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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관광국가의 현장, 투르키스탄과 야사위 영묘  ‘카자흐스탄의 베네치아’ 케루엔 사라이 복합관광단지 개장 최근, 카자흐스탄의 천년 고도 투르키스탄에서는 투르크어권 국가들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행사가 개최되었다. 지난 10일(토) 개최된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복합 문화관광단지 '케루엔 사라이'의 개장식이 그것인데, 화려한 조명아래 아름다운 운하를 따라 재현된 실크로드 시대의 상인과 장인들의 거리는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했다. 이날 행사에는 아스카르 마민 총리가 참석하여 축사를

“백신 접종 전에는 솔직히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으나…. 막상 맞고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 카자흐스탄, 2월 1일부터 스푸트닉V 백신접종 시작 4월 들어, 일반 희망자 대상 대량 접종 시작 <접종 후 모습(사진 왼쪽)과  ‘스푸트닉 V’백신을 4월 5일에 접종했고 2차 접종일은 4월 26일이라는 정보가 적혀있는 1차 접종 증명서(사진 오른쪽)> 나는 카자흐스탄에서 27년째 살고 있는 한국국적의 카자흐스탄 영주권자이고 카자흐스탄의 경제수도 알마티에 살고 있다.  나는 현지의 의료진이나 교사 등 우선 접종 대상자는 아니지만 카자흐스탄 정부의 대량접종계획에 따라 최근 러시아제 스푸트닉 V백신 접종을 받았다. 나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한국 주류 언론과 포털의 다소 지나친 백신 불신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워낙 이런 류의 뉴스들을 자주 노출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백신접종 후 이상 증상에 대해 불안감을 가졌고 내심으론  굳이 내가 먼저 맞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백신 접종에 대해 유보적 자세를 취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가급적 전세계가 백신접종을 통해 집단면역상태를 가져오는 한편,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뾰쪽한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대량접종이 개시된다면 내가 먼저 본보기로 맞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4월 5일 월요일 아침, 습관처럼 노트북을 열고 현지 뉴스창을 띄웠다. 그런데, 알마티에 대량접종을 개시하자 마자 일부 병원과 임시 접종센터에 백신이 부족하여 3~4일간 백신접종이 중단될 수 있다는 뉴스가 올라와 있었다.  이건 또 뭐람? 하필 내가 백신접종을 하러 가는 날 아침에 이런 뉴스가 나오다니….  혹시 갔다가 허탕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간 접종센터 (카자흐스탄에서는 병원외에도 대형 쇼핑몰에서도 접종센터를 설치하여 운영한다) 에는 예정대로 스푸트닉 V 백신접종을 할 수 있었다. 하루 전에 5명 한조로 팀을 만들어 미리 예약을 해 둔 오전 10시에 맞춰 갔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지역내  접종 희망자가 그만큼 많지 않았기 때문이지는 모르지만….   <알마티 시내의 한 쇼핑몰에 설치된 임시접종센터의 예진실의 모습. 체온과 협압, 맥박 체크 등 기본적인 건강상태를 확인한다> 내가 접종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예약시간보다 약 10분 전이었다. 10시부터 시작하는 그곳엔 이미  4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난 두번째 그룹의 한명으로 접종 예진표를 작성하였다. 자신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 직장명, 그리고 IIN(우리나라의 주민번호와 같음)번호를 적고 난 뒤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그때 비로소 내가 여권이나 영주권 등 나를 증명할 아무런 신분증 소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에 휴대폰에 저장된 현지은행(카스피 카드) 앱과 QR코드를 통해서 세금납부, 송금, 물건구입까지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에 평소에 지갑이나 신분증을 안 가지고 다니는 버릇이 생겨버렸기 때문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휴대폰에 내장되어 있는 신분증을 보여주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내 차례가 되었음을 눈짓으로 알려왔다. 