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의 대홍수… 수해 복구와 인도적 지원 현장을 가다
우랄강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우랄스크, 아티라우 2차 대홍수 예고
지역주민, 군병력 동원 우랄강 둑방 높이기 공사나서
고려인 동포사회, ‘민족회의’를 통해 수재구호품 전달
<아티라우시 부시장>
지난 3월 말 부터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시작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국경 부근 지역의 홍수는 30년만의 대홍수로 기록되고 있다.
러시아의 오렌부르크주에서는 4월 초순, 급증하는 물의 압력으로 우랄강에 있는 댐이 터진 후 홍수가 발생해 가옥 1만2천800채가 침수되고 7천700여 명이 대피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한때 10개 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혔다. 약 8,000마리의 소들이 물에 잠겼고 4,000채가량의 주택이 침수되어 1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피했다.
본지는 이렇듯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국경지역 일대를 휩쓴 대홍수로 인해 집과 재산을 모두 잃은 수재민들과 현장 목소리와 또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2차 홍수 예보된 우랄강변의 도시들… 카자흐스탄 최대의 석유도시, 아티라우에서는 제방높이기 공사중…
하늘에서 내려다 본 아티라우 시가지의 모습은 카스피해를 향해 흘러가면서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우랄강이 햇빛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반짝였다.
공항에 내려 바로 달려간 아티라우시 ‘콕뎀’이라는 지역에서는 다가오는 홍수를 막기 위한 제방쌓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불도우저와 포크레인 등 대형 중장비들이 굉음과 흙먼지를 휘날리면서 부산하게 운행하고 있었고, 군복을 입은 장병들은 중장비들이 가져온 흙을 포대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티라우엔지스트로이’사 사장인 콘스탄틴씨는 “우랄강의 상류지역인 러시아쪽으로 부터 유입되는 수량이 증가함에 따라 약 10일 뒤쯤 우랄강 하류에 위치한 아티라우지역에 대규모 홍수피해가 예상된다”면서 “아티라우 지방정부는 홍수피해로 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총 연장 215km 달하는 우랄강둑을 높이는 보강공사를 긴급히 하기로 함에 따라 지난 3월 말부터 아티라우엔지스트로이사는 모든 중장비를 총동원하여 콕템 지역을 포함한 2개의 현장에서 200명의 직원들이 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 현장에서 만난 콘스탄틴 사장은 “이번 공사에는 공무원, 군병력, 자원봉사자, 지역주민 등 모든 사람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작업에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텡그리 뉴스를 비롯한 현지 매체들의 16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비상사태부는 이날 “아티라우 주를 포함한 카자흐스탄 서부와 북부 지역 주민 약 11만4천명이 홍수를 우려해 대피했다”며 “이들 중 약 1만3500명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우랄강 상류인 러시아로 부터 다량의 강물이 카자흐스탄쪽으로 유입되고 있어 2차 홍수피해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티무까노프 누르잔 아티라우 부시장은 “우랄강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아티라우 시 당국은 우랄강변을 58개 기업이 112개의 구역으로 나눠 제방쌓기 공사를 긴급히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8천명의 군 장병과 지역주민으로 구성된 1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제방쌓기 공사에 투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티라우 콕뎀 지역 공사 현장 책임자인 알마스 이즈둘레우노프씨는 “지금까지는 겨우내 얼음위에 쌓여 있던 눈이 녹아서 홍수가 발생했다면, 이제부터는 눈아래에 있던 얼음이 녹기 시작했기 때문에 불어난 강물과 얼음 덩어리들이 강변를 깍으면서 하류로 내려와서 더 위험한 상황이 예상된다”면서 “우랄강변에 있는 우랄스크, 그리고 500km 하류에 있는 아티라우 지역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번에 큰 홍수가 발생한 카자흐스탄 북부와 러시아의 시베리아 남부 지역에는 우랄강과 같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강줄기가 있는 반면, 카자흐쪽에서 북쪽 러시아로 흘러가는 물줄기도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흘러온 강물이 유입되는 러시아의 쿠르간주 토볼강의 상황도 우랄강과 마찬가지로 수위도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기상예보에 따르면, 토볼강의 수위는 18일까지 계속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주민 1만 2천여명을 이미 대피시켰다.
