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동포사회에 대한 성숙되고 객관적 인식의 필요성
1990년 6월 4일. 이날은 역사적인 한-소 수교의 날입니다. 그래서 올해로써 수교 30주년이 됩니다.
당시,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정상회담을 갖고 그 동안 미소 냉전체제와 6.25사변을 겪으면서 상호 적대국이었던 관계를 청산하기로 한 것입니다.
한소 수교 이후 1990년 12월 31일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했고, 1991년 4월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여 양국간의 우애를 확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수많은 유학생과 지상사 주재원 그리고 개신교 선교사들이 소련으로 향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우리에게 잊혀져 있던 재소 한인(지금은 ‘고려인 ’이라고 통칭한다. 이하 고려인으로 칭함)의 존재가 조금씩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국내 언론과 방송들이 앞다투어 고려인에 대한 특집 다큐를 제작, 방송하고 학계에서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 언어 등에 관해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 관심은 더욱 높아갔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어 15개의 신생 독립국으로 쪼개지자, 한때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해 온 소련이 ‘종이 호랑이’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고려인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식어 가기 시작했고, 고려인들도 더 이상 소련국민이 아니라 카자흐스탄 고려인,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러시아 고려인, 우크라이나 고려인 등등으로 불려지면서 스스로 위축되어져 갔습니다.
사실 많은 고려인들은 88서울올림픽을 TV를 통해 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TV화면에 비춰진 서울의 거리모습이나 시민들의 얼굴표정을 보면서 말입니다. 전 김일성종합대학총장을 지내셨던 박일선생님이 생전에 필자에게 그때의 감동을 자주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때 부터 고려인들은 죽기전에 가볼수 없을 것만 갔았던 조국땅을 살아 생전에 밟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를 알고자 원했던 모국과 고려인동포들은 교류가 시작되면서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되자 자신들이 경험하고 습득한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 마치 전부인양 인식하게 되는 경향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려인의 존재를 알고 직접 가서 만난기 시작한 지 30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고려인들의 모국에 대한 이해보다 모국이 고려인동포를 이해하는 정도가 더 피상적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고려인 = 강제이주’ 라는 등식아래 동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소련해체와 시장경제체제에 편입되면서 격심한 경제적 혼란까지 겹치자 어느듯 고려인은 우리가 도와줘야 할 불쌍한 존재로 인식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언론에는 모국에 일자리를 찾으러 온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고려인 또는 체류 조건의 변경으로 부모와 떨어져서 다시 중앙아시아로 돌아가야 하는 고려인 청소년 스토리 등이 자주 소개되면서 이러한 인식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