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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신 브로니슬라브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장]

“‘청춘과 ‘경험’의 합금… 

알마티엔지스트로이는 내 분신”

  동포사회의 큰 기둥이자 온갖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헌신해온 신 브로니슬라브 알마티 고려민족중앙회장이 최근 75번째 생일을 맞았다.

  비록 최근 알마티의 델타변이의 확산으로 인해 예정된 행사는 하지 못했지만 그는 특유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이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담담히 회상했다.

  인터뷰는 그의 회사인 ‘알마티엔지스트로이’ 회장실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사무실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기품있는 분위기였다. 이는 소박하면서도 낙천적인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는 사회 첫발을 이 회사에서 시작해서 평생을 건설현장을 지키며 살아왔다. 카자흐스탄 독립 후 추진된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신수도 건설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당시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건설 프로젝트들 중에 일부를 맡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기도 했다. 오늘의 주식회사 <알마티인즈스트로이>는 바로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의 결과라고 할 것이다. 현재는 천여명의 주주들이 있으며 누르-술탄, 알마티, 아틔라우, 우랄스크, 악타우 등 카자흐스탄 전역에 17개의 지사를 두고 있고 총 3천 500명의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지난 2016년 8월, 신 브로니슬라브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 회장은 22년동안 카자흐스탄내 고려인 문화발전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카자흐 정부로 부터 감사패와 축하화환을 받았다. 사진은 토그잔 부총리(당시 카자흐스탄 민족회의 수석부의장) 으로 부터 감사패를 받는 장면(사진 왼쪽 부터 투그잔 부총리, 신회장, 부인 베네라 빠블로브나)  / 한인일보 자료사진>.

  ㅇ. 안녕하세요? 먼저 75회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신 회장님에게 주식회사 ‘알마티엔지스트로이’는 분신과도 같다고 말을 들었습니다. 이 회사는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제가 가장 아끼는 조직이자 제 생애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회사 직원들 중에는 얼마전에 취직한 사람도 있고 오랫동안 나와 함께 일을 시작한 직원들도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는 많은 건설 전문가가 있고, 바로 이들이 맡은 일을 기술적으로 양심적으로 훌륭히 해 내오고 있습니다.”

  ㅇ. 회사의 특징을 한마디로 해주신다면?

  “우리 회사는 한마디로, ‘청춘’과 ‘경험’의 훌륭한 <합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과 젊은 세대들의 열정이 잘 조화를 이룬 조직이 바로 우리 회사입니다. 오늘날 많은 원로들은 오직 청년들만 믿고 자신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다음세대에 전승하는 것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세대간을 이을 튼튼한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ㅇ. 신회장님의 청년기 시절, 외삼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

  “네, 맞습니다. 저는 교사였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삼촌의 권유에 따라 건설현장에 발을 디딛였습니다. 당시, 저는 육체적 노동 외엔 아무것도 할 줄을 몰랐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성적이 꽤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입학할 아무런 동기를 갖지 못했고, 건설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던 것이지요. 건설현장에서 일년간 노동을 하면서 저는 평소 외삼촌의 가르침의 참뜻을 알게 되었고 대학 진학이라는 새로운 동기를 부여받게 되어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고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ㅇ. 한마디로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시면서 철이 드신 것이군요?

  ” 네. 제게는 이때 평생의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제가 팀장, 수석 엔지니어가 되면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나 나의 부하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며 현재도 그들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ㅇ. 비록 현장의 말단 노동자로 일했지만 신회장님은 이미 부하직원들을 품을 수 있는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계셨군요. 언제부터 자신이 리더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였나요?

  “세상에는 자신의 일을 잘하면서 지도자의 소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이런 분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다 좋은 지도자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학교다닐 때 제 스스로 리더의 자질을 느겼지요. 저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많이 하였는데, 조직의 리더가 될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번 주장으로 선발되었고, 저는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ㅇ. 최근, 젊은이들은 화려한 비즈니스의 세계에만 매료되어 그 이면에서 힘든 노동현장을 모르거나 그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우리 회사에는 ‘노동자 한가족’이라는 개념을 잘 계승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회사가 설립된 첫 날부터 일을 시작해서 현재는 자식과 손자 세대가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은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일에 대한 열성과 의지가 있고 회사에 필요한 일군이라면 계속 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소련 해체후 어려운 시기에 우리회사가 고난을 헤쳐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을 절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원로 직원들을 힘이 닿는데로 도와주고 있고, 건설인의 날에는 꼭 이들을 초대해서 당시의 노고를 치하하고 있습니다”