내가 러시아어로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자 간호사는 내가 제출한 예진표를 보고 자신의 장부에 나의 이름을 기록한 후 친절하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체온과 맥박, 협압 등을 측정하였다. 괜한 걱정을 한 셈이었다. 체온은36.2, 혈압과 맥박은 정상이 나왔고 나는 비로소 주사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팔을 걷어 올리는 사이 담당의사는 백신을 주사기에 넣고 내 왼쪽 팔의 어깨쪽에 알코올솜으로 소독을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주사를 놓고 반창고를 발라주고  ‘빠즈드라불라유(축하한다는 뜻의 러시아어)’ 라는 말을 해준다.  오히려 내가 먼저 의료진들에게 ‘스빠시바(감사하다는 뜻의 러시아어)’를 말했어야 하는데, 이들로부터 축하의 인사말을 듣다니…. 어쨋던 예진실의 친철한 간호사와 주사바늘을 찌르는지도 모를 정도로 주사를 놓아주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 의사는 나에게 3주 뒤에 2차 접종을 하러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2차 접종을 완료하면 백신 여권을 받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무료백신접종을 마친 나는 집으로 곧장 돌아와서 충분히 쉬었다. 다행히 난 열과 통증도 없고 기분이나 몸 컨디션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피로감이 몰려오지도 않았고 접종 부위의 통증과 열감도 별로 느끼지 못했다. 혹자는 근육통이 느껴지고 잠이 쏟아진다고 하던데, 나는 접종 후 사무실이 아닌 집으로 바로 와서 휴식을 취했기 때문인지 근육통과 잠이 쏟아지는 걸 전혀 느끼지는 못했다.  나는 접종 후 30시간이 지난 오늘 오후 늦게 평소처럼 약 4km의 잔디를 가볍게 걷는 운동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와서 이 접종 후기를 적고 있다. 물론, 아직도 조심하고 무리하지 않아야겠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이상 증상이 없는 걸 보니 내가 과한 걱정을 했나보다는 생각이 든다. 요컨대, 나는 접종 전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정작 맞고 나니까 별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상욱) (알마티의 경우 시내 쇼핑몰의 임시 접종센터나 16개의 민간병원을 포함한 56개의 국공립병원에서 백신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노래하는 사막’과 카자흐스탄의 관광진흥책 (하) 노래하는 사막 전 세계에는 ‘노래하는 사막’이란 이름을 가진 사막이 30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카자흐스탄 알튼에밀 국립공원 내에 있는 ‘노래하는 사막’이고, 이 곳이야 말로 날씨에 따라 소리의 세기와 음조를 바꿔가면서 마치 노래를 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곳이다. 이는 또한 카자흐스탄에는 있는 카라쿰(Aral

 ‘노래하는 사막’과 카자흐스탄의 관광진흥책  ‘나우르즈’ 맞이 여행 기획 봄의 전령, ‘나우르즈’가 되면 카자흐스탄에는 마을 마다 화려한 축제와 다채로운 행사들이 개최된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19의 재확산으로 인한 도시와 지역별 ‘락다운’과  ‘방역제한조치’들 때문에 이러한 행사들은 개최되지 않았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정부는 독립 30주년을 기념하는 국가 프로그램의 하나로 ‘나우르즈’ 명절이 있는 3월 한 달간을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달로 선포하고 ‘나우르즈’를 전후해서 5일간을 연휴로 지정했다. 나는 이 연휴기간 동안  카자흐스탄 대지에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기획하기로 마음먹고  ‘나우르즈’맞이 여행 -  ‘알튼에밀’ 국립공원 코스를 만들었다. 알마티를 출발하여 소련시절 대중국 중거리 탄도미사일부대가 주둔했던 흔적을 볼 수 있는 ‘사르우젝’마을을 지나 바씨마을, 악타우산, 700년 고목, 징기스칸 부대의 숙영지 흔적, 노래하는 사막, 캅차가이 호수, 골동품 자동차박물관을 이틀동안 둘러보는 일정이다. 이중에서 ‘노래하는 사막’과 ‘악타우’는 한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나는 이 일정을 짤 때 3월 하순이면 카자흐스탄의 유명 여행지들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거나 눈이 녹아서 질퍽되는 점을 감안, 오히려 이 시기에 방문하면 가장 쾌적하고 적절한 곳들을 모아서 일정을 짰다.  