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확진자수가 31일 06시 현재 309명을 기록한 가운데, 31일 부터 한층 강화된 지역격리조치가 발동된다.   텡그리뉴스에 따르면, 악토베는 31일 자정부터 4월 15일까지 격리조치가 내려졌고, 이미 지역격리조치가 내려진 침켄트는 31일 21시 부터 추가제한조치 도입된다. 즉. 대중교통수단과 도시유지를 위한 공공차량 외 모든 자동차의 침켄트 도시출입이 금지되고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알마티주에도 더 강화된 제한조치가 내려졌다. 역,버스터미널,공항,박람회,단체급식소 및 기타 여러단체의 영업이 중단되고. 식료품점 및 약국의 근무시간은 08.00에서 20.00 시간으로 제한되었다.또한, 알마티주의 의료 종사자가 알마티시로 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잠블주에도 31일을 기해 여러가지 제한조치가 도입되었다. 잠블주내의 대형 쇼핑센터가 문을 닫고, 소매식품시장은 17:00까지만 영업할 수 있다. 단, 도매식품점과 시장, 슈퍼마켓, 식료품점, 편의점 및 약국은 계속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쿠르다이 지역의 경우에는 금지사항이 타 지역보다 더 많다. 가축을 방목하고, 대중교통 및 택시로 이동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쿠스타나이주는 31일 22시 부터 지역격리가 시작되고 주민들은 저녁 10시 이후 외출과 공원산책도 금지된다.   아크몰라주는 31일 19시부터 지역격리가 시작되고 북카자흐스탄주에서는 4월 1일부터 격리조치가 시행된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과 최대도시인 알마티의 공항이 4월 1일 부터 폐쇄된다.   NUR.KZ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4월 1일 자정부터 시작되는 이 조치는 수도 누르술탄시청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공지되었다면서 이번 공항폐쇄 조치는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유효하고 국제선 항공기나 긴급수송항공기의 경우 다른 공항으로 보내진다.   이에 따라, 오는 4월 3일 한국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교민들을 주로 태우고 알마티공항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아시아나 항공의 운항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주알마티총영사관은 공항폐쇄조치에 대한 정식 통보를 받은 바 없다면서 대사관을 통해 카자흐정부의 방침을 공식확인한 후 교민들에게 신속히 공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주알마티총영사관은 30일(월) 교민공지를 통해 도시봉쇄조치를 받고 있는 알마티시 외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교민들의 한국행을 돕기 위해 대사관차량 지원을 공지한 바 있다.   31일 13시 현재 카자흐스탄의 확진자수는 325명이고 당국은 4월 15일까지 이 도시에 대한 봉쇄를 지속할 예정이다. 알마티와 누르술탄은 4월 6일까지 모든 기업과 단체에 대해 휴무조치가 내려져 있고 통행허가증 있거나 약국이나 식료품 구입을 위한 외출외 시민들의 도시내 이동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되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과 알마티에서는 30일(월) 0 시를 기해  1주일간의 휴무라는 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내려졌다. 이에 따라 오는 4월 5일(일)까지 모든 기업과 단체들은 일상업무를 중단되었다.     Sputniknews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 19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내려진 이 조치는 관공서와 의료 및 언론기관, 약국과 식료품점, 통신과 도시기반시설과 물류업체를 제외한 모든 기업과 단체들에게 적용된다. 일반 기업과 사업장들은 인터넷을 통한 업무진행이나 원격관리는 가능하다.    알마티의 경우 30일(월)부터 택시기사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손세정제를 비치해야 하며 1명의 승객만 태울 수 있다.  30일 현재 카자흐스탄의 확진자 수는 284명이고 수도 누르술탄을 비롯해 알마티, 침켄트가 이미 도시격리조치를 받고 있고 30일(월)부터 악타우, 카라간다의 5개 지역(카라간다, 아베이, 사란, 테미르타우, 샤크틴스크)에 추가로 격리조치가 내려졌다.

