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기획특집[한-소 수교 30주년 기념 특별기획 : 우리는 고려사람이오 – 7]

[한-소 수교 30주년 기념 특별기획 : 우리는 고려사람이오 – 7]

우쉬토베 고려인의 일상음식과 잔치음식

김 따지아나 선생은 고려인들의 최초 정착지 우쉬토베의 원동마을에 사는 분입니다. 강제이주 후 우쉬토베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현재까지 이 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외모상으로는 마치 러시아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유창한 고려말을 사용할 뿐 아니라 러시아인 어머니로부터 배운 고려음식 솜씨가 뛰어납니다. 자고베(혼혈를 뜻하는 고려말)였던 그녀는 대부분의 고려인들이 현지의 문화를 수용할 때 더 철저히 고려말과 고려문화를 강조해 온 러시아인 어머니 덕분에 오히려 우리말과 문화를 유지해 온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김 따찌아나 선생댁은 원동마을에 위치한 주택입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아담한 2층 본채가 있고 정면에는 구들장이 놓인 작은 별채가 있습니다. 이 별채는 방 하나와 부엌 하나가 전부이지만 이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접대공간이자 사랑방입니다. 이곳은 한때 KBS의 간판 예능 프로였던 ‘1박2일’ 의 촬영장소 중 한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차태현과 김종민, 정준영이 이 방에서 야외 취침을 걸고 따찌아나 선생의 친 언니 들과 2인 1조로 팀을 나눠 3대 3 스피드 게임을 펼쳤죠.

‘1박2일’ 카자흐스탄 촬영 기획안과 후보지를 추천했고, 실재 현지 어렌지를 했던 필자는 지금도 가끔씩 따지아나 선생의 유창한 고려말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한 출연자들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러시아어 전공자들도 고려말이 약간(정말 약간) 섞인 러시아어는 통역과 번역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하는 것을 자주 경험합니다. 얘기가 옆길로 새는 듯합니다만 조금만 더 하면, 필자는 이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서 바슈토베 언덕에 있는 고려인 공동묘지와 최초 정착지 표지석을 안내하며 고려인 강제이주의 역사와 이후 역경을 극복하고 수많은 사회주의 노동영웅을 배출해 낸 고려인 디아스포라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는데, 출연자 들 중에서 차태현씨가 가장 귀담아 듣는다고 느껴지더군요.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당시 ‘1박2일’ 멤버들은 공동묘지 앞 광활한 스텝에서 취침을 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는 제 설명이 제대로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을 것입니다. 하여튼, 가을추수가 끝난 우쉬토베의 광야에서 하게 될 야외취침을 벗어나기 위한 멤버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바로 따지아나선생네 사랑방에서 펼쳤졌던 것입니다.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빠졌었는데 다시 돌아와서, 이 집의 텃밭에는 감자, 양파, 당근, 배추, 호박, 가지, 고추, 파, 오이, 토마토, 상추, 부추, 빨간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텃밭 한쪽에는 목욕탕을 새로 짓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따지아나 선생의 부군되시는 분이 직접 공사를 하시더군요
이 집의 부엌에 있는 냉장고에는 다음과 같은 음식재료들이 보관되고 있었습니다.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물고기는 모두 냉동칸에 넣어 있었고, 냉장칸에는 김치, 달걀, 피망, 양파, 국 끓인 것, 감자, 마늘쫑, 오이, 깻잎, 연유, 케첩, 양배추, 된장, 쨈, 치즈가 들어 있었습니다.
김 따지아나 선생댁의 아침 식사는 리뽀시끼와 시락장물, 그리고 가지와 고기를 식용유에 된장을 넣고 볶은 가지채, 배챠짐치 와 바울사끼 , 된장, 고추잎을 소금물에 절구었다가 된장을 넣고 볶은 것이 식탁에 올랐습니다. 점심은 빵과 바울사끼 남은 것, 가지채, 배챠짐치, 된장, 고추잎 절임볶음이 식탁에 올랐습니다. 저녁에는 한국교회에서 일하는 딸이 배워온 한국식 부침개와 배고자를 자주 해 먹었습니다. 부침개는 고추와 호박, 감자를 썰어서 넣고 밀가루 반죽을 하여 만들었고 배고자는 돼지고기와 양배추, 마늘, 상채, 고치갈기를 주재료로 하여 만드는 것으로 만두의 일종입니다. 크기가 어른 주먹만 하여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입니다.
김 따지아나 선생댁의 일상음식의 특징은 한마디로 우리의 전통 식문화를 많이 간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최초 정착지 우쉬토베이지만 오히려 밥보다는 빵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역시 매끼니 때마다 뜨거운 홍차와 사탕이나 당분이 높은 과자류를 함께 먹는 디저트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아래 그림은 김 따지아나 선생 댁의 구들 모습입니다. 1은 불을 넣기 전의 모습이고 2는 불을 넣기 위해 마루바닥을 여는 모습, 3과 4는 아궁이에 불을 넣고 뚜껑을 닫는 장면입니다. 우쉬토베에는 따지아나선생댁의 별채와 같이 구들이 놓여 있는 집이 아직도 여러채 남아 있습니다. 물론, 예전과 같이 나무 장작을 때는 대신 가스불로 아궁이의 모양은 바뀌었지만 불길을 통과시켜 구들장을 덥히는 고래, 연기를 배출하는 굴뚝 등은 우리 선조들이 불려줬던 예전 그대로입니다.