혹시, 알마티에 꽃샘추위가 올지라도 카자흐스탄의 스텝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대지를 뚫고 올라올 뿐만 아니라 햇살이 좋은 날에는 따뜻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고 햇살에 따라서 초여름의 기온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이에 반해 천산산맥속에 있는 아씨고원이나 쿨사이 호수, 카인디 호수 등은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아 차량 진입이 어렵다.   ‘알튼에밀 국립공원’ ‘알튼에밀’은 카자흐스탄어로 <황금의 말안장>이란 뜻을 가졌다.  이 지명에는 징기스탄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호레즘 샤를 치기 위해 출병한 징기스칸의 군대가,  몽골고원을 출발하여 사마르칸트로 향해 진군해 가던 도중 이곳 일리 강변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때가 마침 해가 막 서산으로 넘어갈 때였는데, 징기스칸은 석양에 붉게 물던 산 봉우리들을 보고 ‘알튼에밀(황금의 말안장)’ 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이 곳의 지명이 ‘알튼에밀’이 되었다고 한다.   알마티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약 250km 떨어져 있는 이 공원은 1996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야생 말 ‘쿨란’의 서식지이기도 하고 1947년까지 호랑이가 있었던 곳이다. 특히, 이 지역에 살던 호랑이는 ‘투란 호랑이’라고 하는데, 과거 제정러시아시절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아오면  25루블을 지불하는 정책을 펴는 바람에 대규모 호랑이 사냥이 이루어진 결과 멸종하고 말았다고 한다. 최근들어, 카자흐스탄 정부는 다시 투란 호랑이 를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하였는데, 투란 호랑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감인  부하라 사슴 50마리를 이 지역에 풀어놓고 개체수가 안정화시키는 작업을 작년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 알튼에밀국립공원은 쿨란과 호랑이외에도 늑대와 산양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동물보호구역이기도 한데, 야생 늑대가 자주 출몰하는 이곳에서  한국의 모 방송국은 ‘중앙아시아의 야생동물’이라는 자연다큐 를 찍기도 했다. 또한  이 곳에는스키타이 시대의 고분인  ‘비스 샤트르’ 꾸르간이 있고, 총 천연색 바위산으로 유명한 악타우(Aktau)와  붉은색 기암괴석의 박물관 카투타우(Katytau), 그리고  ‘노래하는 사막’이 있다. 악타우 악타우(Aktau)는 카자흐스탄의 서부 카스피해에 있는 석유수출항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알튼에밀 국립공원내에 있는 악타우는 일명 백악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글자 그대로 ‘악’은 희다는 의미이며, ‘타우’는 봉우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녹색, 하얀색, 빨간색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천연색 바위산이고 계곡을 따라 트래킹이 가능하다. 유럽의 여행자들이 이곳을 유별나게 좋아하는데 아마도 그들이 사는 유럽에는 이러한 광활한 스텝과 천연색 바위산이 없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본격적인 여행 시즌이 시작되는 4월이나 5월부터는 이곳에서 야영을 하는 영국, 독일, 폴란드, 스위스 등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도착한 날에도 여러 그룹들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코로나19 의 영향 때문에 이들은 모두 국내 여행자들이었다. 악타우에서는 카자흐스탄 관광홍보 책자에 자주 등장하는 그래서 우리 눈에 익은 총천연색 바위산을 3시 방향에 두고 계곡을 따라 트래킹을 해 볼 것을 추천한다. 정면에는 마치 높은 성벽과 같은 직벽의 바위산(우리나라의  화강암 바위라고 상상하면 안된다. 손으로 만지면 부서러질 정도의 점토성 민둥바위산이다)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데 이 광경 역시 이색적이어서 여행자로 하여금 연신 카메라 샤터를 누르게 만든다. 계곡은 2~5미터 정도의 높이로써 비가 오면 물이 흘러 다니던 물길이다. 가끔씩 내리는 비에도 사방에서 모여든 빗물 때문에 이 곳은 마치 큰 강물처럼 사나운 물길로 변해버린다. 이런 사실들을 모르고 이곳에 텐트를 쳤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물줄기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어쨋던 이 길을 따라 악타우를 바라보면서 걷다보면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지점들을 지나게 된다. 