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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독립 35주년 기념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의 근현대사 22]

[카자흐스탄 독립 35주년 기념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의 근현대사 22]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본지 주필

지난 5월 29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는 「디아스포라 정책과 역사유산」을 주제로 한 정책공공외교세미나가 열렸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학자, 정책 전문가, 고려인 사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번 세미나는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학술행사가 아니었다.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통해 한국과 카자흐스탄이 공유해 온 경험을 되짚어 보고,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양국이 어떠한 미래 협력 모델을 만들어 갈 것인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발표에 나선 갈리 딘무함메드 응용민족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민족 간 화합과 사회적 조화의 성공적 모델」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의미 있는 화두를 던졌다. 그는 “유럽에서 말하는 톨레랑스보다 훨씬 이전부터 카자흐 초원에는 상호부조의 전통이 존재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표를 들으며 필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이야기되는 관용과 공존은 과연 유럽에서만 시작된 것일까.

  톨레랑스(Tolerance)는 현대 민주주의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다. 그 어원은 라틴어 ‘톨레란티아(Tolerantia)’에서 비롯되었으며, 본래는 ‘견디다’, ‘받아들이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유럽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수백 년에 걸친 종교전쟁을 겪으면서 서로 다른 신념과 사상을 인정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존 로크를 비롯한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종교적 관용을 주장했고, 이러한 철학은 근대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다수의 힘으로 소수를 억압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는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초원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가치가 꼭 철학자의 저서 속에서만 탄생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유목민들의 세계에서 생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혹독한 겨울과 가뭄, 전염병, 가축의 폐사와 같은 재난은 공동체 전체를 위협했다. 누군가의 불행을 외면하면 언젠가는 자신도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었다. 따라서 초원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돕고 나누는 공동체 문화를 발전시켰다.

  카자흐인들에게는 이러한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통이 있다. 바로 ‘아사르(Asar)’다. 아사르는 집을 짓거나, 농사를 돕거나, 가축을 잃은 이웃을 지원하는 등 공동체 구성원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돕는 전통을 의미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서로를 돕는 문화다. 오늘날의 사회복지제도나 자원봉사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아사르는 그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초원의 윤리이자 생존 방식이었다.

  초원에서는 한 사람이 집을 잃으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집을 지어 주었다. 가축을 잃은 가정에는 여러 가문이 조금씩 가축을 나누어 주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있으면 마을 전체가 참여해 힘을 보탰다. 이러한 문화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었다. 공동체 전체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었다. 갈리 딘무함메드 교수가 말한 ‘톨레랑스 이전의 상호부조 전통’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가리킨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 카자흐스탄의 국가 운영 원리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독립 당시부터 다민족 국가라는 복잡한 현실을 안고 있었다.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130여 개 이상의 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 카자흐인뿐 아니라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고려인, 위구르인, 타타르인, 체첸인, 폴란드인 등 수많은 민족이 공존한다.

  1991년 독립 당시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 복잡한 다민족 구조, 지역별로 양극화된 인구 구성, 문화와 언어의 차이, 소비에트 체제가 남긴 정치·사회적 유산은 언제든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요소였다. 실제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일부 서방 전문가들은 카자흐스탄을 잠재적 분쟁 지역으로 평가했다. 소련 해체 이후 구유고슬라비아와 코카서스 지역에서 민족 분쟁이 발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카자흐스탄 역시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카자흐스탄은 대규모 민족 충돌 없이 국가 통합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 중심에는 정부 차원의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창설된 ‘카자흐스탄 민족회의(Assembly of the People of Kazakhstan)’다.

  민족회의는 각 민족 공동체 대표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로,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가 대화와 협력을 통해 공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단순한 문화행사 기구가 아니라 민족 간 갈등을 예방하고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는 제도적 플랫폼이었다. 카자흐스탄은 민족회의를 통해 다양한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면서도 국가 정체성을 함께 구축하는 독특한 모델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경험은 오늘날 세계 여러 다문화 국가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고려인들이다.

  1937년 스탈린 정권은 연해주에 살고 있던 약 17만 명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다. 고려인들이 도착한 미지의 땅, 중앙아시아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카자흐 초원에 내린 고려인들에게 손을 내민 카자흐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 역시 넉넉하지 않았지만 카자흐인들은 식량을 나누어 주고, 집 한 칸을 내어주었다. 고려인 노인들의 증언 속에는 “카자흐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고려인들은 이후 황무지를 개간하고 벼농사를 성공시키며 중앙아시아 농업 발전에 기여했다. 교육과 과학, 의료,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강제이주의 피해자였던 고려인들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지역사회 발전의 주체가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내년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2027년은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90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우리는 고려인의 역사를 주로 비극과 피해의 관점에서 바라보아 왔다. 물론 강제이주는 분명히 기억해야 할 역사적 비극이다. 그러나 9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이제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이번 세미나에서 필자는 고려인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고려인은 더 이상 단순한 ‘피해자 서사’의 주인공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고려인을 ‘역사적 주체’로 재인식해야 한다. 또한 해외에 사는 한민족을 단순한 ‘외국인 노동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동포 기반 인적 자산’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동시에 고려인은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있는 ‘경계인’이 아니라 한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연결자’다. 한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경제협력, 문화교류, 공공외교의 중요한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고려인은 정부 정책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교실과 교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필자는 이번 세미나에서 AI 기반 한국어 학습 플랫폼 활용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어디에 살든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언어는 역사와 문화, 감정과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차세대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단순한 교육사업이 아니라 한민족의 정서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그것이야말로 미래 세대의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오늘날 세계는 갈등과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민족과 종교, 이념과 문화의 차이는 여전히 국제사회의 중요한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은 어쩌면 거창한 철학 이론으로서의 톨레랑스가 아닐 수도 있다. 서로를 돕고, 함께 살아가고, 공동체의 어려움을 자신의 문제처럼 받아들였던 대초원의 상호부조 정신일지도 모른다.

  유럽이 톨레랑스를 통해 민주주의의 길을 열었다면, 유라시아 초원은 아사르를 통해 공존의 길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는 강제이주라는 비극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낸 고려인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우정은 외교 문서 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어려운 시절 서로의 손을 잡아 주었던 사람들의 기억 위에 세워진 역사적 유산이다. 고려인 강제이주 90주년을 앞둔 지금, 우리는 그 역사를 단순한 과거의 비극으로 기억할 것이 아니라 미래 협력의 자산으로 계승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초원에서 시작된 상호부조의 전통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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