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오피니언칼럼, 기고[카프카스 여행기 4 – 조지아 / 둘]

[카프카스 여행기 4 – 조지아 / 둘]

카프카스 3개국 중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를 여행하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은 단순여행정보를 나열한 글은 아니고 필자가 보고 느낀 감상을 적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다. 틈틈이 정리해서 시리즈로 연재할 예정이다. (김상욱)

기쁜날엔 26잔, 슬픈 날엔 18잔….. 와인의 천국 조지아

카프카즈산맥의 남사면에 위치한 조지아는 세계적 포도산지로도 유명한데, 이미 8000년 전부터 이곳 사람들은 와인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또한 남쪽으로는 터어키, 페르시아와 마주하고 있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복합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이다. 조지아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몰려있을 뿐 아니라 그 절경이 스위스의 알프스를 능가한다고 해서 ‘동유럽의 스위스’라고 불리고 있다. 그래서 흔히들 스위스의 자연풍광과 이탈리아의 맛깔 난 음식, 프랑스의 풍미 깊은 와인을 한꺼번에 즐기고 싶다면 조지아로 가라고 한다.

조지아는 마을마다 ‘크베브리’라는 항아리(우리의 큰 장독처럼 생겼다)에 포도를 넣고 땅에 파묻어 자연적으로 발효되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와인을 만든다. 이때 포도송이를 통째로 넣고 으깨는데, 포도 껍질이 손상을 입으면서 껍질에 붙어있던 효모가 포도 알 속으로 들어가서 발효를 하여서 와인이 만들어진다. 우리네의 김장독에 겨우내 먹을 김장김치를 담그는 것과 너무나 흡사한 풍경이다. 알마티에서는 매년 11월말이나 12월 초가 되면 고려인들이 농사짓은 배추를 사고 김치 항아리를 묻을 땅을 파는 것부터 김장 담그는 행사에 돌입하게 되는데, 조지아에서는 9월이면 포도를 수확해서 이렇게 와인을 만든다. 유네스코는 조지아에서 크베브리를 사용하여 와인을 만든 양조법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이 전통방식의 와인은 오크통속에서 발효시키는 것에 비해 완전 밀봉이 되지 않아서 발효중에 산화가 일어나서 약간 텁텁한 풍미를 내는 조지아와인 특유의 맛을 낸다. 조지아가 세계적인 장수 국가인 이유는 각 지방에서 나는 포도로 만든 와인을 즐겨 마시기 때문이란다. 시그나기 가는 길의 포도밭에서 만난 조지아인 농부는 매일 대여섯잔의 와인을 마시기 때문에 자신은 건강하다고 하는데, 이 말을 믿고 똑같이 마신다면 건강해지기보다 건강을 잃기 십상일 것 같다. 대부분 도시생활을 하는 한국인들은 조지아 농부처럼 일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할 듯도 하다. 그래서 조지아인에게 와인이란 ‘삶’ 그 자체라고 하나보다.
조지아에는 이렇게 전통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어 먹지만 현대식 시설을 갖춘 대규모 와인공장들이 대량생산을 통해 국내소비는 물론이고 해외로도 와인을 수출하고 있다. 시그나기로 가는 길에는 이런 대규모 와인공장들이 있고, 그 중에서 한 두 곳을 방문해서 조지아와인 제조과정을 직접 보고 다양한 와인의 맛을 즐겨보시라. 더불어, 조지아와인의 특징과 분류법 등에 대해 배워보시라. 직접 맛보면서 배우는 조지아 와인에 대한 지식은 그 맛에 대한 기억과 함께 우리의 뇌에 아주 또렷이 기억될 것이다.