가끔씩은 이 계곡을 따라 산악용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는 바이커들이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악타우산(Aktau)여행을 마치면 다음 코스는 기암괴석의 박물관이라 부르는 카투타우(Katytau)로 이동하게 된다. 이동하는 길 양편에는 카자흐스탄 보호수이며, 샤슬릭(꼬치구이)을 구울 때 사용하는 숯을 만드는 나무인 싹사울 군락지를 볼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한 여행자가 농담으로 샤사울을 캐가자는 말을 던지자 현지인 가이드가 싹사울을 베어가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며 정색을 하면서 대답하기도 했다.  카투타우(Katytau)산은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산이다. 제주도의 현무암처럼 바위에 다양한 구멍이 나있는데, 바위 중에는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큰 것도 있다. 바위의 색깔은 온통 검붉은색으로 이곳 사람들은 화성(Mars) 경치와 비슷하다고들 말한다.(다음호에 계속)

알마티선언과 서중국 - 서유럽 고속도로  세계여성의 날 연휴 이 땅에 사는 남성들은 2월말이 되면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새해 첫날부터 올해의 여성의 날은 어떻게 보낼지를 고민하고 계획한다고도 한다. 나는 이들 처럼은 아니지만 달력의 세번째 장을 넘기면서 고민을 시작했고 그 결론으로 서중국 서유럽 고속도로를 타고 카자흐스탄 땅의 동쪽 끝까지

 카자흐스탄 도시의 변화 3 홍범도가 잠든 땅, 고려인의  도시 크즐오르다 95년의 첫인상 카자흐스탄이 독립된 직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는 당시의 수도였던 알마티였다. 카자흐스탄을 방문할려면 누구든 예외없이  알마티공항이라는 관문을  거쳐야 하므로 너무나 당연하다. 하물며 고려인들이 실재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고 고려인 단체들이 몰려 있는 도시이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어딜까?  바로 크즐오르다이다.  크즐오르다는 천산산맥에서 발원하여 중앙아시아 초원과 스텝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유유히 흐르는 시르다리아강 하류에 위치한 도시로써 카자흐스탄의 남부지역중에서도 서쪽에 치우쳐 있다. 이 도시는 한때 카자흐스탄의 수도(이후 알마티로 수도가 옮겨졌다) 였고, 주변엔 큰 매장량을 자랑하는 ‘꼼꿀유전’이 있다.  (이 유전의 주인은 중국의 석유회사로 바뀌었지만 크즐오르다 시민들에게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고용처 노릇을 하면서 지역경제을 현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37년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들에 의해 허허벌판이었던 시르다리아강변이 가을이면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바뀐 곳으로 유명하다.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벼농사지역인 것이다.  자동차로  3시간 정도의 거리에 소련시절의 우주기지인 바이코누르가 있어서 소련해체 후 이 우주기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보겠다는 정책이 한때 추진되어서 관문 공항으로써  크즐오르다가  자주 언급되기도 했었다.    나는 이미 초겨울의 추위가 느껴지던 95년 10월에 처음으로 크즐오르다를 방문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크즐오르다는 온통 회색빛이었다.  강수량 부족으로 바짝 말라버린 초원(스텝)사이로 구불구불 흐르는 시르다리아강이 유난히 빛나 보였다.     크즐오르다는  아침, 저녁으론 한기가 느껴졌고 낮에는 늦여름의 강한 햇살이 내리쬐이는 적응하기 쉽지 않는 날씨였다. 구소련의 해체로 인한 혼란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내게 보여줄려는 듯, 도시는 낡고 거리는 지저분했었다. 아파트 뒷 골목엔 쓰레기들이 아랄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고여있는 웅덩이들 때문인지 밤에는 모기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활개쳤다. 나는 그때 크즐오르다국립대학교를 방문하여 한국어과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했고 이들과 한국어로 얘기를 나누었었다.  그리고 동포 지도자들의 초대로 만찬문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주동일 할머니의 전설적인 30분짜리 또스트(건배제의) 경험한 것도 이 날이었다. 