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한국총영사관, '카자흐스탄 시장 진출 세미나' 개최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인터콘티넨탈 호텔 콘퍼런스홀에서 지난 18일 열린 '2024 카자흐스탄 시장 진출 세미나'에서 카스피안그룹의 김 율리아나 신도시 프로젝트팀장이 '알라타우' 신도시 건설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사진 : 김상욱)  카자흐스탄 전 상원의원인 고려인 채 유리 회장이 이끄는 카스피안그룹이 현지에서 인천시 면적과 비슷한 대규모 신도시 건설을 추진한다.   주알마티한국총영사관(총영사 박내천)이 지난 18일 경제수도 알마티 소재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개최한 '2024 카자흐스탄 시장 진출 세미나'에서 김 율리아나 카스피안그룹 신도시 프로젝트팀장은 국제공항 건설이 포함된 '알라타우'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온오프라인으로 열린 세미나에는 현지에 진출해 있거나 중앙아시아 시장진출에 관심을 가진 한국의 40여개 기업과 알마티시 투자공사, 코트라 알마티무역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알마티시 북쪽에 추진 중인 '알라타우 신도시 프로젝트'는 경제특구를 포함한 교육과 의료, 첨단기술 지구, 금융과 레저 기능을 갖춘 첨단 스마트시티 건설을 표방하고 있다.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알라타우 개발을 위해 경제자유지역특별법을 제정했고, 지난 5월 카자흐-싱가포르 비즈니스포럼에서 2029년까지 1천500억 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카스피안 그룹은 지난해 카자흐스탄 정부의 '알라타우 신도시' 개발 시행 총괄사로 선정됐다.   김 팀장은 연간 4천만 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카자흐스탄 최대 규모의 국제공항 건설, IT와 인공지능(AI) 전문 인력 양성 교육기관 개설,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계해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운송 허브 구축 청사진 등을 소개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장을 지낸 채 회장이 1992년에 창업한 카스피안 그룹은 카자흐스탄의 대표적인 투자 지주 회사로 도시개발, 은행 및 금융, 건설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상욱)

고려인 동포 강제이주 첫 정착지, 카자흐에서 홍보 활동 추진  OKFriends봉사단 출발      김영근 센터장과 봉사단원들이  20일, 인천공항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다짐하고 있다(사진 : 재외동포협력센터 제공)      재외동포청 산하기관인 재외동포협력센터(센터장 김영근, 이하 ‘센터’)는 ‘재외동포와 함께하는 OKFriends 봉사단’을 11월 20일부터 11월 26일까지 CIS 지역에 파견, CIS 지역 동포사회와 교류 활동을 추진하면서 ‘재외동포 차세대동포 모국 초청연수’를 적극 홍보한다. 특히 OKFriends 봉사단은 23일부터 26일까지 알마티를 비롯, 캅차가이, 우슈토베 및 바슈토베 등을 방문, 현지 차세대 동포와 교류하고 현지 동포사회를 경험하며 ‘차세대동포 모국 초청연수’의 의의와 성과를 설명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전개한다. OKFriends 봉사단은 카자흐 현지에서 우슈토베 및 바슈토베(고려인 강제이주 첫 정착지 표석 및 공동묘지 등 참배) 방문, 캅차가이 한글학교 봉사활동, 국립 고려극장 방문 등의 활동을 앞두고 있다.  김영근 센터장은 “올 여름 모국연수에 헌신한 OKFriends 봉사단이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더 많은 재외동포 청소년·대학생이 내년도 모국연수에 참가하기를 바란다”면서 “재외동포와 함께하는 OKFriends 봉사단의 홍보 활동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현지 동포사회가 평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센터는 25년도에 하계(8차례), 동계(2차례) 연수가 진행될 예정이며, ① 한인정체성 함양 및 유대감 강화(한국 역사문화 이해, 유적지 및 관련 시설 방문, 한국 지역 문화 체험), ② 글로벌 리더 육성(글로벌 중추국가 실현 기여 방안, 거주국과 한국과의 관계 이해)으로 6박 7일간 모국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다. (김상욱)

