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피해, 중앙아시아의 비상구
카스피해는 유라시아 대륙 깊숙한 곳에 있는 바다이다. 카스피해는 가장 흥미로운 물류지역 중 하나다. 카스피해는 마치 한반도와 비슷한 모양을 가지면서 크기는 보다 큰 편이다. 동서는 약 300km, 남북은 약 1,200km, 해안선 길이는 약 7,000km에 달한다.
카스피해의 북쪽과 동쪽은 러시아의 대평원과 중앙아시아의 스텝-사막 지역으로 평평했지만 반면에 카스피해의 남쪽과 서쪽은 이란의 산맥과 카프카즈 산맥으로 험준하다.
카스피해 연안을 가진 다섯 나라의 항구 도시를 시계 방향으로 살펴보면 러시아의 아스트라한, 카자흐스탄의 아티라우, 악타우, 쿠릭,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바시, 이란의 반다르에안잘리, 아제르바이잔의 바쿠가 있다. 인근의 우즈베키스탄,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도 물류적인 측면에서 카스피해가 중요하다.
‘카스피해가 바다인가? 호수인가’라는 논쟁거리가 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은 바다로 보고 이란은 호수라고 본다. 호수라고 보는 근거는 염도가 낮고, 사면이 육지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로 보는 근거로 수십여 개의 강줄기가 카스피해를 만들고, 호수치고는 넓으며, 낮기는 해도 분명 염기가 있고, 강을 통해 외해로 이어지기 때문인데 대체로 카스피해는 호수가 아닌 바다로 본다.
지중해-보스포루스 해협-흑해-케르치해협-아조프해
카스피해로 선박이 들어갈 수 있을까? 대서양이나 수에즈운하를 통하여 지중해로 들어간 후, 보스포루스 해협을 거쳐서 흑해로 들어간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가장 좁은 곳은 750m이며, 30km에 달하는데, 이스탄불 시내를 동쪽과 서쪽으로 나눈다. 이스탄불의 서쪽은 유럽이며 동쪽은 아시아다.
흑해 깊숙이 들어가면 케르치해협이 나온다. 케르치해협의 가장 좁은 곳은 약 3Km 남짓이며, 25km에 달한다. 케르치해협을 지나면 흑해보다 10배 정도 작은 ‘아조프’해가 나온다. 아조프해는 흑해 일부분으로 볼 수 있으며, 러시아의 ‘돈’강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아조프해를 이룬다.
로스토프-돈강-볼고그라드-볼가강-아스트라한
돈강 하류에는 ‘로스토프-나-도누’라는 도시가 있는데, 짧게는 ‘로스토프’라고 한다. ‘돈강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뜻으로 아조프해의 해상부두와 돈강의 하천 부두를 가진 물류도시이며, 2018년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도시 중 하나다.
인구 150만의 제법 큰 도시인 로스토프는 우크라이나의 동부, 모스크바 내륙, 카프카즈 산맥의 교차로이면서 아조프해와 돈강이 교류한다. 돈강은 ‘볼가’강보다 유속 흐름이 느린 편이다. 그래서 <고요한 돈강>이라는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졌나 보다.
돈강을 따라 들어가면 ‘볼가강의 도시’라는 ‘볼고그라드’가 나온다. 여기에서는 돈강과 볼가강이 마주치는데, 1952년 ‘볼가-돈’ 운하를 만들어서 돈강과 볼가강을 연결하였다. 볼가강을 따라가다 보면 ‘아스트라한’이 나오고 카스피해가 펼쳐진다.
카스피해 루트
‘대서양~지중해~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해협-흑해-케르치해협-아조프해~로스토프-돈강-볼고그라드-볼가강-아스트라한-카스피해’다. 지중해, 흑해, 아조프해는 모두 외해인 대서양과 바닷물로 연결되어 있지만 카스피해는 볼가-돈 하천을 거쳐야 하므로 진정한 내해다. 카스피해를 활용한 물류로는 세 가지가 있다.
