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하러 비행기 타고 간다는 말씀이세요?"
카자흐스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369명으로 늘어난 4월 1일 오후 2시, 고려인 동포단체장들이 사용하는 SNS 단톡방에 메시지 수신 알람이 울렸다. 알마티시청이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 간부들에게 보내는 협조 공문이 전달돼 왔기 때문이다.
알마티시 당국이 보내온 내용을 요약하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오는 5일 가족들이 모여서 부모 산소를 가는 고려인의 풍습인 '한식(寒食)' 성묘를 자제해 줄 것과 이 사항을 고려인 디아스포라 전체에 공지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알마티시에는 약 4만명에 가까운 고려인 동포들이 살고 있다. 매년 한식날에는 꽃을 사들고 온 가족이 함께 시내 릐스꿀로바 공동묘지나 시외 부룬다이 공동묘지 등에 안장돼 있는 부모나 친지들의 묘소에 성묘하는 풍습을 유지하고 있다.
고려인들과 26년째 동고동락, 한식의 추억
중앙아시아 고려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온 지 벌써 26년째인 나는 한식과 관련된 추억 가운데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일이 있다.
1996년 봄이었다. 당시 나는 알마티국립대학교 조선어과 교수이면서 동시에 고려인 한글신문인 <고려일보> 기자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고려일보>는 한글판 신문 제작 인력이 부족해 절반의 지면을 러시아어판으로 제작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여의치 않아 나를 반강제적으로 특별 채용했던 것이다.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를 했다는 경력을 들킨 탓이다.
<고려일보> 전 주필이었던 양원식 선생의 묘지를 미망인이 둘러보고 있다. 지난해 4월 5일 릐스꿐로바 공동묘지. ⓒ 김상욱
4월 5일 '한식(寒食)'날이면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은 음식을 준비해 부모나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한다. 사진은 지난해 4월 5일 한식날 알마티시내 르스꿀로바 공동묘지의 모습.ⓒ 김상욱
그러던 4월 어느 날, 햇살이 유난히 따뜻했던 그날 편집실이 썰렁한 게 아닌가. 취재와 기사작성, 교정작업 등으로 마땅히 분주해야 할 편집실에 기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난 "왜 아무도 안 보이죠?"라고 물었다. 편집실을 지키고 계시던 선배 기자 한 분이 "김 선생은 오늘이 한식인 것도 모르오? 한국에서는 한식날 부모 산소에 가지 않소?"라며 나에게 되묻자 게 아닌가.
순간, 과거 교과서에서 배웠던 '한식'이라는 명절에 대해 떠올리면서 "아~ 예, 제가 깜빡 잊었네요, 한국에서도 한식을 명절로 여기지만 설날이나 추석만큼 큰 명절은 아닙니다"라고 얼버무렸다. 그러자 그 분은 "우리 고려인들은 한식날 부모나 형제들 산소에 성묘를 꼭 갑니다, 오늘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은 기자들 중엔 저 멀리 타슈켄트로 성묘 간 기자도 있소"라고 하셨다.
한국에서는 '공부한다' 또는 '바쁘다'는 핑계로 성묘를 면제 받아온 나는 타슈켄트까지의 거리에 작은 작은 충격을 받고 "성묘하러 그 멀리 비행기까지 타고 가신단 말씀이세요?"라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옛 소련 시절, 고려인들은 더 멀리도 성묘를 다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