김상욱 고려문화원장/본지주필 카스피해 횡단 국제 운송노선(TITR)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물류 비용은 곧 제품의 현지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수출경쟁력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물류네트워크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는 제품의 경우는 배에 실어 운송하고 부피가 작고 고가의 제품의 경우 항공운송을 하지만, 철도 운송은 비용대비 시간단축 측면에서 매우 유효한 운송수단이다. 실제로, 우리기업들의 대 중앙아, 동유럽 수출의 경우 주로 유라시아 횡단철도를 통해 화물운송을 해 오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경제제재가 시작되면서 전통적인 물류망이 흔들리자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물류 네트워크에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해당 노선은 '카스피해 횡단 국제 운송노선'(TITR)이다.  '중부회랑'(미들 까리도르) 라고도 불리는 이 노선은 카자흐스탄을 동서로 횡단해서 카스피해를 건너는데, 기존 시베리아횡단 철도(TSR) 와 달리 러시아 영토를 거치지 않는 유일한 유라시아 대륙횡단철도 루트이다.     이를 통해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 및 육상 루트를 독점함으로써 적지 않은 철로·도로 통과 운송료를 징수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이 노선을 통한 화물 운송량이 2022년과 비교했을 때 86퍼센트나 성장해서 276만 톤을 기록했고, 올해는 420만 톤이 운송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세계은행은 "2030년엔 3배 증가해 1,100만 톤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현재 카자흐스탄은 이 노선을 확대하기 위해 국가 차원 인프라 투자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장기화되는 우크라이나 분쟁으로 러시아와의 무역에 차질을 입자 그 대안으로 중앙아시아와의 무역 파트너 관계를 확대 구축하는 한편, 유럽과 중앙아시아로의 안정적인 운송 루트를 확보함과 동시에 전통적 물류 루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대안으로 이 노선을 주목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국내 물류 업계의 카자흐스탄 출장이 잦아지고 있고 우리 제품을 실은 컨테이너 화물 기차가 그대로 철도 레일이 깔려있는 대형 선박으로 들어가서 카스피해를 건너가는 현장을 둘러보고 물류 효율성을 체크하고 있다. 화물 기차가 그대로 선박 안으로 들어간다고?   이것을 '레일페리' 라고 하는데,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부닷가에 내렸다가 다시 선박에 선적하는 것이 아니라 화물을 싣은 기차가 레일이 깔려있는 배 속으로 그대로 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카스피해를 건넌 후 화물 기차는 배에서 나와 유럽연합, 우크라이나, 튀르키예를 잇는 선박들이 대기하는 조지아의 포티 항구까지 달리게 된다. 그만큼 화물의 선적과 양하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카스피해가 마치 한반도와 비슷한 모양이고 크기는 조금 더 큰 편이다. (동서는 약 300km, 남북은 약 1,200km)  이 카스피해에 동쪽 항구인 카자흐스탄의 악타우항과 서쪽인 아제르바이잔의 바쿠항을 연결하는 노선에 레일 페리가 운항되고 있다.     이 항로를 이용하는 주요 화물을 살펴보면, 첫째, 카프카즈 지역과 중앙아시아 간에 이동하는 화물. 둘째, 대 이란 제재로 인하여 이란을 경유하지 않으려는 화물. 셋째, 러시아를 경유해서 가지 않으려는 우크라이나, 터키, 유럽연합. 미국으로 향하는 화물들. 넷째, 러시아가 경유 운송을 허락하지 않는 항목에 걸리는 화물들, 예를 들면 유럽연합 식료품. 다섯째, 러시아의 비싼 부두 보관료나 까다로운 통관 절차, 화물 정체를 피하고자 하는 화물들이 주로 운송된다.   그동안 러시아와 이란을 거치지 않고 유라시아를 동서로 관통할 방법은 없었는데, 이 카스피해 횡단 루트는 러시아와 이란을 우회하는 유일한 통로로써 ‘친서방 루트’로 활용되고 있다.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러-카자흐간 갈등의 원인이 되다. 김상욱 고려문화원장/ 본지 주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바이코누르는 카자흐어로 '약초가 많은 갈색 땅'을 의미한다.   신생 독립국 카자흐스탄의 미래를 밝게도 어둡게도 할 요소 중 핵심적인 세 요소를 꼽으라면 러시아, 중국, 카스피해의 석유 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경을 접하고 있는 초강대국 러시아와 중국은 신생국 카자흐스탄에 때로는 협박을 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달콤한 유혹의 손짓을 보내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은 국경 문제를 놓고 이웃의 초강대국을 자극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익에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그들의 압력에 양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카자흐스탄은 카스피해에서 미국석유회사 및 국제 송유관 콘소시엄과 상당히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웃한 중소 주변국들은 정치적 경쟁심과 동시에 질투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독립 초기, 카자흐스탄은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아제르바이잔과 우크라이나와 같은 독립국가연합(CIS)들 가운데 가장 선두에 위치해 있었다. 