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리즈] 카자흐스탄 독립 30주년 기념 ‘유라시아의 심장, 카자흐스탄의 탄생과 성장’
카자흐스탄 도시의 변화 2
아크몰라 → 아스타나 → 누르술탄
’아크몰라’ 이전의 역사
초원의 민족인 카자흐인들은 예로부터 광활한 스텝을 주 무대로 살아왔다. 사르아르카 초원을 포함하는 광대한 카자흐초원이 그곳이다.
1731년 서몽골지역의 패권을 잡은 오이라트부의 준가르가 카자흐초원을 침략하자, 대,중,소 주스(부족)로 나뉘어 살고 있던 카자흐인들은 큽차크칸국을 구성하던 지방정권들 중의 하나였으나 분열된 세나라 (카잔칸국, 크림칸국, 아스타라칸국)를 차례로 자신의 휘하에 굴복시키고 큽차크칸국의 새주인으로 등장한 모스크바공국(러시아 왕조)에 보호를 요청하게 된다.
그 후 카자흐초원의 정중앙에 위치한 아크몰라에는 러시아의 군사요새가 건설되었고 1824년에는 ‘아크몰린스크’ 라는 러시아식 이름의 도시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
19세기 중엽부터 이곳은 러시아의 카자흐초원 통치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고, 20세기 초에는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도시는 더욱 성장을 하게 된다.
스탈린 사후 소련의 최고 권력자가 된 흐루시쵸프 당서기장은 시베리아 처녀지 개발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나가는데, 이곳은 그 주요 현장이 되고 1961년, 밀생산과 농업의 중심도시답게 ‘쩰리노그라드’로 이름이 바뀐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인해 카자흐스탄이 독립되면서 옛 명칭인 아크몰린스크의 카자흐어식 이름인 ‘아크몰라’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아크몰라는 ‘하얀 무덤’이라는 의미로써 수도명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1997년 카자흐어로 ‘수도’라는 뜻을 가진 아스타나 로 또다시 명칭이 변경된다.
2019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그 직을 자진사임하고 국부(엘바스)로 추대되자 이 도시는 그의 이름을 따서 ‘누르술탄’으로 개명된다.
건축한류의 현장, 수도이전 10주년, 동계아시안 게임과 엑스포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매년 두자리수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던 카자흐스탄은 전세계에 ‘자원부국’, ‘신흥강국’ 의 이미지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 나간다.
이 무렵 국내 건설사들도 경쟁적으로 현지에 진출하게 되는데, 가장 먼저 카자흐스탄 주택개발사업에 관심을 가진 업체는 바로 동일하이빌이었다. 나는 2005년 이 회사의 초청으로 아스타나의 건설현장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고 연이어 MBC방송국의 ‘W’프로그램의 제작을 위해 다시 한번 아스타나를 방문하게 되었다.
수도가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이전되었던 1997년 초, 아직 ‘아크몰라’였던 이 도시를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변해 버린 아스타나를 목도할 수 있었다.
‘리스뿌블리카’거리 양편과 기차역 앞이 이 도시의 거의 전부이다시피하였는데, 이심강서쪽의 신도시에는 고층건물을 짓기 위한 대형 크레인들이 쉴 새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이심강변에는 대통령궁인 ‘악오르다’가 우뚝 서 있었으며 그 주변을 마치 성벽처럼 감싸고 있는 정부청사건물들, 쭉 뻗은 중앙대로 그 양 옆의 정부기관들과 아파트들 , 그리고 수도 이전 연도인 1997년을 기념하여 97미터의 높이로 만들어진 ‘바이제렉’ 타워는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정부청사건물을 고려인 건축회사가 시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순간 어깨가 으슥해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아직도 동일하이빌 현장과 피라미드(평화의 전당)로 진입하는 길은 진흙탕 이었고 그나마도 길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빙빙 둘러다녔고 초봄에는 눈이 녹아서 장화를 일상적으로 신고 다녀야만 할 정도였다. 지금은 깨끗하게 아스팔트 도로로 포장되어 있고 잘 가꾸어진 화단들이 있어서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함께 말라버린 진흙들이 미세한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리면서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2007년 아스타나 수도 이전 10주년을 맞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각국 정상들을 자신의 분신과 다름없는 수도 아스타나로 초청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스타나시와 자매결연이 되어 있는 서울시의 오세훈시장이 문화사절단을 이끌고 그 초청에 응하였다.
