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일보) = 러시아 데이터센터에 대한 공격의 여파로 카자흐스탄의 주요 택시 호출·배달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하면서 디지털 인프라의 국경 간 의존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카자흐스탄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얀덱스 고(Yandex Go)의 서비스가 차질을 빚자 대체 플랫폼으로 이용자가 몰리는 등 파장이 확산됐다. 이번 사태는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디지털 서비스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데이터 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 부각했다.
러시아 데이터센터 공격 여파…중앙아시아로 확산
2026년 10월 11일 카자흐스탄에서는 택시 호출과 음식·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이 잇따랐다. 현지에서 널리 이용되는 얀덱스 고에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면서 이동과 배달 등 일상생활에 불편이 이어진 것이다.
이번 장애는 러시아 내 얀덱스 데이터센터들이 2026년 10월 8일부터 11일 사이 잇따라 공격을 받은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랴잔주 사소보와 칼루가주, 블라디미르주에 있는 데이터센터가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블라디미르 지역 시설은 가동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는 카자흐스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러시아 외 국가에서도 택시 호출과 배달 서비스 이용에 차질이 발생했다.
이번 사태는 디지털 서비스가 국경을 넘어 연결된 환경에서 한 국가의 데이터센터 문제가 다른 국가 시민들의 일상까지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데이터 처리와 클라우드 인프라가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을 경우, 해당 시설에 문제가 발생하면 여러 국가의 서비스가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카자흐스탄 택시 시장의 강자, 얀덱스
얀덱스는 흔히 ‘러시아판 구글’로 불리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이다. 검색엔진을 기반으로 성장한 뒤 지도, 택시 호출, 음식 배달, 전자결제, 음악 스트리밍,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얀덱스 고는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플랫폼이다. 현지 매체 쿠르시브가 소개한 2024년 시장조사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택시 시장에서 얀덱스의 점유율은 2023년 48.6%에서 2024년 59.2%로 상승했다.
이처럼 특정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 이용자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지만,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을 때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생긴다. 특히 택시 호출과 배달처럼 생활 밀착형 서비스는 이용자가 체감하는 불편이 크고, 대체 서비스의 공급 능력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기술적 의존성도 살펴볼 대목이다. 얀덱스 고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앱 자체뿐 아니라 데이터 처리와 클라우드 인프라 등 다양한 기술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카자흐스탄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국내에 저장되더라도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 처리와 연산이 국내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계 디지털 플랫폼이 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특정 기업이나 해외 인프라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외부 충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 이번 장애는 디지털 서비스의 안정성을 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인프라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체 택시 앱으로 이용자 이동…인드라이브 주문 급증
얀덱스 고의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자 카자흐스탄에서 운영되는 다른 택시 호출 서비스에도 이용자가 몰렸다.
대표적인 대체 플랫폼은 인드라이브(inDrive)다. 이 밖에 카자흐스탄의 아파루(APARU)와 테즈 택시(Tez Taxi), 드라이비(Drivee) 등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전기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린SM도 이용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다만 대체 플랫폼의 성격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인드라이브는 현재 러시아와 별개의 국제 사업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러시아 사하공화국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따라서 러시아와의 역사적 연관성까지 없는 완전한 대안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면 아파루와 테즈 택시 등 현지 플랫폼은 카자흐스탄 자체의 디지털 서비스 생태계를 육성한다는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실제 이용량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회사 측에 따르면 2026년 10월 11일 오전 인드라이브의 택시 및 배달 주문은 평소보다 약 세 배 증가했다.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로 차량이 부족해지고 일부 지역에서는 요금이 크게 오르는 현상도 발생했다.
인드라이브는 급증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운전기사 수수료를 낮추고 신규 운전기사 확보에 나섰다. 2026년 10월 12일 기준 애플 앱스토어의 관련 카테고리에서도 인드라이브가 1위에 올랐으며, 그린SM과 아파루, 드라이비 등 다른 대체 서비스의 순위도 상승했다.
그러나 단기간의 주문 증가와 앱 순위 상승을 장기적인 시장 점유율 변화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서비스 장애를 계기로 이용자들이 대체 앱을 내려받았더라도, 기존 플랫폼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용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대체 플랫폼의 실제 성장 여부를 판단하려면 향후 이용자 수와 주문량, 운전기사 공급, 시장 점유율 등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파블로다르주 데이터센터 밸리 조성…디지털 주권 강화 추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카자흐스탄이 추진하는 데이터 인프라 확충 사업에도 관심이 쏠린다.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가 북부 파블로다르주에서 진행 중인 ‘데이터센터 밸리(Data Center Valley)’다.
카자흐스탄 총리실이 2026년 8월 1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의 첫 시설 건설이 진행되고 있으며 목표 용량은 50메가와트(MW)다. 에너지 시설과 인공지능 관련 시설을 위한 부지 정비와 기초공사 등이 추진되고 있다.
다만 목표 용량과 실제 가동 중인 시설의 용량은 구분해야 한다. 첫 시설의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데이터센터 밸리 전체가 완성됐거나 계획된 용량이 이미 운영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데이터센터는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시설을 넘어 디지털 경제와 인공지능 산업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통신망, 냉각 설비, 전문 인력 등을 확보해야 하며, 시설을 구축하는 것만으로 디지털 주권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국내에서 데이터를 안전하게 처리하고 관리할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해외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적절히 조정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카자흐스탄이 데이터센터 밸리 조성을 통해 자체적인 데이터 처리 역량을 확대하고 디지털 인프라를 강화한다면,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지 플랫폼 육성과 서비스 간 경쟁 촉진 역시 특정 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는 방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
편리함을 넘어 디지털 인프라의 독립성 확보해야
카자흐스탄에서 얀덱스 고는 단순한 택시 호출 앱이 아니다. 시민들의 이동과 음식 주문, 식료품 구매를 연결하는 생활 인프라에 가깝다.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자 이용자들이 즉시 불편을 겪고 대체 앱으로 이동한 현상은 디지털 플랫폼이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준다.
이번 사태가 카자흐스탄의 디지털 정책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해외 플랫폼이 제공하는 편리함을 유지하면서도 서비스의 핵심 기반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디지털 주권은 해외 기업의 서비스를 배제하는 것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데이터 처리와 저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자체 인프라와 기술 역량을 키우며,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육성하는 과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러시아 데이터센터 공격으로 촉발된 이번 서비스 장애는 카자흐스탄에 디지털 경제의 취약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데이터센터 확충과 현지 플랫폼 육성, 서비스 공급망 다변화가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