경제적 개혁과 정치적 안정 측면에서는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보다 훨씬 더 건강해 보였다. 이 시기 신생국 카자흐스탄이 중앙아시아에서 벌인 '빅 게임'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했다.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를 놓고 러와 갈등 발생   카자흐스탄은 루블과 텡게화의 통화 쇼크로 인한 동요를 진정시키자 마자 보리스 옐친 정부와 관계를 긴장시키는 또 하나의 분쟁이 발생했다. 그것은 우주발사기지 바이코누르의 운명에 관한 것이었다. 소련시절 미국과 함께 우주 패권을 다투던 핵심적인 장소였던 이 기지는 양국간의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바이코누르의 폐쇄를 요구하는 카자흐스탄의 여론은 모스크바 지도부를 격노하게 했다.   러시아인들이 소련의 우주 연구 계획의 핵심인 바이코누르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당초부터 바이코누르는 최초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기지로 건설되었다. 후에 그 역할이 수정되어 수많은 우주선들의 역사적 발사를 위한 기지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1957년 지구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 그리고 1961년 유리 가가린에 의한 최초의 궤도 비행, 1963년 최초의 여류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의 비행과 뒤이은, 소유즈, 프로톤, 치클론 과 같은 우주선 발사가 있었다. 당시 이러한 업적은 미국의 유사한 프로그램을 앞질렀다. 그래서 러시아 국민과 학자들 특히 바이코누르에서 우주 연구계획을 주관했던 사람들에는 커다란 자긍심의 원천이었다.   원래 바이코누르 는 카자흐어로 '약초가 많은 갈색 땅'을 의미한다. 그것은 아랄해로 부터 동쪽으로 약 120마일 떨어진 초원 지역의 비옥한 지대를 상징한다. 소비에트 정권은 그곳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처음엔 레닌스크라 불렀다. 길이 약 60마일, 폭 약 50마일에 이르는 지역을 소련군 사단이 지키던 기지에 소련은 학자들과 기술자들 그리고 군인들을 정착시켜 완벽한 도시를 건설했다.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후 많은 민족주의자들은 생태환경적 이유를 들어 우주 기지의 폐쇄를 요구했다. 특히, 아랄해의 고갈과 군사기지 주변의 농경지 파괴라는 환경보호 차원과 함께 지리적 위치상 우주기지에 대한 관할권이 카자흐스탄으로 넘어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바이코누르를 건설한 것이 바로 그들이고 40년 이상 그것을 관리해 왔고 그것을 세계적 규모의 특수한 과학센터로 변모시켰으므로 우주기지는 여전히 그들의 관할 하에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사이에서 심한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양측이 1992년 우호와 협력에 대한 조약에 조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코누르는 양국 관계을 악화시킬 수 있는 발화점이었다.   1994년 3월, 이 문제를 놓고 양국 정상은 모스크바에서 만났다. 젊지만 노회한 나자르바예프는 현장의 상황을 잘 챙겨서 갔지만 옐친 또한 사전준비를 철저히 잘 했다. 오랜 협상 끝에 양국 정상은 20년간 임대에 관한 협정에 조인했다. 다만, 미리 조율해 놓은 협정문안에 연간 임대료 1억 1천500만 달러 라는 문구가 본문에 삽입되었다.   나자르바예프는 자신의 전기에서 이때를 회상하면서,  바이코누르에 관한 어렵고 중대한 협약의 조인은 보드카를 곁들인 격의 없는 소통 방식 때문이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바이코누르에 대한 양국간 신속한 합의는 두 나라의 이해관계에 부응하는 것이며 지루한 협상과 오랜 대결보다는 신속한 합의가 훨씬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당사국들이 잘 알고 있었다.   러시아 국회와 카자흐스탄 국회를 포함하여 격렬한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합의는 고비를 잘 넘겼고, 첫 기지 임대료는 5년이 지난 뒤에 이루어졌다. 러시아의 우주 연구 계획은 계속되었고, 카자흐스탄의 학자들과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선 연구와 조종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11.15.(금) 아스타나 시, 나자르바예프 대학교 K-pop 놀이 한마당 - 주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원장 구본철, 이하 문화원)은 11월 15일(금) 18시 주재국 최고의 수학기관인 아스타나 시, 나자르바예프 대학에서 카자흐스탄 청년들을 대상으로 ‘K-pop과 함께하는 놀이 한마당’ 행사를 개최하였다. 한국문화원은 이번 행사에서 나자르바예프 대학교 내, 한국어를 바탕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활발하게