  ㅇ. 창립 멤버들에 대한 의리가 대단하시군요

  “한 가족같은 직장 분위기의 힘은 회사가 어려울 때 잘 드러납니다. 저는 소련 해체 직후인 90년대에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 같은 절망감을 느겼습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돈이 없었고 직원들은 식구를 먹여살리려고 아무 일이나 찾아헤매었다.직원들을 모아 집단 토의를 벌이기도 했지요. 당시엔 아무 곳으로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직책에 상관없이 아무일이나 하기로 했습니다. 돈이 없으니 물물교환도 했지요. 직원들을 어떻게 먹여살릴까 하고 계속 생각하니 아이디어가 나오더군요. 정말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별별 일을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신수도건설이 시작되자 우리가 그 곳에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니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첫 수주 공사를 맡았고, 이를 수행하면서 현재의 ‘알마티엔지스트로이’의 연대기를 써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힘을 모으면 태산도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지난 2014년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 창립 25주년 기념식에서 신 브로니슬라브회장이 이시모프 알마티시장(당시) 으로 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다. / 한인일보 자료사진>

  ㅇ. 당신이 긍지를 느끼는 건설 프로젝트를 몇가지 소개해주신다면”

  ” 자랑인것 같지만 그런 건설 현장들이 많습니다. 90년대에 대해 말한다면 아틔라우시의 도로 건설입니다. 우리는 도로와 아틔라우라는 개념이 양립될 수 없다는 건설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곳은 기후조건이 어려워 우리가 도로를 건설하기 전에 상시적으로 수리를 했지만 그것이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보기로는 아틔라우의 도로가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좋은것 같습니다. 1998년에 건설한 아스타나 이심강변 도로건설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오늘 이것이 도시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최근의 건설현장에 말한다면 알마티시의 판필로브거리 정비작업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곳은 보행전용 도로로써 아늑하여 시민들이 저녁이나 밤에 산보하기를 즐깁니다.”

  ㅇ. 당신은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의 회장으로서 사회적 활동도 왕성하신데…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으로서 나는 우리 디아스포라의 성장과 발전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없이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나는 동포사회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걱정을 합니다. 현재 저는 지금 별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 말 이후 그는 크게 웃었다) 후배들이 다 알아서 하거든요.”

  ㅇ. 평소 어떤 일상을 보내시는지요?

  “저는 당구를 즐기고, 겨울에는 식구들과 설매타기, 한달에 한번 친구들과 고기잡이, 친척들의 생일이나 기타 경사스러운 날에 참가합니다.”

  ㅇ. 회사를 경영하시면서 이러한 일상생활을 누릴려면 시간을 최대한 절약해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요?

  “시간을 놓치지 말고 모든 것을 제때에 다 해는 것을 습관화 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일만 해서는 않됩니다. 자신이 일에 타버릴 수 있거든요.”

  ㅇ. 맞습니다.  스스로 번아웃되는 사람들이 있죠. 끝으로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저는 스포츠를 즐겨했고, 이때 단련된 체력으로 버텨나갑니다. 스포츠를 해본 사람은 나의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겐 가정, 친구들, 사회사업이 있으니 내가 일만 한다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ㅇ.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 따마라 / 정리 : 김상욱)

<신회장 간단 약력>

 브로니슬라브 세르게이비치 누구?

  주식회사 <알미티엔지스트로이>이사장이다. 그는 1967년 6월부터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건설업에 반세기를 바쳤다. 그는 1946년에 구리예브(현 아틔라우)시에서 태어났다. 슬하에 두 딸과 두명의 손자를 두고 있다. 부모님은 교사였고 어린시절은 구리예브주 마함베트구역 츠깔로브촌에서 자랐는데, 그의 부모들이 1937년에 바로 이 곳에 강제이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1982년에 알마아타 인민경제대학에서 경제사를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알마티엔지스트로이에 최말단 직원으로 입사하여 도로공사 현장에 투입되었다. 이후 기사, 현장소장, 수석엔지너어, 관리국장, 트레스트 지배인으로 승진했다.

  1989년 6월 23일에 주식회사 <알마티엔지스트로이> 총 지배인으로 선출되었다.

  2008년 3월부터 신 브로니슬라브 세르게예비치가 주식회사 <알마티엔지즈스트로이> 이사장이다.

  카자흐스탄공화국 건설분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훈 건설가 명칭을 받았고, 카자흐소베트사회주의공화국 최고소베트 표창장 (1968년), <아스타나>메달 (1998년), <카자흐스탄공화국 독립 10주년> (2001년), <예렌 옌베기 우신> 메달 (2002년), <카자흐스탄 헌법 10주년> 메달 (2005년), <카자흐스탄공화국 국회 10주년> 메달 (2006년, <아스타나 10주년>메달 (2008년), <쿠르메트>훈장 (2008년),  <카자흐스탄공화국 독립 20주년>메달 (2011년), <파라사트>훈장 (2015년)등을 받았다.

  신 브로니슬라브 세르게예비치는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 회장으로서 십수년동안 동포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는 동포사회의 여러가지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헌신해 왔다.

  특히, 지난 2016년엔 22년동안 카자흐스탄내 고려인 문화발전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카자흐 정부로 부터 감사패와 축하화환을 받기도 했다.

  그는 스포츠맨이였고 당구와 산악스키타기를 좋아한다.

(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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