‘일하는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뜻의 주무스케르 마을
16일 오후, 아타리우 근교의 주무스케르마을에서는 어린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우랄강 제방공사에 사용될 흙주머니 작업을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을앞에는 대형 천막이 쳐져 있었고 포크레인 2대가 동원되어 2미터 가량되는 강둑 높이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류드밀라 발렌티노브나 아티라우시 고려인협회장은 “우랄강 범람을 막기 위해 동네 어린이들까지 제방공사를 돕고 있다”면서 “직장인들의 경우 퇴근 후에 마을 앞 제방공사 현장에 와서 밤 늦게 까지 일을 하기때문에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음식을 준비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최대 500명분의 식사를 거의 매일 준비한다는 그녀는 “내일이면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의 신 안드레이회장과 신 브로니슬라브 회장이 ‘민족회의’를 통해 보내는 수재구호품 트럭이 아티라우에 도착한다”고 알려주었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는 카자흐스탄 대홍수 피해가 발생하자 지난 4일, 긴급 중앙상무위원회의를 소집하고 ‘쥬리켄 쥬리케'(심장에서 심장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홍수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에게 보낼 구호품을 모으기로 결정하고 모금 창구 직원을 지정하고 구호품 모으기에 돌입했다.
이에 앞서 홍수가 발생한 직후 김 블라지미르 카작므스 회장, 신 안드레이 신라인 회장 등 고려인 기업인들은 자발적으로 수재의연금을 낸 바 있다.
카자흐스탄 대홍수로 수몰된 아티라우 주 꿀사르 시
아티라우 주에서 이번 홍수로 90%가 잠겨버린 꿀사르 시로 향하는 도로는 다행히 긴급 복구되어 있었다. 비록, 1개 차선만 복구되어 양방향에서 온 차량들이 교통경찰의 통제를 받으면서 서로 교행해야 했지만 꿀사르 시 홍수현장을 직접 가 볼 수 있게 되었다.
아티라우에서 자동차로 3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꿀사르시는 마치 전장을 방불케 했다.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은 도시의 저지대에 위치한 주택, 주유소 등이 물에 잠겨 있었고, 시내 진입로는 아직도 세찬 물줄기가 도로 위를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차량이 운행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대형 트럭들 조차 속도를 죽여서 천천히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시내 바자르 근처에는 주민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수재민들이 생수나 긴급 공수된 의류를 나눠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자르 옆을 지나는 강물의 수위는 강둑의 높이보다 약간 낮아진 상태에서 누런 황토빛 강물을 하류로 흘러 보내고 있었다.
대피소에서 만난 한 주민이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담담하게 당시의 홍수상황을 설명하려 하자, 주위에 있던 일부 수재민들이 기자에게 다가와 «너희들이 무엇을 도와줄 수 있냐?» 면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고함을 치자 잠시 대피소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홍수로 자신의 집이 완전히 물에 잠긴 이즈마간베토프 사르셈바이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바자르 근처에 있는 물에 잠긴 자신의 집을 직접 보여주면서 순식간에 도시를 집어 삼켜버린 당시 상황을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사르셈바이씨의 집 근처에는 또다른 수재민이 가슴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가 딸린 옷을 입고 자신의 집에서 가재 도구를 꺼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도 역시 실의에 빠진 목소리로 “자신의 집과 전 재산을 이번 홍수로 잃었다”면서 수해상황을 설명해 줄 심정이 아니다”고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물에 잠긴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꿀사르시민 아질레트 샤이무랏트씨는 자신의 아파트를 가리키면서 “저 아파트의 1층이 우리집이다”면서 “대형 탱크로리 트럭으로 물을 퍼내고 있지만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집과 재산을 잃은 수재민들이 처한 현재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마치 전장과도 꿀사르 시 수해 현장은 피해 지역이 넓고 그 정도가 심해서 시 당국과 주민들의 복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게 끝이 아니라 또다시 2차 홍수까지 예보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불행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수해 복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물질적 지원이 시급함이 느껴졌다. 어려울 때 돕는 자가 진정한 친구이다. (김상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