   인천광역시 서구(구청장 강범석) 관내 기업인들로 구성된 무역사절단은 8일(현지시간), 알마티 라핫 팰리스 호텔 컬퍼런스 홀에서 현지 바이어들과 수출상담회 및 시장조사를 진행했다.    이 행사는 우수한 기술력과 제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해외 마케팅 역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구 관내 중소기업의 해외 시장 판로 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됐다.    이번에 알마티를 방문한 기업들은 인천시 서구가 사전 시장조사를 벌여 선정한 수출 가능성이 높은 우수업체 10곳이었다. 주로 건축자재 생산업체들이었는데, 현장에서 제품과 관련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되기도 했다.   강범석 서구청장은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이 판로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안타까웠다"면서 "앞으로도 잠재력이 큰 중앙아시아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강 구청장과 기업인들은 고려인 동포기업인으로서 중앙아시아 최대의 아이스크림 공장을 가동하는 신라인 그룹의 신 안드레이 회장을 만나 신라인 그룹이 추진중인 '종합식품클러스터' 계획에 대해 듣고, 관내 중소식품기업들의 현지진출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알마티 주지사도 함께 했는데, 다리바예프 바우르잔 주지사는 종합식품클러스터에 입주하는 식품회사에 대한 지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인천시 상공회의소는 알마티시 상공회의소 간 교류협력 강화를 통해 인천 지역 기업들과 알마티 지역 기업들간의 기업활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에 파견된 기업들은 ㈜비티알수성(엘리베이터부품), ㈜우석엔프라(마사지기 등), ㈜대원테크놀로지(공기살균기), ㈜에이스홈데코(도어), ㈜대림산업(타일/석재용 에폭시 접착제), ㈜오빌(파티션), 한국코머스켐(주)(청소용 세제), ㈜에코데이인터내셔널(LED 경관 조명기구), ㈜이온폴리스(샤워 필터), ㈜유창씨엠아이(중장비 부품) 등이다. (김상욱)

외국인 투자 유치와 사유화를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김상욱  고려문화원장(본지주필) <알마티 필립 모리스 공장>  신생 독립국 카자흐스탄 경제의 미래는 한마디로 암울 그 자체였다. 갑작스런 소연방의 해체와 준비되지 않은 체제전환 과정속에서 치솟는 물자부족과 물가폭등과 함께 소수 올리가르히들의 '날강도식 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카자흐스탄은 적극적으로 외국자본 유치와 자본주의 경제 운영 능력의 도입을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상황은 녹녹치 않았다. 어떤 외국 기업이 자국민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법적으로 안정된 투자여건을 갖추지 않은 옛 공산주의 국가에 투자를 하겠는가? 외국인 투자자와 기업들은 기업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는 즉, 재산권과 이윤 반출을 보장하는 카자흐스탄의 법률 정비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했다.   당시 나자르바예프는 1993년에서 1995년 사이 기업 친화적인 제도를 보장하기 위해 141개의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이는 주로 외국인 투자활동과 연관된 경제문제에 관한 것으로써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유화 였다.   사유화에 관한 첫번째 실험은 카자흐스탄 정부가 1993년 미국의 필립 모리스 회사에 알마티에 있던 국영담배공장을 1억 2천만 달러에 매각한 것이었다. 국영기업으로 있으면서 공장은 거의 파산지경이었고,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지불하지 못하고 기계부품을 구입하거나 새로운 설비에 투자할 수도 없었다.   새로운 주인이 된 필립모리스사는 공장에 미화 2억 4천만 달러를 투입하여 새로운 생산설비를 설치하고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주고, 높은 이윤을 보장했다. 이것은 사유화의 좋은 예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심각한 세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 국고에 경화가 쌓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방치되었던 기업이 살아남으로써 직원들과 소비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갔다.   