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위에 선 변화의 도시 알마티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본지 주필
<알마티 근교에 있는 알튼에밀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 ‘노래하는 사막’을 오르는 여행자들. 사진 : 김상욱>
카자흐스탄의 봄을 알리는 축제인 나우르즈가 다가오면 나라 전역에서는 마을마다 화려한 축제와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가 녹고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시기, 사람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의 결속을 확인한다. 이러한 시기에 맞춰 카자흐스탄의 봄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여행지로 꼽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알튼에밀 국립공원이다.
알마티에서 출발해 사르우젝 마을을 지나 바시 마을, 악타우 산과 카투타우산, 노래하는 사막과 캅차가이 호수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관광 코스라기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시간 여행에 가깝다. 이 길에는 과거 소련 시절 군사시설의흔적이 남아 있고, 칭기즈칸의 전설이 살아 숨 쉬며, 대초원의 계절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3월 말의 카자흐스탄은 독특한 계절적 대비를 보여 준다.
천산산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아씨 고원이나 쿨사이 호수, 카인디 호수 등은 여전히 눈에 덮여 있어 차량 진입이 어려운 반면, 알튼에밀과 같은 스텝 지역은 이미 봄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새싹과 따뜻한 햇살은 여행자에게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게 해 준다.
‘알튼에밀’이라는 이름은 카자흐어로 ‘황금의 말안장’을 의미한다. 이 지명에는 칭기즈칸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데, 몽골 고원을 출발해 사마르칸트를 향해 진군하던 칭기즈칸의 군대가 일리강 유역에 도착했을 때, 해 질 무렵 붉게 물든 산의 능선을 바라보며 “황금의 말안장과 같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다. 그의 한 마디는 곧 지명이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알마티에서 약 250킬로미터 떨어진 이 국립공원은 1996년 지정된 이후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자연 보호구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야생말 쿨란의 서식지이며 한때는 ‘투란 호랑이’가 서식하던 지역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투란 호랑이는 제정 러시아 시절 호랑이 사냥 장려 정책으로 인해 결국 멸종에 이르렀는데, 최근에는 이 투란 호랑이를 복원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으며 호랑
이의 주식인 부하라 사슴을 방사하여 생태계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알튼에밀국립공원은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늑대와 산양이 출몰하는 이곳은 자연 다큐멘터리의 촬영지로도 활용되었으며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야생의 생태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동시에 스키타이시대의 고분인 베스샤티르 쿠르간과 같은 고고학적 유산도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다.
공원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곳은 악타우 산이다. ‘악타우’는 ‘흰 산’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다양한 색이 층을 이루며 펼쳐진 독특한 지형이다. 녹색과 흰색, 붉은색이 어우러진 바위산은 마치 거대한 자연의 캔버스와 같다. 계
곡을 따라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여행자에게 색채와 형태가 끊임없이 변하는 풍경을 선사한다. 유럽 여행자들이 이곳을 특히 많이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익숙한 유럽의 자연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활한 스텝과 원색적인 지형이 주는 낯섦과 신비로움 때문이다. 여행 시즌이 시작되면 독일, 영국,폴란드 등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악타우 산을 지나면 이어지는 카투타우 산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지형으로, 검붉은 바위와 기묘한 구멍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현지인들이 이곳을 ‘화성 같은 풍경’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모든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노래하는 사막’이다. 이 사막은 바람이 불 때 모래 알갱이들이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독특한 현상으로 유명하다. 높이 약 200미터, 길이 3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모래 언덕은 날씨와 바람의 조건에 따라 다양한 음색을 만들어 낸다. 또 이 사막은 웅장한 자연환경 외에도 전설과 신화의 공간으로 유명하다.
일부 전승에서는 칭기즈칸의 유골이 이 모래 산 아래에 묻혀 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일리 강 유역에서 바람에 의해 형성된 지형이라 설명할 수 있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공간에 더욱 깊은 상상력을 더한다.
소련 시절부터 이곳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였다. 당시에는 도로가 없어 강을 건너야만 접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탐험가와 여행자 들이 이곳을 찾았다. 동물학자 파벨 마리코프스키는 이 지역을 탐사하며 바람과 모래가 빚어내는 소리의 원리를 기록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 사막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
이 사막을 오르는 경험은 하나의 감각적 체험이다. 발밑의 모래가 바람에 따라 움직이며 소리를 내고 정상에 오르면 일리 강과 멀리 천산산맥의 설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래 위에 남은 발자국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장면을 보면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흔적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다.
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바시 마을이다. 이곳은 국립공원의 관문이자 여행자들의 거점으로, 과거에는 전형적인 유목마을이었지만 최근 관광 정책의 영향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현대식 게스
트하우스가 들어서고 캠핑장과 편의시설이 갖춰지면서 여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이 마을에서는 식당에서 현지 가정식이 제공되며 작은 상점에서 생수와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숙소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을 고려하면 이는 상당한 변화이다.
