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시원, 알타이 여행기 – 2]
알타이의 관문, 우스케멘과 세계 5번째로 큰 호수 부흐타르마
우리민족의 시원이자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본향이기도 한 알타이 지역은 알마티 산맥이라는 거대한 산줄기가 동서로 뻗어 있는 곳이다.
이 산맥은 카자흐스탄 동부와 러시아 시베리아, 중국·몽골 접경지역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자연 경계인데, 이곳은 수많은 민족이 오랜 세월 터를 잡아온 땅이기도 하다.
특히 알타이는 꿀과 녹용(사슴 뿔) 그리고 약초로 유명하다. 이 지역에는 ‘팬토테라피’라 불리는 녹용 치료센터들이 여러 곳 존재하며, 이곳에서 자라는 사슴의 뿔·허브·꿀이 전통적으로 체력회복과 장수요법에 쓰인다.
알타이의 관문, 우스케멘
카자흐스탄 동북부의 오스케멘은 러시아 알타이와 중국 신장으로 이어지는 국경 회랑에 자리한 도시로, 알타이 산맥으로 향하는 여정의 출발지이다. 인구는 30만명이고 동카자흐스탄주의 주도이다. 이르티시 강이 도심을 가로질러 흘러서 무척 아름다운 이 도시는 소련 시절의 산업 도시이자 시베리아풍 건축이 남은 이곳은 ‘대륙의 문’으로 불린다.
겨울에는 1월 평균기온이 -16℃, 7월 평균기온은 20℃ 로써 연교차가 약 40도에 육박하는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가끔씩 강추위나 폭설로 휴교령이 내려졌다는 뉴스속에서 이 도시의 이름을 자주 듣게 된다.
그 이유는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겨울에 매우 추운 편으로, 심지어 훨씬 북쪽에 있는 시베리아의 도시들(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등)보다 훨씬 더 춥기 때문이다.
원래는 1720년 무역 기지로 건설되었고 금속·벌꿀 교역지로 번성하다가 1868년 도시가 되었다. 소련 시절에는 우라늄, 납, 아연을 비롯한 비철금속 광업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했다.
주민의 대부분은 러시아인이었으나 그 비중은 점차 줄어들어서 현재는 약 절반 정도가 러시아인이고 카자흐인이 40%를 살짝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스케멘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잔 뒤 아침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알타이 사슴목장주 사무실이었다. 알타이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사슴목장에 대한 정보와 찾아가는 길을 설명듣기 위해서였다.
지인의 소개로 미리 연락을 하고 찾아간 사슴목장주는 카자흐인이었는데, 나를 보자 무척 친절히 응대하면서 자신의 농장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여름철에는 녹용 사우나를 하면서 휴식을 취할려는 관광객들이 알타이 지역을 많이 찾는데, 그 중에서도 자신의 농장이 인기가 높다는 말과, 소련과 한국이 수교 후 알타이 녹용을 사겠다는 많은 한국사업가들이 다녀갔다는 얘기까지 해주었다.
현재는 동절기가 시작되어 모든 직원들이 철수했지만, 목장과 휴양시설을 관리하고 있는 조카에게 우리에게 목장을 보여주고 협조하라고 당부해 놓았다고 했다.
이로써 알타이로 진입할 준비가 완료되었고, 위도가 높아서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서둘러 출발했다.
오시노프스키 고개와 부흐타르마 호수

우스케멘을 출발해서 부흐타르마 저수지로 향하는 길목에 ‘마랄’이라고 불리는 녹용 사슴이 그려져 있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차를 세웠다. 오시노프스키 고개라고 불리는 이곳은 해발 약 1,200m의 산길로, ‘알타이의 첫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전망 명소다. 알타이 산맥의 꿈틀거리는 산줄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뷰 포인트인데, 저 산맥의 동쪽 끝이 중국의 신장에 이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러시아와 중국, 두대륙이 맞닿은 경계선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가면 붉은 단풍과 자작나무 숲이 어우러진 계곡이 펼쳐지고, 정상부에는 카자흐 유목민들이 세운 기도 탑 오보가 서 있다.
오시노프스키 패스를 넘어서자 길거리에 생선을 걸어놓고 파는 가게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자 부흐타르만 호수가 나타났다.
이 호수는 수력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 저수지이지만, 그 넓이와 풍경만큼은 바다에 버금간다. 면적이 약 5,500 km²에 이르며 카자흐스탄 최대 인공 저수지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큰 규모로 소개된다.