경제이론이 산업현실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 나자르바예프는 사유화를 위해 보다 더 과감한 실험을 결심하였다. 그 후 2년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철강 공장과 석탄광, 금광, 전력회사, 정유 기업, 국영 항공사를 포함한 94개의 대형 국영기업들을 살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한편, 이같은 조치는 국부의 유출이라는 불가피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 당시에는 외국인들과 같이 있는 것 조차 반역이라고 간주되던 '소련시대의 외국인 혐오증'을 아직도 가지고 있던 반대론들이 있었고, 국영기업의 사유화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자르바예프는 사유화를 '공정과 불공정'의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오직 '효율성과 비효율성'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밀어붙였다. 이때 남긴 나자르바예프의 유명한 말이 있다. 그는 "모두가 완벽하게 확신할 때까지 기다린 후 개혁을 착수할 만큼 시간이 없다. 완벽한 동의를 기다리겠다면 국가도 경제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며 폭넓은 사유화를 추진했다. 비판자들은 나자르바예프의 정실주의로 인해 그의 친척들을 포함한 소수의 카자흐인들만이 막대한 부를 차지했다고 비난하였다.     나자르바예프의 카자흐스탄 정부는 '중도적 사유화', '수표에 의한 사유화', '소규모 사유화', '농업 사유화' 같은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서 실행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다양한 서비스업종과 자영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앞장에서 다룬 새로운 국가 통화의 도입과 함께 사유화와 같은 체제 전환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포함된 개혁 프로그램이 가동되자 카자흐스탄의 경제는 차츰 소련 해체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이 2,600%에 달했던 악몽같은 93년 이후 일련의 개혁조치와 함께 1995년 무렵 인플레이션은 59%까지 완화되었고 그 후 꾸준히 내려갔고, 1996년 부터는 국내 총생산이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대 말 경 90%이상의 카자흐스탄 제조 기업들이 사유화되었다.   물론 1998~1999년 한국이 IMF사태를 포함한 아시아에서의 경기 하락과 2008~2009년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카자흐스탄의 경제도 불가피하게 침체를 겪었다. 그러나 이 두 시기 사이 9년간 카자흐스탄은 매년 두 자리수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새로운 통화, 새로운 헌법, 새로운 경제 김상욱 고려문화원장/본지주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국민들 사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전 세계를 불안하게 만든 핵무기 문제를 신속하게 조정했다. 그에 비해 경제와  헌법에 관한 개혁은 지지부진했다.  사실, 독립 초창기 나자르바예프는 판단의 오류를 범했지만 급진적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임에 따라 비판자들은 그를 비민주적이라고, 심지어 독재자라고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초에 수립된 소비에트 연방이 그동안 인류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사회주의라는 길을 걸어갔다면, 소련의 해체 후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 과정도 처음 경험해보는 미지의 길이었다. 신생 독립국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사회경제적인 조건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거기에 더해 체제전환 과정에서 여과없이 노출된 인간의 탐욕은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루블화와 관련된 위기도 예견된 것이었고 실제 카자흐스탄의 체제이행과정에 치명타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독립했으나 루블화 통화 공급권이 여전히 모스크바 은행가들에게 달려있었다. 지금처럼 신용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통화 혹은 카드 사용이 보편화되지 않은 그 당시에는 중앙은행이 갖고 있던 통화공급권은 일반 경제활동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중앙은행장에게 내려진 비밀 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