한 가지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도로와 휴게소, 화장실 시설의 개선이다. 이와 같이 과거 여행자들이 가장 불편함을 느끼던 요소들이 점차 개선되면서 카자흐스탄 여행의 접근성은 크게 높아졌다.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남아 있지만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카자흐스탄은 더 이상 통과해서 지나가는 땅이 아니라, 머무르고 경험하는 여행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활한 자연과 깊은 역사, 점차 개선되는
인프라가 결합하면서 이 나라는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바람과 모래가 만들어 내는 소리,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다. 카자흐스탄의 여행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경험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한편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 알마티는 한때 이 나라의 수도였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1997년 수도가 누르술탄으로 이전된 이후에도 알마티는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성장하며 ‘경제수도’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얻으면서 남부 지역 전체를 이끄는 중심 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의 풍경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남쪽에는 천산산맥의 한 줄기인 알라타우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북쪽으로는 일리 강과 캅차가이 호수가 이어진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에서 녹아내린 물은 도시를 통과해 초원으로 흘러 들어가고 , 이 물은 다시 농경지와 목초지를 살린다. 이처럼 자연의 흐름 위에 형성된 알마티는 유목과 농경에 더하여 현대 도시가 동시에 존재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블락과 같은 고지대에 올라서면 이러한 구조가 한눈에 드러난다. 눈 덮인 산맥과 그 아래 펼쳐진 초원, 거기에 도시가 맞닿아 있는 풍경은 알마티라는 공간이 생활 공간일뿐 아니라 역사와 자연이 교차하는 장소임을 보여 준다.
실제로 이 지역은 과거 유목 문화의 중심지였던 세미레치예 지역의 핵심이었으며 스키타이 시대의 ‘황금 인간’ 유물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지난 30여 년 동안 알마티는 눈에 띄는 변화를 겪어 왔다. 고층 건물이 늘어나며 스카이라인이 변했고 도로망이 확충되며 도시의 외연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의외로 지하철의 개통이었다.
알마티 지하철은 소련 시절부터 계획된 프로젝트였지만 체제 붕괴와 경제 혼란 속에서 오랫동안 중단되었다가 독립 이후 다시 추진되어 2011년 마침내 개통했다. 이후 연장 노선이 추가되면서 이용객은 크게 증가했고 시민들의 이동 방식은 눈에 띄게 변화했다. 지하철의 등장은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이다.
과거 알마티는 분지 지형 특성상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했으나 대중교통 이용 확대와 함께 공기 질이 점차 개선되었다. 이는 지하철이 도시 환경을 바꾸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했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
근 발표된 알마티 도시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지하철은 종전의 1개 노선에서 확장하여 도시 전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될 예정이다. 특히 공항을 포함해 북부와 서부 신도시 지역을 아우르는 ‘순환형 노선’이 계획되어 있어 기존 중
심부 중심의 도시 구조를 외곽까지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또한 제3노선 건설 계획이 추진되면서 알마티는 인근 신도시와 직접 연결될 예정이다. 북부순환도로를 따라 여러 개의 역이 설치되고 기존 노선과 환승 체계가 구축되면 도시 전체의 이동 구조는 완전히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공항까지 연결되는 제2노선 역시 계획되어 있어 도시 중심과 외곽, 국제교통망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는 계획도 수립되어 있다. 이러한 교통망 확장은 편의성 개선을 넘어 도시 성장의 방향 자체를 바꾸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LRT와 BRT 등 다양한 대중교통 수단이 동시에 구축되며 알마티는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 ‘대중교통 중심 도시’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하루 300만 명 수준의 대중교통 이용을 목표로 하는 계획도 제시되어 있다. 이처럼 교통 인프라의 변화는 도시의 공간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도심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생활권이 점차 외곽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새로운 주거지와 상업지구가 교통망을 따라 형성되고 있다.
알파라비 거리 일대의 변화 역시 이러한 조류와 함께한다. 스키 점프대가 있는 복합 스포츠 시설 ‘순카르’는 체육 시설이기 이전에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고, 동계 아시안게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활용되며 관광과 스포츠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대형 쇼핑몰의 등장도 도시 생활 방식을 크게 바꾸었다.
도스틱플라자와 메가센터, 메가 파크와 같은 대규모 상업시설은 소비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이들 시설을 중심으로 새로운 주거단지와 상업 지역이 형성되었다. 이는 도시 경제가 점차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콕토베 공원의 변화 역시 주목할 만하다. 과거 시민들의 평범한 휴식 공간이었던 이곳은 케이블카와 놀이시설, 레스토랑이 결합한 복합 관광지로 재탄생했다. 해발 1,100미터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전경은 알마티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여 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보행자 중심 거리의 확대는 도시 문화의 변화를 상징한다. 판필로프 거리와 지벡 졸르 거리는 차량 중심 공간에서 사람 중심 공간으로 재편되었고 거리에는 공연과 카페, 다양한 상점들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도시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의 성격 자체를 바꾸고 있다. 한편에서는 글로벌 자본과 브랜드가 유입되며 소비 공간이 확대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과 자연, 지역문화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여행자들의 기록에서도 이러한 이중성이 자주 언급된다. 알마티는 현대적인 도시이면서도 동시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거칠고 원초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곳이다.
관광 인프라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인 생활 방식과 시장 문화가 공존하며 때로는 가격 체계나 서비스 수준에서 혼란을 경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불균형과 대비가 이 도시를 더욱 생생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알마티의 변화는 단순한 도시 개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유목의 역사 위에 세워진 도시가 어떻게 현대화되고, 글로벌 경제와 연결되며,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하철 노선 확장, 공항과 신도시의 연계, 보행자 중심 공간의 확대가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알마티는 점점 더 ‘완성된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도시는 여전히 변화의 과정 속에 있으며,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알마티는 더 이상 과거의 수도가 아니다.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도시이자 카자흐스탄이라는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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