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문화카자흐 초원에 다가오는 봄의 소리, 나우르즈

카자흐 초원에 다가오는 봄의 소리, 나우르즈

김상욱(고려문화원장)

3월이 되면 카자흐스탄 대지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온다.  응달진 골목 모퉁이에는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는 잔설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겨우내 흰 눈이 덮여 있던 초원에는 어김없이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돋아난다.  

          해마다 3월이 오면 나는 29년 전, 카자흐스탄에 와서 처음 맞이한 ‘나우르즈’축제가 가끔씩 생각나곤 한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알마티국립대학교는 각 단과대학 별로 유르타를 세우고 카자흐 전통음식을 상다리가 휘도록 차려놓고 축제를 즐겼다. 그때 나를 포함한 몇 몇 외국인 교수들은 대학본부에서 설치한 유르타에 초대되어 갔는데, 그곳에서 사듹꼬프 총장의 권유로 ‘크므스’와 ‘삶은 양고기’를 맛보았다. 카자흐인들은 손님을 후하게 대접한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는 터이기도 하려니와 총장의 따뜻한 호의가 고맙기도 해서 나는 ‘크므스’와 ‘양고기’를 주는 되로 받아 먹었다 

          처음 맛본 시큼한 맛의 ‘크므스’는 대학신입생 시절 경험한 막걸리 사발식을 기억나게 했고, 총장이 직접 작은 칼로 베어준 양고기는 어릴 적 할머니가 먹여준 개고기 수육을 연상시켰다. 이런 추억때문인지 나에게  ‘나우르즈’는  ‘따뜻한 호의’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게 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올해 5일간 공식연휴이다.  많은 교민들은 이 기간 동안 뭘할지 고민을 하는 모양인데, 모처럼 가족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어떨까? 마침 자녀들도 봄방학에 돌입하기 때문에 그 동안 못다했던 가족끼리의 정을 나누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알마티 근교의 춘자 온천, 악불락, 탕발르 유적 등을 가거나 아니면 터어키, 그루지아, 러시아 등 주변국을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가곤 했는데, 이제는 다들 장성하여 부모 품을 떠난지 오래라 집사람과 단둘이서 알마티 근교를 다녀올 생각이다.  

부럼깨는 우리의 정월대보름 풍습과 비슷한 나우르즈 풍습들

          원래  ‘나우르즈’는 봄의 기운을 받아서 뭔가 새로워진다는 의미가 있다. 절기로는 낮과 밤이 같다는 “춘분”으로 봄이 시작되는 날이 바로 새해의 첫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들은 새해를 세번 맞이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첫번째 새해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축하는 신년 새해이고, 두번째는  우리민족의 전통명절인 음력 설날이다.  그리고 세번째 설날이 바로 이슬람 설날인 ‘나우르즈’이다.  

          나우르즈는 고대 페르시아 문화권에 속했던 이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탄 ,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뿐만 아니라, 터키, 이라크의 쿠르드족, 중국의 위구르족 등 많은 민족들이 나우르즈를  새해로 기념하고 있다. 그래서 가히, 세계적인 명절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나우르즈 당일 각 도시별로 공식 나우르즈 축하행사를 한다. 대부분 시장이 직접 나와 시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알마티시의 경우 공화국광장에서 카자흐전통 민속무용단이나  각 민족의 문화 단체들이 나와서 민속춤을 추고 이날 하루를 즐긴다.

           카자흐인들에게 나우르즈 축제는 새로움, 풍성함, 사랑과 우정을 상징한다. 나우르즈 축제 전에 사람들은 대청소를 하고, 꽃과 나무를 심는다. 또 그 때까지 진 빚을 다 갚고, 다투었던 이웃과도 화해를 하는데, 섣달 그믐날까지 모든 묵은 것을 다 털어버리는 우리네 풍습과 똑같다. 또 카자흐사람들은 나우르즈가 오면 모든 질병과 어려움을 없애준다고 믿는데, 정월 보름에 부름을 깨면서 무병과 복을 구하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축제가 중요한 만큼 준비할 것도 많다. 나우르즈 기간에는 모두가 기분 좋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만나면 서로 껴안고 ‘꼭뗌 투드(봄이 태어났다)’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모든 불행과 재앙이 피해가도록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는데, 우리가 복조리를 걸어놓고 복을 빌며 신년덕담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정에서는 식탁에 화려한 식탁보(다스타르한)을 씌우고,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낸다. 또 이웃을 초대하기 위해 일곱 가지 재료로 만든 ‘나우르즈 꼬줴’라 불리는 전통 수프를 준하고  나우르즈 기간에 먹는 음식인 나우르즈 꼬줴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수프에 들어가는 일곱 가지 재료는 물, 고기, 소금, 기름, 밀가루, 곡류(쌀, 옥수수, 호밀 등), 우유인데, 이 재료들은 인간 삶의 요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나우르즈 꼬줴에 꼭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각각의 의미를 해석하면 즐거움, 행운, 지혜, 건강, 자산, 속력(카자흐 민족은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성장 그리고 신의 보살핌이다.

           나우르즈에서 카자흐스탄 전통 말 타기 경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경기에는 여자들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여자들도 어렸을 때부터 말 타는 법을 배웠다.  경기에서 여자가 승마 선수에게 도전해서 그 남자를 이기면 남자는 여자에게 복종하고 그녀의 소원을 다 들어줘야 했다. 반대로 남자가 이기면 남자는 여자의 손과 마음을 차지할 권리를 얻었다.

          그 외에도 많은 놀이가 벌어지는데 그 중에는 한국에서도 하는 공기놀이가 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베스타스’라고 불리는데, 5개의 돌멩이라는 뜻이다. 하는 방법은 한국의 공기놀이와 같다.   또 전통 춤과 두 명의 시인이 노래 시합을 벌이는 공연은 빠지지 않고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노래 시합은 즉석에서 지어내서 대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축제의 진짜 마지막은 봄의 소생을 의미하는 모닥불을 피우고,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며 노는 것이다. 그 날은 모두들 화려하게 입고, 말도 화려하게 꾸민다.  춤추고, 음식을 나눠 먹고, 구경거리로 가득 찬 길거리들을 쏘다니며 많은 것을 체험하고 배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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