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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작곡가, “한국 고대사 녹여낸 발레 ‘삼국의 왕자들’ 무대에 올리고 싶어”

블라지미르 스트리고츠끼-박 카자흐국립음악원 교수,

“아버지의 조국인 한국을 한번 보고 싶어…”

블라지미르 스트리고츠끼-박 카자흐국립음악원 교수. 2022.2.9.

(알마티=연합뉴스) 김상욱 통신원 = “제 곡이 모국동포들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알고 싶습니다.”  

“한국 전통악기의 원음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전자음원으로만 듣고 교향곡을 작곡했거든요”

카자흐스탄에서 유명한 작곡가이자 국립음악원 교수이기도 한 고려인 동포 음악가의 소박한 새해 소망이다.

블라지미르 스트리고츠끼-박(74) 교수는 9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한국 고대사를 녹여낸 발레 ‘삼국의 왕자들’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삼국의 왕자들’은 카자흐스탄의 유명한 시인이자 작가인 두센벡 나키포브가 한국의 고대사를 기초로 만든 대본에 꾸르만가지 명칭 카자흐스탄국립음악원 교수이자 작곡자로 유명한 블라지미르 스트리고츠끼-박 교수가 곡을 붙인 발레작품명이다.

박교수는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코리안이다.

그는 2차대전 직후인 1947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의사였던 외할머니와 교사인 어머니의 품에서 자랐다.

러시아인 어머니로 부터 풍부한 예술적 감수성과 인문학적 교양을 물려 받아 일찍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작곡 전공으로 카자흐국립음악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러시아인이었다.

그러나 대학입학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전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던 동포(‘고려인’)라는 존재를 친구 마릭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기타를 전공한 고려인 친구 마릭은 자신에게 우리민족의 역사와 전통, 문화에 대해 알려주었다.  

“제가 대학졸업 후 스스로 고려극장을 찾아간 이유는 저를 찾고 싶어서 였습니다”

박교수는 음대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고려극장에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을 필요로 했던 고려극장은 음악감독으로 채용했고, 이때부터는 그는 고려극장의 무대에 오를 연극과 공연에 사용될 음악 작업에 몰입해 들어갔다.

음악작업을 하면 하면서 선조들의 춤과 노래에 빠지게 된 그는 동시에 전통음악과 우리말을 하나씩 배워갔다. 이는 고려인으로서 정체성에 조금씩 눈을 뜨는 과정이었다.

젊은 열기를 불태웠던 고려극장을 떠나 국립음악원 교수로 자리를 옮긴 그는 한국의 고전을 소재로 발레 작품을 쓰는 소망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연극 및 음악예술 분야의 창작을 지원하는 카자흐정부의 예술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박교수는 카자흐스탄의 시인이자 작가인 두센벡 나키포프가 옛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쓴  ‘삼국의 왕자들’의 대본을 바탕으로 발레곡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대학시절부터 카자흐스탄을 대표해서 프랑스와 영국에서 열린 국제음악콩쿨에 참가하였고 연극 ‘아지야 다우스’에서 음악감독, 고려극장의 ’38선 이남’, ‘계월향’, ‘지옥의 종’등의 작품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던 경험들이 발레 ‘삼국의 왕자들’작업에 기초적인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클래식한 발레음악에 한국적 민속음악을 어떻게 융합시킬지가 그의 고민이었다.

서로 상반되는 듯한 두개의 음악적 원리를 한 작품속에서 녹여낼 자신이 있었던 그는 우선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국적 요소를 가미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한국적 음악 재료 조차 부족함을 깨닫았다.

위기가 찾아왔고 고민이 깊어졌다.

문제는 또 있었다. 발레와는 다른 한국 민속무용에서의 움직임을 무대에서 실현해 내기 위해 뮤지컬 형식을 도입하는 새로운 시도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의 고민과 도전은 여기 까지였다.

박교수의 발레곡을 들은 S.M.바이술타노프 국립오페라발레극장 부극장장, N.S.지라소프 수석 지휘자, R.S. 바포프 수석 안무가는 “곡이 고유한 민속적인 억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편곡을 통해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라는 부드러운 통보를 했지만 사실 부적합 판정을 내린 것이었다.

음악과, 춤의 가장 아름다운 완성체인 발레를 향한 그의 꿈이 좌절된 것이었다.

카자흐스탄 작곡가동맹 창립 70주년 기념 콘서트 포스터 속의 주인공.  블라지미르 스토리고스키-박 카자흐국립국악원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제 곡이 모국동포들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모국의 음악인들과 협력을 통해  한국적 전통을 융합시킨 발레 작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자신의 곡에 대한 모국동포들, 음악인들의 반응을 무척 들어보고 싶어하는 박교수는 이같이 새해 소망을 밝혔다.

 “한국 전통악기의 원음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전자음원으로만 듣고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뭔가 모를 책임감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조국 한국땅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라는 그의 말이 먼저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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