병원, 약국, 실험실 서비스, 수의학 및 가축 비상 서비스, 응급 치과 서비스를 위한 치과, 의료 용품의 유통, 전기 및 수도를 포함한 도시기반시설, 화재 및 구조 서비스, 주택 관리 분야의 서비스 (전기공, 배관공, 청소, 엘리베이터 유지 보수를 포함한 응급 서비스), 거리 및 건물 청소. 쓰레기 및 폐기물의 수집, 처리 및 폐기, 소독 교통통제, 통신, 특수차량 서비스 및 택시 서비스, 우편, 택배 서비스 건설회사는 현장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작업가능.(현장내 건설노동자의 숙소가 운용될 경우) 식품 및 기본 필수품을 판매하는 소매 체인, 슈퍼마켓, 식료품점 및 식품시장 (대형 및 중형 소매 시설은 평소와 같이 계속 작동하여 직원의 중앙 집중식 운송을 제공하고 위생 기준을 강화할 것입니다. 단, 아파트 건물에 설치된 식료품 점은 예외입니다. 영업시간 10 : 00 ~ 20 : 00); 제조 산업 (음료, 식품 포장을 포함한 식품 산업 기업, 화학 및 의료 산업 (화학물질, 의약품, 의료장비 / 기기), 보안 기관 및 자체 기업 보안 서비스, 가스 및 가스 충전소, 식품 및 약물 전달 서비스 및 필수 제품뿐만 아니라 의료 제품 (09 : 00 ~ 20 :

리더들간의 우정과 신뢰…. 난제를 푸는 효과적인 한 방법 카스피해 유전을 놓고 벌인 러 - 카자흐 간 협상의 뒷 이야기 제2의 사우디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카스피해. 세계적 규모의 텡기즈 유전과 최근 30년동안 인류가 발견한 유전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카샤간 유전은 모두 카자흐스탄에 속한 카스피해에 위치해 있다.  카자흐스탄에 속한 유전은 이외에도 카라차가낙 등 경제성이 뛰어나고 매장량이 많은 유전들이 있다.   이들 유전이 만약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의 소관으로 남았다면 현재의 카자흐스탄이 가능했을까?  엘바스(국부) 나자르바예프가 자주 언급했듯이 이 유전들은 신생 독립국 카자흐스탄의 미래를 담보할 매우 귀중한 자원들이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카자흐스탄에 양도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카스피해의 잠재력을 예견한 카자흐스탄 리더의 선견지명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끈질간 협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85년 7월. 소련을 새롭게 탈바꿈 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미하일 고르바쵸프가 당 서기장이 되고 불과 4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카스피해 연안의 T35 광구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화재로 인해 고온의 석유가 분출되었고 급기야 어마어마한 압력으로 200미터 이상의 뜨거운 불기둥이 치솟았다. 석유전문가들 사이에서 ‘세기의 분수’라고 불린 이 사고는 1년만에 겨우 진압되었다.   당시, 이 사고 현장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카자흐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의 신임 총리였다.  불과 몇 달 전45세의 젊은 나이로 총리가 된 나자르바예프는 이 사건을 통해 카스피해에 매장된 석유가 상상이상의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카스피해의 잠재력에 대해 나자르바예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모스크바 석유산업부의 지질학자들 중 소수에 불과했다.   이후 1989년 6월. 나자르바예프는 카자흐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의 제1서기가 되었고, 당시 소련의 최고 지도자인 고르바초프와 함께 소련의 개혁을 이루어낼 인물로 떠올랐다. 고르바초프는 그를 신뢰했고, 나자르바예프 또한 고르바초프의 개혁 방향을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소련이라는 환자는 고르바초프라는 의사에게 너무 늦게 맡겨졌다.  1970년대부터 생산성하락으로 인한 소련경제의 정체, 계획경제의 비효율,  당과 관료들의 부정부패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가고 있었다. 