우쉬토베의 잔칫상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생일, 환갑, 돌잔치 등을 고려인들은 잔치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주로 현물로 선물을 하였지만 요즘에는 주로 봉투에 돈을 넣은 축의금을 주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고려인들은 잔치를 하게 되면 반드시 주문하여 준비하는 것이 찰떡과 증페이(증편을 일컫는 고려말)입니다. 우쉬토베 에는 전문적으로 찰떡과 증페이를 만드는 떡집이 있었습니다. 이 떡집들은 보통 떡외에도 두부나 가주리(가즐, 한과의 일종) 를 만듭니다.

잔칫상에 꼭 올라가는 것 중에 하나가 ‘고려국시(국수)’입니다. 더운 여름철에 시원한 ‘고려국시’는 고려인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이나 카자흐인 모두가 좋아하고 즐겨 찾는 음식이 되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전역에 있는 고려식당의 메뉴에 ‘고려국시’는 빠짐없이 들어있습니다. 국수의 면은 흔히 하는 방식데로 삶아서 건져내고, 국시추미(꾸미를 말함)를 준비합니다. 국시추미에는 양배추 김치, 오이채, 쇠고기를 얇게 썰어서 볶은 것, 고추 볶은 것, 계란 지단 등이 포함되고 국물은 물에 설탕을 조금 타고, 콩지러이(간장), 토마토 잘게 썬 것, 우크롭, 소금, 욱수수(식초)를 넣고 미리 만들어 둡니다. 국시추미는 미리 따로따로 만들어 두었다가 국수를 먹을 시점에 면만 삶아 건져서 그릇에 담고 그 위에 국시 추미를 얹고 국물을 붓습는다. 잔치가 잦은 집에는 국시분트리(손으로 눌러서 국수 뽑는 기계)가 있어서 직접 면을 뽑아서 먹습니다.
배고자는 고려인들이 잔치때 반드시 준비하는 음식의 하나로 돼지고기, 양배추, 마늘, 상채, 고치갈기를 주재료로 하여 만드는 것으로 만두의 일종입니다. 감자배고자는 밀가루 반죽 대신 감자전분으로 만든 만두피에 잘게 쓴 고기와 양배추, 마늘, 상채 등을 넣어 만듭니다. 만두 찜기에 넣고 찌면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입니다.
순대는 밥, 시래기, 돼지피, 소금, 양념을 돼지의 창자에 넣어서 삶은 것입니다. 가주리는 찹쌀가루로 만든 것으로 뜨거운 홍차와 함께 먹는 후식입니다. 고려인들이 직접 만든 엿(설탕이 원료)을 바르고, 그 위에 깨를 살짝 뿌립니다. 시장에서 인기리에 판매됩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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