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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시리즈 : 카자흐스탄에 사는 다양한 민족들 4 – 쿠르드]

카자흐스탄에 사는 다양한 민족들


 
   대표적인 다민족국가인 카자흐스탄에는 카자흐인들외에도 고려인, 러시아인, 독일인 등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통상, 카자흐스탄에는 100여 민족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데, 잉구쉬, 크림타타르, 체첸, 오세티야, 둥간, 위구르, 아프카니스탄, 우즈베크, 투르크멘, 유대인, 터어키, 쿠르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쟌, 카자끼,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민족이 카자흐초원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언제 무슨 이유로 이 땅에 왔을까?  이런 질문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카자흐스탄사람이라고 뭉둥거려서 일컫는 이들 중에는 옛부터 갈등의 역사를 가진 민족들이 있을 수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전혀 다른 민족의 기원과 역사와 문화를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사실, 우리와 얼굴 모양이 흡사하다고 해서 카자흐인들과 고려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서양인들이 있다면 우리는 이들에게 조금은 서운해 할 것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을 아직도 모르는 세계인이 있냐고……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민족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다면 우리는 카자흐스탄과 고려인에 대해서도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민족에 대한 관심은 결코 미세한 차이를 극대화 시켜 소수민족별로 갈라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각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더 잘 이해함으로써 세계시민으로서 또는 카자흐스탄 국민으로서 총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함임을 분명히 해 둔다. 
  고려인에 대한 아픈 역사를 안다면 고려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우리도 기타 소수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잘 앎으로써 이들을 더 잘 이해해 보도록 하자. 그리고 형제가 되자.
  본지에서는 이러한 취지로 이 땅에는 어떤 민족들이 살고 있나? 시리즈를 기획하였다. <편집자 주>
 
4. 쿠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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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오랜 친구인 끄냐제 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는 쿠르드민족문화중앙 간부들과 함께 민족화합의 날에 열린

쿠르드문화 홍보 부스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

 
  알마티시민들이 주말이나 휴일이면 자주 찾는 뚜르겐 계곡. 알마티에서 동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가면 된다. 이 계곡에는 천산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눈 녹은 물을 이용해서 송어를 키우는 곳이 있어서 알마티시민들에게는 꽤 유명한 휴식처이다.  구소련시절부터 유명했던 이곳에는 고르바초프 전 소련공산당서기장도 와서 무지개 송어 요리를 먹고 갔다고 한다.
뚜르겐 계곡의 이 송어양식장을 가다 보면 초입에 쿠르드인들의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외형적으론 알마티 근교 마을과 전혀 다른 점이 없는 그냥 평범한 마을처럼 보인다. 쿠르드인들은 뚜르겐 계곡 외에도 알마티 시내에서도 자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전역에 특히, 고려인들의 최초 정착지 우슈토베에도 쿠르드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우슈토베에 사는 쿠르드인들은 고려인들보다 4~5년 뒤에 이주해 왔는데, 재밌는 사실은 고려인들보다 더 완벽하게 고려말을 구사하는 쿠르드인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뒤 생존을 위해 고려인들이 황무지를 개간해서 집단농장을 건설했다면, 몇 년 뒤 고려인 집단농장으로 이주당한 쿠르드인들은 고려인 농장장을 말을 알아 들어야만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려말을 배웠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고려말을 배웠다는 사실이 우리를 웬지 모르게 서글프게 한다.
 한편, 우리는 국제뉴스를 통해서 쿠르드인의 소식을 자주 접해왔다. ‘터어키군이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다’ ,  ‘중동의 새로운 불씨, 시리아 쿠르드 반군’ 등의 제목을 달고 최근 들어 국제면을 자주 장식하는 뉴스들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쿠르드인들은 터어키와 시리아, 이란과 이라크 등의 나라가 서로 국경을 접하는 산악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중 하나인데, 이들은 한 번도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항상 어느 나라에 종속되어 살아왔고 현재는 쿠르드인들이 사는 지역이 위에 언급한 나라들로 쪼개져 있기 때문에 마치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가는 유랑민족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오늘날 이들 전체 인구는 4000만명에 달하는데,  터어키에 1,540만명으로 가장 많이 살고 있고, 그 다음이 이란에 680만명이 살고 있다. 이 외에도 이라크에 430만명, 시리아에 130만명이 살고 있으며 기타 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카자흐스탄 등지에 흩어져 있다.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독립된 국가를 세워보지 못했던 쿠르드인들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므로써 쿠르드인들의 독립국가의 열망을 은연중에 지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역사적으로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울 필요를 느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갑자기 든다. 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오스만투르크제국을 약화 또는 붕괴시키기 위해 동원된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열강은 전통적인 식민지 지배방식인 분열과 쪼개기 전략을 오스만투르크제국내에도 적용시켰다. 사소한 차이를 앞세워 분열을 조장했던 것이다. 서구열강은 진정으로 쿠르드인의 자치국가를 지지했다기 보다는 오스만제국의 해체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쿠르드의 일부 정치지도자들의 경우에는 독립국가 수립이 쏠깃했을는지 몰라도 평범한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과연 오스만 제국의 한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과 꾸르드 독립국의 한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했거나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터어키인들과 다른 정체성을 가져야 할 이유가 뭔지를 몰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쿠르드인을 터키, 아랍 민족과 구분해서 보기 시작한 건 20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오스만투르크제국 시기(1875년)의 인구조사를 보면, 당시 프랑스 고문관들이 인구조사를 했는데, 제국 내 민족을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무슬림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당시 사람들에겐 무슬림이냐 아니냐가 중요했지 그들이 어떤 언어를 썼는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쿠르드인들의 근대 민족주의는 1930년대 이후 신생 터어키공화국이 ‘터어키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반발로 성장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사실 모든 쿠르드어를 사용하는 쿠르드인들이 스스로를 ‘쿠르드’ 정체성을 갖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쿠르드의 일파라 분류되는 자자인(Zaza)들은 자신들을 쿠르드와 동일하게 묶는 것을 매우 불쾌해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자자인들이 터어키 내에 거주하는 쿠르드계 부족 중 가장 큰 부족인 쿠르만즈(Kurmancılar) 부족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왔고 자자인들이 터키 공화국에 호의적이기 때문이었다.
 어쨋든, 쿠르드인들은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자신들도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꿈을 꾸었다. 서구열강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의 충돌이 결국 세계 1차대전(1914~1918) 발전해 나가자 당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를 한 축으로 하는 삼국연합군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그리고 오스만제국을 축으로 하는 3국 동맹국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때 오스만 제국내에 있던 수많은 민족들에게 독립국 건설의 약속을 하게 되고 이에 자극을 많아 쿠르드인들도 전쟁 후 자신들의 국가건설의 희망을 안고 오스만제국에 대항하게 된다.
1차대전에서 3국 동맹이 패하게 되고 독일과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고 수많은 신생독립국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 와중에 독립국을 건설하지 못하고 영국에 의해 토사구팽을 당한 것이 바로 쿠르드인들이다.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 유전이 발견되자 영국은 약속을 저버리고 국경선을 임의대로 그어서 그 땅을 이라크로 편입시켰고, 오스만투르크제국의 해체 이후 터어키공화국이 이를 계승하면서 세워지자 쿠르드의 독립은 뒷전으로 밀어버렸다.  “쿠르드를 독립시켜주면 안 된다”는 터어키의 입장을 영국이 수용한 것이다. 오스만투르크제국을 이은 현재의 터어키는 쿠르드인들은 산악 터어키인이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독립을 반대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쿠르드인의 문화
 
