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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시원, 알타이 여행기

김상욱(고려문화원장)

<끝없이 펼쳐진 카자흐 초원의 가을. 초원의 가을은 온통 누런 색 일색이고, 풀어놓은 소와 양, 말들이 황량한 가을 들판의 주인처럼 한가롭게 노니고 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저 초원은 수천년 전에도 똑같이 풍경이었을 것이다.  사진 : 김상욱>

10월 중순, 가을분위기가 완연한 알마티를 떠나 카자흐스탄 초원의 가을과 겨울을 준비하는 손길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맘 먹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우리 민족의 시원과도 관련이 있는 땅 이자,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거대한 산맥을 품은 땅 알타이 지역이다. 이번 여행은 오랜 친구이자 중앙아시아 여행전문가로 이름난 세르게이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는 오프로드의 달인이기도 한데, 이번 여행은 그가 아끼는 4륜 구동 ‘니산 패트롤’을 타고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알마티에서 알타이의 관문인 오스케멘(러시아어명 Ust-Kamenogorsk)까지 꼬박 이틀을 달려야 한다.

우리는 출발 전, 알마티 시내의 대형 창고형 할인마트 ‘마그넘(Magnum)’에 들러서, 라면과 생수, 커피와 홍차 그리고 초콜렛 등을 샀다. ‘여행도중에 경치 좋은 곳에서 차를 세우고 커피 한잔을 마시는 여유를 즐기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겨보기 위해서였지만,  사실은 ‘예상치 못한 고립’ 혹은 ‘예기치 못한 설렘’에 대비하는 마음의 준비였다.

내가 차에 타자 세르게이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드디어 출발~

알마티 시내를 빠져나가서 우스케멘으로 가는 A3 고속도로를 탔다. 이 도로는 알마티를 출발해 캅차가이 호수, 딸띄꾸르간 등을 거쳐 우스케멘에 이르는데는 약 1,200 km 의 거리이다.  

우리가 탄 차는 세르게이 소유의 4륜 구동 니산 패트롤. 산악 주행에 대비해 차량 하부가 무려 15㎝나 높여져 있었다. 덕분에 웅덩이나 굵은 돌이 깔린 길에서도 강인한 면모를 보였지만, 대신 고속도로에서의 안정감이나 속도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 그 느림마저 이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신호였다.

도시 경계를 벗어나 30분쯤 지나자 최근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신도시 ‘알라타우’ 예정지를 지나쳤다. 이곳에서는 지난 달에 ‘K파크’ 착공식이 성대히 열렸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손님들이 참석한 착공식이었는데,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의 주요 인사들 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정부의 주요 관계자들도 참석해서 큰 성황을 이루었다.  K파크는 알라타우 신도시에서 향후 문화·레저의 허브가 되리라 기대되는 대형 복합단지였다.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차창 밖을 보았다. 아직은 공사장이라기보다는 넓은 벌판이 열린 채였다. 하지만 그 벌판 위로 떠오르는 신도시의 그림자를 상상하는 것은 묘한 설렘이었다.

알라타우 예정지를 지나 약 30분 더 달리자, 우리의 차가 창문 너머로 가늠할 수 없이 넓은 호수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곳은 바로 캅차가이 호수. 인공 저수지이지만, 맑은 물과 탁 트인 호수면은 오히려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을 담고 있었다. 이 호수는 일리 강을 막아 만든 인공 호수로, 길이 약 100 km, 폭은 최대 22 km에 이르는데, 여름철에는 알마티 시민들의 휴식처로 매우 인기가 있다. 최근에는 알마티 주와 쿠나예프 시가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서 ‘카무쉬’라는 초현대식 리조트가 완공되어 많은 휴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우리는 달리는 틈새에 잠시 차를 세우고 이 호수를 바라보았다. 가을빛이 물든 호수는 청명한 하늘을 품고 있었고, 물결은 가만히 바람을 담고 있었다. 이 순간, 우리가 향하는 길이 단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 그 자체’임이 느껴졌다.

차는 다시 움직였다. 어느새 다른 마을이 나타나고 또 사라졌다. 그렇게 약 30분을 더 달리자, 도로변에는 양파 자루가 수북이 쌓여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마을 이름은 친길디 마을. 양파 수확이 끝난 시점 이라서였을까, 길가에는 양파가 가득 든 자루가 쌓여 있었고 지나던 차들이 잠시 멈춰서 양파를 자루 채 사서 차에 싣는 모습이 보였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만 볼 수 있는 농촌마을 한 풍경이다.

