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크로드 기행 2]
황금인간이 발굴된 천산북로 기행
김상욱
고려문화원장
총 길이 1,400km의 ‘골든 링‘ 투어는 천산북로 기행의 백미
사막과 광활한 대초원 그리고 협곡과 산중 호수, 만년설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세계적인 코스
고대 실크로드 중 천산북로는 중앙유라시아 유목민들에게 가장 인기는 땅으로 꼽히는 세미레치예 지역을 지나간다. 현재의 카자흐스탄의 남동부지역과 키르기스스탄 전체를 포함하는 광활한 지역인 세미레치예는 천산북로의 요충지로써, 세계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유목민들이 바로 이 곳에서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고대로부터 사카(Saka)와 오손(Wusun, 우순), 훈(Hun)과 투르크(Turk) 그리고 대몽골울루스(몽골제국)가 이곳을 장악함으로써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대제국을 건설했던 흉노족과 돌궐족은 어디로?
많은 사람들이 실크로드를 장악함으로써 대제국을 건설했던 흉노족과 돌궐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궁금해 한다. 이 대목에서 중앙유라시아를 이해하는데 꼭 한가지 알고 가야 할 것이 있다. 흉노족과 돌궐족 이라는 개념으로 이 지역을 보면 오히려 인식에 장애가 오기 때문에, 족속의 개념보다는 훈, 투르크 라고 불리는 정치집단 또는 이들을 대표부족으로 하는 국가개념으로 봐야지만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얼굴 외모로 민족을 판단하는데, 러시아인처럼 생긴 카자흐인, 동양인처럼 생긴 러시아인을 흔히 만날 수 있는 알마티 시내에서 길 가는 사람을 세워놓고 가족관계를 물어본다면, 유라시아에 살고 있는 민족명 두어개는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혼혈이 일반화되어 있다.
시대에 따라 그 지역을 지배하는 정치집단의 주류 세력과 한방울의 피라도 섞였다면 그들의 조상이 곧 자신의 조상이 되고 그들로부터 민족 정체성을 찾을려고 하는 경향은 오래전부터 반복, 유지되어 왔다.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던지 크게 상관하지 않고 북방에서 내려온 좀 더 강한 유목세력이 선행 유목지배집단을 몰아내고 주도권을 장악하면 또 다시 그들과 융합되어 그들의 일원 또는 그들 자체가 되어 온 것이다.
자신들의 국가 수립일을 돌궐의 건국 시기인 552년으로 잡고 있는 튀르키예가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돌궐제국이 왕위계승문제로 지배계층간 갈등이 생기고, 여기에 중국의 이간질이 더해져 분열되고 결국 중국에 복속되었지만, 고향 땅인 몽골고원을 떠나 카자흐 초원으로 쫒기듯 와서 세운 나라, 서돌궐은 몽골고원에 국한되었던 돌궐제국보다 더 큰, 현재의 중앙아시아지역 대부분과 러시아의 카스피해 북부 지역까지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또한 이들 중 카자흐스탄 서부에 주로 거주하던 오구즈부족은 아나톨리아 반도로 들어가 20세기 초까지 유럽인들에게 공포와 함께 물질적으로 풍요한 국가로써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오스만 투르크를 세웠다.
고구려의 친구였던 돌궐이 서돌궐과 오스만투르크를 거쳐 현대국가 튀르키예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중앙유라시아의 많은 ‘~스탄’ 국가들은 자신을 투르크계 민족으로 여기며 주변국들을 형제국이라고 여긴다는 것을 주지하자.
자연지리적으로 보면, 몽골고원의 대흥안령 산맥의 서쪽부터 헝가리 평원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8천 km에 달하는 지역이 거의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유기적으로 움직여 온 역사를 보여왔다. 건조한 이 지역은 초원 유목민들의 생활공간이자 역사적 무대였는데 좀 과장하면 마치 하나의 생활권이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류와 융합이 일상회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의 거리 개념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현대 한국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들은 서울 부산을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인 1000km정도를 이동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자, 이제부터 천산북로 기행의 노른자위 세미레치로 떠나보자.