오랜 기간 터키인들과 공존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문화적으로는 터키인과 전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닮았다. 물론 이 지역으로 이주한 터키인들이 더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쿠르드족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가령 남동부 아나톨리아에 남아있는 전통 문화 중에 남성이 머리에 두르는 수건인 푸시도 원래 쿠르드족의 풍습이며, 이쪽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입는 품 넓은 바지인 샬바르도 원래 쿠르드 옷이다. 이 지방의 민속춤인 할라이도 쿠르드족의 민속춤이다.
쿠르드인은 이슬람교를 믿는데, 이들은 종교가 아닌 사용 언어와 문화로 정체성을 찾는 민족이다. 언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쿠르드어다. 쿠르드어는 페르시아어와 매우 유사하며, 쿠르드어 내부에서도 소라니어 같은 다양한 방언이 존재하는데, 방언 격차가 상당히 커서 상호 의사소통이 안되는 방언도 있다.
사용하는 문자는 쿠르드인들이 사는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다. 즉, 터키에 사는 쿠르드인들의 경우는 터어키에서 사용하는 라틴 문자를 사용하고,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에 사는 쿠르드인들은 아랍-페르시아 문자를 사용하며,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지역의 쿠르드인들은 키릴 문자를 사용한다.
이들은 민족 종교인 야지디교를 주로 신봉했었으나 현재는 수니파 이슬람교가 대다수다. 야지디교는 야지드파, 예지드교, 예지드파라고도 불린다. 10세기경에 나타난 쿠르드족의 일신교 계통 야즈단파의 분파에다가 미트라교, 메소포타미아 전통, 기독교, 이슬람, 조로아스터교 등의 종교를 섞어 만든 쿠르드족의 민족종교이다. 본인들은 최초의 일신교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일신교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종교다.
현재는 이슬람에 밀려 극소수만 믿는다. 야지디교도들은 조로아스터를 쿠르드인 성인으로, 유대교를 야지디교를 베낀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나아가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야지디교에서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들만의 주장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중동 민족에 비하면 종교가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적은 편이다. 아무래도 세월을 걸쳐 여러 종교가 쿠르드인을 걸쳐왔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들의 지위도 비교적 높은 편에 속하며, 이들의 사회 참여도 활발한 편이다.
쿠르드인들의 주된 생업은 목축으로 대대로 유목민으로서 생활해 왔다. 그러나 고려인들이 더 이상 농사만 짓는 민족이 아니듯이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쿠르드인들도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해서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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