개혁개방정책으로 자유로운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사회 각 분야에 활기를 불어 놓고자 했던 고르바초프는 강한 권력욕을 가지고 있던 옐친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는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듯해 보였다. 이때 나자르바예프는 소련의 새 연방법을 준비하던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의 총리로 발탁된다. 1990년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미국 방문 중 소련의 이름으로 카스피해의 텡기즈 유전개발에 관해 미국석유회사 세브론과의 협약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세브론사와 소련 석유산업부간의 협상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모스크바 석유산업부의 요구와 쉐브론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혔기 때문인데, 이 때 나자르바예프는 고르바쵸프앞으로 한통의 편지를 띄우게 된다.   1991. 7월  고르바쵸프 대통령에 전달된 편지에는 텡기즈 유전에 대한 권리를 카자흐스탄 국무회의가 가져오겠다는 일방적인 선언이 담겨있었다.  모스크바의 석유산업부 관료들은 댓구할 가치도 없다고 할 정도로 무시했지만 코르바쵸프는 이를 전격 허용하였다. 당시 그는  나자르바예프가 모스크바의 석유산업부 관료들보다 쉐브론 측과의 협상을  훨씬 더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신뢰만으로 텡기즈 유전에 대한 권리를 넘긴 것은 아니고 또 다른 정치적인 역학관계도 고려되었다. 이때는 고르바쵸프는 소비에트를 개혁할 연방조약을 새롭게 만드는 일로 여념이 없었을 뿐 아니라 각 공화국 지도자들과 힘든 협상을 벌이고 있을 때였는데, 분리 독립을 희망하는 각 공화국지도자들과의 논쟁을 중재해달라고 희망했다. 카스피해는  바다?

안녕하세요 신한 카자흐스탄은행입니다 3.28 00시를 기해 발효된 카작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COVID -19 확산 방지대책에 따라, 카작 중앙 은행 산하 금융규제 및 발전위에서 시중은행에 대한 일부 영업제한 조치를 공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3.30(월)부터 다음과 같이 일부 영업이 제한됨을 알려 드리오니,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시행기간 및 영업시간 단축] -시행기간 3.30(월) - 4.3(금) -영업시간 단축 10:00 - 16:00 [불가능 업무] -은행 방문거래 -현금 입출금 거래 -현금 환전거래 [가능 업무]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을 통한 국내자금이체, 해외송금거래 및 계좌간 환전거래 -ATM을 통한 현금 출금거래 본 조치 관련 궁금하신 점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 주시기 바라오며, 모두 건강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부장 임정일 7 727 356 9606 -부장 조현승 7 727 356 9643 -부장 김요셉 7 727 356 9632

  누르술탄과 알마티에서 은행업무가 잠정 중단된다.   zakon.kz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은 알마티와 누르술탄에서 두번째 단계의 은행업무 중단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인터넷뱅킹, 모바일 뱅킹을 포함한 원격채널을 통한 법인 및 개인의 송금업무 등은 정상적으로 할 수 있고 ATM기를 통한 현금인출, 계좌이체 등의 서비스는 평소와 같이 제공된다.  이번 조치는 카자흐스탄 대통령직속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모든 기업과 단체에 내린 3월30일부터 4월5일까지 업무중단조치에 호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충북대학교 건축공학과 이득행 교수(전 나자르바예프 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이 짧은 글을 작성하고 있는 본인은 공학자이며, 더욱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구조공학자(Structural Engineer)이다. 소위 공학박사이고, 다른 말로 대학교수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전공은 건물, 철도 및 교량과 같은 일반 건축물 및 사회기반시설의 설계와 관련되어 있으며,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구조물의 안전을 책임진다.

