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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르바예프, 차기 대선에서 토카예프 현 대통령 지지 밝혀

1일, 자서전 ‘나의 인생 – 의존에서 자유로’ 발간

 나자르바예프 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2029년에 예정된 차기 대선에서 토카예프 현 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리아 노보스찌가 1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나자르바예프는 “2021년 11월 23일 나는 누르오탄당 정치위원회 회의에서 당 의장직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넘기겠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이 대통령 반대파 활성화의 주요 신호로 작용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집권당의 대표가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믿기 때문이죠.”라면서 “(다음) 선거에서… 나는 토카예프를 지지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나자르바예프는 그의 회고록 ‘나의 인생 – 의존에서 자유로’에서 1월 사건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2022년 1월 사태의 주된 이유는 권력투쟁이었고, 경제적 어려움이 이 투쟁을 촉발시킨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카자흐스탄에 존재하는 ‘이중 권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나자르바예프는 “계속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데 왜 권력이 필요합니까?” 라면서 “토카예프가 새롭고 책임감 있는 작업에 막 참여했을 때… 나는 (나의 경험이) 필요할 때 자문함으로써 그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가끔 조언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우리는 소위 탠덤이 없습니다.”라고 그의  회고록에서 언급했다.

‘나의 인생 – 의존에서 자유로’ 발간

  12월 1일 발간된 나자르바예프의 회고록 ‘나의 인생 – 의존에서 자유로’에는 그의 젊은 부인과 두 아들들에 대해서도 적고 있다.

  그는 “딸띄꾸르간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가 원수가 지역을 순방할 경우 주로 항공편을 이용하는데, 대통령 전용기가 그 지역 공항에 내리면 화동으로 부터 꽃다발을 받습니다. 통상 그 지역의 가장 아름다운 소녀들이 그러한 행사에 참여하도록 선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면서 “나는 딸띄꾸르간 공항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불타오르는 표정과 우아하고 조각 같은 자태를 지닌 흰 얼굴의 아름다움을 가진 화동이 인상적이었고 오랫동안 기억했습니다”고 회고했다.

 그는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딸띄꾸르간 공항에서 나를 만난 그 아름다운 소녀의 이미지가 내 기억 속에 계속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론뉴스를 훑어보고 있었는데 신문 사진 한 장이 나를 불타오르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스타나에서 열린 미스 카자흐스탄 대회에서  바로 그 소녀(그녀의 이름은 아셀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가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조금씩 데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아셀의 외모와 생각 모두에서 나는 내가 찾고 있던 많은 자질을 보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년 동안 지속되었던 정신적 외로움을 없앴다는 것입니다.”라고 아셀과의 첫만남과 데이트를 할 때 그의 심정을 솔직히 밝혔다.

결혼과 아들의 탄생

  “우리는 이슬람 관습에 따라 결혼했습니다. 아셀은 나에게 두 명의 자랑스런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2005년에는 타우만이 태어났고, 2008년에는 바이켄이 태어냈습니다. 아버지가 되는 기쁨, 아기에게 뽀뽀하는 행복이 예순다섯 살이 되어서야 다시 내게 찾아왔습니다. 내 아기들의 첫 걸음, 첫 말과 옹알이, 내 품에 안겨주는 아이들의 마법 같은 장난감의 세계, 처음으로 1학년이 되는 첫 글자를 읽고 쓰는 기쁨, 나를 향해 시끄럽게 달려오는 아이들 퇴근 후 집에 들어갔을 때 … -이 모든 것이 수도 건설의 피로를 씻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시절과 세월을 기억하면 즐겁기 그지없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진정한 행복은 오직 자녀와 부모가 되는 행복을 통해서만 사람에게 줄 수 있습니다.”라고 나자르바예프는 ㅆ고 있다.

사라 나자르바예바

  “어렸을 때부터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가장 어려운 시련의 시간에 곁에 있어준 내 세 딸 다리가, 디나라, 알리야의 어머니 사라에게 나는 평생 감사와 보살핌으로 대해 왔습니다. 힘든 삶을 살았지만, 내 운명의 전환점에서 그녀가 나를 이해하고 용서했다는 것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타우만이 태어난 후 내가 알마티에 와서 그녀에게 사과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 때, 이 존경스러운 부인은 또다시 그녀의 고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아기는 천사예요. 아이가 행복해지도록 해주세요.”라고  나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말해주었습니다.  내 딸들도 나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러한 사건은 모든 여성에게 있어서 가혹한 시험이지만, 나는 사라 알피소브나의 관대함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이미 그녀의 할아버지가 코나카이라는 사르아르카의 유명한 ‘바이’였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는데, 이미 70대에 접어든 큰 아내인 바이비셰는 그가 어린 소녀와 약혼하고 결혼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

  운 좋게도 그녀는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은 알피스였습니다. 사라는 조상의 관습을 기억하여 넓은 영혼으로  이같은 사실을 받아 들였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그녀는 이미 지친 내 영혼을 괴롭히기 위해 서두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나자르바예프는 회상했다.

