기에서 자신이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에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을 즐기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을 벅차게 느끼는 것이다.

  러시아인은 뭐든지 한번 하면 중간이 없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 끝까지 밀어붙인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므이(우리, мы)와 ’아니(그들, они)‘의 경계는 극단적이다. 친구인 ‘므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지만 친구가 아닌 ‘아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러시아에서는 자원봉사나 기부금 문화가 없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귀중한 내 돈과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녀 간의 연애와 결혼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 노래 ‘백만송이 장미’의 러시아어 가사에는 가난한 화가가 사랑을 위해 캔버스와 그림, 심지어 집까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백만송이 장미를 선물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1825년 12월 차르를 폐위하고자 한 데카브리스트 혁명의 주모자들은 종신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았다. 놀라운 것은 하인들에게 둘러싸여 귀족 생활을 누리던 귀부인들이 이혼을 마다하고 남편을 따라 수천km 떨어진 춥고 외진 이르쿠츠크에서 평생을 같이 살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인의 사랑과 우정은 전적이고 극단적이어서 불합리하게 느껴질 정도다. 손님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면 빚을 내서라도 대접한다. 손님이 돈을 내거나 집 청소를 도와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음주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인은 일단 술을 먹기 시작하면 쓰러질 때까지 먹는다. 절제와 중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러시아인과 하는 계약과 협상에도 절충과 타협은 찾기 힘들다. 러시아인들은 트럼프처럼 요구사항을 극단적으로 던져 놓고 차선을 얻어내는 잔머리는 굴리지 않는다. 러시아 시장바닥에서 가격 흥정을 하는 사람은 러시아인이 아니라 중앙아시아나 캅카스 출신들이다. 러시아인을 설득하려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심장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래서 한번 러시아인과 친구가되면 끝까지 간다.

  러시아 맥시멀리즘은 사회와 국가에도 작용한다. 차르 러시아부터 소비에트 러시아, 푸틴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국가 운명과 진로도 항상 극으로 치닫는다. 러시아는 18세기까지 유럽에서 비참한 농노제를 끝까지 고수했지만 1917년에는 역사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사회주의 정권을 출범시켰다. 21세기에 푸틴은 국제 관례를 무시하고 러시아 제국의 영토를 넓혔다. ‘북극의 곰’ 같은 러시아는 평상시에는 둔감해 보이지만 일단 변하기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 실험할 수 없는 사회과학은 극한의 모델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러시아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가.

혹독한 기후와 가혹한 통치에 단련된 러시아인

  러시아 맥시멀리즘의 배경에는 기후와 가혹한 정치적 경험이 있다. 러시아인들은 인간이 견디기 힘든 춥고 황량한 긴 겨울을 보내야 한다. 북극 곰들이 겨울에는 굶고 여름과 가을에 포식을 하는 것처럼 러시아인도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 짧은 여름에는 실컷 놀고 긴 겨울에는 추위와 싸우며 생존을 지켜나가야 한다.

  자연 적응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러시아인은 그렇게 진화해 왔다. 러시아인은 차르와 공산당의 가혹한 통치를 경험했다. 자유가 분출되는 반란과 혁명, 민주화의 해빙은 봄날처럼 항상 짧게 끝났다. 반면 긴 겨울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역사에서 개인의 이탈이나 자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레닌의 신경제정책, 흐루쇼프의 해빙,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한순간의 꿈처럼 지나갔다. 반면 길고 긴 푸틴의 권위주의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기후와 정치는 러시아인의 정신력을 단련시켰다. 러시아인은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바로 눈앞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아는 사람이 죽을 때조차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다. 운명에 수긍하고 즉각 체념한다.