1. 카스피해 종단 루트
카스피해의 북쪽에서 동쪽이나 서쪽으로 갈 때, 동쪽에서 북쪽이나 남쪽으로 갈 때는 굳이 카스피해를 건널 필요는 없다. 카스피해 북쪽에 위치한 러시아와 남쪽에 위치한 이란은 카스피해 종단을 통해 직접 교류할 수 있다. 철로 간격에서 러시아는 광궤를 가지고 이란은 표준궤를 가지고 있는데, 카스피해 종단 항로 간에는 일반 선박이나 광궤와 표준궤가 모두 설치된 레일페리를 운항한다.
2. 카스피해 횡단 루트
카스피해 동쪽의 아티라우, 악타우, 쿠릭과 서쪽의 바쿠 항구를 연결하는 것을 카스피해 횡단 루트라 한다. 카스피해 횡단은 흑해에 있는 조지아 포티항구와 연결되면서 터키, 우크라이나, 유럽연합을 잇는 선박들이 오간다.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즈는 모두 같은 광궤가 깔려있으므로, 카스피해 횡단 루트에는 일반 선박이 아니라 대부분 광궤 레일페리가 운행한다. 즉, 부두 크레인을 가지고 화물을 선박에 선적, 양하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차가 진행한다.
한편 서쪽의 유일한 항구라고 할 수 있는 바쿠항이 카스피해 횡단의 핵심이 되었고,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이 카스피해 횡단 루트의 선박 운항을 좌지우지한다.
카스피해 횡단을 사용하는 화물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카프카즈와 중앙아시아 간 이동되는 화물, △둘째, 이란 제재로 인하여 이란을 경유하지 않으려는 화물, △셋째, 러시아를 경유해서 가지 않으려는 우크라이나, 터키, 유럽연합. 미국 화물들, △넷째, 러시아가 경유 운송을 허락하지 않는 항목에 걸리는 화물들, 예를 들면 유럽연합 식료품, 다섯째, 러시아의 비싼 부두 보관료나 까다로운 통관 절차, 화물 정체를 피하고자 하는 화물들이다.
한편 ‘중앙아시아~카스피해~아제르바이잔-조지아-흑해-터키/우크라이나/유럽연합/미국 및 아시아’ 등을 연결하는데, 카스피해 횡단은 러시아와 이란을 우회하면서 중앙아시아의 통로가 된다. 러시아와 이란을 거치지 않고 유라시아를 관통할 방법은 없다. 유일한 통로다. 따라서 ‘카스피해~아제르바이잔~조지아~흑해’ 구간은 ‘친서방 루트’로 활용된다.
3. 볼가-돈 운하 루트
외해와 카스피해를 오가는 선박들은 러시아의 볼가-돈 운하를 거쳐야 하는데, 겨울이면 볼가-돈강이 얼어버린다. 따라서 카스피해로 들어간 선박이 자칫 시점을 놓치면 겨울철에는 카스피해에서 나올 수 없다.
겨울철에 사용할 수 없는 불편함과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볼가-돈 운하 루트가 사용되는 경우는 대략 두 가지다. 100톤 이상의 초대형 화물들을 운송하거나, 선박 운송만으로 중앙아시아와 흑해/지중해 간 연결하고 싶은 경우다.
‘중앙아시아~카스피해 동부 항구-볼가 돈 운하~흑해~지중해’가 연결되는데, 주로 터키의 이스탄불과 카스피해 동부의 악티라우, 악타우, 투르크멘바시 항구를 연결한다. 볼가-돈 운하 루트는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물류 루트다.
중앙아시아로 수출입하는 경우에 카스피해 루트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러시아, 중국, 이란 경유 루트 대비하여 시간이 더 오래 걸리면서도 비용도 그리 경쟁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사시 대안 루트이면서 때로는 불가피한 루트다. 그래서 카스피해는 중앙아시아의 물류 비상구다.(정성희)