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개헌 국민투표와 ‘새로운 카자흐스탄 건설’
김상욱(알마티고려문화원장/한인일보 주필)
최근 카자흐스탄에서는 제2공화국의 출발이라고 불릴 만큼 대대적인 정치개혁과 권력구조 개편 조항을 담은 헌법 개정안이 77.18%의 찬성으로 통과되었고 6월 8일 공식 발효되었다.
이로써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올 연초에 발생했던 ‘1월 사태’ 때 집단안보조약기구에 평화유지군의 파병을 요청하면서 다소 인기가 떨어졌던 것을 만회함과 동시에 ‘새로운 카자흐스탄 건설’로 나아가기 위한 국정 동력을 확실히 확보하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당초,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측근들과 그 지지세력의 영향력이 약화되었지만 여전하기 때문에 개헌 국민투표의 지지율이 70%를 넘지 못할 가능성도 있고 만약 이를 경우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혁과제들은 좌초되고, 그의 대통령직 연임도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지난 6월 5일에 실시된 개헌 국민투표에는 1천173만4천 642명의 유권자 중 68.06%인 798만6천293명이 국민투표에 참가하여, 찬성77.18%, 반대 18.66%, 무효와 기타를 합쳐4.16%를 기록했다.
‘카자흐스탄의 초대 대통령 – 엘바스(국부)’에 관한 조항이 삭제된 개정 헌법이 8일, 발효됨에 따라 나자르바예프와 그의 가족들에게 주어졌던 특권이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슈퍼 대통령에 의해 운영되던 국정에서 강력한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합리적 대통령제 국가로 전환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마울렌 아쉼바예프 상원의장은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민투표, 선거 등에 참여는 가능하나 정치인으로서 카자흐스탄의 정치에 간섭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초대 대통령과 국정을 협의를 해왔던 관행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개정헌법에서는 나자르바예프를 카자흐스탄의 건국의 아버지로, 민족 지도자 엘바시(국부)로 언급하는 것과 그 지위의 불변성도 배제했다.
또한 아틔가이 아르스타노프 내무부 행정경찰위원회 위원장은 국민투표 기간 동안 공공질서 위반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고, 상하이협력기구(SCO) 에서 파견된 참관단도 이번 개헌 국민투표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었다고 보고서를 제출해 투표 공정성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었다.
헌법 개정안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이번에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된 헌법 개정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이번 개헌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존 ‘슈퍼 대통령(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기존 국가형태에서 강력한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먼저, 의회의 기능을 강화시켰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의기능과 함께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따른 필요한 법률의 법률 제·개정권, 나라살림에 대한 예산심의와 감사 기능의 강화 등이다.
이를 위해 개정안은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완화시키는 조항들을 집어 넣었다. 즉, 상원과 지방정부의 구성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을 제한했고, 집권기간 중 대통령의 정당가입 금지, 친인척의 정부 또는 준정부기관에서 고위직을 맡을 수 없도록 했다. 또한 대통령이 재임 기간 정당에 가입할 수 없고 친인척은 고위공직을 맡을 수 없도록 했다.
둘째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 인권을 강화시켰다. 헌법재판소를 신설하고, 사형을 금지시켰다. 헌법재판소장은 상원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6년 임기의 11명의 재판관은 면책특권을 부여했다.
아울러 사형이 금지되고 헌법에 따라 인권위원회가 구성되었다. 헌재가 인권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헌법에 명시된 시민의 권리와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법률 행위가 위헌인지를 심사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지위, 권한 및 특권에 대한 조항의 삭제이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카자흐스탄 국가 설립자로서 역할은 남겨 놓되, 엘바스(국부)로서 지위와 또 그에 따른 특혜는 박탈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1991년부터 2019년까지 약 30년간 카자흐스탄을 통치해온 초대 대통령이었던 나자르바예프로 부터, 더군다나 대통령직에서는 자진 사임을 했지만 국가안보회의와 민족총회 종신 의장직은 유지해 함으써 여전히 막강한 국정 영향력을 행사해 온 그의 힘을 제거했다.
정치개혁의 시발점, 나자르바예프의 자진 사임과 이중 권력
3년 전인 2019년 3월 19일, 거의 30년 동안 카자흐스탄을 이끌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대통령직에서 자진 사임했다. 나자르바예프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의 대통령직을 상원의장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에게 이양한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토카예프는 첫 번째 법령으로 수도의 이름을 아스타나에서 누르술탄으로 바꾸었다. 며칠 후 나자르바예프는 토카예프와 정부 고위관료들과 함께 전통명절인 ‘나우르즈’ 행사에 참가하여 30년 동안 짊어진 권력의 무게를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새 대통령은 안전보장이사회(NSC) 의장이자 집권 여당인 누르오탄당의 총재였던 나자르바예프에게 국정을 의논해야 했다. 권력은 여전히 나자르바예프의 손에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고, “카자흐스탄에는 이중 권력이 없다”는 토카예프의 발언은 시중의 이러한 의심을 없애지 못했다.
2019년 6월 치러진 대선에서 토카예프가 당선되었지만, 나자르바예프는 여전히 카자흐스탄의 국내외 정책에 간섭을 했다. 친정부 전문가들은 이를 “카자흐스탄의 전력 수송 모델”이라고 표현했고 이런 행태는 ‘1월 사태’까지 이어졌고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개혁이 본격화되었다.