2002년 10월 검은색 부르카로 얼굴을 가린 체첸 테러범들이 모스크바의 시내 극장에서 인질테러를 벌인 적이 있다. 체첸 게릴라 41명과 인질 129명이 희생된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TV를 통해 여과 없이 중계됐다. 인질극 진압 과정에서 TV 방송국 촬영팀이 현장 제압 후 바로 침투해 현장의 영상을 방송으로 송출했다. 악명 높은 러시아 알파부대 대원들에게 무자비하게 사살돼 머리와 가슴 등에 총탄을 맞고 숨진 테러범과 인질의 시신을 적나라하게 시청자에게 보여준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식사를 하면서 태연하게 이 장면을 보았다. 희생자의 가족들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채 체첸 테러범과 정부의 과잉진압을 비난했다.

러시아 사람들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디테일에 예민하고 약간의 변화에도 즉각 반응한다. 식민지 경험이 있으며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인들은 상황 파악에 나서고 변화에 지체 없이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인들은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일에는 무신경하다. 러시아인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하라쇼(좋다, хорошо)’가 아니라 ‘니 즈나유(난 몰라,)’다. ‘니 즈나유’는 진짜 모른다는 의미도 있지만 날 귀찮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일 때가 더 많다.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지옥과 같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을 꺼야 한다고 충고한다. 대신 ‘벽돌 쌓기’ 같은 자신만의 취미나 예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남과 비교하는 문화가 없다. 소련의 첼로 연주자 로스트로포비치가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겪었던 가장 큰 정신적인 충격은 지나친 경쟁과 남과 비교하는 문화였다고 한다.

러시아인의 겉모습과 내면

일상에 무관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러시아인에게 외부인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인은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웃지 않으며 먼저 잘 말을 걸지도 않는다.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가혹한 정치체제 속에서 살아온 러시아 사람들은 괜히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 혹은 자신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외부 사람과 만날 때는 얼굴에 잔뜩 힘을 준다.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모르는 사람에게도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공항의 세관원과 출입국 담당자는 차가운 침묵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러시아 사람을 처음 보는 외국인들은 여기에 주눅 들기 십상이다.

러시아인이 심하게 낯을 가리는 이유는 러시아가 국토는 광대하지만 외부와의 교류가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에 갇혀 있는 섬과 비슷하다. 극동의 항구들은 1년 중 4개월 이상 얼어붙는다. 러시아인은 역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와의 인적 교류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전쟁이 훨씬 더 많았다. 특히 산과 계곡이 없는 유라시아의 거대 평원은 외부의 침략에 쉽게 노출돼 있다. 바투·나폴레옹·히틀러가 이 러시아 땅을 유린했다.

외부에 대한 러시아인의 극단적 적대의식은 모스크바 등 대도시 스킨헤드(skinhead)의 잔혹한 인종차별로 나타난다. 러시아의 사회학자 알렉산드르 타라소프(Alexander Tarasov)는 1991년 시장경제 전환 이후 러시아 경제의 몰락, 가족과 교육 시스템의 붕괴를 스킨헤드 범죄의 배경으로 설명한다. 결손 가정에서 자라나고 학교에서 외면당한 가난한 10대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증오를 약자일 수밖에 없는 외국인에 대한 폭력으로 해소한다는 것이다. 스킨헤드 집단 연구에서 놀라운 점은 이들은 거의 읽고 쓸 줄도 모르며 인간관계가 극도로 협소하다는 것이다. 또래 친구 말고는 외부와의 관계도 단절돼 있다.