김상욱(고려문화원장)   코로나 19의 세계적 확산이 가속되는 가운데 카자흐스탄에는 지난 16일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19일부터는 수도 누르술탄시와 알마티시에 대한 봉쇄조치가 내려졌다.  이들 도시에는 약국과 식료품시장과 상점을 제외한 쇼핑몰, 식당, 체육시설 등이 폐쇄되었고 카자흐인들에게 최대명절인 나우르즈 행사마저 취소되었다. 카자흐스탄 당국과 지방정부 수장들은 방역활동을 강화하면서 코로나 19의 확산에 따른 실업과 경제불안 방지책들을 내놓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각종 공과금 미납에 대한 유예조치를 내렸고 기업들에게는 고용을 유지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해 자금지원을 약속했다.  22일부터는 일부 품목에 대한 수출금지조치도 내려졌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 중에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금수품목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마스크와 같은 방역제품이나 물가안정을 위한 석유 제품이 포함되어 있겠거니 하고 목록을 확인해 본 결과, 예상과는 달리 농산물 뿐이었다. 즉,  메밀, 밀가루, 설탕, 감자, 당근, 순무, 사탕무, 양파, 양배추, 해바라기씨 와 해바라기식용유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민들의 식탁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과 가격유지를 위해 카자흐스탄 당국이 한시적으로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쨋던, 코로나 19로 인한 금수품 목록을 통해 내가 사는 카자흐스탄이 자원부국인 동시에 농업대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카자흐스탄 농업의 역사 카자흐스탄의 농업개발의 역사는 이미 100년도 훨씬 전인 제정러시아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카자흐 초원 또는 큽차크 초원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역사적으로 유라시아 유목민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세계최초의 유목제국을 건설한 스키타이와 그 뒤를 이은 흉노, 투르크, 몽골제국들이 이 땅을 근거지로 삼아 남쪽 농경민들을 정복하고 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후계자 계승문제로 중앙정권이 약화되어 지방권력끼리 생존을 건 전쟁을 하기도 했지만 이들의 삶의 방식은 수천년 전부터 이어져 온 유목이라는 형태를 20세기초까지 유지해 왔다. 그러나 징기스칸의 장남 주우치에게 분할된 큽차크칸국을 구성하던 작은 지방정권 중 하나였던 모스크바 공국은 16세기 들어 서서히 큽차크칸국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특히, 18세기 (1723년) 서몽골지역을 지배하던 유목국가 준가르의 침략으로 카자흐 칸이 러시아 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을 계기로 러시아가 이 지역에 진출하면서 농업이 시작된다. 러시아에 복속한 카자흐 칸(중, 소 주스)를 직접 통치하기 시작한 1820년대가 바로 카자흐스탄 농업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카자흐초원에 진출한 러시아 농민들이 개간한 농토는 수천년동안 이어져 오던 카자흐 유목민들의 계절 이동로를 단절시킴으로써 불만과 반감을 사기도 했으나 짜르정부의 지원으로 러시아 농민들의 이주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를 1차 농업개발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19세기 중엽 러시아농노해방과 함께 자유인이 된 러시아 농민의 카자흐 초원 유입으로 농업개발은 본격화된다. 이후 1차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농민의 이주는 꾸준히 증가하여  급기야 러시아, 우크라이나, 타타르 등 슬라브계통의 이주민이 카자흐인들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하게 된다. 20세기 첫 농업개발의 주인공, 고려인 20세기들어 이루어진 대규모 농업개발사업은 2차례 이루어졌다. 그 첫째는 바로 17만여명의 고려인들이 투입되어 이루어진 농업개발이고 두번째는 소련  당 서기장이었던 흐루시쵸프 시절 이루어진 시베리아 처녀지 개발 사업이다. 20세기에 이루어진  대규모 농업개발의 첫 역사는 1937년 고려인들의 강제이주과 함께 시작되었다.  물론 고려인 강제이주의 직접적 계기는 세계대공황이 휩쓸고 지나간 30년대 중반,

  코로나 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외출제한조치가 오늘 0시를 기해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의약품과 음식의 구매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이 집밖으로 나갈 경우, 경찰에 의해 제재를 받거나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구류를 받을 수도 있다.   알마티시장은 특별히 65세이상 노인들은 모든 외출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3명이상의 모임과 성인을 동반하지 않은 어린이의 외출이 금지되었고, 광장과 공원, 운동장, 레크레이션 장소를 포함한 다중이 모이는 모든 공간이 폐쇄되었다. 대규모 종교의식과 행사를 여는 종교기관의 활동도 제한되었다. 그러나 애완 동물의 산책은 허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