나는 당시 ‘한국영화제’와 문화행사의 현지 주관사 대표로서 아스타나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미 국제적인 도시로 탈바꿈해 있는 아스타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유목민의 천막을 형상화한 ‘한샤트르’ 복합 쇼핑몰과 주변 도시 경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고, 이심강변을 산책하는 시민들과 주변 빌딩의 조화는 저녁 노을이 질 때 특히 아름다웠다.
구도심의 중심거리였던 ‘리스뿌블리카’ 주변도 새롭게 단장을 한 건물들로 인해 분위기가 확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이심강을 가로지르는 여러 개의 다리가 개통되고 미국대사관이 이전해 오면서 하이빌 주변 경관도 몰라보게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2011년 아시안게임이 아스타나에서 진행된 것을 기억한다. 타스마감베또프 아스타나 시장은 아시안게임을 위한 스케이팅 경기장 건설을 다그치던 모습과 한국의 이승훈 선수가 빙상종목에서 금메달을 2개씩이나 목에 걸던 장면과 함께 비춰지던 아스타나의 도시전경들을 기억하고 있다.
‘미래의 에너지’라는 주제로 열린 ‘2017년 아스타나엑스포’는 전세계에 미래 도시 아스타나의 위상을 다시 한번 맘껏 뽐냈음은 물론이고 나자르바이예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카자흐스탄 신경제정책인 ‘누를르 졸(Нұрлы жол)’가 ‘실크로드 경제 벨트’에 좋은 귀감으로 떠오르는 계기도 되었다.
대사관 이전과 한국문화원 개원
2008년 알마티에 있던 주 카자흐스탄 한국 대사관은 이전작업을 완료하고 8월 7일 공식 업무를 재개하게 된다. 이로써 정무,경제,교육, 동포 업무 등 재외공관의 주요업무들이 대사관의 이전과 함께 아스타나로 옮겨가게 되고 알마티는 분관의 지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그로부터2년 뒤인 2010년 3월, 아스타나시 문화중심가에 최첨단 IT 정보강국 브랜드와 문화강국 이미지를 접목하여 우리나라의 현대와 전통문화를 카자흐스탄 국민에게 조화롭게 소개하게 될 한국문화원이 개원하게 됨으로써 아스타나는 한국민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당시 개원을 기념한 한국문화페스티벌은 일주일 동안 아스타나와 알마티 두 도시에서 다채롭게 펼쳐졌는데 국립민속국악원의 국악공연을 시작으로 한국영화페스티벌 행사로 “식객” 및 “미녀는 괴로워”등이 상영되면서 아스타나는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 한류의 확산의 진원지가 되기 시작하였다. 명실공히 고려인동포뿐만 아니라 카자흐시민에게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중심지로써 아스타나는 그 이름을 올려놓게 된 것이다.
유라시아 초원의 한가운데 세워진 누르술탄는 신생 독립국 카자흐스탄의 변화와 발전을 상징하는 도시이다. 이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이고 웅장하고 화려하면서도 도시를 벗어나면 펼쳐지는 넓은 초원에 둘러싸인 도시, 누르술탄은 다양한 민족들이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도시, 도로와 철도가 교차하는 유라시아 물류의 요충지라는 매력까지 가지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로 향하는 철길과 고속도로, 거기에 더해 기술로 인한 디지털 하이웨이가 바로 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다. 누르술탄 대학에서는 이공개 분야 영재들이 전세계에서 초청되어 온 유명한 교수진들로부터 최첨단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의 미래와 유라시아경제연합의 미래는 바로 여기, 누르술탄에 있다. 이것이 바로 이 도시의 진정한 변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