다음날엔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크즐오르다 공동묘지를 동포지도자들과 함께  참배했었다. 당시 한국은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시절이었기 때문에 해외독립유공자들의 유해를 국내로 안치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도 한국으로 가져가기 위한 작업이 진행중이었던 것이었다. 이는 결국 성사되지 못했는데, 이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하기로 하고, 하여튼 이틀 동안 머문 크즐오르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하루에  더위와 추위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지저분하고 바람부는 도시’ 였다.   그 후 2년 뒤 다시 한번 방문을 할 기회가 있었지만 크게 나아진 건 없었다. 그 때는 여름이었는데, 크즐오르다의 모기는 청바지를 뚫고 피를 빤다는 걸 처절히 체험하였다. 변신 그리고 황금벌판  세번째 방문은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8년이었다.  한국 방송(KBS)의 취재를 돕기 위해서였는데, 난 이 도시의 변화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항에서 도시로 향하는 도로는 아스팔트가 새로 깔려 있었고, 도시는 너무 걔끗하게 정비되어 있었으며  새로운 건물들이 막 들어서고 있었다. 과거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고 생동감과 활기가 넘쳐나는 도시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부산’, ‘아리랑’ 등 고려음식을 하는 식당들도 눈에 띄었고(사실 크즐오르다의 요식업은 고려인들이 거의 장악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내에 까레이스끼 까페 가 많다) 호텔은 저렴하면서도 깔끔하여 여행자들이 편히 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사실 이때 부턴 난 크즐오르다 출장을 즐기게 되었다. 이후 난 틈만 나면 크즐오르다를 방문하였다.  홍범도장군이 계시고, 빅토르 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르다리아 강이 있고  무엇보다 연해주에 있던 원동조선사범대학이 강제이주로 옮겨와서 현재로 크즐오르다 국립대학교가 된 곳에 한국어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사회주의 노동영웅 최정학 선생을 위시한 모든 고려인들의 땀으로 중앙아시아 최대 벼생산지가 된 곳이 이곳이지 않는가?      난 거의 매년 크즐오르다를 방문 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홍범도 장군이 안장되어 있는 크즐오르다시 홍범도 장군 묘역에 들러 참배한 뒤 인근에 있는 ‘아방가르드’와 ‘제3인터내셔날’ 등 고려인 꼴호즈를 방문하여 고려인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크즐오르다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2시간을 달리면 도달할 수 있는 ‘제3인터내셔널’ 꼴호즈는 날 자주 유혹했다. 8월말경에 방문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 황금벌판에 마치 손톱만한 크기의 콤바인과 트럭이 벼수확을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인데,  손톱만큼 작아 보이던 콤바인은 다가갈수록 굉음의 크기만큼 웅장한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오는 경험을 해 보시라.   ‘끝없는 지평선에선 거대한 트럭과 콤바인도 이렇게 작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추수를 하는 작업반원들 그 누구라도 잡고 물어보시라.  내가 한국에서 왔는데, 나랑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지 손가락을 위로 치켜 세우며 ‘까레이츠 말라짓’이라고 하면서 인터뷰에 응해준다.  지금은  카자흐인들이 농장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이 과거 자신들의 작업반장이나  꼴호즈 조합장이었던 고려인들에게 배운 고려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걸 들을 수 있다.  ‘술이(술)’, ‘밥이물이(밥을 물에 만 것)’ ‘개장국(보신탕)’ 등 고려말 어휘들을 접할 수 있다. 3천 헥타르(약 1천만 평)정도의 논을 가진 농장들이  끄즐오르다 주변에는  수 십 개 있다. 제3인터내셔날과 함께 쌍벽을 이루던 고려인 꼴호즈가 있는데, 바로 ‘아방가르드’이다. ‘아방가르드’꼴호즈는  당시 크즐오르다에 있던 조선극장의 배우였던 리 함덕(고려인들 사이에서는 춘향 ‘함덕이’로 더 잘 알려진 인민배우), 리 니콜라이의 고려말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있는 국가홍보영화의 촬영장이기도 했다.