우리는 호수 인근 작은 마을인 뽈랸스코예를 지날 때 잠시 멈췄다. 길가에서 훈제 생선과 꿀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는 송어, 잉어, 수닥 등 이 호수에서 잡히는 8가지 생선을 훈제하거나 말려서 파는 가게였다.
나는 매대에 진열된 생선 중에서 훈제한 것으로 두마리를 골랐다. 주인 아주머니가 웃으며 덤으로 두 마리를 더 주었다. 그 넉넉함이 참 좋았다.
마침 가게 옆에서 놀고 있던 그녀의 5살짜리 손자가 얼마나 귀엽던지 미리 준비해간 예쁜 한국 전통 주머니를 선물로 주었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집 대문 틈으로 보고 있는 4살짜리 여동생이 자기에게도 선물을 달라는 듯 내게로 다가왔다. 난 얼른 가방에서 꼬마 숙녀에게 어울릴만한 빨간색의 전통 주머니를 선물로 건네고, 나에게 덤으로 생선 두 마리를 더 준 가게 주인 아주머니에겐 피부에 좋은 한국산 비누를 선물했다.
그렇게 작게 마음을 나누고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떠난 지 불과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어느듯 해가 서산에 넘어가고 있었다.
알타이 라는 마을에서 예쁜 통나무집을 숙소를 정했다.
알타이 꿀과 차를 맛보다.

다음날의 여정은 1,319미터 길이의 부크타르마 다리를 건너며 시작했다. 부크타르마 호수의 푸른 물결을 따라 오르는 길은 침엽수림과 자작나무 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는듯 했다.
알타이 산맥 남쪽 능선을 향해 점차 고도를 높여 나가던 중, 산꼭대기를 덮고 있는 흰 눈이 원경을 이루고 노랗게 단풍이 든 자작나무 숲이 중경을 이루는 속에 듬성듬성 자리 잡은 파란색 집들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차를 세웠다.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에는 가축들을 위한 건초작업이 한창이었다. 트랙터가 둥글게 말린 건초를 집 뒤 헛간에 오와 열을 맞춰 쌓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작업중인 트랙터로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고 올렉이라는 트랙터 기사와 사진을 찍기도 했고, 마을 구석구석을 걸으며 예쁜 집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때 ‘니바’ 라고 하는 러시아산 짚차가 내 옆에 다가와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카자흐인이 나에게 어디서 왔다고 물었다. 차 안에는 어린 남자 꼬마 아이가 타고 있는 게 살짝 보여서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여행을 왔다고 말하고 간단히 내 소개를 했다. 그러자 그는 다짜고자 ‘소서노’를 아느냐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주몽 이라는 드라마를 너무 재밌게 보았다면서 소서노는 잘 있냐고 내게 물어본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마치 친구를 오랫만에 만난 것처럼 우리 둘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대답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때 내가 방금 사진을 찍었던 그 집이 자신의 집이라면서 나를 초대하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려 갔다.
파난색 페인트가 칠해진 그의 집은 현관 옆에 노랗게 물던 자작나무와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집안에 들어가자 그는 알타이 꿀과 차를 내놓았다. 자신은 이 마을의 농기계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서 곧 아내가 큰 아들을 하교 시켜서 데리고 올테니까 기다리라며 우선 꿀과 차를 내온 것이었다.
나는 그가 내온 차를 마시며 과거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자신만이 카자흐인이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다는 주인장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와 대화를 이어가며, 알타이 주민들의 월동준비의 알파와 오메가는 건초준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목축을 하는 알타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축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월동준비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잠시 뒤 부인이 큰 아들을 하교시켜서 데리고 집으로 왔다.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안주인은 적잖이 당황했을 터… 사실, 남편이 낯선 손님을 안주인의 허락도 없이 집으로 데리고 와서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니 화를 낼 법도 한데, 오히려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면서 본격적인 음식준비를 할려고 하자, 나는 감사를 표하면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쁜 한국 전통 복주머니를 안주인과 아들에게 선물하고….
올드 오스트리안 로드
알타이 산맥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포로들이 만든 전설의 고갯길이 있다. 올드 오스트리안 로드 라고 불리는 이 도로 중에서 핵심 구간은 부르하트 패스이다.
부흐타르마 계곡(990m)에서 마르카콜 호수(1,445m)로 이어지는 구간인데, 1914~191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전쟁 포로들이 건설하였다.
험준한 산비탈과 빙하 협곡을 뚫어 만든 이 도로는 당시 병참로이자 탈출로였고, 지금은 트레커와 오프로드 여행자들이 찾는 역사적 루트로 남아 있다.
길가에는 당시 포로들이 남긴 목조 교각과 돌다리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매년 여름이면 현지인들이 추모제를 연다. 길은 라흐만 온천과 마르카콜로 이어지며, 곳곳에서 러시아 알타이와 신장 산맥의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며칠전에 내린 눈으로 인해 내가 탄 짚차마저도 갈 수 가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카톤카라가이 국립공원의 중심 도시인 카톤카라가이를 향해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