조지아의 와인의 종류

조지아 와인은 포도종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 프랑스 와인과는 달리 지역명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 특징이 있다. 조지아 와인의 대표격인 ‘무꾸자니’는 수도 트빌리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헤티의 무꾸자니 지역에서 수확한 사삐라비라는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물론, 조지아 와인 병에도 원산 지역, 마을 등을 표기하고 있고 프랑스 와인들과 같이 2 종류 혹은 그 이상의 품종들을 블랜딩하여 와인을 만들고 있는 추세이다.
조지아와인에 사용하는 포도는 565종이나 될 정도로 다양하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흑포도인 사삐라비, 청포도인 르카치텔리와 무츠반 이다. 과거 소련시절 조지아는 몰도바에 이어서 소비에트 연방에서 두 번째로 와인을 많이 생산하였고 품질이 우수한 와인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모스크바 시민들은 사삐라비 와인을 소련의 레드 와인 중에서 최고로 쳤다고 한다. 크베브리에 와인을 만들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양조 국가인 조지아 와인에 관심을 가지고 조지아 와인을 한번씩 맛 보시기 바란다. 조지아 와인중에서 유명한 와인으로는 무꾸자니, 사삐라비, 흐완치까라 등을 들 수 있다.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어디로?

조지아에서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수도 트빌리시에서 동쪽에 위치한 시그나기쪽으로 와인투어를 떠나보길 권한다. 아제르바이쟌에서 조지아쪽으로 넘어오면 반드시 통과해야 되는 성벽도시가 바로 시그나기인데, 이 도시를 보러가는 것 자체도 중요한 투어일정이고,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다양한 와이너리에서 무료와인시음도 할 수 있어서 와인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잡을 수 있는’ 코스이다.
트빌리시에서 동쪽으로는 기후와 지형이 포도가 자라기 좋은 기후환경일 뿐만 아니라 매 3km마다 기후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품종의 포도가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그나기로 가는 길가에는 포도밭이 널려있고 대형 와인공장부터 소규모 와이너리와 수많은 와인숖들이 있다. 와인공장에 딸린 와인숖이나 일반 와인숖을 막론하고 진열된 와인의 다양함이 보는 이의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든다. 당연히 조지아산 와인들인데, 와인의 종류만큼이나 와인병의 크기도 다양하다. 특히, 3리터, 5리터짜리 대형 와인병들이 눈길을 끌었다.

조지아 와인이 오래된 역사와 다양한 맛 깊은 풍미와 함께 여행자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끄는 이유는 바로 저렴한 가격이라는 점 때문이다. 비싼 빈티지 와인이나 아주 고급 와인이 아닌 이상 1병에 30~40라리(1만 3천원~1만7천원) 정도면 꽤 훌륭한 와인을 살 수 있고, 10~15라리 정도면 괜찮은 와인들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스탈린이 좋아했다는 흐완치까라 와인은 40라리면 살 수 있다.
조지아인들에게 와인은 생활음료이긴 하지만 무턱대고 그냥 마시지 않는다. 첫 잔은 신을 위하여, 두번째 잔은 나랏님을 위하여 세번째 잔은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심지어, 첫사랑의 행복까지도 기원하면서 와인을 마신다. 이렇게 와인잔을 들때마다 매번 의미를 부여하는 조지아인들은 과연 얼마의 와인을 마실까? 기쁜날이거나 평상시에는 26잔(와인잔 기준)을 마시고, 슬픈 날에는 18잔을 마신다고 한다. 또한 우리의 술문화처럼 술잔을 돌리는 문화가 있는데, 바로 소뿔같이 생긴 잔에 와인을 따르고 마신 후 잔을 돌린다. 뿔처럼 생긴 잔은 생긴 모양때문에 테이블 위에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계속 마시고 잔을 돌리게 된다. 한국의 주당들에겐 천국이나 다름없는 문화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와인은 사교나 멋진 디너의 반주 정도로 인식되어 있는데 반해 조지아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생활음료인 것을 여행중에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소규모 와이너리에서는 전통 크베브리 방식으로 만든 와인을 주인장이 긴 국자로 항아리에서 직접 퍼주는 와인을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와인에 얽힌 사연과 역사까지 들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와인을 증류시킨 조지아의 보드카 격인 ‘차차’까지도 맛볼 수 있다. 필자가 들른 와이너리에서도 주인장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권해주는 ‘차차’를 두잔이나 마실 수 있었다. 세번째 잔을 권하는 마음씨 좋은 주인장에 감동해서 우리 일행은 그 와이너리에 딸린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시인 푸쉬킨이 ‘ 조지아 음식은 시와 같다’ 고 극찬했던 그 조지아의 음식을 시켰다. (무엇을 먹었는지는 다음회에 …..) (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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