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에 이 꼴호즈가 선택되어질 정도로 생산성이 뛰어난 농장이었던 것이다. 빅토르 최의 고향… 자주 방문하고픈 크즐오르다   지금으로 부터 31년 전인 1990년 8월 15일,  80년대 러시아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당시 빅토르의 나이는 고작 만 28세.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소련 전역에서 추모행사가 열렸고 장례식이 수차례 연기될 정도로 그 열기는 뜨거웠다. 빅토르를 따라가겠다고 5명의 팬들이 투신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열성 팬 30여 명이 무려 4년 동안이나 시묘살이를 했을 정도였다.     20세기 대중음악의 선두였던 록음악을 통해 소련 젊은이들을 열광케 만들었던 빅토르 최는 1962년 6월 21일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최대 거주지였던 크즐오르다에서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에서 태어났다.     6살 때 가족과 함께 뻬쩨르부르그로 이주했지만 그는 어린 시절 물장구 치면서 놀았던 시르다리야 강에서의 추억을 잊지 않고 고려인의 정서를 작품에 녹여 내었다. 이러한 그의 노래는 80년대와 90년대 전반기 소련 젊은이들의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한마디로 80년대 러시아의 문화현상 그 자체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의 음악성의 원천은 바로 이 시르다리야 강이 아니었을까? 라고 추측을 하면서 시내를 걸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시내를 걷다보면 크즐오르다 기차역에 닿게 되는데, 역 뒤 고가다리를 건너면 홍범도 거리를 만나게 된다.  거리 초입에 있는 건물 벽에는 장군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 부조판이 붙어 있다.   “이 거리는 연해주지역에서  활동한 전설적인 항일 빨치산 대장이었다가 1937년 크즐오르다로 이주해 온 홍범도 장군의 이름을 딴 거리입니다” 라고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나는  이 거리 뿐 아니라 옛 조선극장 자리, 옛 조선원동사범대학,  그리고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묘지와 그들의 영웅적인 스토리들이 크즐오르다에 각지에 흩어져 있다. 이를  동포사회가 나서서 보존, 관리하고 또 스토리텔링 작업을 한다면 현지인들도 기꺼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지난 27년간의 크즐오르다 변화발전상 못지 않게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스토리가  발굴되고 관리되어진다면 더 자주 이 도시를 방문 할 것 같다. (김상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카자흐스탄지회장)

 사긴타예프 알마티시장은 현재 알마티의 코로나 19 상황에 대해 "빠른 전파력을 가진 남아공과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신규 확진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2일 텡그리 뉴스가 전했다. 사긴타예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발병한 이후 3만 5천 193건의 감염 사례가 나왔다"면서 "오늘 아침 현재 595명의 신규확진자가 발생했고 이중 497건은

사긴타예프 알마티시장은 도시봉쇄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2일(현지시간) 텡그리뉴스가 전했다.사긴타예프는 백신접종 저조와 코로나 19의 세번째 물결의 시작 등 알마티시의 코로나 19상황과 대응에 대해 설명하면서 "현재 의료시스템이 코로나 19에 대처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의 완전한 폐쇄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의료시스템의 대처능력과 감염률이 임계점을 넘어서 관리할 수 없게 되면

  알마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BAO가 3년간 폐쇄된다고 22일(현지시간) '카라반'이 전했다.  마랏 아이나베코프 알마티시 관광국부국장은 "현재 산사태방지용 댐 건설이 진행중이며 3년 동안 계속될 것인데 도로개통문제는 공사완료 후에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2020년 3월, BAO로 가는 도로는 일부 구간의 협곡과 산사태로 인해 무기한 폐쇄되었다. 현재 관광객들은 도보로만 Big Alma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