친길디 마을은 예전부터 양파로 유명한 마을이었는데, 많은 고려인들이 이 마을에 살면서 캅차가이 호수물을 끌여들여 대규모로 양파를 재배했던 것이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고려인들이 도시로 빠져 나가고 고려인들로 부터 양파 농사법을 배운 카자흐인 농부들이 여전히 양파농사를 이어가고 있다.

친길디를 지나 약 40분쯤 달리자, 드디어 휴게소가 나왔다. 나는 이곳을 ‘참새 방앗간’이라 부른다. 알마티에서 출발해 우슈토베(고려인 최초 정착지)까지의 여정 중 거의 절반쯤 되는 지점이라서 자연스럽게 쉬어가는 장소가 된다. 나는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탄드르(탄두르) 오븐에서 갓 구운 삼싸를 하나 골라 입에 넣었다. 따뜻한 빵 속의 고기와 향신료가 입 안에서 퍼졌고 주변에는 가족처럼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삼싸를 사서 함께 앉아 있었다. 나는 가볍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가시나요?”

그들은 승용차 4대를 이끌고 있었고, 곧 있을 조카딸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알타이 산맥속의 시골 마을로 간다고 했다. 그중 좌장은 ‘굴미라’라는 카자흐 아주머니였고, 50대 중반이지만 이미 4명의 손자를 둔 할머니였다. 그녀는 시누이의 딸 결혼식 참가를 위해 큰아들에게 운전을 맡기고 작은 아들까지 데리고 간다고 나에게 말했다.

나도 우스케멘에 간다고 하자, 그녀는 나를 결혼식 피로연에 초대했다. 나는 미소 지으며 “하지만 우리가 탄 차는 오프로드형 지프차라 속도를 낼 수 없어요. 이틀만에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고 말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카자흐인들은 소님을 잘 대접하는 풍습이 있답니다. 여하튼 우스케멘에 도착하면 전화를 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 말이 가슴 속에 따뜻함으로 남았다. 우리는 그렇게 잠깐의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차는 다시 움직여,  딸띄꾸르간과 자르켄트로 각각 갈수 있는 분기점인 ‘사르우젝’ 마을을 지나 딸띄꾸르간쪽으로 향했다. 딸띄꾸르간을 지나자, 늦가을의 말없는 초원이 펼쳐졌다. 목동이 한 무리의 양과 소를 끌고 풀을 뜯기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이들을  차반이라고 부르는데, ‘양치기 소년에 해당되는 일을 하는 나이든 목축 노동자’ 라고 번역하면 맞을 것 같다.

그 차반의 이름은 ‘니꼴라이’. 그는 28년간 중장비 운전기사로 일하다 은퇴하고, 올해로 8년째 목동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 아침 그가 맡은 양과 소를 초원으로 나와 풀을 뜯게 하는 것이 그의 일이란다. 가축의 주인은 카자흐인이었고, 그 주인은 자신과 같은 차반을 12명이나 고용해 가축을 키운다고 했다. 이 ‘시간에 잠긴’ 사람을 만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는 차를 다시 몰았다.

세 시간쯤 더 달린 끝에 우리는 마침내 ‘우쉬아랄’이라는, 알라콜 호수 가의 도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1박을 하기로 했다. 호텔에 들어서니 투숙객은 아마도 우리뿐인 듯했다. 여름철엔 알라콜 호수에서 휴가를 즐기는 피서객들로 북적이지만, 가을이 깊어지면 손님들이 거의 끊긴다고 했다. 도로에서도 우리가 마치 전세 낸 듯 한적한 구간을 달려 왔는데, 호텔마저 그런 느낌이었다.

<딸띄구르간을 지나 우쉬아랄로 가는 길은 마치 고속도로 전체를 전세놓은 것처럼 한가롭기 그지 없었다. 길가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트렁크의 짐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 김상욱>

다음 날 아침, 나는 이 호텔 주변 공원을 한 바퀴 뛰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왔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했다. 약 한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시야에 낮은 언덕 하나 없는 대초원이 드러났다. 사방이 열린 공간, 단 1미터 높이조차 없을 듯한 완만한 스텝(초원). 가을이 와서인지 초원의 잔디는 누런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오직 하늘만은 유난히 파랬다. 군데군데 말들이 풀을 한가로이 뜯고 있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낮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것을 체감했다. 오후 네 시쯤 되자, 대지는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다섯 시경에는 주변이 이미 어두워졌다.

우리는 어두운 밤길을 달렸다. 헤드라이트의 궤적이 맞물리며, 앞선 차의 뒤태만이 우리의 길잡이가 되었다. 그 길 끝에 우리가 마침내 도착한 것은 오스케멘, 이 도시는 동카자흐스탄주의 주도이자 알타이의 관문이었다.

 우리는 숙소를 잡고 여행 이틀째를 마무리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