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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합의 날(5월1일)과 카자흐스탄의 민족정책

김상욱

알마티고려문화원장/본지주필

5월1일은 ‘민족화합의 날’

  대표적인 다민족국가인 카자흐스탄에는 카자흐인들 외에도 고려인, 러시아인, 독일인 등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통상, 카자흐스탄에는 100여 민족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데, 잉구쉬, 체첸, 오세티야, 둥간, 위구르, 아프카니스탄, 우즈베크, 투르크멘, 유대인, 터어키, 쿠르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쟌, 카자끼,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민족이 카자흐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에는 ‘민족화합의 날(5월1일)’이라는 국경일이 있고, 이 국경일을 앞두고 지난 24(현지시간), 수도 아스타나에서는 여러 민족들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민족간 화합과 조화, 통합을 위한 정책제안을 하고 실제로 이를 실행해 나가는 ‘카자흐스탄 인민의회’ 총회가 열렸다.

  바로, 제34차 카자흐스탄 인민의회 전원회의가 그것인데, 특히 올해는 창설 30주년을 맞아 “통일과 화합의 이름으로 30년”이라는 주제로 성대히 개최되었다.

  24일 아스타나의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전원회의에는 의장인 토카예프 대통령과 수석 부의장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각 민족협회 대표, 정부 중앙부처 및 지방 행정기관장, 종교와 정당 대표, 비정부 기구, 외교단, 과학 및 문화계 인사, 카자흐스탄 및 외국 언론 등 1,6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전원회의 시작에 앞서 인민의회의 역사를 소개하는 20분 분량의 영상이 상영되었고, 토카예프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인민의회는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후 국가운영에 있어서 매우 필수불가결한 헌법기관이었다고 말하고, 카자흐스탄의 통합과 민족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국가적 토대이다고 그 위상을 강조했다.

  이번 ‘34차 인민의회 전원회의’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은 자신이 쿠릴타이 회의에서 주장한 통합, 애국심, 독립, 화합을 강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더 언급하며 모든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재차 언급했다.

  또한 사회를 분열시키는 자들은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범위 내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반면, 통일과 조화를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은 언제나 특별한 존경을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는 의회의 발전과 평화, 그리고 민족간 화합에 크게 기여한 공로자들에게 훈장이 전수되었다.

  수훈자 중에는 고려인이 5명 포함되어 있었는데, 20여년간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를 이끌었던 신 브로니슬라브 전 회장이 엘 비를리기 훈장을, 악토베 지역 고려인협회장인 석유리가 쿠르메트 훈장을 받아서 그 의미를 더했다.

소비에트 연방과 카자흐스탄의 소수민족

  카자흐스탄에는 현재 124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민족이 카자흐스탄에 사는 것은 동서양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유라시아대륙 한가운데 위치한 카자흐스탄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소비에트연방으로 부터 물려받은 역사적 유산이기도 하다.

  스탈린의 정치적 탄압기에 카자흐스탄 땅으로 강제이주해 온 고려인, 독일인, 카프카스 민족들 등이 역사적 유산에 해당된다.

  소비에트 연방은 1917년 11월 자국 내 100여 개 소수민족에 대해 <러시아 제민족의 권리선언>(1917. 11. 15)을 선포한 레닌의 ‘민족자결주의’ 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연방국가였지만, 1929년 세계대공황이 시작되고 국제정세가 전쟁을 향해 치닫게 되자 차츰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시기 소련을 스탈린식 전체주의 또는 스탈린의 정치적 탄압기 라고 부른다. 해외식민지를 많이 가지지 못했던 이탈리아와 독일, 일본 등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파시즘과 나찌즘, 그리고 군국주의로 무장하고 소련의 동쪽 국경과 서쪽 국경을 위협하자 위기의식을 느겼던 소련의 대응방식이었다.

  그 전까지 민족협회 또는 민족문화센터 등을 통해 각자 자신들의 민족문화를 계승,보존할 수 있었던 분위기가 하루 아침에 바뀌게 된다. 학교에선 민족어가 아닌 러시아어가 강조되었고 고려인들의 경우 강제이주 후 모국어 수업을 하는 학교는 모두 문을 닫게 되고 러시아어로만 수업하도록 종용받았다.

  민족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터부시 되었으며 민족간 차별이 철폐된 가운데 소비에트 신인류 또는 다문화 가정속에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홍보되어졌다.

  그러나 1985년 집권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소련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개혁개방조치와 함께 그동안 금기시 여겼던 민족문제에도 자율성을 부여하게 된다.

  이로 인해 89년부터 여러 소수민족들은 소비에트 문화에 눌려 있던 자신들의 모국어와 전통문화를 재생, 부흥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를 비롯한 독일, 위구르 등의 민족문화단체와 조직들이 바로 이때 만들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