세미레치예와 황금인간
세미레치예는 카자흐어로 ‘제트수’라고 불리는데, ‘제트’(일곱) 와 ‘수’(물)의 합성어로써 ‘일곱 개의 강’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지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목축과 농업을 하기에 매우 기름진 땅이었고, 중앙유라시아를 이어주는 네트워크의 중심지이였다. 동시에,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5천년의 파노라마가 바로 이 세미레치예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대표적으로는 신라의 금관이 출토된 경주의 고분과 매우 유사한 대형 ‘꾸르간’이 널려 있다. 이들 중 알마티에서 동쪽으로 한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리면 도착하는 ‘이식’이라는 지역의 꾸르간에서는 온 몸을 황금으로 치장한 ‘황금인간’이 발굴되었다.
1969년, 이 지역에 자동차 정비창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이 ‘황금인간’은 키 165㎝, 15~18살 정도 되는 남성으로서 모자와 상의, 허리띠와 신발은 온통 순금제 장식으로 뒤덮여 있었고, 허리춤에는 금으로 장식한 철제 단검을 차고 있었다. 모자의 높이가 무려 60㎝가 넘을 정도로 길고 뾰족하였는데, 이런 모자야말로 스키타이와 사카 등 북방 유목기마민족의 상징이다.
이와 같은 황금인간은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지금까지 총 4구가 발굴되었다. 최초로 발굴된 것은 이식, 그 다음에는 카스피해의 유전도시 아티라우, 세 번째는 알타이 산맥이 있는 동카자흐스탄 지역에서 출토됐고 가장 최근 발견된 황금인간은 서카자흐스탄 지역에 묻힌 사르마티아 지도자이 것으로 밝혀졌다.
모든 유물이 그러하듯,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화려한 황금인간은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고고학적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는 황금인간은 특히,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독립한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의 상징이 되었고 이런 기조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카자흐인 고고학자 케멜 아키세프 박사에 의해 발굴된 이 황금인간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바로 무덤의 구조가 신라 고분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은 왜 고구려, 백제, 가야가 아닌 세미레치예(제트수) 지역의 고분과 닮았을까?
고분형태가 동일한 적석목곽분일 뿐만아니라 금 장신구가 신라금관의것과 유사한 점 때문에 신라 왕족이 흉노의 일파라느니, 북방 유목민이라느니 논란이 있고, 카자흐스탄의 고고학자들은 황금문화의 세력권이 신라의 경주까지 미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라시아와의 교류라는 관심으로 본다면, 황금인간은 두 지역간의 교류사 중 한 시기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중세와 근대를 거쳐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교류와 지정학적 연관성을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 과정에서 영국이 한국의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것과 유럽을 잿더미로 만든 2차대전 종전 후 유라시아의 동쪽 끝인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필요했던 것은 미국의 세계패권유지를 위해서 필요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알튼에밀 국립공원’
세미레체예 지역의 7개 강 중에서 가장 큰 강인 일리강은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내린 물줄기에서 발원해서 이 지역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며 흘러간다. 그 물은 발하쉬 호수에 다다라 강의 생명을 다하는데, 이 강의 상류에 해당되는 지역에 바로 ‘알튼에밀’ 국립공원이 있다.
‘알튼에밀’은 카자흐스탄어로 <황금의 말안장>이란 뜻인데, 징기스탄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호레즘 샤를 치기 위해 출병한 징기스칸의 군대가, 몽골고원을 출발하여 사마르칸트로 향해 진군해 가던 도중 이곳 일리 강변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때가 마침 해가 막 서산으로 넘어갈 때였는데, 징기스칸은 석양에 붉게 물던 산 봉우리들을 보고 ‘알튼에밀(황금의 말안장)’ 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이 곳의 지명이 ‘알튼에밀’이 되었다고 한다.
알마티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약 250km 떨어져 있는 이 곳은 1996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야생 말 ‘쿨란’의 서식지이기도 하고 1947년까지 호랑이가 있었던 곳이다. 특히, 이 지역에 살던 호랑이는 ‘투란 호랑이’라고 하는데, 과거 제정러시아시절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아오면 25루블을 지불하는 정책을 펴는 바람에 대규모 호랑이 사냥이 이루어진 결과 멸종하고 말았다. 최근들어, 카자흐스탄 정부는 다시 투란 호랑이 를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하였는데, 투란 호랑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감인 부하라 사슴 50마리를 이 지역에 풀어놓고 개체수를 안정화시키는 작업을 최근에 시작하였다고 한다.
