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 ‘주치 울루스 성립 800주년 특별 기획’ – 8
오아시스 농경민의 원래 고향은? 김상욱(고려문화원장/한인일보 주필) 우리는 지난호까지 기원전부터 유라시아 초원에 살았던 유목민들의 역사를 훑어보았다. 초원의 유목민과 함께 중앙유라시아 역사의 또 하나의 축을 이루어온 오아시스 세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오아시스 세계는 농경을 바탕으로 하여 대부분 도시를 끼고 있었다. 오아시스는 건조 지대에서 사막이나 초원 혹은 산악에 의해 서로 단절된 지역을 말한다. 지난 호까지 살펴본 초원 세계 남쪽에 위치하며 서쪽은 카스피해, 서남쪽은 이란과 접하고, 남쪽은 인도로 통하고, 동쪽은 중국의 간쑤 와 중원으로 이어진다. 이번호에서는 잠정적으로 오아시스 세계를 중앙아시아로 총칭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파미르 고원을 경계로 하여 동부(중국 신장)와 서부(구 소련의 중앙아시아)로 대별하여 각각 중앙아시아 동부와 중앙아시아 서부로 부르기로 한다. 오아시스 세계의 역사는 항상 초원 세계와 남북 관계를 이루며 전개되었다. 그리고 동부는 중국 문명, 서부는 지중해-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 문명과 교류했으며, 양쪽 모두 인도 문명, 그리고 불교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문명의 교류를 염두에 두고 이번 호부터 농경과 도시문명의 발생에서부터 이 지역 거주민들이 투르크화-이슬람화하는 시기까지 일단 정리해 보고자 한다. 오아시스 농경의 시작과 중앙아시아 서부의 상황 오아시스 농경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시기는 대략 기원전 6천년경으로 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동지역의 패권국가였던 이란과 가스매장량이 풍부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경지대의 제이툰 유적에서 보리와 밀의 흔적, 세석기와 채도, 그리고 가족단위로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주거지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단(아무다리아강 중류로 합류하는 지류이 계곡)에서부터 아프카니스탄 국경 지대로 확장된 정주 농경문화가 확인된다. 아무다리아 강 하류지역(호라즘), 아무다리아강과 시르다리아강 사이를 흐르는 자라프샨 강 유역(소그디아나), 시르다리아 강 상류지역(페르가나)에서도 정주 유적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4천년경에는 낙타와 소가 이끄는 수레를 사용했는데, 초원의 청동기 문화와 말 이용 문화를 소유한 사람들이 남하함으로써 말을 이용하는 문화가 더해지게 되었다. 언어학자 하르마타의 가설을 참고하면, 오아시스 농경을 했던 인도 – 이란인(인도-아리안계)들의 원래 고향은 중앙유라시아 스텝(초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기원전 6천년경 동유럽에서 신석기 농업을 행하고 기원전 4천년경에는 코카사스(카프카즈)에서 카스피해와 아랄해 방면으로 진출했다. 이 사람들이 이른바 ‘코카소이드’이다. 기원전 4천년경 중반에 개발된 말 이용문화, 그리고 가벼운 이륜 수레와 사륜 수레가 사람들의 활동범위를 넓혀주었다. 그 가운데 한 지파인 원 인도인은 팔레스티나와 시리아 방면으로 진출했다. 그리하여 원 인도 문화가 메소포타미아 주민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들은 한편으로 원 드라비다인 사회로 들어오고 이어 간다라까지 진출한다. 마치 이 이동을 추격이라도 하듯이 원 이란인이 남하하여 카스피해 서쪽 연안과 시베리아 남부로 확산되었다. 중앙아시아 서부 농경지대의 토착 문화와 언어는 기원전 2천년경후반까지 그런대로 보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이동의 시대에 언어와 사람의 형질 모두 원 ‘인도-이란인’에게 압도당했다 그러한 모습은 <사기> ‘대원전’과 <한서> ‘서역전’에 묘사된 시기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들 사서는 기원 전후 무렵까지 페르가나에서 파르티아에 이르는 지역 거주민들은 언어가 달라도 서로 간에 말이 통하고 눈이 움푹 들어가고 수염이 많다고 묘사했던 것이다. 그들의 원거주지가 북방 초원이었다는 점에서 중앙아시아 서부 오아시스 농 경세계의 역사는 처음부터 초원 문화와 혼합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동부의 상황 톈산 동부의 북쪽 기슭, 투르판 분지, 하미 주변과 타림 분지 주변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동부(신장)에서도 오아시스 정주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중국 연구자들은 간쑤, 칭하이, 중원문화의 관련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들 여러 문화와 신장 지역 유적의 관계는 사실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 동부 지역 문화를 담당한 사람들의 계보는 꽤나 복잡하다. 하미와 우룸치 근교의 후기 청동기 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인골이나 미라는 몽골로이드 계통과 코카소이드 계통으로 대별된다. 타림 부지 주변의 오아시스에서도 적지 않은 인골과 미라가 발견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코카소이드의 특질과 말 문화를 소유한 사람들이 아마도 인도-이란계의 언어를 갖고서 기원전 2천년 경 무렵 초원 세계 동부와 톈산 남쪽까지 진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사람들과 인도, 아프카니스탄까지 남하한 집단, 그리고 파미르- 페르가나 계통의 코카소이드는 각각 하미와 톈산 중부와 동부지역에 자리잡거나 호탄과 롭 노르 호수까지 진출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동쪽으로 온 몽골로이드계통과 혼거하거나 둘 사이에 혼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