외국인이 러시아인과 친구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러시아인은 모르는 사람이나 이방인에게 는 지극히 사무적으로 대하거나 심지어 무시한다. 그러나 일단 대화를 시작하고 관심사나 가치관이 조금이라도 맞아떨어지면 금방 친구가 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며 차나 보드카를 나누어 마시다 보면 러시아인과 친구가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러시아에서 한때 다단계 판매사기가 성행했다. 인맥을 통해 한 사람만 포섭하면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을 엮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인과 친구가 되기 쉬운 이유는 이들이 대부분 정직하고 솔직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인은 속마음을 잘 감추지 못한다. 가식적인 미소를 짓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나를 보고 웃고 있거나 진지한 자세이면 친구가 되겠다는 시그널이다. 나에 대해 무관심하고 ‘니 즈나유’를 반복하면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러시아인과 친구가 되면 배신 염려는 떨쳐버려도 된다. 러시아 영화에서 ‘배신’이라는 주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반면 한국 영화의 흥행 보증 공식은 ‘배신과 복수’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는 변화무쌍하고 시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러시아의 남자들은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 한번 친구가 되면 평생 친구가 된다. 푸틴의 측근들은 이념이 아니라 푸틴에 대한 의리로 뭉친 집단들이다. 푸틴 또한 그가 모셨던 사브차크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과 옐친 대통령에게 의리를 보였다.

사랑 없이는 못 사는 러시아 여성

러시아 남자들이 의리를 외치고 밤을 새우며 보드카를 들이켜는 동안 러시아 여자들은 가사 일에 묻혀 산다. 구소련 시절 러시아 여성들은 높은 취업률을 보이며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러나 시장경제로 전환되면서 여성의 사회 활동을 뒷받침했던 주택·의료·탁아 등의 공공서비스는 붕괴됐다.

특히 구소련 탁아제도의 탁월성은 유명하다. 아이들은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마음껏 놀면서 자신의 재능을 찾을 수 있었다. 예술과 스포츠, 과학 영재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발굴됐다. 부모는 출근 시간에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저녁에 데려가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러시아 여성들은 남편의 쥐꼬리만 한 월급 혹은 이혼 등의 사정으로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 퇴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도 쉬지 못한다. 높은 물가 때문에 외식보다는 집에서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떨어진 옷을 수선하고, 세탁을 하고 집을 치운 후 다시 아침에 출근한다. 복지의 축소는 가부장적인 남자보다 여성들에게 더 큰 피해를 끼쳤다.

러시아 여성들의 남편과 가정, 자녀에 대한 헌신은 놀라울 정도다. 남편에게 집안일을 일절 시키지 않는다. 차나 커피, 물을 원하면 즉시 가져다 준다. 대신 남편의 사랑이 없으면 절대 참고 살지 않는다. 남편이 지나가는 여자들을 쳐다보는 것을 굉장히 치욕적으로 생각한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맞바람으로 응수하거나 지체 없이 이혼을 요구한다. 심지어 바람피우다가 현장에서 걸린 남편을 죽이기도 한다.

한국과 동양 사람들은 러시아 여성에 대한 로망이 있다. 러시아 여성 하면 금발, 짙은 속눈썹, 파란 눈, 백색의 피부, 팔등신의 균형 잡힌 몸매 등을 떠올린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러한 러시아 여성들의 외모만 보고 결혼하지만 성격과 문화 차이로 이혼하는 경우도 흔하다.

한국 남자들은 ‘돈’만 있으면 러시아 여성과의 행복한 결혼 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100% 잘못된 생각이다. 러시아 여성들은 물질적인 안락보다는 자신이 사랑받고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더 중시한다. 장미꽃 한 송이라도 적절한 분위기에서 선물받으면 너무나 좋아한다. 러시아 여성들은 아파트 크기나 자동차의 배기량, 그리고 남편의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을 비교하지 않는다. 안나 카레니나처럼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식은 포기할 수 있다. 대신 한국 여성이라면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남편의 핑계나 사소한 거짓말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면의 자존감 없는 남자들을 경멸한다. 자존감을 돈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는 뭔가 존경받을 구석이 있어야 한다고 러시아 여성들은 생각한다.

러시아인의 개성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극적으로 형성됐다. 극한의 추위에서 살아남았으며 국가의 엄청난 팽창과 좌절을 경험했다. 유라시아 제국을 지배하면서 높은 자존감을 형성했다. 러시아인은 극단적인 정치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의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쳤다. 러시아인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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