카자흐스탄의 1월 사태
새해 들어 차량용 LPG가격이 2배 이상 폭등하자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카자흐스탄 서부의 유전지역인 ‘자나오젠’에서 벌어졌고, 이는 곧바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알마티에서는 이틀 뒤인, 4일 부터 시청앞 광장을 중심으로 시위가 발생했고, 자정을 넘기면서 폭력화되기 시작했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5일 새벽 시위 사태가 심각한 최대 도시 알마티 등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통금 조치를 취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서는 한편, 아스카르 마민 총리가 이끄는 내각 사퇴안을 수리하고, 알리한 스마일로프 제1부총리를 총리 권한 대행에 임명했다.
그러나 5일 새벽, 시위대 수천 명이 도심 간선도로를 점거하고 가두 행진을 벌이다 최루탄과 섬광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차량이 시위대의 방화로 불타고, 경찰관이 폭행당하는 등 폭력 사태가 빚어졌다. 이는 시위 초기 물가인상에 항의하고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에서 벗어나 이후 일주일간 225명이 사망하고 4천353명이 부상당하는 ‘1월 사태’의 서막이 오른 것에 불과했다.
시위가 가장 격렬했던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의 경우, 극단주의 단체들로 보이는 세력이 가세하면서 시위대가 관청을 점령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등 과격 양상을 보이자, 정부는 이번 시위를 국내외 극단주의 단체에 의해 주도되는 테러행위라고 규정하고 강경 무력 진압에 나섰다.
토카예프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요청했고, 러시아를 위시한 5개국의 평화유지군은 카자흐스탄의 국가기간 시설인 댐, 발전소, 전력송배전 시설, 방송국, 상수도 시설 등의 경비 업무에 투입되었다. 이후, 카자흐스탄의 군경들이 국가기간 시설의 방어 임무에서 진압에 투입될 여력이 생기게 되자 무장과격시위는 급격히 약화되었고 사태는 곧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한편, 알마티국제공항도 당시 시위대에 의해 점거 당해 시설이 파손됨으로써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5일 인천서 알마티에 도착한 한국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 탑승객 70여 명도 공항 청사를 빠져나오지 못해 한때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다.
1월 사태를 바라보는 토카예프와 정부의 시각
1월 사태의 원인을 놓고 카자흐스탄 당국과 서방간에는 시각차가 존재한다. 미국과 서방은 시위대에 대한 무력사용을 ‘조준사격’, ‘과잉진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비난했고, 이후의 사태수습과정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국내언론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여기서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바라보는 시각만 소개한다.
카자흐스탄 당국이 ‘1월 사태’를 어떻게 보는 지는 소련권 안보협의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 정상들이 ‘1월 사태’의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화상 회의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CSTO 화상 정상회의에서 이번 사태를 무장 반군들의 쿠데타 시도였다고 규정하고, 이들의 최종 목적은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정부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위 초기 물가인상에 항의하는 순수한 민심을 이용해서, “외국 무장세력을 포함한 테러리스트들이 직접 소요 사태에 참여했다”면서 “그들은 무기와 군사 장비를 탈취하려 시도했고 군인 2명을 참수하는 등 아주 잔인하게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정부 대변인은 국영 ‘하바르24’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1월 사태’의 성격에 대해 “사회 혼란과 국가 전복을 노린 하이브리드 테러 공격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외교부도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소요 사태에 분쟁지역 전투 경험을 가진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원들이 참여했다”면서 “극단주의 테러 조직이 사회 불안을 고조시키기 위해 (주민들의 물가 급등 항의 시위) 상황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외교부는 국제인권단체가 카자흐스탄 시위사태 때 정부의 과도한 무력사용과 인권침해 사례를 제기하자 “국제인권단체와 열린 대화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 면서 국제 인권단체들의 이같은 주장을 일축하면서 인권 운동가와 변호사가 포함된 권위 있는 시민 사회 대표자들로 1월 사건 조사위를 구성했고 인권 보호를 위해 모든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1월 사태’의 원인을 두고 일각에서 제기된 전·현직 대통령 간 권력다툼에서 야기된 사회혼란상이라는 분석에 대해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은 이를 부인한 바 있고, 개헌 국민투표에 대해서도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새로운 카자흐스탄 건설
‘1월 사태’ 수습 직후인 1월 27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제21차 누르오탄당 전당대회에서 만장일치로 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로써 토카예프 대통령은 ‘1월 사태’ 와중에 국가안보회의(NSC) 의장직을 넘겨받은 데 이어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집권여당의 대표직까지 인수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은 정당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면서 올해 말쯤 당대표 재신임을 묻고 당을 떠날 수 있음을 시사해 기존 정치문화에 신선함과 대대적인 정치개혁을 암시했다.
평소부터 카자흐스탄의 정치개혁 필요성을 강조해온 토카예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투명하고 공정한 정치환경 조성의 보증인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고, 대통령의 헌법상의 의무는 국가기관들의 권력균형을 잡아 국민을 위한 본연의 임무를 더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1월 사태’의 기저에는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문제점이 있다고 진단한 토카예프는 이를 방조 또는 조장해온 정치인들에 대한 개혁과 함께 국가 권력구조에 대해 재설계를 해야 한다는 확신한 것이다. 이름하여, ‘새로운 카자흐스탄의 건설’이다.
그러나, 토카예프는 이에 대한 청사진을 미리 제시하면 이를 두고 호사가들 사이에 갑론을박 할 수 있고 국론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본인은 섣부른 개혁 청사진의 제시보다는 묵묵히 일을 해나가겠다고 말하므로써 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더해주었다.
요컨대, 그는 급변하는 카자흐스탄이 처한 지정학적 위협요소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변되는 지역내 불안요소에도 불구하고 민심의 지지를 등에 업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초강대국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우군의 지원까지 더해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의 독립 초기 신생 독립국의 토대를 닦은 일 다음으로 가장 잘 한 것이 바로 토카예프를 후계자로 지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느냐는 그의 정치개혁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