알튼에밀국립공원은 쿨란과 호랑이외에도 늑대와 산양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동물보호구역이기도 한데, 야생 늑대가 자주 출몰하는 이곳에서 한국의 모 방송국은 ‘중앙아시아의 야생동물’이라는 자연다큐 를 찍기도 했다.
또한 이 곳에는스키타이 시대의 고분인 ‘비스 샤트르’ 꾸르간이 있고, 총 천연색 바위산으로 유명한 악타우(Aktau)와 붉은색 기암괴석의 박물관 카투타우(Katytau), 그리고 ‘노래하는 사막’이 있다.
악타우
악타우는 일명 백악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글자 그대로 ‘악’은 희다는 의미이며, ‘타우’는 봉우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녹색, 하얀색, 빨간색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천연색 바위산이고 계곡을 따라 트레킹이 가능하다. 유럽의 여행자들이 이곳을 유별나게 좋아하는데 아마도 그들이 사는 유럽에는 이러한 광활한 스텝과 천연색 바위산이 없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본격적인 여행 시즌이 시작되는 4월이나 5월부터는 이곳에서 야영을 하는 영국, 독일, 폴란드, 스위스 등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악타우에서는 카자흐스탄 관광홍보 책자에 자주 등장하는 그래서 우리 눈에 익은 총천연색 바위산을 3시 방향에 두고 계곡을 따라 트래킹을 해 볼 것을 추천한다. 정면에는 마치 높은 성벽과 같은 직벽의 바위산(우리나라의 화강암 바위라고 상상하면 안된다. 손으로 만지면 부서러질 정도의 점토성 민둥바위산이다)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데 이 광경 역시 이색적이어서 여행자로 하여금 연신 카메라 샤터를 누르게 만든다.
계곡은 2~5미터 정도의 높이로써 비가 오면 물이 흘러 다니던 물길이다. 가끔씩 내리는 비에도 사방에서 모여든 빗물 때문에 이 곳은 마치 큰 강물처럼 사나운 물길로 변해버린다. 이런 사실들을 모르고 이곳에 텐트를 쳤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물줄기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어쨋던 이 길을 따라 악타우를 바라보면서 걷다보면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지점들을 지나게 된다. 가끔씩은 이 계곡을 따라 산악용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는 바이커들이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악타우산여행을 마치면 다음 코스는 기암괴석의 박물관이라 부르는 카투타우로 이동하게 된다. 이동하는 길 양편에는 카자흐스탄 보호수이며, 샤슬릭(꼬치구이)을 구울 때 사용하는 숯의 재료가 되는 ‘싹사울’ 나무의 군락지를 볼 수 있다.
카투타우산은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산이다. 제주도의 현무암처럼 바위에 다양한 구멍이 나있는데, 바위 중에는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큰 것도 있다. 바위의 색깔은 온통 검붉은색이다.
노래하는 사막
알틴 에밀 국립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노래하는 사막’이라 불리는 ‘빠유쉬 바르한’이다. 겨울엔 눈이 쌓여 볼 수 없는 사막이, 여름이면 모습을 드러낸다. 불가사의를 좋아하는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한 ‘노래하는 사막’은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모래가 날려가지 않고 일정한 모래산의 높이와 길이를 항상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부터 이 곳은 단순한 모래 언덕이 아니라 전설적인 인물이나 왕이 묻혀 있는 고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그 지역 노인들 중에는 징기스칸의 유골이 바로 ‘노래하는 사막’의 모래산 아래에 묻혀있고 정확한 자리는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전설을 말하는 분들이 있다. 학자들은 이 모래산이 근처의 일리강변에서 바람에 의해 날려온 모래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바람의 강도에 따라서 소리의 세기와 음조가 바뀌는데, 어떨 땐 고양이가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나고, 어떨 땐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되는 소리가, 어떤 때는 모터소리와 같은 울부짖음이 들린다고 한다. 특히, 발가락사이 사이에 깨끗하고 고운 모래가 바람에 따라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을 직접 듣는다면 그 어떤 여행자도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모래산 능선에 새긴 나의 발자국이 바람에 의해 금방 뭉개져 버리는 신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