나의 가족

  “일반적으로 나는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아이들을 똑같이 대합니다. 나는 세 딸에게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태어난 손자들(카자흐 민족문화 전통과는 반대로)도 똑같은 본격적인 손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한 나자르바예프는 가문의 상속자이자 계승자는 아들이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오늘 나의(우리집안의) 계보는 카라사이 – 콜섹 – 아이다르 – 무르자타이 – 켄바바 – 에딜 – 사빡바이 – 나자르바이 – 아비쉬 – 누르술탄 – 타우만, 바이켄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감과 영감을 줍니다. 혈통이 끊어지지 않으면 희망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제 두 아들이 자랐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사랑과 보살핌으로 자녀를 양육함으로써 사람은 생명을 연장합니다.”고 적은 나자르바예프는 “벗들이여, 나는 당신 앞에 (내 삶과 관련된) 모든 사실을 얘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든 이제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고 마무리 지었다.

  나자르바예프는 1940년 7월 6일 생으로, 알마티 근처의 우쉬코누르에서 태어났다. 1962년 카라간다 야금 기술 대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졸업 후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1977년에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카라간다 주 공산당 위원회 서기에 임명되었으며, 나중에 제2서기에 임명되었다. 1979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에 임명되었으며 1984년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각료회의 의장에 임명되었다.

  1986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으며, 고르바초프 정권하에서 중앙아시아의 대표가 되었다.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동지였던 딘무하메드 코나예프 카자흐당 서기장을 해임했으며, 이후 러시아인 출신의 겐나디 콜빈을 카자흐스탄 공화국 공산당 서기장으로 임명하였는데, 한때 카자흐인의 데모가 일어날 뻔했다. 1989년 6월, 카자흐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로 취임하였다. 1990년 7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에 임명되었다.

  1991년 12월 1일 초대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95년 4월에는 국민투표를 거쳐 그의 임기를 1999년까지 연장시켰는데, 1999년 1월 카자흐스탄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며 7년 임기로 다시 취임하였다. 이후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계속적으로 권력을 독점하여 독재자로도 평가된다.

   2019년 3월 20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카자흐스탄 공화국 대통령직에서 전격 사임하였다.[6] 2019년 3월 23일, 아스타나 시의 이름을 그의 이름으로부터 따와 누르술탄으로 바꾸는 것이 결정되었다. 2021년 4월 23일부터 2022년 1월 5일까지 카자흐스탄 공화국 민족대회 명예회장으로 있었다. 2021년 11월 23일에 집권여당인 누르 오탄의 당총재직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현직 대통령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당명예총재로 물러앉았다. 2022년 1월 5일에 4일 전에 발생한 알마티에서 일어난 액화석유가스 가격 폭등 항의 시위가 전국적인 소요사태 및 대통령 축출 미수 사건으로 확산시킨 것에 책임을 물어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초대 대통령이자 전직 대통령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를 자진사퇴 방식으로 카자흐스탄 공화국 안전보장이사회 종신이사장, 카자흐스탄 공화국 명예상원의원, 카자흐스탄 공화국 헌법평의회 종신위원, 카자흐스탄 공화국 민족대회 명예회장, 튀르크국가기구 명예회장, 누르오탄 당명예총재, 민족지도자 등 공직에서 모두 강제해임하여 완전히 물러났다. 2022년 6월 5일에 헌법개정 국민투표로 인해 민족지도자 직함과 민형사상 종신면책특권을 완전히 박탈당했다. 2023년 1월 11일에 카자흐스탄 헌법재판소에서 초대 대통령에 관한 헌법적 법률을 상대로 내린 위헌판결로 인해 민족지도자 칭호를 완전히 최종적으로 영구 삭탈당함과 동시에 카자흐스탄 명예상원의원직도 정식으로 완전히 영구 박탈당했다.(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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