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독립 35주년 기념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의 근현대사 15]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국민은행, 신한은행
김상욱
고려문화원장 / 한인일보주필

<국민은행은 현지의 센트크레딧은행을 인수하면서 카자흐스탄 금융시장에 진출했다>
카자흐스탄 금융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흥미로운 점은 이 나라 금융 산업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큰 위기를 겪었으며, 그 위기 이후 전혀 다른 금융 시스템으로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했을 때 카자흐스탄에는 제대로 된 상업 은행 시스템도, 자본 시장도, 금융 감독 시스템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 은행이 기업 자금을 관리하고 국가 재정을 운영하던 소련식 금융 시스템에서 갑자기 시장 경제 금융 시스템으로 넘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금융 산업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990년대에는 수많은 은행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규제도 약했고 금융 시스템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금융 구조조정을 통해 난립하던 은행들이 정리되었고, 금융 시스템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국제 유가와 자원 가격이 상승하면서 카자흐스탄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은행들도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돈을 빌려 공장을 짓고 건물을 짓고 사업을 확장했고, 개인들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자동차를 샀다. 알마티 시내에는 크레인이 도시의 상징처럼 서 있었고, 은행들은 계속 대출을 늘렸다. 경제는 계속 성장할 것처럼 보였고, 은행도 계속 돈을 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시절 은행들이 사용하던 돈의 상당 부분은 카자흐스탄 내부에서 나온 돈이 아니라 해외에서 빌려온 돈이었다. 유럽과 국제 금융 시장에서 돈을 빌려와 카자흐스탄에서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은행들은 빠르게 성장했다. 문제는 그 돈의 대부분이 단기 자금이었다는 점이었다. 몇 년 뒤에는 갚아야 하는 돈으로 장기 대출을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돈은 계속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 위기는 언제나 사람들이 가장 안심하고 있을 때 찾아온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국제 금융 시장이 얼어붙자 카자흐스탄 은행들이 해외에서 빌리던 돈도 갑자기 끊겼다. 은행들은 빌린 돈을 갚아야 했고 결국 국내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자금이 끊겼고 건설 현장은 멈췄고 부동산 가격은 하락했다. 자원 가격까지 하락하면서 경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카자흐스탄의 대형 은행 몇 곳이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고 채무 재조정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상황은 카자흐스탄 금융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 직전까지 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바로 이 시기 카자흐스탄 금융 산업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한국 은행들의 진출이었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카자흐스탄 금융 시장에 들어왔다. 두 은행은 같은 나라에서 왔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진출했다. 국민은행은 카자흐스탄의 센터크레디트 은행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출했다. 이는 한국 금융권 해외 진출 역사에서도 매우 큰 규모의 투자였다. 국민은행의 전략은 개인 고객 중심의 리테일 금융이었다. 한국에서 성공했던 개인 금융 모델을 카자흐스탄에 적용하려는 전략이었다. 진출 직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매우 어려워지기도 했고 인수 가격이 비싸다는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금융 위기 이후 카자흐스탄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센터크레디트 은행은 비교적 안정적인 은행으로 자리 잡았고, 투명성과 자산 건전성이 높은 은행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은행의 카자흐스탄 진출은 단기적인 투자라기보다 장기 전략 투자였다고 볼 수 있다.

<신한은행은 국민은행과 달리 현지 법인을 새로 설립하여 은행 허가를 받는 방식으로 카자흐스탄 금융업에 진출했다>
신한은행의 진출 방식은 국민은행과 전혀 달랐다. 신한은행은 기존 은행을 인수하지 않고 현지 법인을 새로 설립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신한은행 카자흐스탄 법인은 2008년에 설립되었고, 이는 한국계 은행 가운데 중앙아시아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현지 법인이었다. 이후 신한은행은 개인 금융보다는 기업 금융과 무역 금융 중심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특히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과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 서비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한은행은 전통적으로 리스크 관리가 매우 보수적인 은행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특성 덕분에 금융 위기 시기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카자흐스탄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처음 신한은행 카자흐스탄 법인은 규모가 크지 않았고 한국 기업과 교민 대상 금융 업무가 주요 업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 경제가 성장하고 한국과 카자흐스탄 경제 협력이 확대되면서 현지 기업과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금융도 점차 확대되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신한카자흐스탄은행은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신한카자흐스탄은행은 해외 법인 가운데서도 실적이 크게 증가하며 주요 해외 법인 중 하나로 떠올랐다. 순이익이 크게 증가하고 자산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앙아시아 금융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에는 국제 정세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있던 기업들이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하거나 카자흐스탄을 새로운 사업 거점으로 삼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금융 수요가 증가했고, 신한카자흐스탄은행으로 기업 자산이 유입되기도 했다. 그 결과 신한카자흐스탄은행의 순이익은 크게 증가했고 해외 법인 가운데 중요한 수익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신한은행은 카자흐스탄에서 단순히 기업 금융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기업 금융, 프로젝트 파이낸싱, 무역 금융, 리테일 금융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부흥개발은행과 협력하여 현지 기업 금융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한국과 카자흐스탄 기업 간 무역과 투자 프로젝트에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신한은행이 단순히 한국 기업을 따라 들어온 은행이 아니라 카자흐스탄 금융 시장 자체에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카자흐스탄 진출 방식은 매우 상징적이다. 국민은행은 현지 은행을 인수하여 시장에 들어갔고 리테일 금융 중심 전략을 선택했다. 신한은행은 현지 법인을 설립하여 기업 금융 중심 전략으로 시작했다. 두 은행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은행들의 진출은 카자흐스탄 금융 산업에 새로운 금융 서비스와 리스크 관리 문화, 그리고 국제 금융 시스템과의 연결을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자흐스탄 금융 산업은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디지털 금융과 모바일 금융의 발전이었다. 이제 카자흐스탄에서는 은행 지점보다 스마트폰 앱이 더 중요한 금융 창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은행에 가지 않는다. 대신 스마트폰으로 송금하고 대출을 받고 세금을 내고 물건을 산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은행이 단순한 은행이 아니라 결제와 쇼핑, 금융 서비스가 결합된 플랫폼 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카자흐스탄 금융 산업의 역사는 매우 극적인 변화의 연속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은행을 만들고, 해외 자금을 끌어와 빠르게 성장했고, 금융 위기로 거의 붕괴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금융 시스템을 재정비했고, 그 과정에서 외국 은행들이 들어왔고, 이제는 디지털 금융과 플랫폼 금융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진출 이야기는 단순한 해외 진출 이야기가 아니라 카자흐스탄 금융 산업이 국제 금융 시스템과 연결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의 한 장면이었다.
은행 건물은 콘크리트와 유리로 지어지지만 금융 시스템은 시간과 경험과 위기와 실패 위에서 만들어진다. 카자흐스탄 금융 산업도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빠르게 성장했고 큰 위기를 겪었고, 그리고 지금은 그 위기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다.
카자흐스탄 금융 산업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은행 이야기가 아니라 이 나라 경제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위기를 겪었으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함께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중앙아시아 한가운데에서 한국 은행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이야기 또한 함께 들어 있다. 카자흐스탄 금융 산업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